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5. 20:08 살아가는 이야기
그러니까 작년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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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하기가 싫어서요. 나가서 감자탕 먹었어요. 그리고 롯데리아 가서 햄버거, 감자튀김을 샀어요. 약국에 들러 약도 샀어요. 어슬렁어슬렁, 걸었어요. 몸은 아픈데요. 마음은 안 아파요. 그래서 기분 좋아요.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샀어요. 핸드백에 쑤셔넣고 걸었어요. 팔짱을 끼고 신발을 탁탁 털어가면서 걸었어요. 오는 길에 아파트 앞에, 코란도가 서 있었는데요. 뒷좌석에서요. 두 사람이 포옹하고 있었어요.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그냥 얼핏 보고 왔어요. "아니, 저기서 왜 저래?" "아주 밀도있게 안고 있던데" "아니, 좀더 음습한 곳에 차를 대 놓고 하던지...사람들이 다 보잖아" "ㅎㅎ, 급했던게지" 남편과 제가 주고받은 말입니다. 달밤에 좋은 구경까지 했어요. 기분 좋아요. 감기기운이 겹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약 먹고 그냥 시체놀이 할까 합니다. 시체놀이가 모냐 하면 요. 그냥 시체처럼 시간 개념없이 누워가는 겁니다. 깊은 잠에 빠져, 아무 것도 느끼지 않고 자는 겁니다. 전화기, 벨소리 모두 'off' 해놓고 자는 겁니다. 나사가 풀린 것처럼 뼈 마디마디 관절이 모두 풀어져서 휘청거리고 있어요. 이럴 땐, 이불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이렇게 잠드는 것을 시체놀이라고 합니다. 모르실까봐 자세히 설명 드렸어요.
자야 할 잠을 작년에 다 잤는지, 요즘은 잠이 안 온다. 2시간 자고 일어나고, 3시간 자고 일어나고, 벽에 걸린 시계는 나와는 관계없이 돌아가고 있다. 작년에 뭘 했는지 폴더를 열어보니 시체놀이 한다고 적혀 있다. 그랬구나! ... 그날 감기가 걸렸었구나...그날 코란도 뒷좌석에서 은밀하게 포옹하던 남녀는 어떻게 되었는지 필름을 이리저리 굴려보며 혼자 웃는다. 오늘은 수제비를 해 먹었다. 밀가루 반죽에 계란을 풀고, 감자와 양파 당근을 잘게 썰어 반죽에 섞었다. 손으로 만지기 싫어 큰 주걱에 퍼서 작은 스푼으로 뚝뚝 떼냈다. 익은 반죽은 튀김처럼 동동 뜬다. 다시마와 멸치를 우려낸 국물맛이 죽이고 있었다. 한그릇 먹고 또 먹었다. 근래 오르는 살이 심상치 않다. 먹는 게 모두 맛있고, 입맛이 살살 돌는 것이 아마도 혀끝이 허기진 야수를 닮은 것 같다. 배를 안고 살았는데 이제 들고 살아야 할 정도다. 04년에 입던 옷을 05년에 입지 못했고, 올해 역시 걸려있는 옷들을 입지 못하고 있다. 맑은 샘물도 깊어지면 그 끝이 보이지 않아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관계없이 내 배꼽이 점점 깊어져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집어삼킨 입이 문제인지, 깊어진 배꼽이 문제인지, 그 둘은 위 아래에서 각자 모르는 양,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멀찌감치 있으니 천만다행이 아닌가 싶다. 05년도 오늘은 감자탕을, 06년도 오늘은 수제비를, 07년도 오늘은 뭘 먹을지...난 그날에 다시 오늘을 더듬을 것이다. La Mas Bella Cancion- Soneros De Verdad Is A Woman - Lambchop E Ancora Mi Domando - Paolo Frescura Kuk - Vladimir Visotsky M'innamorai - 소박한 정원 Piu - Cico Come Vorrei - Samy Goz 퍼온글 원본 : 그러니까, 작년에 말이지...[ varem20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