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2건

  1. 2008.04.24 아! 어머니 3
  2. 2008.02.10 아름다운 두여인
  3. 2007.12.04 여보 나 그냥 오늘 갈래. 3
  4. 2007.09.12 로또 당첨자 이야기 1



아, 어머니...

내가 어릴 적 하루는 심하게 감기를 앓았다.
나는 그날 학교에도 가지 못했고 온종일을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엄마가 떠 주는 쓴약같은 밥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나는 물만 마셨다.
저녁무렵이 되서야 나는 겨우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빵이 먹고싶어졌다.
당장에라도 엄마에게 빵을 사달라고 조르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마음에 좋은 생각 하나 떠올렸다.
그것은 텔레비젼 광고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면서
엄마에게 빵을 먹고싶은 내 마음을 말하는거였다.
예전에도 나와 형이 아프면 엄마는 먹을 것을 사준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와 눈을 맞추지 않고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애플빵~ 애플빵은 서울빵~

그 날 저녁 나는 거의 쉬지도 않고 4시간 정도를 계속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결국 엄마는 빵을 사주지 않았고 대신 회초리를 들었다.
손님이 계신 자리에서 내가 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 때문에
나는 그날 종아리가 수수대가 되도록 매를 맞았다.

"네가 지금 왜 맞는 줄 아니?"
"엄마, 돈 없는데 빵 사달라고 졸라서요."
"아니다. 먹고싶은 빵을 조를 수는 있어. 너는 아직 어리니까.
하지만 손님이 계신데 네가 그러면 엄마가 얼굴을 들 수 없잖아.
자식들 잘못 가르쳤다고 얼마나 흉보겠니?"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말했다.
감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아팠던 나는
매를 맞고 자리에 누워서도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엄마가 미워서 엄마와 등을 돌리고 있었다.
늘 아팠던 엄마는 그날도 가파른 신음 소리를 내뱉었지만
엄마의 신음소리가 여느 때처럼 아프게 들리지도 않았다.

며칠 후, 엄마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대문을 들어섰다.
엄마는 얼굴 반쪽이 피멍이 들어 있었구, 목을 잘 가누지도 못했다.
엄마는 형과 나에게 빵 하나씩을 나눠주었다.

"어서 먹어라. 너 이 빵 먹고 싶어 했잖아."

종아리엔 여전히 매를 맞은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어린 나는 엄마가 준 빵을 손에 들고 마냥 기뻐하기만 했다.
엄마는 빵과 함께 신문지에 싼 돼지고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나는 형과 누나와 함께 몇달 만에 고기를 먹으며 너무나 행복했었다.

그 시절은 엄마가 만두라도 하는 날이면
온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어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내가 중학생이 되던 어느 날,
하루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가 마음 속에만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막내에게 애플빵을 사다주던 날,
사실 엄마가 길에서 넘어져서 다친 게 아니었어.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버스기사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엄마는 버스에서 넘어졌던 거야.
그런데 넘어지면서 의자에 몸을 부딪치고 얼굴까지 부딪쳤거든."

얼굴에 조금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는 말을 계속이었다.

"운전기사는 자신의 부주의 때문이라며
버스회사가 있는 종점까지 엄마를 데리고 간 거야.
그리고 담당자에게 말해서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거든.
그래서 엄마가 공손히 부탁했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돈으로 조금만 달라고 말야.
그랬더니 병원에 꼭 가라구 하면서 돈을 조금 주더구나.
그래서 그 돈으로 너희들에게 줄 빵하고 고기를 사가지고 오면서
엄마는 얼마나 기뻤는데."

"왜 그러셨어요, 엄마. 그 때 엄마 얼굴 많이 다쳤던 거 같은데."

"몸이야 많이 아팠지. 하지만 너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알게 될거다.
자식이 먹고싶어하는 빵 하나를 사줄 수 없을 때 에미는 더 아프다 걸."

느릿느릿 말하는 엄마 눈에는 어느새 물빛무늬가 어른 거렸다.

