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느낀 죽음의 생생함
2006/06/27 21:41
이동진 조회3381 추천8

처음엔 엔진 소리로 여겼다.

밤 두 시.

멕시코시티 행 비행기가

뉴욕 케네디 공항 활주로를 박차고 오를 때

뒤쪽에서 계속 소음이 들렸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한 시간.

화장실을 다녀오고서야 알 수 있었다.

구석 자리에서 어느 사내가

홀로 울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그는 잠이 들었다.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

그러나 누군가의 울음을 들었던 자는

끝내 잠들지 못했다.

◆멕시코시티의 마리아치

영화 '가르시아'(위 사진)는

거액의 현상금을 타내기 위해,

이미 죽어버린 남자 가르시아의 머리를 찾아 헤매는

베니가 주인공인 로드무비.

먼저 베니가 일했던 술집을 찾아나섰다.

멕시코시티 가리발디 광장엔

영화 속에 나왔던 술집 틀라케파케

여전히 간판을 내걸고 있었지만

영업을 하진 않았다.

건물 전체가 헐릴 예정이어서

폐업했다는 말을 전해들으니

맥이 탁 풀렸다.

대신 근처 술집 테남파 바(Bar)에 들어가

테킬라를 홀짝이고 있자니

3인조 마리아치가 찾아왔다.

신청곡을 묻길래

'에레스 투'와 '라 밤바'에서

'엘 콘도르 파사'와 '관타나메라'까지,

생각나는 스페인어 노래 제목을 전부 댔다.

실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그들을 보니

마음이 금세 푸근해졌다.

관타나메라를 부를 땐

즉석에서 가사를 덧붙이기도 했다.

우린 한국 손님을 위해 노래한다네.

왜냐면 한국은 멋진 나라니까.

한 곡에 2000원.

돈으로 노래를 살 수 있다니.

베니는 바텐더이면서 악사였다.

술과 음악은 그가 세상을 위로하는 방법이면서

자신의 삶을 끌고 가는 도구이기도 했다.

밖으로 나서니 조명이 적어 어두운 광장이

손님을 기다리며 노래하는 마리아치로 가득했다.

음악이 음표와 음표 사이의

잃어버린 바이브레이션을 추구할 때,

여행객은 영화와 실제 촬영지 사이에서

증발된 시간을 추념했다.

◆과나후아토의 전설

사랑하는 엘리타와 함께

가르시아 머리를 찾아 헤매던 베니가

나무 그늘 아래서 신산한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은 절대 가지 않을 테야

라고 내뱉는다.

바텐더와 매춘부의 고단한 삶과 사랑.

그러자 엘리타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라며 꿈꾸듯 과나후아토를 묘사한다.

그 아름다운 도시에 언젠가 함께 갈 수 있을까요?

멕시코시티 북쪽으로 차를 달려 다섯 시간.

끝없이 이어진 터널 위에

도시 전체가 얹힌 듯한 과나후아토는

스페인풍 중세 도시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베니와 함께 이곳에 왔다면

엘리타는 어디를 찾았을까.

거리를 천천히 거닐다가

입맞춤의 골목(Callejon del Beso)으로 향했다.

귀족의 딸을 사랑한 광부의 아들이

집안에 갇힌 그녀를 만나기 위해

건너편 주택에 세를 든 뒤

밤마다 2층 테라스에서 만나

키스를 나눴다는 전설의 장소.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은

돌출한 두 집 때문에

끝 부분에서 거의 맞붙을 듯 보였다.

재미 삼아 테라스에 오른 연인들은

카메라를 향해 키스를 나눴고,

그때마다 골목을 메운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한 번 더!를 외쳤다.

전설 속 로맨스를 현실로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

그 사실을 알아챈 귀족이 딸을 죽인 후

지하실에 묻었다는 그 전설의 결말을

구경꾼들은 일부러 잊었다.

그러나 한 이야기의 정조(情調)는

결국 결말이 결정하는 것.

언젠가 일요일에 결혼하자는

베니의 짧은 청혼 순간만이

스치듯 지나간 그들 삶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또 다른 현상금 사냥꾼에 의해

처참하게 죽은 연인을 보며

베니는 처절한 복수극을 벌인다.

