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머니...

내가 어릴 적 하루는 심하게 감기를 앓았다.
나는 그날 학교에도 가지 못했고 온종일을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엄마가 떠 주는 쓴약같은 밥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나는 물만 마셨다.
저녁무렵이 되서야 나는 겨우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빵이 먹고싶어졌다.
당장에라도 엄마에게 빵을 사달라고 조르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마음에 좋은 생각 하나 떠올렸다.
그것은 텔레비젼 광고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면서
엄마에게 빵을 먹고싶은 내 마음을 말하는거였다.
예전에도 나와 형이 아프면 엄마는 먹을 것을 사준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와 눈을 맞추지 않고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애플빵~ 애플빵은 서울빵~

그 날 저녁 나는 거의 쉬지도 않고 4시간 정도를 계속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결국 엄마는 빵을 사주지 않았고 대신 회초리를 들었다.
손님이 계신 자리에서 내가 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 때문에
나는 그날 종아리가 수수대가 되도록 매를 맞았다.

"네가 지금 왜 맞는 줄 아니?"
"엄마, 돈 없는데 빵 사달라고 졸라서요."
"아니다. 먹고싶은 빵을 조를 수는 있어. 너는 아직 어리니까.
하지만 손님이 계신데 네가 그러면 엄마가 얼굴을 들 수 없잖아.
자식들 잘못 가르쳤다고 얼마나 흉보겠니?"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말했다.
감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아팠던 나는
매를 맞고 자리에 누워서도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엄마가 미워서 엄마와 등을 돌리고 있었다.
늘 아팠던 엄마는 그날도 가파른 신음 소리를 내뱉었지만
엄마의 신음소리가 여느 때처럼 아프게 들리지도 않았다.

며칠 후, 엄마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대문을 들어섰다.
엄마는 얼굴 반쪽이 피멍이 들어 있었구, 목을 잘 가누지도 못했다.
엄마는 형과 나에게 빵 하나씩을 나눠주었다.

"어서 먹어라. 너 이 빵 먹고 싶어 했잖아."

종아리엔 여전히 매를 맞은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어린 나는 엄마가 준 빵을 손에 들고 마냥 기뻐하기만 했다.
엄마는 빵과 함께 신문지에 싼 돼지고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나는 형과 누나와 함께 몇달 만에 고기를 먹으며 너무나 행복했었다.

그 시절은 엄마가 만두라도 하는 날이면
온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어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내가 중학생이 되던 어느 날,
하루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가 마음 속에만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막내에게 애플빵을 사다주던 날,
사실 엄마가 길에서 넘어져서 다친 게 아니었어.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버스기사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엄마는 버스에서 넘어졌던 거야.
그런데 넘어지면서 의자에 몸을 부딪치고 얼굴까지 부딪쳤거든."

얼굴에 조금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는 말을 계속이었다.

"운전기사는 자신의 부주의 때문이라며
버스회사가 있는 종점까지 엄마를 데리고 간 거야.
그리고 담당자에게 말해서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거든.
그래서 엄마가 공손히 부탁했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돈으로 조금만 달라고 말야.
그랬더니 병원에 꼭 가라구 하면서 돈을 조금 주더구나.
그래서 그 돈으로 너희들에게 줄 빵하고 고기를 사가지고 오면서
엄마는 얼마나 기뻤는데."

"왜 그러셨어요, 엄마. 그 때 엄마 얼굴 많이 다쳤던 거 같은데."

"몸이야 많이 아팠지. 하지만 너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알게 될거다.
자식이 먹고싶어하는 빵 하나를 사줄 수 없을 때 에미는 더 아프다 걸."

느릿느릿 말하는 엄마 눈에는 어느새 물빛무늬가 어른 거렸다.

하지만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때조차
엄마의 사랑을 헤아리기에 여전히 어렸던 것같았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엄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고 내게 묻는다.
엄마는 지금도 아픈 허리를 감싸고
자식들에게 먹일 것을 사기 위해 시장을 다니신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등짐을 지고 마을 버스를 타고
시장을 다니시는 엄마는 예전 보다 키가 많이 작아지셨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부모님은 자신의 아픔으로 자식에게 사랑을 가르친다는 것을...
사랑은 반드시 그 사랑을 닮은 다른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 출전:이철환의 수필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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