글쎄, 당신은 나를 실컷 울게 하지(강만큼 많이 운다) Cry me a river, I cried a river over you.
난 울꺼야, 나는 당신을 위해 울꺼야.
Now you say you're sorry
넌 인제 미안하다고 말하지 For being so untrue
진실이지 못했다는것을 말이야
Well you can cry me a river
글세, 당신은 나를 실컷 울게 하지(강만큼..~) Cry me a river, I cried a river over you.
난 울꺼야, 나는 ~ 중복
You drove me mad and drove me out of my head
넌 나를 화나게 하고 나를 미치게 해 While you never shed a tear
니가 눈물을 절대로 흘리지 않는 동안 Remember, I remember all that you said,
기억해, 나는 니가 말한 모든것을 기억해 Told me love was true for me and...
나에게 사랑은 진실이란걸..그리고 Told me you was...you and...me and...
[음악칼럼] 어덜트 컨템퍼러리의 그리움
작성일 : 2002-07-22
줄리 런던의 노래를 들으며… 음반 매장에서 4·50대 아저씨, 아줌마를 찾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이가 들면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트로트가 좋아진다구요? 하지만 또한 치열했던 70년대의 통기타 가수의 목소리에 눈물짓습니다.
한3년 전쯤 되었나? 대학로에서 카페를 하고 있을 때죠. 아마도 밤 11시쯤, 오늘처럼 비가 치덕치덕 내리고, 가게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문 닫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홀로 창가에 앉았더랍니다. 머리에 묻은 빗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모습을 나는 저만치 카운터에 앉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미당의 시 ‘인연설화조’를 읽는 것처럼, “아, 저 여인은 또 어떤 인생의 곡절을 걸어, 이 비 오는 밤에 홀로 내 가게에 앉아 있는 것일까?”라며 시적인 상상력을 피워 올렸겠죠. 주문한 와인 한 잔과 마늘 소스를 바른 바케뜨를 가져다 줬습니다. 여인이 살짝 웃으며 “맛있네요. 음악도 참 좋고요”라는 것 아니겠어요? 카페 주인에게 음악 좋다는 얘기와 음식 맛있다는 얘기처럼 반가운 얘기가 없죠. 그것도 비 오는 밤, 홀로 온 여인으로부터….
그 때 흘러나오던, 그 여인이 좋다고 한 음악이 줄리 런던의 ‘Cry me a river’였습니다. 1955년, 줄리 런던의 첫 싱글 히트곡입니다. 이 곡으로 인해 줄리 런던은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여성 재즈보컬리스트의 반열에 오르는 길을 마련하게 됩니다. 1998년에 한국 EMI가 재편집한 ‘Julie sings love’(EMI EKPD-0705)를 고르면 줄리의 히트곡을 스물 네 곡이나 들을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여인의 한 마디 칭찬에 한껏 고무된 나는 “오냐, 내 오늘 ‘oldies but goodies’의 진수를 들려주마” 작정하고서, 그 여인이 좋다고 할 만한 류의 음악들을, 디스크자키 하던 시절로 돌아간 양 정성껏 골라 틀었습니다. 줄리 런던이 리바이벌해서 부른 ‘I left my heart in SF’ ‘I’m in the mood for you’ 같이 노글노글한 곡들을 몇 곡 더 틀고난 후, 냇 킹 콜, 알 그린, 캐롤 킹, 돈 맥클린, 호세 페르치아노에 이르는, 이른바 ‘어덜트 컨템퍼러리’로 분류할 만한 곡들을 쫙 펼쳐놓았답니다.
4·50대를 위한 음악을 기다리며… ‘어덜트 컨템퍼러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분야가 바로 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어덜트 컨템퍼러리? 90%가 트로트일 뿐입니다. 뭐, 트로트를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트로트 일색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마흔 넘은 선배들과 술을 걸치면 영락없이 ‘뽕짝’의 젓가락 행진곡으로 진행됩니다. 이상한 일이죠? 그 나이의 사람들이 젊었을 때야말로, 우리나라 가요의 황금기라는 70년대 포크 시대였습니다.
한대수, 송창식, 조영남,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양병집, 박인희, 이장희 등이 청바지에 통기타를 둘러메고 같이 호흡하던 시대였습니다. 비록 긴급조치 9호와 대마초 파동으로 기세가 꺾이고 말았지만, 그 정도로 화려한 시절은 92년에 서태지 1집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크 세대들은 너무 쉽게 뽕짝에 투항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점은 가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양희은 정도만 정기적으로 공연을 할 뿐, 포크 시대의 가수들은 다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영남이야 원래 자기 노래가 거의 없는 사람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송창식(개인적으로 한국 최고의 가수였다고 보는)은 왜 미사리 카페에만 들락거리는 걸까? 김민기는 ‘지하철 1호선’에만 있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레너드 코헨도 새 음반이 나오는데 조동진은 뭐 하나? 한대수는 왜 이리 뜸한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우울해집니다. 음반계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 음악 시장에서 40대 이후가 갖는 구매력은 10% 미만으로 추산합니다. 당연히 제작자로서는 모험할 생각이 없어지고, 그나마 10%쯤 되는 구매자들도 “뭐, 변변한 판이 나와야 들어보지”라는 식으로 포기해버립니다. 그래서 그 울분은 예의 젓가락 뽕짝과 쓴 소주로 대체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식으로 자꾸만 멀어져갑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에게 이런 말 들을 때가 금방 들이닥치겠죠. “아빠랑 무슨 얘길 할 수 있겠어?”그래서 비 내리는 밤에 다시 줄리 런던의 음반을 듣고 있자니 (따스한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쓸쓸한 생각이 듭니다. 내친 김에 송창식의 옛 음반도 한번 더 들어볼까나? 그러면 확실히 쓸쓸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