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임계치
1. 양극화는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문제다

최근 ‘양극화(兩極化)’라는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빈부의 격차,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양극화가 사회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이를테면 소득의 양극화, 토지소유의 양극화만이 아니라 경기의 양극화, 소비시장의 양극화, 나아가서 교육, 의료분야 등에서도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양극화에 대한 그간의 논의를 본다면 대개의 경우 빈부의 격차에 주목하고 있다. 말하자면 분배적 정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심각성은 빈부격차에 있는 것만도 아니다. 차라리 양극화를 진행시키고 있는 사회경제적 시스템 그 자체의 위기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양극화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경제적 시스템 자체가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달리 말하면 해체의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징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적 양극화(兩極化)’라는 것은 표현 상에서 ‘양극(兩極)’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간명하게 부(富)의 집중 내지 돈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중심부로 계속 돈이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빨려 들어가는 기능은 점점 강화되고 그 반면 돌아 나오는 기능은 죽어간다는 이야기다. 이는 마냥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런 사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된다면, 즉 부의 순환체계, 사회경제적 시스템 그 자체가 마비되는 지점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양극화의 임계치에 이르면 빈부의 격차가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그 자체가 해체의 국면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어느 시대에든 빈부격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적 시스템의 순환체계가 생명력을 갖고 있느냐, 그 점을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인체에 비유하자면, 피가 한 곳으로 쏠리고 다른 곳으로 피가 흐르지 않게 되면 인체의 생리시스템은 마비된다. 그리고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판의 도박판에 비유하자면 그렇다. 도박이 일정 수준에 가면 양극화가 진행된다. 말하자면 판돈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어느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판돈이 순환하지 않는 지점에 이른다. 그것이 양극화의 임계치인데 거기서 도박은 끝난다. 그러니까 양극화라는 문제는 단순히 빈부의 격차 그것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박판 그 자체가 끝나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2. 투자와 투기가 구분되지 않는 시스템

둘째, 빈부격차라는 것이 그야말로 개인별 생산성의 격차에서 그리고 능력별 차이에서 빚어지는 것이라면 사회적 동의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 경제 시스템은 정의성을 가질 수 있고 안정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빈부격차가 과연 사회적 정의성을 갖는 것이며 지속 가능한 것일까? 이점이 문제인 것이다.

간단한 하나의 예를 들자. 강남의 아파트 값이 평당 천만원 오른다면 30평 정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3억원의 재산증식이 가능하다(이는 투기와도 상관없다) 3억원이라는 돈은 일반 서민들이 평생 저축을 해도 그런 돈은 가져볼 수 없다. 이런데서 발생하는 빈부격차, 부의 집중현상이란 것은 사회적 생산성과도 상관없는 것이고 개인적 생산성과도 전혀 무관한 불로소득이다. 말하자면 사회경제시스템 자체가 그만큼 왜곡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서울 집중 현상, 그리고 서울권에서도 다시 강남권의 집중 현상들은 그 왜곡이 체질화되고 구조화도 있음을 말해주는 것들에 다름 아니다.

이 문제는 투기에 대한 정책으로 해결될 문제도 이미 아니다. 투기와 투자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경제시스템 자체가 이미 혼탁해져 있고 그렇게 체질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 중에서 재산증식의 10위까지 모두 부동산에 투자한 것을 보아도 그렇고 일반 시민들도 투자의 유망종목 1순위로 부동산을 꼽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과연 이런 경제 시스템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한 것일까? 부동산의 거품이란 것, 이미 잘 알고 있는 바다. 거품은 언젠가는 꺼질 수밖에 없다 마치 ‘폭탄 돌리기’를 하듯 그렇게 돌아가고 있을 뿐이지 언젠가는 꺼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생산성과 연동하지 않는 가치라는 것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동산의 거품이 붕괴되는 시점, 사회경제시스템은 파열음을 내면서 같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 그 점을 우리도 두려워하고 있다.

사실 지금의 시절에 갖지 못한 사람들도 앞날이 불안하지만 가진 사람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집 값이 수 억원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언제 내릴지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불안한 것이다. 불안한 이유는 다름 아니다.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시스템 자체를 우리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빈부격차가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시스템 자체를 우리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불안한 것이다.

시장을 믿어야 한다고 하지만 시장도 시장 나름이다. 몇 년 전, 금융투기의 대가인 ‘조지 소로스’는 시장이 워낙 무도덕하기 때문에 붕괴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었다. 그러니까 투기꾼들도 정작 시장의 내일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3. 역사는 양극화의 끝을 향하는 것일까?

과연 양극화의 문제를 해소할 해법이 있을까? 이런 저런 논의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일자리 창출, 공공근로의 확대, 사회안전망의 확충 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양극화를 다소간 완화시킬 정도의 것일지는 몰라도, 그 조차도 쉽지 않겠지만 시스템 그 자체를 바꾸거나 궤도수정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떻든 이 시스템 자체를 바꾸고자 하는 그 순간에 초래될 저항과 혼란자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권력도 시스템에 손을 대지는 못할 것이다. ‘시장을 믿어야 한다’는 시장주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을 제어할 장치는 없고 그 양극화의 임계치를 향해서 굴러갈 수밖에 없다. 이렇다할 변수들을 상정하기 어려운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물론 우리는 양극화의 임계치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나 이 도박판은 계속될 것으로 믿고 싶다. 그래서 도박에 열중한다. 제아무리 양극화가 진행된다 해도 이 도박판을 유지하기 위해서 판돈을 돌려주면서까지 도박을 계속할 사람도 없다. 판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는。그렇게 보면, 지금으로서는 양극화의 해법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정직한 이야기가 아닐까?

물론 필자의 이야기가 너무 극단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극화의 임계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임계치에 도달하기 전에 양극화를 제어할 장치는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정면으로 고민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손’을 믿고 있기에는 보이는 현상들이 너무나 심상치 않은 것이다.

또한 양극화 가속화된다면 양극화의 귀결은 무엇일까? 양극화의 끝을 향해서 가는 것이 역사적 필연일까? 그렇다면 양극화 이후 역사는 어디로 가는 것이며 인간의 삶의 방식은 또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물음들이 결코 공허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배영순(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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