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 17. 00:20 살아가는 이야기
가난한 서울대 합격자 수기
'가난한 서울대 합격자의 수기' 감동의 물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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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외갓집 전답을 파는 일로, 한 동안 외숙모를 만났던 이종사촌 동생 B가 불쑥 말을 꺼냈다. “형. 형은 외숙모한테 더 잘해야겠더라. 외숙모는 형을 가장 마음에 두고 살아온 거 같아. 자식같이 의지하고 믿어왔나봐. 왜, 옛날 호리병 거인 있잖어? 자신을 병 속에서 꺼내줄 사람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앞으로 꺼내주는 사람이 있으면 죽여버릴 거라고 다짐했던 그 거인의 마음이 그랬잖아? 사랑이, 실망을 넘어서서 증오로 치닫는 그런 과정 말이야. 외숙모가 그런 심정을 겪은 거 같아. 형에 대해서...”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귀로 듣고보니 가슴이 싸아해졌다. B는 외숙모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을까.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그는 붙임성이 좋은지라, 문득 꽉 막혀있던 외숙모의 말문을 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외숙모가 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B가 외숙모의 마음을 읽어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건 결코 오독(誤讀)이 아니란 걸 나는 안다. 1950년 전쟁 와중에 남편을 잃었던 스무 살 그녀는, 신혼 몇 달의 기억과 누우런 물이 든 전사통지서를 품고 자식도 없이 평생 청상(靑裳)으로 살았다. 11년 뒤 내가 태어나고, 서른 한 살 그녀는 남편의 기색을 닮은 어린 생질을 뒤숭숭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어린 자식들과 어머니의 새 식솔들이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전쟁통이었던 우리 집에서, 나는 입을 하나 더는 셈으로 자주 외가로 피난을 갔다. 마침 그 집은 자식이 끊긴 지라 절간같이 적막했다. 외숙모는 나를 핏줄같이 거뒀다. 씻겨주고 입혀주고 놀아주고 먹여줬다.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고물고물거리는 귀여운 외손 하나를 놓고, 안방에서 재우자, 건넌방서 재우자며 신경전을 벌였다. 마흔 한 살. 그리고 11살. 외숙모의 방에서는 모과 향기같은 게 났다. 머릿기름 냄새일까, 화장품 냄새일까, 아니면 젊은 여인의 몸냄새였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방 아랫목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불기운에 잠이 들 무렵, 등 뒤에서 외숙모가 비녀를 꽂은 머리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다시 내가 문득 새벽녘 잠귀로 듣는, 비녀 꽂는 소리로 이어졌다. 그때 어느 샌가 나가서 감고온 머리에서 나는 젖은 냄새가 코끝으로 전달되어 왔다. 밤과 아침은 그 사이에 있었다. 옥수수를 삶아주며 일본어와 한자를 가르친 건 초등학교 때였고, 영세골 뒷산에서 들꽃을 꺾어 꽃꽂이를 만들어준 건 중학교 때였고, 한밤 중 초가지붕 처마에 사다리를 받히고 올라가 잠을 자러 들어온 새들을 함께 잡던 때는 고등학교 때였다. 그 15년 동안 나는 외숙모의 슬하에서 자란 셈이다. 다른 외손들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내가 각별했던 건, 그 짧지않은 시간의 공유에서 생겨난 친밀과, 외삼촌을 상기시키는 나의 표정과 말투 때문이었을 지 모른다. 나는 어머니가 언짢아 하실까봐 공공연히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외숙모가 늙으면 내가 모실 거라는 다짐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쉰 살, 그리고 스무 살. 대학을 갈 무렵,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이어서 돌아가셨고 외가에는 외숙모 혼자 남게 되었다. 산 그림자가 들어앉는 쓸쓸한 빈 집에 여자 홀로 사는 일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오랫 동안 그렇게 살았다. 집을 둘렀던 무성하던 대숲이 어느 날 질린 표정처럼 하얗게 마르기 시작하더니, 꽃을 피웠다. 외숙모는 경주 시내에 아파트를 하나 사서, 거의 몸만 빠져 나왔다. 남은 집에는, 외삼촌의 사촌 가족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 얼마 뒤 외갓집에 가보고 나는 기가 막혔다. 그렇게 반들반들하던 마루와 정갈하던 세간들이 놓였던 집이, 지저분한 슬럼처럼 변했다. 