하지만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때조차
엄마의 사랑을 헤아리기에 여전히 어렸던 것같았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엄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고 내게 묻는다.
엄마는 지금도 아픈 허리를 감싸고
자식들에게 먹일 것을 사기 위해 시장을 다니신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등짐을 지고 마을 버스를 타고
시장을 다니시는 엄마는 예전 보다 키가 많이 작아지셨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부모님은 자신의 아픔으로 자식에게 사랑을 가르친다는 것을...
사랑은 반드시 그 사랑을 닮은 다른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 출전:이철환의 수필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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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두 여인
누나와 저는 일찍 부모님을 여위고
거친 세상을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중학교 중퇴가 고작인 누나는
취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택시기사로 취업한 누나...
승차 거부를 한 적도 없으며,
밤에는 노인이나 장애우가 차에서 내리면
전조등으로 어두운 길을 밝혀주기도 하였습니다.
짐을 들고 택시를 타는 노인이나 병자들에게는
내려서 짐을 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누나는 파스칼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모르는 선행이 가장 영예롭다."는
파스칼의 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동생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시집도 가지 못한 누나가
중앙선을 넘어온 음주 운전 덤프트럭과 충돌,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나와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는
생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극복할 자신이 없다며
누나와 자신 중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의 통첩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에게는 나와 누나가 기쁨이 아니라,
힘든 짐이고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를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날 때쯤의 어느 날 오후,
누나가 후원하는 고아원을 방문하기 위해
외출하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택시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휠체어에 앉은 누나를 보고
그대로 도망치듯 지나갔습니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때가 되자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슬프고 힘들게 살아가는 주위 사람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누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흠치고 있었습니다.
내가 불평을 말하자,
누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나를 위로 하였습니다.

그 때 택시 한 대가 우리 옆에 멈추더니
갑자기 트렁크가 열렸습니다.
기사는 여자였습니다.
마음씨가 곱고 아름다운 여자 기사의 도움으로
고아원에 도착한 시간은 캄캄한 밤.
휠체어를 밀고 어두운 길을 올라가는 동안
전조등으로 길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은
세상의 어느 빛보다 밝고 고마웠습니다.

나는 지금
이 아름다운 두 여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여자 기사와 결혼하여
누나와 함께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로하고
한 달에 두 번씩 고아원을 찾아가는
작은 선행을 하며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약간 어려움이 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과 아름다운 손과 발을 가진
두 여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두 여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두 여인이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 서울 대교구 '그대 지금 어디에' 제45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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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그냥 오늘 갈래!


흉선상피암으로 이미 여러 군데로 전이가 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입원을 했습니다. 꽃마을에 올 당시만 해도 상당한 통증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를 강력하게 써야 했습니다.


자녀는 중학교에 다니는 예쁜 딸 둘을 두었고 모두 착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모범생이란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투병생활 하는 동안에도 자주 들르곤 하였는데 아빠의 자랑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자식들을 남겨두고 가야하는 안타까움 때문에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 많은 짐을 아내에게 지워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라며 평상시에 제대로 호강한번 못 시켜준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신부님 이렇게 빨리 죽을 줄 알았으면 건강할 때 잘해줄 것을 참 바보같이 살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그것을 깨닫다니 한심하죠? 이렇게 최악의 상황에서 끝까지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네요. 그것이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요.”


때마침 들어오는 아내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어보이며 손을 잡아 줍니다. 영문도 모르는 아내는 남편의 작은 웃음에도 행복해했습니다. 그 행복이 얼마 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소중한가봅니다.


꽃마을에 입원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의 일입니다. 암이 폐에까지 전이가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은 흉수천자(폐에서 물을 뺌)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늦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미리 증상이 나타납니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하며 입술과 손발 끝이 산소부족으로 인한 청색증이 나타납니다. 벌써 이런 증상이 생길 때는 조금만 늦어져도 생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어야 할 경우가 많아 미리미리 물을 빼야 합니다. 이분은 벌써 20여 차례나 물을 뺐습니다.


