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두봉과 절두산순교성지 2006/07/06 00:21추천1스크랩2

잠두봉과 절두산순교성지

가 사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서 멀지 않은
합정동 양화대교 부근에 순교성지가 있다.
이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전하려다 대원군의 쇄국 정책에 의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8천여 명 추정) 많은 목숨들이 산화(散華)된 곳으로
지금은 「절두산순교성지」로 불리워지고 있다.


원래 이곳의 옛 이름은 잠두봉(蠶頭峰) 이었다.
양화나루(楊花津) 위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든 것 같다하여 잠두(蠶頭)로 불러졌다.
게다가 주변 경치가 얼마나 빼어났던지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중국에서 온사신 조차도 빼놓지 않고 다녀갔던아름다운 곳이었다.


잠두봉과 양화나루에는 꽃보다 아름답게 늘어진 버드나무가 있었고,
양화나루에 날리는 겨울눈의 이야기와
나룻터를 오가는 많은사람들의 서정을 간직했던 곳이다.
하지만운치있고 평화롭던 이곳은 병인년(1866년)을 기점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상 혹독한 박해와 순교자의 피로 얼룩지기 시작하였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의 서강(西江)까지 침입해 오자대원군은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 물을 서학(西學)의 무리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광기 어린 박해의 칼을 휘둘러 순교자의 피로 잠두봉 바위를온통 핏빛으로 물드리었다.
이때부터 양화나루나 잠두봉 등 아름다운 이름은 불려 질 수 없게 되었으며,
그래서 불려진 이름이 절두산(切頭山:머리가 잘림)으로 지명을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


당시대원군은 천주교도들의 처형지를 일부러
이전의 서소문 밖 네거리와 새남터 등에서
프랑스 함대가 침입해 왔던 양화진 근처인 잠두봉을 택함으로써
침입에 대한 보복이자 ''서양 오랑캐''에 대한 배척을 표시했다.
그러나 천주교에 대한 박해와 살육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868년 남연군 무덤 도굴사건과 1871년 미국 함대의 침입 등의 사건은
대원군의 서슬 퍼런 박해에 기름을 퍼붓는 꼴이 되어 살육은 6년간이나 계속됐고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회사에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되어진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1966년 병인박해 100년을 기념하여
천주교는 잠두봉에 ‘절두산순교기념성당’을세워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기에 이르렀다.


념관은 순교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고유미를 살리는 데 역점을 두어 설계되었다.
건물의 둥근 지붕은 선비들의 갓을 상징했고,
굴뚝처럼 높이 솟은 지붕위의 수직벽과 그 위에 뚫린 구멍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칼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붕 위에서 내려뜨려진 쇠사슬은 족쇄를 상징하며,
성당의 평면은 부채살형으로써 초점인 제단에서
성찬과 말씀이 반사되어 바깥 세계로 퍼져 나가
모든 인간에게 전해지는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였던안드레아김대건 동상이 세워져있다.


그 밖에순교 성인 28위의 성해를 모신 지하묘소가 있으며,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수많은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박물관에는 초대 교회 창설에 힘썼던
선구 실학자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의 유물을 비롯하여
순교자들의 유품 및 형구(刑具) 등 갖가지 진귀한 순교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 글, 카톨릭 자료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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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루가 22:42)

다 버리시어 다 얻으신,

가장 낮추시어 가장 높아지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여기 '길 잃은 양'이 홀로 있습니다.

그가 힘들어하면 부축해 주시고,

그가 방황하면 빛이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아멘-

* 블로글를 개설한지 1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블로그는 나 '자신'이었고 '위안의 벗'이었습니다.

또한,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되었습니다.

그 많은 것들을 다 배우고 내 것으로 포용할 수는 없었지만

나만의 모양을 만들어 가며 즐거웠습니다.

* 음악은 아마사진님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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