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2006/08/14 15:17추천0스크랩0

민족과 역사에 대한 패배주의와 열등의식을 극복해야 한다.


요즘 사극이 많이 방영되어 방송 드라마란 특성에 비추어

재미를 추구하고 시청률에 신경 쓰다 보니

상당히 많은 부분의 픽션이 가미되어 일종의 역사왜곡을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간 정통사학자들이 주장하던 교과서적인 역사,

즉, 일본의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역사-그간의 우리 역사는

아직도 이병도의 진단학회를 앞세운 조선총독부의 역사 왜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를 뒤집는 역사 해설이 새롭게 주목되어서 기쁘다.


‘주몽’이나, ‘연개소문’을 보면

그간에 신화적인 부분으로만 우리에게 알려졌던 부분을 역사로 해석한다.


단군 조선 이전에 '배달국'이 있었고, 그 배달국의 왕은 ‘환웅’이었으며,

단군 조선은 환웅의 배달국을 뒤이어

환웅의 후예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곰을 토템으로 하는 토착부족과 연합하여

조선(고조선)을 세우고 역대 임금은 '단군'이라 하였다.


그 배달국의 환웅 중 '치우천황'은 황하 이북의 땅까지도

그의 통치지역으로 할 만큼 강대한 국력을 떨쳤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 역사에서도 '치우'는 중국 역사의 시조라 부르는 3황5제와 동급

으로 대우하여 그들이 우러러 보고 두려워하는 '전쟁의 신'으로서 대우한다.


한나라에 의해 단군 조선이 망하고

해모수란 지도자를 모시고 국권회복 내지 국토회복을 위한

대 한나라 항쟁을 벌이다가 해모수는 죽고,

그의 아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그 고구려 건국의 바탕은 주몽이 8살 연상의 과부인 소서노와 결혼하여

소서노의 친정 부족인 계루부를 근거로 고구려를 건국한다.


단군신화를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곰이 처녀로 된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


고구려 건국신화를 보면 유화부인이 환웅을 만나 주몽을 잉태하여

주몽은 알에서 태어난다.


신라의 건국신화를 보면 박혁거세, 김알지, 석탈해가 모두 알에서 잉태한다.


이는 한마디로 당시의 외래부족의 총각과 토착부족의 처녀간에 잉태한

각 나라의 시조가 사생아로서 태어나고 그 출생의 떳떳치 못함을 각색하고자

또는 외래부족과 토착부족의 연합정권의 창업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위하여

만든 신화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어찌 인간이 알에서 태어난단 말이며 아비, 어미 없는 아들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러나 역사에서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생아들은 많다.

우리나라 역사를 새운 이들뿐만 아니라 진시황, 한고조 유방도 사생아였고,

지저스 크라이스트도 사생아였다.


고구려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주몽과 연개소문은 사료의 부족함에

많은 픽션을 동원하나 그간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생경한 역사 해석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는 그간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던 역사관을 대폭 채용한 결과이다.


즉, 우리 고대역사가

배달국(환웅)-(고)조선(단군)-치우천황의 전성시대-(고)조선의 멸망

-해모수의 대 한나라 항쟁-부여, 옥저, 동예 등 열국시대-고구려 건국

-고구려의 한반도 이북/만주지역 통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연개소문을 보면 '삼족오(세발 달린 까마귀)'가

고구려의 상징으로 부단히 나온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일본축구국가대표팀의 공식 스포터즈인

‘울트라니뽄’의 마스코트가 바로 '삼족오'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일본 그들도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간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은

고-수전쟁, 고-당전쟁은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전쟁으로 알고 있었지만

고-수전쟁, 고-당전쟁은 당시의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던

강대국 쟁탈전이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는 수나라에 열세인 국가가 아니었고,

또한 당나라에도 열세인 군사력을 가진 국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수나라와 당나라와 고구려는 장장 12차에 걸친 전쟁을 벌였고

이는 대부분 고구려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수나라와 당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왕조로서 그들 중국 영토를 끊임없이

침탈하고 수,당과 교역하는 주변국과의 교역을 방해하는 고구려에 대하여

전면전쟁을 벌여 각각 나라의 운명을 걸고 동아시아의 패권을 걸고 벌인

전쟁이 바로 고-수전쟁이고 고-당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간 왜 고구려가 강대한 국력을 가지고

백제와 신라를 통일하지 않았는가?