하루는 아침부터 저를 찾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이미 아내도 자리에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부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신부님! 저 하느님 뵈러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임종을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어안이 벙벙한 사이에 남편은 아내에게

“여보, 나 그냥 오늘 갈래! 오늘 폐에서 물을 빼야 하는데......빼고 싶지 않아! 물 빼면 일주일을 더 살 수 있겠지만......내가 더 살면 당신만 힘들어져. 어차피 한번 죽는 건데......일주일 더 살면 뭘해......그냥 갈께......당신이 허락해주면 좋겠어......당신하고 하루라도......더 있고 싶지만 당신이 너무 고생해서 안 되겠어. 아이들과도 계속 떨어져 있어야 하고......나, 그냥 오늘 갈께!”


숨이 차는지 간신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집니다. 어차피 끝이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안 돼요......이렇게 당신을 보낼 수가 없어요......조금만 더 있다 가요. 신부님 어떻게 말 좀 해주세요......이이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일주일만이라도 더 살게 해주세요......여보! 나 고생하는 거 괜찮아......같이 있으면 얼마나 더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이렇게 훌쩍 갈려고 그래......나 허락 못 해......안 돼요.......!(흑흑......)”


“여보 미안해......어차피 한번 헤어져야 하잖아......이젠 더 이상 연명하는 것도 힘들어......갈 사람은 빨리 가야 당신도 아이들하고 마음잡고 살 수 있지......”

“여보......어떡해......나 어떡하면 좋아......!”

아내의 흐느낌 속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참 후

“여보, 당신이 정 그렇게 원한다면 당신 뜻대로 해.”

“신부님도 허락해주실 거죠?”

“그래요......물을 안 빼면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거 아시죠? 마음의 준비는 다 하셨 어요?”

“예”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부르세요.”

“아닙니다......볼 사람은 다 봤습니다. 아내하고 조용히......같이 있으렵니다......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신부님......잊지 않을께요.”

하루 동안 부부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남은 몇 시간을 함께 지냈습니다. 일 분을 하루처럼 한 시간을 10년처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그 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밤11시. 산소를 꽂고 있었지만 숨이 가빠 진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임종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코앞에 닥친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죽음이었기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평온해보였습니다. 저에게, 아내에게, 그리고 봉사자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 동안......고마......웠습니다.”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12시쯤, 숨이 잦아지면서 하늘나라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평온한 모습입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떠나기까지 15시간 동안 그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고했습니다.


죽기 전 아내에게 유언을 한 가지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앞만 보고 열심히 살긴 했지만 죽음을 앞두고서야 정말로 중요한 것이 따로 있음을 깨달았어. 그것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점이야.


그러나 나는 불쌍한 사람을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내 대신 당신이 불쌍한 사람을 힘닿는 대로 도와주었으면 좋겠고, 아이들에게도 그 점을 잘 가르쳐서 죽을 때 나처럼 후회하지 않도록 해줘.”



출처 ; 굿따이 3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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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gfriend
37억 로또 당첨자 이야기

2005년 X월XX일부터 바뀐 나의 인생을 몇마디 적어봅니다.

나는 올해 32살의 미혼 총각입니다.조그만 직장에 다니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평범한 직장인입니다.부모님과 형제로는 나,형님,누님,여동생 4형제이고 형님은 결혼해서 분가중이고 누님도 결혼해서 살고있고 집에는 부모님,나,여동생...이렇게 4식구가 그런대로 아쉽게(?) 살아가고 있었죠.