함께 갔던 외숙모는 내게, “나도 처음 와보는 거야”라고 말했다. 삶의 질곡이기도 하지만 더 많이는 자부심이었던 그 집이 이토록 벼락 맞은 듯 변해있을 것이 그녀 또한 두려웠을 지 모른다. 공짜로 주고 있는 집이니, 그들을 내보내는 게 어떠냐고 내가 말했을 때, 외숙모는 웃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곤란해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예순 살, 그리고 서른 살. 외숙모가 아파트에 나와 살면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종종 거기에 들렀다. 지난 날의 외갓집 같은 맛이야 나지 않았지만, 외숙모 얼굴이 추억에 닿아있는 부표처럼 일렁이고 있으니, 그나마 나쁘지 않았다. 그 아파트의 물건들은 곧 옛날 외갓집의 모든 세간처럼 정갈하게 정돈되고 윤기가 났다. 희한한 것이, 그 아파트에는 모든 식물들이 생기 넘치게 자라났다. 특별한 비결도 없이 그저 물만 준다는데도 벤자민은 무성한 잎을 펼치면서 천정까지 닿았다. 각종 열대식물들이 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푸른 숲을 이뤘다. 일흔 살, 그리고 마흔 살. 외숙모는 차츰 고독해졌다. 나는 직장에서의 일이 바빠졌고, 그걸 이유 삼아 그 아파트를 찾는 일을 줄였다. 해마다 현충일이나 광복절날이면 외삼촌 묘지에 참배를 가던 일에도 결석이 잦아졌다. 게다가 우리 집안이 형님의 사업 실패로 빚을 졌을 때 거기 외숙모의 돈이 물리면서 언짢은 기분들이 끼어들었다. 괜히 찔리고 미안해서 못가는 마음과, 안오니 더욱 섭섭한 마음이 서로 팽팽해지면서, 늙어가는 한 여인을 더욱 고독하게 했으리라. 일흔 세 살, 마흔 세 살. 외숙모는 어느 암자의 선방(禪房)에서 몇 달씩 처박혀 살았다. 좌정에서 일어날 무렵이면 관절이 아파 한 동안 몹시 힘겹다 한다. 나는 아내와 뜻밖에 천리에 떨어져 사는 신세가 된다. 온 가족이 나들이처럼 가던 외숙모네 방문은 이제 거진 끊겼다. 선방에서 시린 무릎으로 돌아와, 벤자민이 무성한 아파트 거실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 소리를 듣는 외숙모는, 문득 그토록 이뻐했던 생질조카를 떠올렸을까. 일흔 여섯. 이 외로운 길에 동행해주지 못하는, 마흔 여섯의 무정을 괘씸히 여겼을까. 핏줄이 아니니 다 소용없군.저를 아들처럼 키웠는데, 나쁜 놈.슬며시 돋아나는 그런 부아를 지우며 거실을 닦던 걸레에 더욱 힘을 주었을까. B의 말이, 내내 맴돈다. “사랑이, 실망을 넘어서서 증오로 치닫는 그런 과정 말이야. 외숙모가 그런 심정을 겪은 거 같아. 형에 대해서...” 퍼온글 원본 : 내내 맴도는 그 말[isomkiss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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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시골 동네에 한 가난한 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갓난 아이와 젊은 아내를 남겨 두고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여인 홀로 아이를 기르며 어렵게 삶을 꾸려갔습니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밤...
젊은 여인은 외로울 때마다 아이를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조용히 흐느끼곤 했습니다.
여인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살 자신이 없었지만,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었고,
힘없는 그의 다리를 일으켜주었습니다.
여인에게 있어 아들은 유일한 소망이며 기쁨이었습니다.
아니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아들이 잘 되는 그 하나만을 마음에 담고
아들만을 위해 살기로 여인은 마음을 정했습니다.
자신은 어떤 희생을 당하더라도
아들이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족했습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밑거름이 되어
해가 갈수록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건강한 아이의 모습은 어머니의 자랑이었습니다.
때때로 동네 사람들이 힘겹게 살고 있는
젊은 여인이 보기 안쓰러워 재혼을 권했지만
그때마다 여인은 거절했습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아, 지금이야 그렇다고 해도 나이들면 어쩌려고?"
"그때는 우리 아들도 다 컷을텐데요."
"아이고 손 안에 자식이지..."
"아니예요. 우리 아들은 달라요."
"쯧쯧 과부댁의 인생이 아까워서 그래요."
여인의 마음에는 아들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의 행복이 자신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아들은 받을 마음이 모자랐습니다.