하는 끊임없는 의문을 가져왔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관계는 형제국으로서 상호 조공관계에 있었던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로서 고구려 입장에서는 백제와 신라는 아예 관심밖의

약소국이어서 크게 국경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가만히 놓아두는

요즘으로 치면 미국과 대한민국의 관계로 해석하면 우리의 의문은 절로 풀려진다고 본다.


동아시아의 강국 고구려는 한민족, 말갈족(이후에 거란, 여진, 몽고족으로

분화), 선비족-이 세민족을 통털어 ‘배달민족’이라고 칭함-의 연합국가로서

그 지도층은 한민족이 차지했다고 재야사학자들은 본다.


고구려는 결국 12차에 걸친 고-수전쟁, 고-당전쟁의 결과 국력의 피폐를 가져와서

멸망하게 되고 이에 따라 우리민족의 웅대한 역사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강대국 고구려를 무너뜨린 당나라의 왕은 ‘당고종’이 아니라

바로 유명한 ‘측천무후’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설인귀, 이세적, 소정방이란 당의 걸출한 장수들을 쥐락펴락하며

백제와 고구려 를 무너뜨린 당의 통치자는 바로 여인천하를 이룬

‘무측천’이란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당시의 당은 일시 국력을 상실하고 측천무후가 지배하는 ‘무씨왕조’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김유신, 김춘추를 3국을 통일한 영웅으로 대접하지만

국토의 5분의 4를 당에 내준 통일은 결코 통일이 아니다.

김유신, 김춘추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찌그러뜨린 반역자가 더 어울리는 인물평일 것이다.


하지만 신라가 백제로부터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으면

당나라의 힘을 빌어 백제를 멸망케 했을까?

그 신라의 몸부림은 그 때로 돌아가 보지 않으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김유신, 김춘추도 결코 욕할 수 없는 인물이다.

단지 자신이 속한 국가 신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 결과가

신라 하나로 쪼그러진 한반도의 역사로 돌아온 것뿐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멸망으로 배달민족의 웅대한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에 더불어 당나라는 고구려의 웅대한 역사, 배달국의 역사, 단군조선의 역사를

깡그리 흔적도 없애버리고 우리의 역사를 형편없이 쪼그려뜨려 버린다.


이러한 한반도를 침탈한 당나라, 원나라, 왜의 배달민족 역사 없애기는

천여년에 결쳐 자행되고 그 결과로 우리는 우리의 고대 역사에 대한 사료가

없어 중국의 사서에 적힌 몇 줄에 기대고 가끔 발굴되는 고적이나 유물에서

우리의 영광된 역사를 유추하는 초라한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배달민족의 그 광영의 역사는 결코 종언되지 않았다.


당을 이은 송은 배달민족의 후예인 ‘거란족’이 건국한 요나라와

‘여진족’이 건국한 금나라에 의하여

중국 전토가 양자강을 기준으로 반분되는 남북조시대를 열었고,


배달민족의 후예 몽골의 징기스칸이 새운 원나라는

중국 전토를 통일한 왕조가 되었으며 몽골대제국은

세계 역사에 질풍노도의 시대를 열었다.


원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 한족이 세운 명나라가 3백여년을 통치한

16세기말에는 배달민족의 후예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또 다시 중국 전토를 지배하게 되고

청나라의 역사는 서구 열강이 동진한 19세기말에야 끝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배달민족이 주도한 동아시아의 웅대하고 광영된 역사이다.


우리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난 뒤

한민족의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로 동일시하였으며

우랄알타이어를 사용하는 한민족, 말갈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을

배달민족이란 동아리안에 묶을 수 있는 한민족으로 보지 않고

서로 적대시하고 침략하고 피터지게 싸우고 지배하는 관계로만 보았으나


사실상 중국이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쟁취한 뒤의 동북아의 역사는

배달민족의 분파끼리의 골육상잔이었으며

이는 다분히 중국이 그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배달민족의 각 분파끼리

생존의 투쟁을 펼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필연적인 결과였을 뿐이다.


