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 조회(13) / 추천(1) / 퍼가기 |
http://images.joins.com/blog/blogv3_1/dotline05.gif) repeat-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 colSpan=3> |
|
| | |
23살의 여름.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혼자 무주로 갔다. 당시 무주는 구천동 계곡 때문에 비교적 유명한 곳이기는 했지만 교통이 불편해서 알려진 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았다.
어둑해져서 무주에 닿았다. 야영지에서 비박을 한 다음, 이튿날 덕유산을 올랐다가 하산해서 전주로 가는 계획을 세웠다. 그 다음 코스는 전주에서 1박 하면서 지도를 보고 다시 정하기로 했다. 구천동에는 모기가 없다는 말을 듣고 갔는데 왜 모기가 없는지 자면서 알았다. 너무 추워서 배낭에 넣어간 옷을 모두 껴입고도 밤새 덜덜 떨면서 깊은 잠을 못 잔 것이다.
수면 부족에다가 아침으로 스프 하나 끓여먹고 덕유산 등산을 시작했다. 젊은 시절이었지만 컨디션이 엉망이어서 무척 힘들게 올랐다. 오후에 산을 내려와서 버스 편을 알아보니 서울 가는 버스는 자주 있는데 다음 목적지로 정한 전주행 버스는 2시간이나 뒤에 있었다.
일단 밥을 사먹고, 시간을 때울 곳이 없나 찾아보았다. 버스 타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게 빤히 보이는 건물 2층에 다방이 하나 있었다. 커피도 한 잔 마시고, 편한 의자에서 쉬고 싶어서 다방으로 들어갔다. 여름철 오후의 시골 다방에 손님이 있을 리가 없었다. 손님은 나 혼자였고 다방에도 종업원 아가씨 혼자였다. 다방은 시간이 정지된 듯한 풍경을 보이고 있었다.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는 촌스러운 다방이었지만, 좋았다.
자리에 앉았다. 나보다 서너살 쯤 더 나이 들어 보이고 예쁘지 않은 다방 아가씨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커피를 시키고 창밖을 보고 있으려니까 커피를 가져다 주고는 묻는다. "앉아도 돼요?" 다방 아가씨를 자리에 앉히면커피를 한 잔 시켜주어야 했다. 아가씨들은 매상을 올리기 위해 손님 자리에 앉아 커피를 시키곤 했는데, 그런 다방은주로 나이 드신 어른들이단골이었다.
나는 커피를 사줄 마음도 없었지만 혼자 있고 싶었다. "제가 그냥, 혼자..." 어눌하게 말하자, 그 아가씨가 소리 나게 웃었다. "커피 얻어먹으려는 거 아니에요. 심심해서요." "아, 네...앉으세요."
그렇게 그 아가씨와 나는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1시간 이상을 마주 앉아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나누었던 대화가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즐거운 농담들도 아니었고 심각하거나 슬픈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진솔한 대화라고 말하기도 좀 어색한, 그저 자연스럽고 편안한 대화였다.
생전 처음 만났고, 처해 있는 환경도 딴판인 두 사람이 참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점이 당시에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아가씨가 편한 대화를 이끌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한적한 오후의 평화로움 같은 것이 두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버스 시간이 되어 다방을 나서는데 그 아가씨가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지 않고 "잘 가세요"라고 했다. 문득 그 아가씨가 친구 같다는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있어요"라고 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가벼운 목례로 "예"하고 나왔다.
전주행 버스가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다. 검표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버스에 타려고 한 발을 승강 계단에 올리다가 고개를 돌려 다방 쪽을 쳐다보았다. 그 아가씨가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손을 흔드는데 갑자기 '내가 저 사람을 언제 또 볼 것인가. 이것이, 이 세상에서 저 사람과의 마지막이다. 영원한 작별이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승강 계단에 올려놓은 한쪽 발을 다시 내렸다. 버스 문 앞에 서서 다방 쪽으로 몸을 돌려 두 팔을 크게, 힘차게 흔들었다. 그 아가씨도 웃으면서 팔을 더 크게 흔들었다.
전주행 버스는 10명 남짓한 승객을 태우고 먼지 나는 시골길을 달렸다. 피곤했다. 열린 창문으로 먼지가 날리는 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 잠을 청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는 자의 서늘함 같은 것이 가슴에 있었다. 1979년 8월 초의 더운 여름날이었다. 바람도 없이 맑은 |
Posted by
og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