엘리타는 끝내 베니와 함께

이곳에 오지 못했다.

도시 전체가 길 위에 놓인,

아름답지만 허망한 이 도시에.

과나후아토를 내가 대신 방문했던 날은

두 사람이 놓쳐버린

그 많은 일요일 중의 하루였다.

◆테오티와칸의 저택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을 찍은 대저택 이름이

멕시코시티 북쪽 50㎞ 도시 테오티와칸 근처의

하시엔다 산 후앙이라고만 들었다.

쉽게 찾을 줄 알았지만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그런 이름의 저택은 없었다.

간신히 찾아낸 그곳 산 후앙 틀라카테크판

굴지의 맥주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별장이었다.

잘 가꾼 진입로 끝 철책 출입문에 도착해

매달린 종을 흔들었지만

문에서 한참 떨어진 거대한 저택 쪽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30분을 기다려 경비원을 만난 후

멕시코시티의 관리 책임자와 통화까지 했지만

결국 사유지라 들어올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철책 사이로

손을 뻗어 사진만 거듭 찍었다.

베니는 천신만고 끝에

가르시아 머리를 자루에 담아

이 저택을 찾아온다.

부호는 딸을 임신시킨

가르시아의 머리에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그 사이 태어난 손자 재롱에 맘이 변했다.

부호는 이제 머리 따윈 필요 없으니

현상금과 함께 가져가서

돼지에게나 주라고 한다.

16명 목숨을 앗아간 임무가

결국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분노한 베니는 부호를 살해한다.

진입로의 선인장 가로수 길은

저택을 빠져나오던 베니가

부호의 부하들이 난사하는 총에 맞아 죽어간

라스트신의 무대였다.

베니를 떠올리며 진입로를 벗어날 때

바람이 불어 흙먼지를 일으켰다.

길 끝에서 웃옷을 벗은 소년들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마주 흔들까 망설이는 사이에

차가 아이들을 빠르게 지나쳤다.

가르시아는 삶의 의미없음을

견디지 못한 인간의 절망에 대한 영화였다.

◆◆◆

멕시코를 떠날 때

과나후아토의 미라 박물관에서 본 갓난아기 미라와

테오티와칸의 초대형 피라미드가

서로 겹치며 떠올랐다.

돌을 넘기지 못한 아기인데도

죽음의 표정은 강렬했다.

2000년 전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건설한 자들이 누구였는지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었다.

베니의 운명은 모호했고

그를 향해 불을 뿜는

마지막 정지 화면 속

총구는 생생했다.

삶은 모호하고

죽음은 생생하다.

누군가의 울음이

다른 이에겐 소음으로 들리는

이 좁고 어두운 세상에서.

멕시코시티의 독립기념탑 풍경입니다. 아래에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지요.

한 밤 가리발디 광장의 문을 닫은 영화 속 술집 틀라케파케의문닫은 모습입니다. 이 광장엔 사진의 우측에 보시는 것처럼 멕시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준 가수들의상이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선인장의 추출액으로 만든 술을 권하고 있는 멕시코 아저씨입니다. 테오티와칸 근처 마을에서 찍었죠.

'입맞춤의 골목'을 찍었어요. 멀리 보이는 테라스 있는 집과 그 옆집이 바로 전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지요. 왼쪽 집 테라스에 올라간 연인들이 키스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시죠?

과나후아토의 전경입니다. 셀카 찍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듯.

멕시코시티의 카테드랄(대성당) 앞 광장의 모습입니다.

테남파 바에서 찍은 사진이예요. 7인조 마리아치들이 손님을 위해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들어갈 수 없어서 철책 사이로 손을 넣어 찍은 산 후앙 틀라카테크판의 내부 모습입니다. 왼쪽 남자가 경비원인데 수십장을 거듭 눌러대자 너털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제 그만 찍어도 충분하지 않냐고 하더군요.

갖가지 살사 양념이 늘어서 있는 멕시코 시장의 대중음식점입니다.

고대 도시 테오티와칸의 '달의 피라미드'에서 '사자의 길'과 '태양의 피라미드'(왼쪽 끝)을 내려 찍은 사진입니다. 올라갈 땐 힘들었지만, 정말 잊지 못할 풍경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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