아버지는 어느 작은 공장에 과장님으로 일하시고 어머니는 가사를 하시고, 여동생은 게임방 알바를 열심히 다니고 저는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죠. 내 성격이 워낙 소심한 스타일이라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대인관계나 붙임성등은 조금 떨어지는 편이라 그리 싹싹한 모습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줄곳 30살이 될 때까지 변변한 직장 하나 못갖고 백수로 수년간을 집에서 눈치밥먹고 형제들에게나 친구들에게도 큰소리 한번 못하고 인생을 허무하게 보내고 있다가 뜻밖에 지인의 도움으로 현재 직장을 취직해서 2년째 안 잘리고 버티면서 그나마 백수의 생활에서 탈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나와 그 상대방이 징계를 먹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백수의 길로 다시 떨어진겁니다. 그래도 자존심에 퇴직서를 집어던지고 회사를 나서던 발걸음이 왜그리도 서럽던지......

남들 다 일하는 훤한 대낮에 딱히 갈곳도 없고 & #51211;은 날처럼 바닷가가 보고싶었습니다. 무작정 해운대 백사장으로 나갔습니다. 출렁이는 바닷물을 보니 눈물도 나더군요.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놈일까? 나는 왜 하는 일이 다 쭉쭉 풀리지를 않을까? 하는 잡다한 생각들을 하며 근 2시간동안 바다만 바라보면 내 자신에게 다그쳤습니다.

6시쯤 초저녁이 다가오자 문득 소주 한잔이 생각났습니다. 소주집을 찾으러 두리번 거리는데 복권방이 하나 보이더군요. 평소 잘 사지도 않았지만 웬지 그날은 누가 날 이끄는 것처럼 사고싶은 마음이 들었죠. 지갑을 보니 현금 9만원이 있더군요. 로또복권 2만원 어치를 샀습니다.
그냥 아무 번호나 막 찍어서 4장을 샀습니다.

그리고 복권방을 나와서 포장마차로 향했죠.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소주3병을 마셨습니다.그리곤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들어서서 식구들을 보니 그제서야 더한 걱정거리가 떠오르더군요. 내일부터 직장도 못가는데 식구들에겐 뭐라고 말을하나? 어떻해야 하나? 등등....

다음 날 아침...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그냥 출근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습니다. 아침부터 갈곳은 없지만 그래도 식구들에게 회사를 때려쳤다는 소리는 도저히... 그렇게 이곳 저곳을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가는.... 혼자 영화도 보고,게임방도 가고,공원벤치에서 쉬기도 하고,노숙자가 따로 없더군요.

그렇게 일단 일주일이 조금 더 지나갔습니다. 밤 8시경에 아버지가 공장에 야근을 하신다고 새벽에 오신다는 전화을 받곤 뭉그적 대다가 혼자 집에서 소주를 한잔 하고 있었죠.그나마 직장 생활하면서 집에 생활비로 드린 거 빼고 모아둔 비자금 돈 180여만원도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다니면서 이리 저리 쓰다보니 20여만원 남더군요. 돈 쓸거 없더군요.


이제 앞으로 어떻하나 하는 순간 문득 복권생각이 났습니다. 당첨일이 지나서 번호를 알 수가 없어서 로또 안내전화를 해봤습니다....1XX차 1등 X X XX XX XX XX (X)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내가 산 복권 4장중에 1등 번호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볼도 꼬집어보고 수십번을 확인 또 확인해봐도 틀림없는 1등... 컴퓨터를 켰습니다. 당첨금이 궁금했어요. 국민은행 로또사이트에 들어가서 회차와 번호를 확인해보니...1등이 맞더군요..당첨금 37억 9천 7백 8십 3만 8천 2백원........

복많은 사람들만 되는 줄 알았던 로또 1등이 지금 내 손가락에 쥐어져 있었습니다. 순간 머리속에 오만가지 일들과 생각들이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흘러가더군요. 나도 모르게 두손을 합장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

37억여원...듣도 보도 못한 거액이었죠. 내가 37억을 받을 수 있다는 엄청난 충격.... 공장에서 야근하시는 아버지. 늘 몸이 아프신 어머니, 알바하느라 늘 피곤한 여동생, 한달 벌어 한달 먹고살고 있는 형님, 택시 운전하는 매형을 늘 걱정하는 누님..... 날 비웃던 친척들과 친구놈들, 직장상사놈들, 주위에 돈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던 놈들.... 별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사람이 역시 돈에 좌우되나 봅니다. 머리속엔 그저 이제 다 죽었어..


