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교수가 무슨 정치적 칼럼을 쓸 때보다
자신의 스승을 얘기 할 때 훨씬 더 감동이 온다.
정치적 얘기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인간적인 스승 얘기엔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 가치가 거기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병려 교수의 형님이 ' 설 법대 ' 학장을 지냈다면
고병국 (高秉國) 교수를 말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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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려 교수의 별세 | | 2006.04.28 | 나는 옛날 사람이지만 유치원부터 다녀 대학원까지 마쳤으니 나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4월23일 이 세상에 살아남아 계시던 마지막 스승인 고병려 교수께서 96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선생님은 평안북도 신의주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형님 한 분은 일제 때 동경제국대학 법과를 마치고 해방 뒤에는 서울법대 학장을 지나셨다. 고병려 선생님도 신의주 고보를 거쳐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일제 하에는 경신학교에서 가르치시다가 해방이 되고 난 뒤에는 연희대학교(뒤에 연세대학으로 교명이 변경되었음)에 영문학교수로 부임하여 정년이 되기까지 그 학교의 교단을 지키셨다.
사나이다운 우락부락한 면은 조금도 없고 양순하시고 말이 없으시고 다만 학문의 일에만 몰두하셨다. 특히 희랍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하시어 성서연구와 성서번역에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셨다.
사모님은 아직 살아계시고 아들 둘, 딸 하나를 잘 키우셔서 훌륭한 사회인을 만드셨으니 여러모로 한 시대의 성공한 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 까닭은 나에게 던져주신 한 마디 말씀 때문이다.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교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는 결코 평범한 영문학 교수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감동하여 한평생을 사신 분이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선생님의 삶에서 이와 비슷한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단강 건너가 다시 뵐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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