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남긴 무덤, 카라코롬
이름JR
날짜2006/05/26 18:28:02조회19443

신화가 남긴 무덤, 카라코롬


말위에서 태어나 말위에서 죽는다는 몽골 유목민, 그들의 유전자 중에서 가장 좋은 특징을 집대성한 인물 칭기스칸도 말에서 떨어진 내상으로 삶을 마감했다. 유럽과 이슬람, 중국 문명을 발아래 굽어보던 1227년 8월, 서하(중국 서북부의 교역 중심 국가) 재정벌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칭기스칸은 죽었지만 몽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후로도 150년간이나 지속되는 몽골 세계 제국의 토대가 그에게서 출발했고, 정복 면적으로도 3배 이상의 확장이 계속되었다.

처음 칭기스칸을 이은 것은 셋째아들인 어게데이칸이었다. 어거데이는 1229년부터 1241년까지 몽골제국의 칸이었다(처음 2년의 공백은 칸을 뽑기 위한 회의 기간이다). 어게데이는 칭기스칸의 유훈을 계승한 후계자로 기억된다. 그는 몽골의 역사를 정리한 [몽골비사]를 썼고, 세계의 수도를 지었다. 그 도시가 카라코롬이다.

건물을 잘 짓지 못하는 유목민들은 유럽 건축가들의 힘을 빌어 이 도시를 건설했다. 검은 자갈이란 뜻의 카라코롬은 칭기스칸이 평소에 좋아했던 지역이었다. 넓은 초원이 펼 쳐져 있어 경치가 좋고 오르혼강(Orkhon)이 흘러 풍요로움까지 더하고 있다. 오르혼강은 톨강(멀리 흐르는 강)의 어머니 강이다. 요즘 몽골을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립공원 테렐지에서 발원한 톨강이 울란바타르를 거쳐 카라코롬에 닿는다. 강물은 다시 셀렝게 강과 만나 바이칼호수로 들어간다. 어게데이칸도 그 지역을 좋아했다. 카라코롬은 몽골의 중심 지역(중앙이란 뜻의 아르항가이 지역)이었다.

처음 지어질 때의 도시는 웅장했다고 한다. 중앙에 큰 성이 있었고, 도시를 둘러 강과 해자가 있었다. 성 주변으로는 유목민의 집인 게르가 장사진을 이뤘고, 도시 중앙에는 아름다운 조각까지 있었다(이 조각은 울란바타르 근교 휴양지인 가초르트의 몽골리아 호텔 입구에 재연돼 있다). 이 조각은 아래가 커다란 통이고, 가운데는 야자수 나무 모양이며, 꼭대기는 ‘날개가 달린 나팔 부는 여신상’이 있는 분수였다. 분수에서는 마유주나 수태차, 우유, 술 등이 끊임없이 나와서 사람들이 언제나 받아먹을 수 있었다. 꼭대기 장식은 크리스트교의 상징 중 하나인데, 유럽인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종교를 널리 인정했다는 기록처럼 그런 장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카라코롬은 몽골의 수도이며, 세계 제국의 수도의 역활을 했다.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칸을 만나기 위해서 카라코롬을 찾았다. 역사학자들도 왔고, 교황과 왕의 사제도 왔고, 여행가, 정치가, 종교인, 상인들이 줄을 이었다. 도시안에 모든 종교가 성행했고, 누구나 장사를 하고,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치안이 잘되어 있는 나라였다.

카라코롬은 세계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중국 카슈카르에서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에는 ‘카라코롬 하이웨이’란 지명이 있다. 카라코롬에서 출발한 실크로드의 지류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세계를 이어준 길 즉, 역참제(파발말이 바톤 터치 형식으로 달려가는 교통, 통신, 물류 시스템)의 흔적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바투칸(칭기스칸의 큰아들인 조치의 차남)이 유럽 원정길에 있을 때 어게데이칸이 죽었다. 그 정보를 폴란드에 있는 바투칸에게 그 소식을 알리고 다시 돌아오는데 2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카라코롬에서 폴란드, 다시 카라코롬으로 귀환하는 무려 2만5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단 2주일만에 왕복한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빨리 말을 타게 되면 내장이 터져서 죽는다고 한다. 킵착칸국의 바투칸은 온 몸을 소가죽 끈으로 꽁꽁 묶고 쉬지 않고 달려서 카라코롬에 도착했다. 후대인들에게 바투칸은 전쟁을 가장 잘했던 칸으로 기억된다.