방문도 창문도 다 닫고 혼자서 별별 생각과 두려움과 기대감이 다 들더군요. 세금을 뺀다해고 엄청난 액수일텐데 이걸로 뭘할까? 투자할까? 은행에 그냥 넣어둘까? 혼자서 밤새도록 32년동안 못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다음 날 바로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로또사업부로 향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가면서도 별별 생각이 다 들고 혹시나 서울가다가 버스가 사고라도 나는 거 아닌지 걱정도 되더군요. 왜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잖습니까? 이렇게 이제 고생 끝났는데 이거 타서 써보지도 못하고 재수없게 사고가 나서 죽는 거 아닌 가 하는 그런 잡생각까지 .......

여의도 로또사업부에 들어서서도 혹시나 누가 도둑놈이 뒤따라오는 거 아닌지, 잃어버려서 완전 황되는 건 아닌지..암튼 007 비밀 결사대처럼 품안에 고이고이 숨겨서 가져갔습니다. 누구 말처럼 은행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복권된 사람에게 빌붙는 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조사와 등록과 질문과 사진촬영을 하더니 세금 제외하고 바로 통장에 입금처리 해주더군요. 액수는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회차와 번호와 기타 등등 개인적인 정보 역시 XX처리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나말고도 광주에서도 2명이 더 당첨되어 있다고 하더군요..총 3명. 3명이 각각 37억의 1등 당첨금이 됐다고 얘기해주더군요.

통장에 입금된 XX수십억원의 액수를 보니 이제서야 진짜 내가 1등에 된 것이 감이 오더군요. 큰 액수를 통장에 넣고 작은 액수는 현금으로 받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거리에 다니는 차들과 사람들과 기타 등등 여러가지 눈앞에 모습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일 수가 없더군요. 마치 내가 제일 높은 곳에 혼자 떠있는 듯한 그런 묘한 기분이랄까??


고속버스도 불안해서 그나마 사고율이 적다는 기차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잠그고 몇번이나 통장을 확인 또 확인 .. 통장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그렇게 내 32년 인생에 수십억원의 액수가 시작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이게 돈이란 게 없을 땐 누구도 도와주고 뭐도 사고 뭐도 하고 등등 생각이 들던데 막상 돈이 손에 쥐어지니까 그게 안 되더군요. 그것도 적은 액수도 아니고 수십억원이.... 고기도 먹어본 놈이 더 잘 먹는다는데 돈이 생기니까 사람이 무척 짠돌이가 되더라 이겁니다.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가 가족간에 불화라도 생기는 거 아닐까? 돈땜에 가족도 죽이는 무서운 얘기도 들었기에... 인생이 갑자기 바뀌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생긴다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지 불안감이 들이 닥치더군요.

일단은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리로 출근을 해야 했기에...... 복권이 됐다는 사실도, 회사를 그만 뒀다는 사실도 모두 감춘채.... 오피스텔에서 혼자 이런 저런 계획과 상상과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통장을 바라보며 혼자 웃기도 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돈다발로 혼자 온방에다 깔아놓고 나뒹구는 모습도 상상하며 그렇게 혼자서 오피스텔을 꾸며놓고 노트북으로 게임이나 하다가 배고프면 밥시켜먹고 졸리면 자고 저녁이 되면 퇴근한답시고 집으로 가고.......

아침이면 출근한다고 혼자 오피스텔로 와서 또 혼자만의 아무 걱정거리 없는 나태함서 무료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뒹굴다가 무료하면 백화점가서 쇼핑이나 하고 돌아오고.. 그렇게 3개월을 살다보니 오피스텔은 어느덧 없는 거 없이 혼자 1년을 외출 안 하고 그속에 쳐박혀 살아도 될만큼 오만가지 물건들로 가득차 있었죠. 그 때가지도 나는 복권 1등 당첨을 비밀로 간직한채....

