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씻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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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개수대에 제멋대로 헝클어져 담겨져 있는 빈그릇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깨워 밥먹이랴, 내 와이셔츠 다림질하랴, 출근준비 하랴 서두르다 아침 회의 시간에 늦지 않기위해 미처 집사람이 아침 설거지를 못하고 출근을 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우리회사 역시 그 후폭풍을 비껴갈 수가 없었고, 비상국면으로 치닫고 있던차에 우리가 작년에 추진했던 국가사업의 한 프로젝트가 해당기관으로 부터 금년도 신규사업으로 채택되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긴장이 풀리면서 오히려 허탈한 기분까지 들었고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상념들이 곪은 상처가 터져 고름이 나오듯 머리에서 용솟음 쳤고,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주변의 잡다한 것들이 구석 구석으로 부터 눈에 박혀 들었다.

문득 설거지가 하고 싶었다.
더러운 것이 보기 싫어서가 아니고, 냄새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그릇을 씻고 싶어졌고, 그래서 개수대로 다가서는 내 기분도 다른때 처럼 마지못해해야했던 때의 지극히 수동적인 것이 아닌, 오히려 무엇인가새로운 것을 경험할 것같은 묘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다.

개수대앞에 다가서 어지럽게 쌓여있는 그릇을 바라보는 순간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릇을 깨끗이 씻는다는 생각이 아닌 그것을 씻는 행위에 동화되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얻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디선가 읽은 설거지에 관한 어떤 스님의 얘기가 떠올랐다.

저녁을 마치고는 손님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자
스승이 말했다. "정말 설거지를 할 줄을 아시오?"
자기는 평생 설거지를 해 왔노라고 손님이 항변했다.
스승이 말했다."아, 뭐. 깨끗이 씻지 못하실까봐서가 아니고요 ㅡ그저 정말 씻을 줄을 아시나 해서요."
나중에 제자들에게 해 준 설명인즉 이러했다.
"그릇 씻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지. 하나는 깨끗이 하려고 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씻으려고 씻는 것이고."
그러고 보니 도리어 더욱 아리송해졌는데,
그래서 스승은 덧붙혔다.
"첫째 행위는 죽은 행위이니, 몸은 설거지를 하는데 마음은 씻는다는 목표에 붙박혀 있는 까닭이요, 둘째가 살아 있는 것이니,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이말이 무슨 말인지 당시에는 정확히 이해를 못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릇을 씻기 위해서 개수대앞에 섰을 때 느낀 묘한 감정은 단지 그릇을 깨끗히 하기 위하여 설거지를 하려는 것이 아닌, 그릇을 씻으면서 내 마음속에 잔재한 낡은 것과 불필요한 것들을 함께 씻어 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묻어 있었고, 그래서 비로소 그 스님이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이나 한번 마시고 마는 물잔까지도 한번 쓰고 나면 씻어 두어야 다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거늘, 더럽혀지고 때묻고 얼룩진 내 마음은 무엇하나 담을 수가 없었다.
그릇을 씻으면서 더럽고 때묻은 마음을 담은 내 불쌍한 영혼이 손에 잡힌다.
깨지고 이빨빠진 그릇은 골라내어 버리면서 깨지고 얼룩진 내마음의 조각들은 어느 하나 골라내고 버리기가 힘들다.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냄비나 ,씻으면 씻을수록 빛이 나는 사기그릇을 보면서 내 영혼도 저처럼 닦고 씻어서 청정하게 할 수 없을까 생각을 해본다.

수십년 세상을 살면서도 버리지 못한 마음을 깨끗하게 흐르는 물을 보면서도 씻어낼 수가 없었다.

혼탁해진 내 가슴속 하나헹구어내지 못하면서도, 죄없는 그릇들 얼둘들만 닦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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