"엄마 오늘 반찬은 왜 그래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의 짜증 섞인 말입니다.
"아니 왜 그러니?"
"제 짝 영섭이는 쇠고기 장조림으로 바뀌었는데
저는 늘 오뎅 볶음이나 계란 후라이니..."
"그래, 그래... 다음에는 쇠고기 장조림을 싸주마"
"에이, 오늘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요?
참 그리고 신발도 새로 사주세요."
"아니 신발은 왜? 사준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 신발은 시대에 뒤쳐졌어요. 지금은 나이키가 유행하는데..."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러렴...
하지만 조금만 참아라. 지금은 돈이 부족해서..."
"에이 영섭이 엄마는 돈이 많던데..."
아들은 자주 불평스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며 돈을 버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장에 가서 품팔이를 하고 지친 몸을 끌고 집에 와서는
늦은 밤까지 호롱불 밑에서 삯바느질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의 지친 표정은 아들에게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탈없이 자라는 아들을 볼 때마다 기뻤고,
밤늦게 삯바느질을 하면서 한숨을 돌릴 때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은 성장했고, 어느 새 대학 졸업을 앞두었습니다.
어머니의 눈가에도 깊은 주름이 패였습니다.
아들의 사각모를 감격스럽게 만지작거리는 늙은 어머니에게
아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머니 오늘 졸업식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애야, 그게 무슨 소리냐?"
"사실 오늘 제 여자 친구가 부모님을 모시고 온댔거든요."
"그래... 그래도 졸업식인데..."
어머니는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지만 이번에도 양보했습니다.
아들의 학창시절 자주 겪었던 일이었습니다.
아들은 공부를 잘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아들을 칭찬했고,
그러한 사실은 어머니에게 큰 기쁨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자라갈수록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고,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졸업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가족들로 분주한 졸업식.
하지만 어머니는 나무 그늘에서 아들을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아들은 예쁜 아가씨 앞에서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점잖은 신사와 귀부인이 서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들과 함께 멋진 자가용을 타고 졸업식장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 찌개를 정성껏 끓였습니다.
하지만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울릴 때까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가용을 탄 아들의 뒷 모습이 아련한데...
그리고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어머니는 기력이 많이 쇠해졌습니다.
하지만 밤마다 대문을 열어놓고 아들을
기다리는 버릇은 여전했습니다.
늘 밤 12시가 될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을 잊으라고 했습니다.
그런 불효자식이 뭐 좋다고 미련을 못버리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에는 아들이 너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꼭 돌아올거야. 암 누구 아들인데...''
그리고 또 몇 해가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어머니 앞으로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어머니는 궁금한
마음으로 편지를 받아들었고, 아들의 글씨를 확인하고는
미친듯이 편지 봉투를 뜯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읽어가는 어머니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였고, 잠시 후 편지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니.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진수입니다.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왜 어머니를 말없이 떠났는지 궁금하시겠지요?
어머니 저는 출세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게 기회가 왔습니다.
어느 대기업의 회장 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하든 잘 보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 없이 제가 성장했다는 사실이 걸렸습니다.
고민하던 중 결국 거짓말을 했습니다.
친구의 부모님께 대신 부모 노릇을 해달라고...
그래서 그분들을 모시고 결혼식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회사가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부도가 났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자 아내는 훌쩍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이제는 약을 먹지 못하면
잘 수가 없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현기증이 납니다.
이제 며칠 후면 출소가 되지만 갈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한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어머니. 저를 아직도 사랑하고 계시는지요?
아니죠? 이제는 버리셨지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이제는
왜 그렇게 그리워지는지...
어머니, 어머니가 받아주지 않아도 저는 할말이 없습니다.
그냥 정처없이 살다가 발길이 머무는 곳을 제 무덤으로 삼겠습니다.
다만 제 마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만일 어머니께서 아직도 저를 사랑하시고 받아주려 하신다면
집 앞에 있는 느티나무에 노란손수건 하나를 걸어주세요.
손수건이 없다면... 저는 제 길을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그만 편지를 움켜지고 통곡을 했습니다.
병에 걸려 폐인처럼 된 아들이 어둔 감옥에서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밝은 태양빛 앞에 눈을 잘 뜨지 못하던 아들은 갈등했습니다.
''나같은 놈을 받아주실까?''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아들의 기억 속에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자는 척 실눈을 뜨고 있던 자기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어머니의 얼굴...
그 얼굴이 그의 발걸음을 인도했습니다.