그런데 이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아버님이 공장에서 갑자기 쓰러지십니다. 아직 연세에 비해선 그래도 건강하셨는데... 병명이 폐암으로 나옵니다. 수술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미국아니라 그 어느나라에 가서 수술을 할 수도 있는 능력이 되는데 아무것도 못합니다.

어이가 없더군요.돈가지고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게 암 발병나고 2개월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아무것도 못한채..... 조금만 더 살아주시면 내가 이제 효도도 해드리고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는데... 수술도 못할 정도로 갑자기 와전된 폐암이 그저 한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나서 집안은 예전같이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쯤에서 이제 1등 당첨금 얘기를 하고 그 어떤 조치를 취할려고 할 즈음 새벽교회 다녀오시다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어이없게 돌아가십니다. 병원에 급히 도착해보니 벌써 운명하셨더군요. 아버지 돌아가신지 딱 한달만에... 아직 운전자도 못잡았습니다. 뺑소니로 새벽에 증인이 아무도 없는 관계로....

졸지에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십니다. 연이어 닥친 장례식과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로 정신이 없는데 큰형님이 아버지 재산 (대략 집,보험포함 4억5천정도)을 다 처리하고 혼자서 독차지 하다보니 누님이 그런게 어딨냐고 요즘은 딸도 상속권이 있다고 여러차례 다투더니 드디어는 형님,누님이 법적조치를 강행하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돈이 있으니 아버지 재산은 형님 드리고 누님은 내가 도와줄테니 법적조치를 취하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정도 재산가지고도 이 난리인데 수십억원이 있다는 말을 할 경우 그 뒷감당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기에 아무 것도 못하고 형님 누님이 지금까지 법적조치로 둘이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는 은행에 대출을 받아 조그만 아파트를 얻었다고 거짓을 말하고 내 신경은 쓰지말라고 말은 하곤 내돈으로 아파트를 얻어서 여동생하고 살고 있습니다. 돈이 있어도 꾸준히 벌은 돈이 아니기에 어디에 어떻게 발설하기도, 투자하기도, 도와 줄수도 없는 묘한 상황이 되버리더군요.

액수가 너무도 큰 탓도 있었지만 그만큼의 돈을 만져보지도 써보지도 구경도 못한 처지이다보니 그 때서야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돈이어야 된다는 말이 이해가 가더군요. 물론 아버지 어머니가 내 복권의 돈 때문에 돌아가신 것은 아니지만 돈이 있어도 이거 저거 아무것도 못해보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저 눈물만 납니다.

인생역전.... 물론 인생역전이 되긴 했습니다. 돈도 다 써보지 못할 정도로 가지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은 그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몰래 몰래 쓸거 쓸 수만 있다는 마음만....... 복권이 된 분중에 다 나같이 된 경우는 아니겠지만 복권이 되면 진짜 모든 것이 행복할줄 알았고 모든 것이 즐거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지금도 작은 아파트에 살지만 그 어느 한 가지도 맘대로 펑펑 못 써봅니다. 갑자기 없던 사람이 펑펑 쓰다보면 누군가 의심해서 그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늘 불안감과 초조감에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이 많은 돈을 어디다가 기부하고 맘편히 살자니 그것도 쉽진 않습니다.

로또복권 1등...인생역전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차라리 없는 살림에 누군가 아파서 없는 돈에 치료라도 하고 건강하게 오래사는게 더 행복이지 절대 돈 있으면서 못 고치는 그 안타까움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거 같습니다.

돈은 없는 거 보다는 있는 게 더 낫긴 하지만 감당이 될만큼만 있어야 행복하단 소리입니다. 액수만 많다고 절대 행복하고 연결되는 건 아니더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옮긴 글입니다.


출처 ; 굿따이 29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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