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를 애도하는 동창들이 장례식장에 모였다. 다들 숙연하게 한마디 씩 한다. ‘사람 산다는 게 참 허망하지. 이렇게 살다 갈 것을 무엇 때문에 아등바등 하고 사는지’ ‘역시 사람은 마음 비우고 살아야 해’ 그러나 술잔이 돌고 고스톱 판이 벌어지면 판돈에 눈이 벌겋게 되고 언성도 높아진다.
2. 감방에서 모진 고생을 하면서 마음을 비운 사람이 있었다. 그 때 그의 눈은 맑았고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을 했다. 그때 쓴 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출옥 후, 그는 많은 글을 쓰고 또 대중강연을 하면서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그의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다. 한때의 비운 흔적을 자신의 재산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3. 어느 평신도 한 사람이 신앙 간증을 했다. 그는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간증을 했다. 그러나 워낙 그의 이야기는 꾸밈이 없고 진솔했으므로 감동적이었다. 그 후 그는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면서 그때의 간증을 되풀이 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사라지고 대중을 휘어잡는 기교가 일층 늘었다. 간증하는 ‘죄인’이 아니라 어느 새 간증장사꾼이 되어 버렸다. 그에게는 ‘주님 앞의 죄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4.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비우기도 어렵지만 비우기가 무섭게 돌아서면 차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운 흔적을 끌어안고 아직도 자신은 마음을 비우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사는 것이 다반사다. 누군들 한 때, 마음을 비우는 순간이 없는 사람이 있겠으며, 크든 작든 그 순간의 깨달음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한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때의 깨달음이란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을 더욱 교만하게 만들고 마음을 비울 수 없게 하는 화근이 되기도 한다. 한때의 깨달음이 긴 착각을 만드는 것이다.
마음의 세계에서는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논리는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어쩌면 ‘영구혁명의 세계’가 마음의 세계일지 모른다.
/배영순(영남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