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이탈리아 기행 18 베수비오산의 분노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는 4월의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로마 외곽의 한적한 도로변에자란 소나무며 봄풀들은 더욱 제 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우중충한 일기 때문에 걱정스러웠다. 폼페이로 향하는 고속도로(일명 ‘태양의 도로’라고 함)에 들어섰을 때였다. “역시, 이태리 날씨는 여자 마음보다 변덕이 더 심하다니까?” 가이드가 먼발치 언덕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행히도 서서히 먹구름이 가시기 시작하더니 빗방울도 확연히 가늘어지기 시작하였다. 로마에서 나폴리(Napoli)까지는 400여 리 길. 여기도 이탈리아 북부지역과 마찬가지로 도로 멀리 높은 언덕 위에는 어김없이 성당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성당을 중심으로 세워진 하얀 집들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넉넉한 모습이었다.
나폴리를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 스쳐 지나갔다. 오래도록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나폴리… 잠시 상념에 잠기기도 전에 안개비에 젖은 베수비오산(Vesuvio, 1,281m)이 시야에 어렴풋이 들어왔다. 자태는 확연치 않았으나 우뚝 선 모습이 결코 만만치 않은 모습이었다. 나폴리를 지나쳐 15분쯤 달리자 베수비오산 아래에 시간이 멈추어 버렸던 고대도시 폼페이(Pompei)의 유적지가 나타났다. 일찌감치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폼페이의 첫 모습은 유적지 입구 부분으로 마치 재개발로 해체하여 놓은 듯한 낡은 벽체뿐이었다. 폼페이는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조성되기 시작한 아름다운 휴양도시(환락의 도시?)였다. 그러던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산의 분노가 시작되었다. 처음 3일간은 화산 폭발이 대단하지 않았던 듯 사람들은 용암이 흘러내리는 베수비오산을 쳐다보며 빵도 구워내며 화산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3일째 되던 날, 엄청난 폭발과 함께 붉은 용암과 화산재가 온 천지를 뒤덮더니 평화롭던 도시를 순식간에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였다. 폼페이 유적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두 개의 터널식 둥근 천장으로 된 일명 ‘마리나 문(Porta Marina, ‘바다의 문’이라고도 함)’이 있었다. 마리나 문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거대한 돌기둥이 인상적인 ‘공회당(Basilica)’ 터가 있었으며, 좌측으로는 ‘제우스 신전(Tempio di Giove)’이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는데도 그리스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듯 했다. 이 때에서야 비로서 내가 폼페이의 유적에 서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시는 바둑판처럼 계획적으로 만든 모습이었다. 도로 가운데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비교적 넓은 길과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인도가 구분되어 있었다. 상가 터는 큰길을 따라, 주택은 간선도로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