일본도 결국은 백제와 고구려와 신라의 유민들이 흘러들어가 건국한

우리의 아우의 나라로서 1905년 일본이 조선을 실질적으로 병탄한

을사조약 체결시 일본의 유명한 정한론자로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초대수상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천년의 원수를 갚았다’고 실토하였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일본의 북큐유슈우에 근거한 백제의 후손으로서

신라에 복속된 백제의 원수를 갚았다는 말을 을사조약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근래에도 일본 불침항모설을 주장하여 태평양전쟁이후 일본의 재무장을

주장한 나카소네 일본수상은 그 집안이 나카소네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의 핏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요사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일본 정계에서 앞장서 이끌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은 그 자신이 신라 유민의 후손임을 자처하고 있다.


바로 일본의 지배층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유민들과 그 후손들이며,

일본의 천황가도 금관가야의 허황옥 황후의 후예라는 연구 결과는 도처에 널려있다.


게다가 일본은 삶의 환경이 척박하다 보니 일본 개국이래

단 3백년 정도(헤이안시대, 무로마치막부, 도쿠가와 막부)의 평화기를 제외하고는

번간에 끊임없이 서로 토지 빼앗기를 위한 내전의 시대였으며,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타국의 침탈하는 전쟁도 여러 번 벌인바 있고

그 주 대상은 가장 가까운 우리 한반도였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의 일본과 조선의 쟁패는 사실상 신라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조선과 백제, 고구려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일본과의 골육의 쟁패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의 팔자가 사납다 보니

중국의 당나라가 우리의 위대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난 뒤

우리의 고대사를 깡그리 없애고,

같은 배달민족인 거란의 침략, 몽골의 침략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사료마저

불타 없어져 버리고,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 정유재란, 청나라의 병자호란, 정묘호란으로

우리의 사료는 거의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일제 식민통치 40년동안 일본은 그들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우리의 역사 자체를 왜곡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타국의 침략에 위한 우리민족의 역사 말살의 결과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른바 정통 역사라는 것은

민족의 역사라고 논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거짓과 왜곡이 판치는

치욕의 역사만 남아있는 것이다.


재야사학자들이 여러 가지 우리 배달민족의 역사를 발굴하고

우리의 영광된 역사를 증명하는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으나

민족 역사 왜곡의 앞잡이 진단학회의 후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정통 사학계는

‘사료를 제시하라’고 윽박지르며 재야사학계의 주장과 논문들을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다.


역사가 왜 소중한가?


민족의 영광된 역사를 찾아야 우리 민족이 이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웅대하고 영광된 우리민족의 역사를 다시 한번 건설할 수 있지 않은가?


그간에 우리는 한반도 중심의, 우리 한민족 중심의 좁은 역사, 약소국의 역사에

끊임없이 세뇌당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으로서 한번도 타국을 침략하지 않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는 둥

창피한 약소국, 피지배국의 역사의 망발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아시아를 호령하고 세계를 지배한

우리 배달민족의 웅대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기네 땅에서 일어난 모든 이민족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언어도단이고 거짓이고 억지 주장이다.


역사 연구의 방법론에서도 역사의 주역은 사람이고, 민족이다.

한민족, 말갈족, 거란족의 ‘배달민족’의 역사는

그 직계후손인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인 것이다.


우리는 이 좁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벗어나 배달민족의 역사를 찾아

영광된 배달민족의 웅대한 새 역사를 건설해야만 한다.


자! 우리 모두 좁은 눈을 크게 뜨고 좁은 마음을 크게 열어

우리 스스로를 좁은 울타리에 가두지 말고

세계를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새 역사를 건설해 보자.

'건강,생활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가월령가  (0) 2006.10.01
뇌세포의 조절은 볼륨방식  (0) 2006.10.01
이스라엘건국의 진실  (1) 2006.10.01
8.15와 리영희  (0) 2006.10.01
위성의 눈-카메라  (0) 2006.10.01
Posted by ogfriend

블로그 이미지
오래된 그리고 좋은 친구들이 가끔들러 쉬다 가는곳..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 중 게재됨을 원치 않으시거나,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으면 즉시 게재한 내용을 삭제하겠으니 삭제요청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모닥불 올림. Any copyrighted material on these pages is used in noncomercial fair use only, and will be removed at the request of copyright owner.
ogfriend

태그목록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5.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