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 27. 13:56 명상의자리

명시감상 (길)

[스크랩] 명시 감상(길--김기림)
원본: 생의 한가운데 서서2006/09/09 오후 7:43 | 마음이 머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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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시/김 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에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둔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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