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른다는 건, 산 품속에 안기는 것…
작가 최성현과 함께 오른 주론산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주론산 이렇게 가세요 : 기차(청량리 출발), 고속버스(강남터…
“산에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 그 곳을 찾아보면 재미있다. 산과 친해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며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왠지 이끌리는 곳이 나타난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그 증거의 하나다. 그런 곳을 찾으면 그곳을 자신의 산속 집으로 정하라. 지붕? 지붕은 물론 하늘이다. 주변의 나무와 돌이 벽이며 땅바닥이 마루다. 사철 잎나고 꽃피고 녹음이 지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리니 벽지 도배 또한 필요없다. 거기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거다.”(최성현 지음,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중에서)

이번 산행은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농부이면서,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좁쌀 한 알’, ‘산에서 살다’의 저자이자 번역가이기도 한 최성현(51)씨와 함께 했다. 알려지다시피 최씨는 20년 가까이 산에서 홀로 살아온 이. 충북 제천시 박달재 인근의 한 산골에 집과 논밭을 마련한 뒤 ‘바보 이반 농장’이라 부르며, 풀이나 벌레와 함께 기른 벼와 채소와 산나물 등으로 먹을거리를 해결한다.

따라서 최씨와 동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 속 그의 집에 들러야 했다.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내려 박달재 터널에서 우회전, 박달재 휴양림을 지난 뒤 4륜 구동차나 오를 수 있는 산길을 1㎞가량 올라갔을까. 밤나무 숲에 감싸인 최씨 집의 함석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최씨의 머리카락엔 서리가 많이 내렸으되, 얼굴과 눈빛은 더욱 맑아진 듯했다.

“퉁~ 투둑.”

기분좋은 가을햇살이 내려앉는 집 앞에 잠시 머무는 사이, 함석지붕에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산행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작됐다. 목적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집이 주론산(903m)에 안겨 있었기 때문이다. 박달재 ~ 파랑재(팔왕재) ~ 주론산 ~ 구학산(983m)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의 한 봉우리인 주론산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나, 등산객들에게는 꽤 알려진 산이다. 특히 최씨 집 너머 조백석골 들머리에는 한국 천주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서 깊은 배론성지가 있기도 하다.

배추며 무, 고추 따위가 곱게 자라는 바보 이반 농장을 지나자 산길은 바로 나타났다. 박달재와 구학산을 잇는 등산로와 최씨의 집 사이 1㎞ 정도의 구간에는 그 혼자만 다닌다는 산길이 있었다. 소나무와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따위가 어우러진 멋진 숲길이었다. 서두르지는 않았지만, 결코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걷는 최씨의 걸음걸이. 오르막이고 평지고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은 속도로 걸으면서도 그는 숨결 한번 흩어지지 않았다. 이에 반해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달려온 기자는 그를 따라 가느라 숨이 찼다.

“이렇게 한동안 산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의 때가 씻겨나가 말갛게 되는 느낌이 듭니다.”

기자의 힘겨움을 눈치챈 그가 속도를 늦추며 눈에 띄는 대로 휴지를 줍고, 도토리도 주웠다. 도토리는 까서 밥에 얹어 먹는단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최씨의 집에 들를 때마다 맛 보았던 밥은 보통 밥과는 많이 달랐다. 밥에 각종 잡곡과 감자, 고구마, 밤 따위가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러 쑥이나 산나물도 들어간다. 반찬도 농장에서 나오는 채소가 주류지만, 나머지는 집 주변에서 뜯은 뽕잎이나 취나물, 칡, 왕고들빼기 같은 풀들이다. 산은 그에게 먹을거리도 내어주는 셈이다. 그는 산에 오르는 것을 일컬어 ‘등산’이라고 하기보다 ‘안긴다’는 표현을 즐긴다.

“산은 한없이 자애로우시고, 지혜로우신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공간이자 스스로를 성찰하며 수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지요.”

이 때문일까, 그는 산을 이야기할 때 평어보다 경어를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아침마다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거나, 두손을 모으는 경배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 바로 산이다. 산에 안겨 노는 그만의 방법을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를 통해 더 들어보자.

“(산에) 자기 만의 장소가 정해지면 그 곳에 앉거나 누워보라. 그렇게 하다보면 같은 곳에서도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산이 아니라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들이 보인다. 앉아서 보면 서서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이 먼저 눈에 띌 것이다. … 엎드려 보는 것도 좋다. 그러면 땅이 코앞에 있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정지하고 가만히 주변의 사물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다보면 제일 먼저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흔히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거기서 일어난다. … 내가 제일이라는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풀 한 포기,벌레 한 마리를 보고도 우리는 여러가지를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그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주변의 사물에 의식을 집중했다. 산은 갈수록 아름다웠다. 숲에는 단풍이 들어가는 둥굴레가 융단처럼 깔렸고, 싸리잎도 노랗게 물들었다. 옻나무나 붉나무도 울긋불긋해졌다. 산길에는 간혹 작은 굴 앞에 무더기로 싸 놓은 오소리 똥도 보였다.

집을 떠난 지 30여분 만에 박달재와 구학산을 잇는 등산로에 이르렀다. 잠시 편안한 능선을 걷다가 약 30분간 계속되는 오르막길. 배낭까지 최씨에게 빼앗긴 채 오르막길을 헉헉댄 끝에 드디어 주론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을 둘러싼 철쭉 군락 너머로 멀리, 또는 가까이 보이는 첩첩산. 그 사이 땀을 어지간히 흘린 탓인지, 몸 안의 술기가 빠지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가던 길을 4㎞ 정도 더 가면 구학산, 주론산과 구학산을 잇는 능선에 보기 드문 쪽동백 군락이 있다. 구학산에서 서북쪽으로 내처 걸으면 구력재, 동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가면 원주시 신림면 방학동이다. 등산객들은 흔히 구학산에서 방학동 쪽으로 하산하는 길을 택한다.

구학산 쪽으로 더 가지 않고 주론산에서 하산하기로 했다. 산에 오르는 목적이 정상 정복이니, 구간 종주 같은 것이 아닌 이상 굳이 구학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그저 편안하게 걷다 충분하다 싶으면 내려오면 그만이었다. 최씨에 따르면, 산길을 걸을 때는 가능한 한 잡담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하산길, 사진을 찍으며 말없이 걸으며 그의 삶을 생각했다. 대학에서 노장철학을 전공한 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연구조교로 일하던 30대 초반,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책을 읽고 세상 만물과 공존하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왔다는 최씨, 그는 산에서 하늘과 나무와 풀과 벌레와 새와 더불어 행복할까. 그러나 이런 우문은 하지 않았다. 나이 들수록 선해지는 목소리, 맑아지는 얼굴빛과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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