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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6 호박속에 웬 콩나물?
  2. 2007.02.15 투우장에서 생긴일 1
  3. 2007.02.15 물수제비
  4. 2007.02.15 클레오파트라와 패션
호박 속에 웬 콩나물(?)



전남 순천의 한 가정집에서 호박을 자르는 순간 호박 안에서 콩나물이 쏟아져 나오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연합]

조선 후기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에서 박을 타니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금은보화 대신 박 안에서 콩나물이 나오는 희한한 일이 전남 순천의 한 가정집에서 벌어졌다.

16일 전남 순천시 조곡동 김은숙(34.여.주부)씨에 따르면 지난 11일 낮 부엌에서 늙은 호박 한통을 잘랐다.

이 호박은 김씨가 지난해 늦가을 친정인 구례군 산동면에서 가져온 것으로 겨우내 부엌 한쪽에 놔 두었다가 휴일을 맞아 가족과 간식거리로 호박죽을 끓어 먹으려고 꺼내 온 것.

가족들은 뜨끈한 호박죽을 연상하며 식탁 위에 둘러앉아 호박 쪼개는 모습을 지켜봤다.

누렇게 잘 익은 호박은 서너번 칼질을 하자 `쩍'소리와 함께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호박속에서 호박속 말고 또다른 무언가가 가득했다.

흥부가 박을 타자 보물이 쏟아졌다고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보물은 고사하고 박속에 가득 차있는 건 때 아닌 콩나물.

마치 시루 속에서 콩나물이 자라 듯 박속에서 호박씨가 싹을 틔워 나물이 되어 속을 꽉 채운 것이다.

김씨는 "호박죽을 좋아해 겨울이나 초봄에 호박죽을 써먹은 적이 많이 있었지만 호박 속에서 싹이 자란 것은 생전 처음 본다"며 "친정에 전화해 이 소식을 알렸더니 모두 처음 보는 일이라며 깜짝 놀라했다"고 말했다.

이 호박으로 맛있는 죽을 해 먹었다는 김씨 가족은 어떻게 콩나물이 호박 안에서 자랐을까가 한없이 궁금할 뿐이다.

(순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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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0년경 이집트 왕좌의 클레오 파트라는 역사상 그 어떤 여인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녀의 흥미진진한 생애와 러브 스토리는 지금껏 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자극하는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Alexandre Cabanel,Cleopatra Testing Poisons on Condemned Prisoners

파라오 율법에 따라 남동생들과 두 번씩이나 결혼해 왕좌에 올랐고, 왕권을 쟁취하기 위해 남편이며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리했다.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여왕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생애는 소설보다 흥미를 자극한다.


Jean-Leon Gerome, cleopatra before caesar>


클레오 파트라의 생애중에서 일반인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그녀가 로마의 지배자인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차례로 유혹한 과정이다. 당대 최정상에 오른 두 남자를 어떻게 그처럼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기원전 48년 클레오 파트라는 남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후 강제로 폐위되어 유배된 상태였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클레오파트라는이집트를 침공한 카이사르의 막강한 힘을 빌어 왕권을 되찾고자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로마의 최고실력자인 카이사르와 운명적인 첫만남을 가졌다.

위 그림에서 보면, 클레오 파트라는 알렉 산드리를 정복한 카이사르가 이집트 왕궁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몰래 그에게 접근하려던 그녀는 기막힌 계락을 떠올렸다. 스스로 양탄자 위에 드러누운 뒤 충복에게 자신의 몸을 양탄자로 둘둘 말 것을 명령했다. 충복은 어깨에 맨 양탄자를 로라 병사들에게 보인 후 집정관에게 줄 값진 선물을 가져왔다고 둘러댔다. 큼직한 양탄자는 카이사르의 눈길을 끌었고 호기심이 발동한 카이사르는 서둘러 양탄자를 풀게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양탄자를 펼치기가 무섭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반라의 여왕이 비너스처럼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완전히 반한 카이사르는 연인이 되었음은 말한 나위가 없고, 여왕의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그녀를 왕좌에 앉혔다. 여왕은 카이사르의 권력을 이용해 왕권을 되찾고 피맺힌 복수를 감행할 수 있었다.


