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찢어지는 자정 너머



안희환



최근에 아주 감동적인 글 하나를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파서 어쩔 줄 모르게 한 그런 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닌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고, 나를 당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시는 내 할머니를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소개하고 싶어서 12시 넘은 한밤에 자판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할머니는 중풍에 걸리셨다. 중풍은 있는 정 다 떼고 가는 그런 병이다. 학교에서 집에 들어오면 확 코를 자극하는 텁텁한 병자냄새. 얼굴 높이에 안개처럼 층을 이룬 후텁지근한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일년에 한두번 밖에 청소를 안하는 할머니 방은 똥오줌 냄새가 범벅이 되어 차마 방문을 열어보기도 겁이 났다. 목욕도 시켜드리지 않아서 할머니 머리에선 항상 이가 들끓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고 난 후 처음 1년 동안은 목욕도 자주 시켜드리고 똥오줌도 웃으며 받아내었다. 2년째부터는 집안 식구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3년째에 접어들자 식구들은 은근히 할머니가 돌아가시길 바라게 되었다.


금붕어를 기르다가 귀찮아져서 썩은 물도 안 갈아주고 죽기만을 기다리듯이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 무관심은 살인이 될 수도 있다. 온몸에 허연 곰팡이가 피고 지느러미가 문드러져서 죽어가는 한 마리 금붕어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곪아갔다. 손을 대기도 불쾌할 정도로. 그래서 더욱 방치했다.


나중엔 친자식들인 고모들이 와도 할머니의 방엔 안 들러보고 갈 지경이었다. 돌아가실 즈음이 되자 의식도 완전히 오락가락 하셨다. 그토록 귀여워하던 손주인 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할머니가 건강하셨을때 나는 할머니랑 단 둘이 오두막에서 살았었다. 조그만 전기담요 한 장에 할머니 젖을 만지며 잠이 들었다. 아침은 오두막 옆에 있는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밤을 주워서 삶아먹는 걸로 대신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굵은 밤을 먹이려고 새벽부터 지팡이를 집고 밤을 주우셨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잊는 일은 절대로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 이성이 퇴화할수록 동물적인 본능은 강해지는지 걸까 그럴수록 먹을 건 더욱 밝히셨다. 어쩌다 통닭 한 마리를 사다드렸더니 뼈까지 오독오독 씹어 드셨다. 섬찟하기까지 했다.


병석에 누운 노인이 그 많은 통닭 한 마리를 혼자서 다 드시다니... 가끔 할머니에겐 돈이 생길 때가 있었다. 고모들이 할머니 방문 앞에 얼마씩 놓고 간 돈이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아내가 남자의 골방 머리맡에 잔돈을 놓고 가듯 말이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졸랐다.


할머니는 그 돈을 조금씩, 조금씩 나에게 주셨다. 한꺼번에 다 주면 다음에 달라고 할 때 줄게 없을까봐 그러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돈이 필요할 때면 엄마보다 할머니에게 먼저 갔다. 엄마가 '먹이'를 넣으러 왔다 갔다 할 때 말고는 그 방을 출입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날이던가 결국 할머니의 돈이 다 떨어졌다. 나는 돈을 얻기 위해 할머니를 고문했다. 손톱으로 할머니를 꼬집었다. 빨리 돈을 달라고... 그렇지만 얻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정말로 돈이 없었으니까. 그때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꼬집혀서 아팠기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먼가를 줄 수가 없어서 였을 것이다.


가끔 할머니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꼼지락 꼼지락 하시는 게 무언가를 주려고 하시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 이름도 제대로 못 부르는 할머니를 피하기만 했다. 할머니에게서 더 이상 얻을 돈이 없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간혹 한밤중에도 '허.. 흐흐.. 아..' 하는 할머니의 신음 같은 목소리가 내방까지 들려오면 나는 흡사 귀신소리라도 듣는 듯 소름이 돋아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 날... 할머니는 낙엽처럼 돌아가셨다. 그제서야 고모들도 할머니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에야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의 몸을 씻으려고 걸레 같은 옷을 벗겨내었을 때 할머니의 옷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가 나왔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거무튀튀한 물체였다. 그것은 통닭 다리 한 짝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셨는지 손때가 새카맣게 타있었다. 이 감추어둔 통닭다리 한 짝을 나에게 먹이려고 그토록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셨던가? 한 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꼼지락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시던 할머니... 마지막 순간까지 이 손주 생각을 하셨는지....
_____


이 글을 두 번째 읽으며 눈물이 나왔습니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손가락을 억눌러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내일 새벽 예배에 나가 이 불효막심한 손주를 위해 기도하시기 위해 지금쯤 깊은 잠에 빠지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전화부터 드려야지 하면서 마음을 눌러봅니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전까지 나를 키우셨습니다. 초등학생이 되고 학교에 다니기 위해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이동한 후에도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곤 했었습니다. 몸에 병이 나서 신음할 때면 늘 할머니를 찾곤 했었는데 그 무렵 할머니는 남의 집에서 파출부를 하시느라 자주 만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 가족은 판자촌에 살았기에 할머니를 모실 형편도 못 되었고...


그러다가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신성고등학교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다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와는 달리 그때 나는 할머니와 많은 말다툼을 했습니다. 아니 일방적으로 손자가 짜증을 내며 할머니를 괴롭혔다고 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사춘기였는지 몰라도 그때 나는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학교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을 했었는데 그 불똥이 가장 가까이에 계신 할머니에게 튄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 시절이 너무 힘들었다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을 꼬박 손주 뒤치다꺼리 하시느라 고생을 하셨습니다. 반찬 하나라도 더 해주시기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는 텅 빈 국물만 있는 국그릇이었고 내 그릇엔 고기 덩어리가 수북하였던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게 싫어서 할머니와 또 말다툼을 하고 또 일부러 고기를 한 점도 안 먹어 버리는 심술을 부렸었습니다.


세월 지나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80이 넘으셨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아이들의 아버지인 내 걱정을 하십니다. 할머니의 몸이 관절염으로 고통스러우시면서도 항상 손주인 내 건강을 신경쓰십니다. 얼마 전 내가 힘든 일을 겪을 때 그 사실을 아신 할머니는 전화를 거셔서 울먹이셨습니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못 보시겠다고 하면서...


나는 내가 불효막심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위의 글을 읽으면서 그 사실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80넘으신 할머니가 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손주 걱정을 하시는데 나는 내 일에만 바빠서 할머니를 제대로 섬겨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더 큰 후회를 하기 전에 자주 찾아 인사드려야겠다고 결심을 해봅니다.


“할머니. 이 불효막심한 손주를 용서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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