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날 미치게 했었지 조회(1133) / 추천(11) /  퍼가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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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6-07-09 19:55:35

날 미치게 하는 친구가 있다.
그렇게 날 미워할 수 있다니!
죽어라 쫒아 다녀봐야 모두 허사였다.
낯짝은 커녕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릴 때까지숨죽여 집 근처를 지켜보지만
그래봐야 결국은 전조등을 켜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모를 일이다. 아마도 놈은 축 늘어진 내 등뒤에서씨익 웃고 있을지 ...
벌써 몇해가 지났을까? 헛물 켠 시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솔직히 이젠 좋아한다고, 정말 딱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 만나달라고 고백할 정열도 삭아들었다.
사실 난 처음부터예감하고 있었다. 애써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희망을 품었을 뿐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삶과 나의 인생은 처음부터 다다를 수 없는 길에 있었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친구를 처음 소개한 P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 겨울이후 오랫만에 온 전화였다.
이번엔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제 만난다고 뭘 어쩌랴.
그저 그러냐구 흥미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구보다 P선생님의 사는 모습이 더 궁금했다.
항상 쉽고 편한 길 놔두고 험한길로만 가려드는 그가 안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묘한 동질감을 느껴보곤 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달라져있었다. 그전엔 단양을 거쳐 죽령을 넘어 소백산 길을 꾸불꾸불 내려갔는데, 이젠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시원하게 영주까지 내달렸다.
사실 내 친구가 사는 곳은 두메산골의 계곡이거나 하천이다.
친구의 이름은 수달.
멸종위기종이라 하지만 그래도 물 좋은 곳이면 어디나 씩씩하게 살고 있다.
P선생님은 수달에 빠져 수달과 함께산 사람이다.
수달이 사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 그였다.
그를 두고 미쳤다고 수군대는 자도 있었고 세상의 험한 괄시를 받을 때도 많았지만
수달을 위한 싸움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그의 얼굴은 수달을 닮아 갔고, 내친구 수달 얼굴 대신 P선생님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그러나 오랫만에 만난 P선생님도 이젠 늙나보다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월은 항상 서러운 것들만 남겨 놓나 보다.
어쩜 그의 인생을 온통 뒤죽박죽으로망쳐 놓은 것은 수달일 것이다.

영주시를 관통하는 실개천이었다.
예전같이 두근거리는설레임은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맑은 물과 시원한 공기는 기분을 상괘하게 했다.
 

깝작도요가 물놀이를 하는지 먹이를 잡는지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에 다리를 적시고 있었다.

 

이번엔 검은등할미새가 아슬아슬하게 물을 적시고 있었다.

날 반기는 건 따로 있었다.
보 위에 잔잔한 곳에서 피래미들이 날뛰었다.
정신없이 물위로 튀어 오르는 피래미를 보느라 시간이 얼마나 지난는지, 수달을 만날 수 있을지 하는 생각 따위는 모두 잊어버렸다.
 

피래미도 물밖세상이 궁금할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눈 깜작할 순간에 솟았다 사라지는 이 놈들을 찍는 건 생각보단 힘들었다.
분명 셧터는 눌렀는데 사진 속엔 물 밖에 없었다.
고작 피래미 한마리를 찍는데도 이렇게 공이드는데 세상일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있을까?
그러나 피래미를 진짜 노리는 놈은 따로 있었다.
 

물총새다. 이름처럼 물에 총을 쏴대듯이 물고기 찍어내는 솜씨는 프리미어리거 급이다.

이젠 위장텐트 안에서 흐르는 땀을 닦을 물건이 없었다.
내의까지 이미 다 젖어 있었다.
팬티만 남긴 채 홀랑 다 벗어 버렸다. 진작에 벗을 걸...
다시 피래미를 찍는다. 물총새처럼 노려 보지만 여전히 사진엔 맹탕 물 뿐이다.
이때 '에그머니" 하는 소리와 '깜작이야' 하는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한 아주머니 얼굴이 위장텐트에 난 구멍으로 쑥 들어와 있었다.
'아줌마 깜짝 놀랐잖아요' 내가 말하자
'아저씨 내가 더 많이 놀랐어요' 라고 큰소리로 받아친 후
뭐하냐 물어볼 것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저 아줌마 어디 지서에 가서 수상한 자가 동네에 나타났다고 신고하는 거 아닐까?

잠시 후 죙일 더위에 지친 해가 뻘겋게 내려 앉고 있었다. 

음. 오늘도 이렇게 끝나는 구나.
해는 금새 먼 산 뒤로 사라졌다.
익숙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깜깜한 밤에 수달이 나타나면 뭘하나 찍을 재주가 없는걸...
생각할수록 고약한 친구다.

'저기저기' 속삭이듯 P선생님의 소리가 들렸다.
2마리가 건너편 수초 더미사이에서 나타나 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에 핀트를 맞추고 있을 때였다. 멀어서 희미했지만 분명 살아 있는 야생의 수달이었다.
'아' 결국 이렇게 널 만나는 구나.

잠시 나에게 눈인사를 하던 친구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친구가 사라진 물위로는 동심원만 빙빙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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