집 앞으로 난 기차길...
그 길을 따라 기차를 타고 가는 아들의 가슴이 두근거렸고.
집이 가까울수록 더욱 요동쳤습니다.
아들은 집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바라봤습니다.
갑자기 아들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고,
어느 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들은 기차에서 내려 집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집 앞에서 한숨도 자지 않고 기다렸던 어머니를 부둥켜 안았습니다.
그 위로 느티나무 가지 가지마다 노란 손수건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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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0. 26. 12:32 살아가는 이야기
자기야~ 잘 지내지? 난 매일 아침 눈을 뜨자 마자 제일 먼저 오늘은 절대루 눈물 흘리지 않을거라구 속으로 다짐하구 다짐하는데 잘 안되네. 전철을 타고가다가도 버스칸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문득 자기 생각나구 애들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냥 줄줄 흐르네. 자기야~ 자기 거기서 앤 생겼어? 요즘엔 밤에 왜 놀러안오는데? 낮엔 나두 바쁘니까 자기 없어두 살겠는데, 밤에 혼자 누워있으면 나 자기 보구 싶어 너무 힘들어. 정말 죽을것 같애. 당장이라두 씩 웃으며 문열구 들어올것만 같애. 나 이렇게 힘들게 하구 자긴 거기서 앤 사귀면 쥬길꺼얌.^^ 자기야~ 애들 많이 보구 싶지? 쬐금만 참아...알았찌? 글구,우리애들 걱정 안해두 되. 나 우리 애들 이쁘구 착하구 똑똑하게 키울자신 있거든. 애들 대학까징 졸업시키구, 취직하구, 짝지어 주고 그러구 나 자기 있는데루 갈꺼야. 앞으로 20년 아니 30년만 기둘리면 되겠다. 그치? 글구, 당신내곁에 있을때 보다 더 부자될것만 같애. 응암동 형님 소개로 도우미 나간 지 두 달 째야. 애기 둘 있는 집이구 엄마아빠가 부부교사거든. 일곱시 반에 가서 여섯시 반 까지 큰 애 깨워서 밥멕이구 유치원 보내구...작은 애 깨면 놀아주고... 짬짬이 시간내서 청소하구 빨래하구... 빨래는 그냥 써비스하는거구. 아주 가끔씩 작은애 안고 잠깐 낮잠도 잘 수 있구...너무 좋네. 처음엔, 110 받기루 했는데 애기엄마가 나 이쁘게 봤는지 5 더 얹어서 주더라.ㅋㅋ 근데, 음~ 나 자꾸만 나쁜 생각드네. 애들크면 애기엄마가 나 퇴출 시키는거 아닐까??? 요런 생각말이야. 그래서이댁 애들이 그냥 언제까지 6살, 3살 로 있었음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하구 혼자서 웃곤해. 자기야~ 자기 마눌 넘 불쌍하지? 나쁜자식...너 먼저 갈껀 뭐니? 으앙~~ㅠㅠㅠ 자기야~ 울 애들 학비 대주겠다는 사람들 많아서 골치아퍼. 훗훗.. 그래서 면접보구 선발할려구. 아버님, 아주버님, 천안엄마네, 형부네, 글구 여태까징 싸이서 놀구있는 자기 백수처남까징..ㅋㅋ 그래도 애들 학비 만큼은 꼭 엄마인 내 손으로 마련해서 줘야겠지? 자기가내가 질투날 정도로 자기가 이뻐(?)하던 응암동 형님두 적금 붓고 있나봐. 우리애들 앞으로 다달이 10 씩이나.( 형님, 감사해요. ).........눈물 안흘리겠다구 매일 다짐하는데 ...또 나올려구하네...ㅠㅠㅠ, 그리구 아버님이 아주버님이랑 형님 불러서 아주 못을 박으셨데. 시골 아버님 집이랑, 고추밭, 논, 글구...숟가락 하나까지 다 나만 주실꺼라구. 재혼을 해도(ㅋㅋㅋ ...너 앤 구하면 나두 재혼 할꺼당..약오르지??ㅎㅎ) 애들 키우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구... 형님네가 숟가락 하나라두 탐내면, 감은 눈 다시 뜨시겠다구 그러셨데... 에이씨~~ 왜 이캐 자꾸 눈물이나는거야...나 더 못쓰겠어. 다음에 또 신나는 소식 전해 줄깨. 자기도 밤에 자주 놀러 좀 와주구 그래라. 알았찌? 잘있어...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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