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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솥데지기 골에 들어서자 저만치 지멋되로 자란 떡버들 나무 숲사이로 숨이 딱 막히는 무릉도원이 보였다. --------------------------------------------------------------------------------------------------------------------------------- 제목: 할매는 나를 보고 쑥맥처럼 살라하네. 단양 구담봉 들어 갔다가 해가 떨어지도록 기다린 후에 어둑어둑 해질 무렵 무쏘 엔징이 갈갈 소리를 낼 정도로 가파른 저수령 고개로 올라가서 앞 발통은 경상도에 걸쳐놓고 뒷 발통은 충청도에 걸처놓고 하룻 밤 달 구경을 하고나서 다음 날 아침 굽이굽이 경상도 쪽 저수령 고개를 내려와서 00읍 00병원으로 갔다. 그 곳엔 친구 아부지가 노환으로 벌써 석 달 넘게 입원을 하고 계신다. 지나가는 길이니 한번 병문안을 할 셈이다. 병실에 들어서니 젊었을 때 그 당당하시던 친구 부친은 이제 무서리 내린 고추대궁처럼 육신이 다 소진하신체로 오래된 희므그래한 조선한지처럼 누워 계셨다. 한방에 무려 네분이나 계셨는데 다 노인들이시다. 다들 7-8남매 자식들이 있을듯한 노인들이지만 병실에는 병간호 하시는 젊은 며느리 단 한명도 당체 보이질 아니했다.
"아부지 입원하면 다들 버긋내이로 병실 지키시더"
그런 말조차 이제 듣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옛날 같으면 며느리들이 버긋내이로(순번제로) 시아버지 병실을 지켰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자꾸 우시는 친구 부친을 위로해드리고 허전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는데 왠 초라한 옷을 입은 할머니가 내 소매를 잡더니
“아이고 우야닛껴..고만애..내가 표쪼가리를 잊자뿌랬니더”
그 할매는 매우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처다 보고는 “표 쪼가리”를 이야기 하셨다. 할매가 이야기하시는 “표쪼가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언듯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할매요 무슨 표쪼가리 말하시닛껴” “표쪼가리가 있어야 할바이 약 타는데..우짜닛껴 내 밥부제하고 이자뿌래니더”
순간 시골 할머니가 말하시는
“표쪼가리”는 의료보험카드를 말하시고 “밥부재”는 지금도 경상도 멧골에 가면 실제로 통용되는 말인데 밥부재라는 말은 옛날 먼 길이나 산에 나무하러 갈 때 밥을 싸든 천을 말하는 것이다. 아직도 그 흔한 도시 손가방 하나 없이 시골 할매들이 읍내 오실 때는 밥보자기에 이것저것 물건을 싸서 들고 나오시는데 그것이 소위 장 보따리가 되는 것이다. 싶게 말해서 밥부제는 할매 쇼핑백이다. 아마 양복차림을 입은 나를 의사 선생으로 착각하시고 의료보험 카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 할머니를 모시고 창구에 가서 할머니가 할아버지 혈압 약을 타러 오셨는데 그만 의료보험 깜박 잊어먹고 오셨는데 약을 탈 수가 없느냐고 물었다. 간호원 아가씨가 컴프터를 보면서 할아버지 성함을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 뒤에서 서계시는 할머니를 보고
‘할매요 할배 이름이 뭐라카닛껴“ ”우리 할바이 이름?“ 할머니는 귀도 조금 먹은듯하셨다. “할매요 할배 이름만 알면 우선 약 타갈 수 있다 카니더” “우리 할바이 이름?....용득이 아비씨더” “용득이는 누구잇껴?” “우리 아들...서울 살아” “아들 이름말고 할배 이름 모르시닛껴?...약 탈려면 할아버지 이름만 알면 되는데....” “아이고 그래만 오늘 우리 할바이 약 못 타닛껴?...쪼매 있으마 우리 동장이 온다캤는데..동장이 우리 할바이 이름 아끼-씨더”.
이미 나이가 드셔서 할아버지 이름을 잊어먹고 그냥 “용득이 아바이”라고 하셨다. 간호원에게 이차저차 설명하고 다음에 약 타러 올 때 의료보험증을 갖고 오기로 하고 일단 혈압 약을 받은 후 그 할머니를 내 차에 태웠다.
