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10. 13:14 감동적인 세상

어느여학생

살아가면서 남을 배려하는 것은 고상한 인격이나 높은 지식을 갖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고3 수험생이던 나는 입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침 일찍 무거운 가방을 두 개나 짊어지고 콩나물 시루 같은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비좁은 버스에서 이리저리 내몰리다가

겨우 자리를 잡고 선 곳은 주위 학생들의 가방을



한아름 받아 안고 있는 어느 여학생 앞이었다.

여학생은 무릎 위에 이미 가방이 높다랗게 쌓여 있는데도 내 가방을 웃으면서 받아 주었다.


덕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그 여학생이 안고 있는

내 가방을 보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내 가방 속 도시락에서 김치 국물이 흘러 나와 똑똑 떨어지며 다른 가방까지 적시고 있었다.

여학생에게 내 가방에서 국물이 샌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부끄럽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키면 웃음거리가 될까 봐 나는 맘 속으로 갈등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여학생이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더니

아무도 모르게 가방 아래쪽부터 조금씩 조금씩 국물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수건을 재빠르게 감추는 것이었다.


때마침 학교 앞 정류장에 차가 멈췄고 나는 그 여학생에게서

내 가방을 황급히 빼앗아 들고는 우르르 내리는 학생들 틈에 섞여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전하지 못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을 잊지 못하는 나는 버스 안의 까까머리 고교생을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가 그 여학생에게 하지 못한 고맙다는 말을 맘속으로 전한다.




월간 <좋은 친구>중에서

옮긴이 손대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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