Antony and Cleopatra
Alma-Tadema, Antony and Cleopatra>


그의 연인이 되어 아들 카이사리온까지 안고 야망을 키우던 클레오파드라에게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의 무한한 권력에 위협을 느낀 정적들이 카이사르를 암살하였다.
클레오 파트라는 다음 상대로 카이사르의 암살 이후 로마 최고의 실력자로 부상한 안토니우스를 점찍었다. 삼두 정치인 중 한 사람인 안토니우스가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 사령관에 오른 후 동방 원정길에 나섰다는 정보를 입수한 클레오 파트라는 자신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묘안을 짜냈다.
위의 그림에서 앨마 테디마는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 타르크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만남을 묘사한 글을 토대로 이 그림을 그렸다. 클레오 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첫 만남을 가진 장소를 타르수스다. 오늘날에는 터키의 한 지망 도시에 불과하지만 고대의 타르수스는 소 아시아에서 가장 손꼽히는 대도시였다. 시가지는 강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클레오 파트라는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와 안토니우스를 만났다.

선체는 황금빛이요, 바람을 받아 크게 부풀어 오른 돛은 가장 값비싼 색깔인 자주색이었으며, 갑판 중앙에는 금실로 수놓은 장막이 좌우로 열려 있고, 그 아래 옥좌에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분장한 클레오파트라가 앉았다. 노예들은 은으로 만든 노를 저으며 피리와 하프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고 배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진동했다. 이 화려한 첫만남에 안토니우스는 그만 혼을 뺏기고 말았다. 정신이 나간 안토니우스가 벌떡 일어서서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가득 찬 눈길로 클레오파트라를 바라본다. 클레오 파트라는 금으로 장식된 이동 닫집 아래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앉아 요염한 눈초리로 안토 니우스를 탐색한다.

안토니우스와 극적인 첫만남을 가진 이후 클레 오파트라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행여 안토 니우스가 권태를 느낄세라 늘 새로운 쾌락을 개발했고 날마다 산해진미에 악사와 무희를 동원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런 생활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지자 클레오파트라는 연인을 아예 자신 곁에 못박아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 안토니우스의 사랑이 순간적인 열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Giovanni Battista Tiepolo, The Meeting of Anthony and Cleopatra, detail, 1746-47


끝내 신부과 국적, 동양과 서양이라는 인종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이국의 여왕과 혼인식을 올릴만큼 안토니우스는 철저하게 여왕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안토니우스는 결혼 선물로 여왕에게 엄청난 이권이 걸린 오리엔트 지방의 통치권을 주었다. 로마의 권력자를 애인으로 둥 덕분에 그녀는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물과 권력을 소유한 여왕이 되었다.



Cleopatra

사랑에 눈이 먼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아내 옥타비아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쓰고 또 다른 권력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로마의 지배권을 동서로 양분할 것을 요구했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자 로마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사를 돌보기는 커녕 힘들게 정복한 식민지에서 나온 귀한 수입을 이집트 여인에게 몸땅 안겨주는 사령관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특히 카이사르의 상속자요,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는 여왕의 노예로 전락한 안토니우스를 로마의 수치로 생각했다. 그는 두 남녀를 국가의 명예를 더럽힌 탕아와 국제적인 창녀의 야합으로 매도한 후 안토니우스를 제거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결국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31년에 벌어진 악티움 해전의 승자가 되었고, 패전 사령관이 되어 벼랑 끝에 몰린 안토니우스는 자결하였다.


Guido CAGNACCI, The Death of Cleopatra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갑작스럽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안토니우스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최후를 맞았고, 역사가들은 그녀가 독사에 물려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클레오파트라를 그릴 때는독사가 벌거벗은 여왕의 젖가슴을 무는 자극적인 장면을 선택하는 것이 관습처럼 되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에로티시즘이 강하게 풍겨 나오는 것은 죽음과 성을 한 쌍으로 묶어 표현했기 때문이다.



Jean AndréRixens(1846 -1924),The Death of Cleopatra

클레오 파트라가 팜므 파탈의 원형이 된 것은 정치적인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의 최정상에 앉은 남자들을 차례로 유혹해 희생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을 이용해 왕권을 차지했고 애인들의 막강한 힘을 빌어 정적을 제거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Eugene Delacroix. Cleopatra and the Peasant. 1838

플루타코스는 클레오 파트라의 신비로운 죽음에 대해 '여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탐스런 무화과 바구니를 든 농부가 여왕을 방문한 직후에 일어났다. 무화과 바구니에 맹독성이 강한 독사가 들어 있었던 것일까? 라고 강한 의문을 던졌다. 틀라크루아는클레오 파트라를 방문한 농부의 바구니 속에 숨겨져 있는뱀을 그려 넣어 극적인 죽음의 예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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