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타는 즐거움




회사에서는 누가 커피를 탈 것인가에 대해 매우 민감한 분위기가 있다. 특히 여자 후배들의 경우 자신이 그 일을 하러 들어온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해 커피 앞에서는 아주 냉담해진다. 나의 첫 직장 역시 커피 담당 여직원이 있었는데 분명 계약서상 그녀가 커피 타는 일도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을 텐데도 커피는 모두 그에게 맡겼다. 하지만 사회변화를 위해 고민해오던 선배들이 많이 모여 있던 그 첫 직장에서조차 커피를 타고 그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이 한 여직원의 일로 맡겨져버린 데에는 좀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내가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던 것은 회사와 고용관계로 문제가 생길 즈음 선배들은 점점 자제력을 잃고 하루에 몇 개나 되는 플라스틱 컵들을 써댔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씻거나 씻는 자리에조차 갖다놓는 법이 없었으며,아침에 사무실에 오면 밤새 고민한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지 컵들은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다. 그 뒷감당을 한 사람이 도맡아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나는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선배들을 향해 따끔한 말을 던졌다. 그 이후 커피 담당 여직원은 커피 타는 일이 아닌 그녀의 전공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요즘에야 일회용 컵을 많이 이용하고 또 자신의 컵은 자신이 씻는 경우가 많지만, 손님이 왔을 때만은 그 일을 누가 할 것인가가 모호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모호한 경우일수록 나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아주 기분 좋게 커피를 탄다. 차를 타는 일은 아주 즐거운 일이고 그 차를 기분 좋게 받는 손님을 맞는 일도 꽤 신바람 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에 대한 친숙함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우리 집에는 항상 손님이 많았고 그 손님들이 오면 어머니는 우리 막내가 타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손님들에게 떠들썩하게 자랑을 하고는 꼭 내가 타오도록 했다. 그리고 그렇게 타간 커피에는 손님들의 엄청난 칭찬이 항상 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커피가 무어 그리 맛있었을까 하지만 칭찬이 사람에게 미치는 에너지란 이렇게 성장해서도 좋은 기운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상사를 찾아온 손님에게도 차 대접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까마득히 어린 후배의 손님에게는 더 친절히 커피를 대접한다. 그렇게 했더니 자연히 커피는 아무나 타도 되는 것이며,누군가를 대접하는 즐거움과 웃음으로 사무실이 더 밝아졌다.

김지연(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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