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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초·중·고교 선생님께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게는 고등학교 2학년생 딸 하나가 있다. 지금 말하겠다.
“제발 아이들 교육 좀 잘 시켜 주십시오. 국어, 수학, 영어만 신경쓰지 마시고 사회생활, 특히 예의범절 같은 걸 각별히 신경써 주십시오. 저는 어린 딸 자식 하나 키우는데 도무지 부녀지간에 말이 통하질 않아 사람 죽겠습니다.”
지난 보름 동안 나는 대한민국 청소년 교육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온 국민이 월드컵 축구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나는 예기치 않았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다름 아닌 딸과의 전쟁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내 딸은 지금 열일곱살이다. 너무너무 예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어느 아비가 자기 딸 예뻐하지 않겠는가. 건성으로 해보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지금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세상 만물 중에 당연 압도적으로 예쁜 게 내 딸이다. 어린아이들, 강아지, 꽃, 강, 별보다도 내 눈에는 내 딸이 더 예쁘다. 내가 다정하게 말이라도 걸면서 다가가면 “아빠! 나 지금 콘디숀 안좋삼. 저리 비키삼” 뭐 그렇게 최신식 말투로 투덜대도 예쁘고, 투정을 부려도 예쁘기만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구석도 있다. 뭐냐 하면 내가 보기엔 내 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눈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때는 저쪽이 나의 미학 수준을 못 따라오는 거라고 접어주면서 넘어가곤 한다. 그런데 보름전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발발한 그날, 나는 밤 10시쯤 집에 들어왔는데 트레이닝복을 입은 은지가 제 방에서 울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왜 그러냐, 무슨 일이 생겼냐, 물으니깐 휴대전화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불과 두 달 전 쯤에 외국에서 온 아빠 친구가 특별 선물로 사준 최신형 핑크색 휴대전화였다.
운동을 하고 돌아오다가 버스에 놓고 내렸다고 했다. 내 딸은 계속해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로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또 몇 십만 원 들어가게 생겼군’ 하면서, 딸한테 뭐라고 할 말도 없어서 그냥 전화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놓고 응접실로 나왔다.
그런데 몇분이나 지났을까. 내 딸이 누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딸 방으로 갔다. 딸은 약간 상기된 모습에 흥분과 긴장이 섞인 말투로 뭐라 말하고 있는데 전화기에 대고 말하는 태도가 영 내 맘에 안들었다.
그래선 안되는데 추궁이나 취조 식으로 말을 풀어가는 것이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나는 온갖 표정과 몸짓을 지어 가면서 작은 소리로 “야! 그렇게 말하면 안돼.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해.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하고 온갖 사인을 다 보냈지만 내 딸은 막무가내로 계속 자기 할 말만 해 나갔다.
“거기가 어디세요? 댁의 이름은 뭐세요?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댁의 전화번호는 뭐세요?”
짐작컨대 내 딸의 휴대전화를 습득한 저쪽 청년은 굉장히 양순한 청년임에 틀림없었다. 고병헌이라는 이름까지 내 딸이 받아서 써 놓은 걸 보니 그런 짐작이 갔다. 그런 와중에 그쪽 휴대전화 번호가 몇 번이냐고 묻는 내 딸의 돼먹지 않은 질문에 드디어 왜 자기를 휴대전화 훔쳐간 사람 취급하느냐고 되묻는 모양이었다.
내 딸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아! 그건 제가 지금 댁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물어본 거죠”한 다음 계속해서 지금 거긴 어디냐고 물었고, 저쪽에서는 발산동이라고 대답했다. 발산동 어디냐고 물었을 때 미즈메디병원 근처라고 대답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거기까지만 내 딸의 전화 통화를 옆에서 들어가며 알아냈다. 나는 발산동이 어딘지는 몰랐지만 미즈메디병원은 최근에 TV에서 따갑게 들어와서 신기하게 여겨졌다. 내 딸은 몇시에 물건을 찾아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 딸과 함께 응접실에 앉아 차분한 분위기로 말을 꺼냈다. “야! 너 아까 휴대전화를 습득해서 너한테 돌려주기로 한 사람한테 그렇게 윽박지르듯 말하는 건 크게 실례한 것이었어” 했더니, 내 딸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반론을 제기해 오는 것이었다.
“아빠! 내가 언제 윽박지르듯이 말했다고 그래? 나는 그냥 필요한 것만 물어본 거였어. 그런데 그게 왜 실례야?”
나는 욱하는 성격이다. 한번 욱하면 앞뒤를 잘 못가린다. 내 목소리가 커졌다.
“야! 니가 그 사람 이름을 물어봤잖아.”
“그럼 휴대전화 찾으러 가야 하는데 이름을 알아둬야죠.”
“얀마, 그쪽 전화번호는 왜 물어봤니? 그게 실례 아니고 뭐니?”
“전화번호를 알아야 어딘지 찾아갈 수 있는 것 아녜요?”
“야! 이 시키야, 그럼 저쪽에서 왜 도둑놈 취급했냐고 너한테 말했겠니? 최소한 정중하게 죄송하지만, 실례지만 하면서 공손하게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야. 나 같으면 습득한 휴대전화를 패대기쳤겠다.”
결론은 이렇게 났다. 내쪽에서 선전포고가 들어갔다.
“아빠 말 안들으려면 니 맘대로 살아!”
그로부터 부녀의 15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살벌한 전쟁이었다. 서로 보고 마주쳐도 눈길도 안주고 말도 안하는 것이 우리의 전쟁 방식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우리집엔 월드컵의 함성과 일하는 할머니의 말소리만 들려왔다. 전쟁은 무려 15일을 치달았다. 나는 자신있었다. 나는 10년도 버틸 수 있지만 저쪽은 용돈 떨어지면 항복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항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보름 만에 처음 듣는 내 딸의 목소리였다. 잔뜩 쫄아든 목소리였다.
“요금 정액제 신청했는데, 아빠 허락 필요하대요.”
나는 와, 내가 이겼다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아주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야! 우리 지금 전쟁중이잖아.”
그런데 언제 쫄았느냐는 듯이 이렇게 받아치는 것이었다.
“아빠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건 거였지, 나는 전쟁한 적 없어. 아까 부탁한 거 취소한다.”
못난 내 딸을 이토록 예쁘게 교육시켜 주신 선생님들께 새삼 고맙쌈 인사를 드린다.
추신―, 두 주 밀린 용돈은 몰아서 줬다.
[[조영남 /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