“할매 집이 어딧껴” “작은 솥데미골” “작은 솥데미 골에 사시닛껴?...아이고 잘됬니더 지도 오늘 그 마을에 가니더” “작은 솥데미는 우리 집 밖에 없는데...큰 솥데미 마을에 가시닛껴?” “예예..큰 솥데미 가니더”
일단 할머니를 집까지 태워 드리려면 큰 솥데미든 문바우 골이든 너리티 마을이든 ....일단 간다고 해야 할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 할머니 사시는 작은 솥데미 골은 읍내에서 엄청 멀었다. 간간히 담배 밭에 엎드린 농부 한 두어 명 보일 뿐 당체 30K,M 속도 간판이 보이는 국도에는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읍내에서 무려 19KM를 산골로 들어가서 0탑 이라는 마을에서는 아예 비포장도로에 무쏘가 겨우 들어 갈 산골 길이였다. 이리저리 나무 가지를 부딧끼면서 듬으로 듬으로 차를 몰아가는데 길섶에는 산딸기들이 붉은 복분자 알을 벌겋게 달고 있었다. 그리고 묵밭이 보이고 그 바로 아래 허물어진 빈집 터가 보이고 바로 뒤에 감나무가 몇 그루 보이고...
조금 더 올라가자 또 한체의 빈집이 마당에 오만 잡풀을 덮어쓰고 대문을 열어놓고 멍하니 이놈의 차를 보고 있었다.
"저집은 5년전에 대구 아들 집으로 갔니더"
묻지도 아니한데 할머니는 허허한 빈집을 가르키면서 말하셧다. 나는 대뜸
"할매요..이 산골 집들은 언제 초가지붕에서 스레뜨 지붕으로 갈았닛껴?" "지붕요?...박대통령 새마을 사업 때 했어" "그마 그 이후 그 많은 대통령이 아무것도 안 해줬닛껴?" "무신 말있껴.........?" "혹 할매 이번에 땅투기하고 3.1절 부산까지 가서 골프 치다고 목 날아간 이해찬 총리 아닛껴?" "저런! 누가 목을 메고 죽었닛껴?" "............."
뒷 자리에 가득 싣은 노숙산중할 때 쓰는 내 물건이 심하게 덜컹거렸다. 오디를 새카맣게 달고 있는 버려진 뽕나무에 박새가 풀풀 날고 한무리 개망초 꽃 무리들이 희고 흰 가루떡을 뿌린듯 몇년째 농사도 아니짓고 그냥 버려진듯한 묵밭을 뒤덮고 있었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할매요 그마 요즈음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군지 아시닛껴?" "대통령?...내사 몰씨더...이 산골에 사는데 우째 아닛껴?" "진짜로 노대통령도 모르시닛껴?" "대머리 벗겨진 대통령 다음에 하던 그사람이 아직도 대통령 하시닛껴?" "누구 말하시닛껴?...아 노태우 대통령요?" "그사람 노씨 아잇껴..저넘어 아랫 용각골에 우리 11촌 질부님의 그사람 노씨씨더..얼매나 사람이 양반인데요"
총리도 대통령도 모르시고 사는 할매다. 할매는 할배하고 작은 솥데지기 산골에서 쑥맥처럼 참으로 순우순박하게 살아 오신듯 했다. 그까짓거 도시에 배웠다는 사람들이 저녁만되면 소주 잔을 탁탁 치면서 정부가 하는 짓거리에 열을 내거나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앙칼지게 싸움질하는 드라마를 본다거나 그 잘난 여자 몸매에 목을 길게 빼거나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으신 분들 같았다. 남들이보면쑥맥같은 할매다 하겠지만 할매는 그저
총리도 모르고 대통령도 모르고
진실이도 모르고 효리도 모르고 이라크도 모르고 이북 미사일도 모르고 은마 아파트도 모르고 양도세도 모른다. 할매를 모시고 작은 솥데지기골에 당도하자 저만치 지멋되로 자란 떡버들 나무 숲속에 무릉도원에서 본 듯한
낡은 집 한체가 보였다. 작은 앞 논에서 풀을 뽑던 할아버지가 허리를 절반쯤 펴시고는 낮선 내차에서 할머니가 내리시자 학처럼 멀거니 이쪽으로 응시하고 그런 할아버지 뒷쪽으로 신기하게 학 한마리가 외다리로 졸고 있었다.
끝. 그름아 구름아 하는 놈이 요 며칠 무릉도원을 다녀 왔습니다. 그 산골에서 다녀 온 이후에 그저 몇일 이유도 없이 잠 못 이루었습니다. 내 살아생전 그저 쑥맥처럼살아가가기를 마다 하겠지만...그래도꿈을 꾸는 면이 있어 가슴 한구석이 지금도 움툴거리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