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내내 맴도는 그 말 조회(0) /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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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6-11-06 22: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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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외갓집 전답을 파는 일로, 한 동안 외숙모를 만났던 이종사촌 동생 B가 불쑥 말을 꺼냈다.


“형. 형은 외숙모한테 더 잘해야겠더라. 외숙모는 형을 가장 마음에 두고 살아온 거 같아. 자식같이 의지하고 믿어왔나봐. 왜, 옛날 호리병 거인 있잖어? 자신을 병 속에서 꺼내줄 사람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앞으로 꺼내주는 사람이 있으면 죽여버릴 거라고 다짐했던 그 거인의 마음이 그랬잖아? 사랑이, 실망을 넘어서서 증오로 치닫는 그런 과정 말이야. 외숙모가 그런 심정을 겪은 거 같아. 형에 대해서...”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귀로 듣고보니 가슴이 싸아해졌다. B는 외숙모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을까.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그는 붙임성이 좋은지라, 문득 꽉 막혀있던 외숙모의 말문을 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외숙모가 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B가 외숙모의 마음을 읽어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건 결코 오독(誤讀)이 아니란 걸 나는 안다.


1950년 전쟁 와중에 남편을 잃었던 스무 살 그녀는, 신혼 몇 달의 기억과 누우런 물이 든 전사통지서를 품고 자식도 없이 평생 청상(靑裳)으로 살았다. 11년 뒤 내가 태어나고, 서른 한 살 그녀는 남편의 기색을 닮은 어린 생질을 뒤숭숭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어린 자식들과 어머니의 새 식솔들이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전쟁통이었던 우리 집에서, 나는 입을 하나 더는 셈으로 자주 외가로 피난을 갔다. 마침 그 집은 자식이 끊긴 지라 절간같이 적막했다. 외숙모는 나를 핏줄같이 거뒀다. 씻겨주고 입혀주고 놀아주고 먹여줬다.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고물고물거리는 귀여운 외손 하나를 놓고, 안방에서 재우자, 건넌방서 재우자며 신경전을 벌였다.


마흔 한 살. 그리고 11살. 외숙모의 방에서는 모과 향기같은 게 났다. 머릿기름 냄새일까, 화장품 냄새일까, 아니면 젊은 여인의 몸냄새였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방 아랫목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불기운에 잠이 들 무렵, 등 뒤에서 외숙모가 비녀를 꽂은 머리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다시 내가 문득 새벽녘 잠귀로 듣는, 비녀 꽂는 소리로 이어졌다. 그때 어느 샌가 나가서 감고온 머리에서 나는 젖은 냄새가 코끝으로 전달되어 왔다. 밤과 아침은 그 사이에 있었다.


옥수수를 삶아주며 일본어와 한자를 가르친 건 초등학교 때였고, 영세골 뒷산에서 들꽃을 꺾어 꽃꽂이를 만들어준 건 중학교 때였고, 한밤 중 초가지붕 처마에 사다리를 받히고 올라가 잠을 자러 들어온 새들을 함께 잡던 때는 고등학교 때였다. 그 15년 동안 나는 외숙모의 슬하에서 자란 셈이다. 다른 외손들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내가 각별했던 건, 그 짧지않은 시간의 공유에서 생겨난 친밀과, 외삼촌을 상기시키는 나의 표정과 말투 때문이었을 지 모른다. 나는 어머니가 언짢아 하실까봐 공공연히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외숙모가 늙으면 내가 모실 거라는 다짐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쉰 살, 그리고 스무 살. 대학을 갈 무렵,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이어서 돌아가셨고 외가에는 외숙모 혼자 남게 되었다. 산 그림자가 들어앉는 쓸쓸한 빈 집에 여자 홀로 사는 일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오랫 동안 그렇게 살았다. 집을 둘렀던 무성하던 대숲이 어느 날 질린 표정처럼 하얗게 마르기 시작하더니, 꽃을 피웠다. 외숙모는 경주 시내에 아파트를 하나 사서, 거의 몸만 빠져 나왔다. 남은 집에는, 외삼촌의 사촌 가족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 얼마 뒤 외갓집에 가보고 나는 기가 막혔다. 그렇게 반들반들하던 마루와 정갈하던 세간들이 놓였던 집이, 지저분한 슬럼처럼 변했다. 함께 갔던 외숙모는 내게, “나도 처음 와보는 거야”라고 말했다. 삶의 질곡이기도 하지만 더 많이는 자부심이었던 그 집이 이토록 벼락 맞은 듯 변해있을 것이 그녀 또한 두려웠을 지 모른다. 공짜로 주고 있는 집이니, 그들을 내보내는 게 어떠냐고 내가 말했을 때, 외숙모는 웃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곤란해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예순 살, 그리고 서른 살. 외숙모가 아파트에 나와 살면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종종 거기에 들렀다. 지난 날의 외갓집 같은 맛이야 나지 않았지만, 외숙모 얼굴이 추억에 닿아있는 부표처럼 일렁이고 있으니, 그나마 나쁘지 않았다. 그 아파트의 물건들은 곧 옛날 외갓집의 모든 세간처럼 정갈하게 정돈되고 윤기가 났다. 희한한 것이, 그 아파트에는 모든 식물들이 생기 넘치게 자라났다. 특별한 비결도 없이 그저 물만 준다는데도 벤자민은 무성한 잎을 펼치면서 천정까지 닿았다. 각종 열대식물들이 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푸른 숲을 이뤘다.


일흔 살, 그리고 마흔 살. 외숙모는 차츰 고독해졌다. 나는 직장에서의 일이 바빠졌고, 그걸 이유 삼아 그 아파트를 찾는 일을 줄였다. 해마다 현충일이나 광복절날이면 외삼촌 묘지에 참배를 가던 일에도 결석이 잦아졌다. 게다가 우리 집안이 형님의 사업 실패로 빚을 졌을 때 거기 외숙모의 돈이 물리면서 언짢은 기분들이 끼어들었다. 괜히 찔리고 미안해서 못가는 마음과, 안오니 더욱 섭섭한 마음이 서로 팽팽해지면서, 늙어가는 한 여인을 더욱 고독하게 했으리라. 일흔 세 살, 마흔 세 살. 외숙모는 어느 암자의 선방(禪房)에서 몇 달씩 처박혀 살았다. 좌정에서 일어날 무렵이면 관절이 아파 한 동안 몹시 힘겹다 한다. 나는 아내와 뜻밖에 천리에 떨어져 사는 신세가 된다. 온 가족이 나들이처럼 가던 외숙모네 방문은 이제 거진 끊겼다.


선방에서 시린 무릎으로 돌아와, 벤자민이 무성한 아파트 거실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 소리를 듣는 외숙모는, 문득 그토록 이뻐했던 생질조카를 떠올렸을까. 일흔 여섯. 이 외로운 길에 동행해주지 못하는, 마흔 여섯의 무정을 괘씸히 여겼을까. 핏줄이 아니니 다 소용없군.저를 아들처럼 키웠는데, 나쁜 놈.슬며시 돋아나는 그런 부아를 지우며 거실을 닦던 걸레에 더욱 힘을 주었을까. B의 말이, 내내 맴돈다.


“사랑이, 실망을 넘어서서 증오로 치닫는 그런 과정 말이야. 외숙모가 그런 심정을 겪은 거 같아. 형에 대해서...”

퍼온글 원본 : 내내 맴도는 그 말[isomkiss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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