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그냥 오늘 갈래!


흉선상피암으로 이미 여러 군데로 전이가 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입원을 했습니다. 꽃마을에 올 당시만 해도 상당한 통증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를 강력하게 써야 했습니다.


자녀는 중학교에 다니는 예쁜 딸 둘을 두었고 모두 착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모범생이란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투병생활 하는 동안에도 자주 들르곤 하였는데 아빠의 자랑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자식들을 남겨두고 가야하는 안타까움 때문에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 많은 짐을 아내에게 지워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라며 평상시에 제대로 호강한번 못 시켜준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신부님 이렇게 빨리 죽을 줄 알았으면 건강할 때 잘해줄 것을 참 바보같이 살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그것을 깨닫다니 한심하죠? 이렇게 최악의 상황에서 끝까지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네요. 그것이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요.”


때마침 들어오는 아내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어보이며 손을 잡아 줍니다. 영문도 모르는 아내는 남편의 작은 웃음에도 행복해했습니다. 그 행복이 얼마 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소중한가봅니다.


꽃마을에 입원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의 일입니다. 암이 폐에까지 전이가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은 흉수천자(폐에서 물을 뺌)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늦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미리 증상이 나타납니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하며 입술과 손발 끝이 산소부족으로 인한 청색증이 나타납니다. 벌써 이런 증상이 생길 때는 조금만 늦어져도 생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어야 할 경우가 많아 미리미리 물을 빼야 합니다. 이분은 벌써 20여 차례나 물을 뺐습니다.


하루는 아침부터 저를 찾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이미 아내도 자리에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부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신부님! 저 하느님 뵈러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임종을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어안이 벙벙한 사이에 남편은 아내에게

“여보, 나 그냥 오늘 갈래! 오늘 폐에서 물을 빼야 하는데......빼고 싶지 않아! 물 빼면 일주일을 더 살 수 있겠지만......내가 더 살면 당신만 힘들어져. 어차피 한번 죽는 건데......일주일 더 살면 뭘해......그냥 갈께......당신이 허락해주면 좋겠어......당신하고 하루라도......더 있고 싶지만 당신이 너무 고생해서 안 되겠어. 아이들과도 계속 떨어져 있어야 하고......나, 그냥 오늘 갈께!”


숨이 차는지 간신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집니다. 어차피 끝이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안 돼요......이렇게 당신을 보낼 수가 없어요......조금만 더 있다 가요. 신부님 어떻게 말 좀 해주세요......이이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일주일만이라도 더 살게 해주세요......여보! 나 고생하는 거 괜찮아......같이 있으면 얼마나 더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이렇게 훌쩍 갈려고 그래......나 허락 못 해......안 돼요.......!(흑흑......)”


“여보 미안해......어차피 한번 헤어져야 하잖아......이젠 더 이상 연명하는 것도 힘들어......갈 사람은 빨리 가야 당신도 아이들하고 마음잡고 살 수 있지......”

“여보......어떡해......나 어떡하면 좋아......!”

아내의 흐느낌 속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참 후

“여보, 당신이 정 그렇게 원한다면 당신 뜻대로 해.”

“신부님도 허락해주실 거죠?”

“그래요......물을 안 빼면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거 아시죠? 마음의 준비는 다 하셨 어요?”

“예”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부르세요.”

“아닙니다......볼 사람은 다 봤습니다. 아내하고 조용히......같이 있으렵니다......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신부님......잊지 않을께요.”

하루 동안 부부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남은 몇 시간을 함께 지냈습니다. 일 분을 하루처럼 한 시간을 10년처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그 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밤11시. 산소를 꽂고 있었지만 숨이 가빠 진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임종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코앞에 닥친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죽음이었기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평온해보였습니다. 저에게, 아내에게, 그리고 봉사자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 동안......고마......웠습니다.”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12시쯤, 숨이 잦아지면서 하늘나라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평온한 모습입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떠나기까지 15시간 동안 그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고했습니다.


죽기 전 아내에게 유언을 한 가지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앞만 보고 열심히 살긴 했지만 죽음을 앞두고서야 정말로 중요한 것이 따로 있음을 깨달았어. 그것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점이야.


그러나 나는 불쌍한 사람을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내 대신 당신이 불쌍한 사람을 힘닿는 대로 도와주었으면 좋겠고, 아이들에게도 그 점을 잘 가르쳐서 죽을 때 나처럼 후회하지 않도록 해줘.”



출처 ; 굿따이 3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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