어거데이칸을 이은 구육칸(어거데이칸의 장남), 멍케칸(어거데이칸의 동생인 톨루이의 장남)까지는 카라코롬이 몽골의 수도였다. 구육칸은 2년 임기만에 죽고, 멍케칸도 오래하지 못했다. 멍케칸이 죽을 때, 톨루이의 막내아들인 아리크부케는 수도 카라코롬에 있었고, 둘째아들인 쿠빌라이칸은 중국 원정에 나가 있었다. 카라코롬에 있던 아리크부케가 자신이 새로운 칸이라고 선포했다. 쿠빌라이는 인정하지 않았다. 쿠빌라이는 전장에서 스스로 칸이라 선포했다. 전쟁이 시작됐다. 왕자의 난이라고 하기엔 판도가 너무 컸다. 전 유라시아대륙이 남북으로 갈린 전쟁이었다. 쿠빌라이는 북경을 중심으로한 남쪽 세력을 집결했고, 아리크부케는 카라코롬을 중심으로한 북쪽 세력을 집결시켰다. 계속된 전쟁, 결국 쿠빌라이가 승리했다. 쿠빌라이는 칸이 되자마자 자신의 근거지였던 북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쿠빌라이가 버리고 간 카라코롬은 북방의 작은 도시가 되었다.

카라코롬이 역사 속에서 부활할 수 있는 길이 딱 한번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원나라가 망했을 때였다. 당시 원의 마지막 왕인 토곤 테무르칸(고려여인 기황후의 남편)이 1368년에 패망한 병사들을 이끌고 몽골로 돌아왔다. 카라코롬에서 힘을 키워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토곤 테무르칸은 카라코롬까지 가지 않고 북경과 가까운 도시 인찬을 몽골의 수도로 선포하고, 북경 정복을 별렀다. 토곤 테무르칸의 후회가 깊은 만큼 재정복의 의지 또한 충천해 있었다. 그가 지어 부른 노래를 보면 알 수 있다.

40만 몽골인들의 자랑스러운
4개의 대문인 도시, 다두
쿠빌라이 조상이 세워 준
낙원 같이 아름다운 도시를
내 잘못 때문에 잃었다.
나는 씻지 못할 잘못을 했다.

그러나 토곤 테무르칸은 채 2년이 되지 못해 인찬에서 병사한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다두(13세기 북경의 이름, 대도 또는 칸발리크)를 찾을거라 맹세했지만, 왕위 쟁탈전에 휩싸여 국세가 더욱 쇠약해지고 말았다. 그는 쫓기다시피 카라코롬으로 물러났다. 어게데이칸이 만든 수도 카라코롬에 110년만에 칸의 깃발을 다시 꽂았지만, 그 깃발은 전혀 명예로울 수 없었다.

1380년, 몽골은 명나라와 대규모 전쟁을 치루지만 완패했다. 당시 몽골은 동몽골과 서몽골, 하르몽골로 분열돼 있었다. 민족끼리, 부족끼리 갈라진 야비규환의 싸움터였던 몽골은 어떤 싸움도 이길 수 없었다. 승리한 명은 몽골과의 악연을 끊기 위해 몽골제국의 기틀인 카라코롬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카라코롬은 제국의 수도였다는 추억과 거북 하나만 남았다(에르덴쥬 사원 옆에 있는 이 거북을 몽골인들은 하라호름의 관문을 지키는 거북이라 믿는다). 명나라는 돌아갔지만, 몽골은 통일되지 못했다. 몇 번의 동서전쟁이 있었고, 몇 번의 통일 시대가 있었지만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 몽골은 단 한번도 과거의 영화로 돌아오지 못했다.

1640년 경 하르몽골의 아브테칸(Abtai)이 몽골을 하나로 만든다는 명목으로 티벳에서 불교(라마교)를 들여왔다. 그는 카라코롬 성터의 무너진 벽돌을 모아 에르덴 죠 사원을 지었다. 그러나 그 사원마저도 1930년대에 러시아에 의해 무너졌다. 지금 에르덴 죠 사원은 건물 몇 개를 제외하고 거의 터만 남아있다.

최고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무너진 신화를 다시 세우는 것은 그보다도 백배는 더 어려울 것이다. 폐허가 된 도시 카라코롬, 산위에서 내려다보는 무너진 성터는 마치 무덤처럼 음산하고 휑하다. 폐허가 우리에게 경고를 던진다. 고인 물은 썩는다. 안주하지 말라, 안락은 스스로를 안락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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