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야근하고 밤늦게 경기도행 막차 좌석버스를 타고 귀가 중이었어요.
뒷문 바로 뒷좌석, 카드체크기 있는 곳에 앉았지요. 첨엔 안쪽에 아가씨가 있어서 일부러 그 옆에 앉은 건데(몹시 피곤한 참이라 술드신 분들하곤 같이 붙어앉아가기가 싫어서), 그 아가씬 금방 내려서 안쪽으로 자릴 옮겨앉았지요.
곧 웬아줌마가 앉았어요. 근데 이 아줌마는짐보퉁이를 자기 허벅지와 제 허벅지에 걸쳐 떡하니 올려놓는 거였어요. 무거운 건 아니라서 참으려했지만 차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스극스극 제 옷을 긁어대는 듯해 신경이 쓰여, 여느때처럼 피곤한 평화로움 속에 눈을 지그시 감고 쉬면서 갈 수가 없었어요.
전 말했어요. "이것좀 치워주세요. 무릎 위에 놓든지, 발밑에 놓으시죠." "아휴, 무슨 짐 가지고 치우라마라...? 거, 아가씬지 아줌만지 그럴거면 자가용이나 타고 다니지 왜 버스를 타나?" 이 아줌마는 저와 동년배로 보였는데 대뜸 반말이었습니다. 어쩌면 더 젊을 수도 있고요.
"네? 그건 댁이 들을 얘기네요.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택시라도 타셔야죠." "아니, 뭐가 어째?" "이렇게 짐을 놓을 거면, 저기 빈자리도 많으니까 저기 가 앉던가요." 그여잔 투덜대면서 그쪽으로 가 앉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여자가 다시오더니 버럭 소릴 질러댔습니다. "야, 이년아, 너 몇살이야? 응? 젊은년이 감히 뉘보고 저리 가라 마라야? 대체 너 몇살이야?" "아니, 이 여편네가... OO살이다." 깜짝 놀랐고 무섭고 수치스러웠지만 난 사실대로 말해주었습니다. 혹시 그여자가 오해하는가 싶어서요.
내 입에서 나이가 떨어지는 순간,그여잔 주먹으로 안경쓴 내 얼굴을가격했습니다.안경이 옆으로 돌아가고...비뚤어져서 촛점거리가 빗나갔습니다.난 순간 얼떨떨하니 멍해버렸습니다. 더구나 고도근시인 나는 눈이 다칠까보아 그 경황중에도 그것만 걱정했습니다. "야, 이년아, 뭐 몇살? 이년이 웃기지도 않네. 주민증 까봐!" 퍽, 퍽...! 그여자는 미친듯이 악을 쓰며 팔뚝 등을 주먹질하고 또 얼굴을 때리기에, 난 얼른 일어나 안경부터 먼저 대충 고쳐 썼습니다.
"이 미.친.년." 나도 한마디 욕하고 왼손으로 그여자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다가(오른손엔 뭔가 들고 있었음) 얼른 놓아버렸습니다.
갑자기 이 모든 것이...나 자신은 물론 악 쓰는 그여자까지도 이상하게도 코믹하면서도 처절하고 측은하고어색하고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이런 경우는 내게 너무도 어색한 것이었습니다. 난 곧바로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일종의 패닉상태에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여자는 계속 그악스럽게 달려들었고 그때마다 나는 일어나서(눈을 다칠까봐) 그여자를 떠다밀고 머리끄댕일 잡아당기려고 시도했습니다. 어떤 건장한 신사가 그여잘 끌고 가 따로 앉히고 내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더러운 폭풍은 지나갔나 싶었는데 버스가멈추자마자 경찰관이 올라탔습니다. 한 경찰관은 밖에 있고요. 아마 운전기사분이 폭행신고를 했나 봅니다.
난 그쪽으로는 전혀 생각을 안한 터라 당혹스럽기만 했습니다.다시 또 멍한 상태로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유,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냥 내려가세요." "별일 아닙니다, 다 끝났어요." "경찰서에 가봤자 시원한 일 없어. 안 가는 게 수야. 더 귀찮고 괴롭기만 해." "별로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뭐... 그냥 집에 가는 게 나아." 경찰은 그래도 조사는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난 멍하니 정신이 나간 채 남의일 보듯태연하고 무심한 얼굴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했는지운전기사분이 내게 왔습니다. "아니 그렇게 맞고도 그냥 놔둬요? 억울하지도 않아요? 그냥 가면 나중에 억울해서 어떡해요? 안 억울해요?" 나는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습니다. "저 여자만 이 버스에서 내리면 괜찮아요."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그여자도 나도 그냥 갔습니다. 옆의 신사분은 내게 "절대 싸우면 안돼요. 아셨죠?" 하고 먼저 내렸습니다. 이윽고 저도내렸습니다. 우리동네에 가는 버스는 이미 끊긴터여서 경기도행 버스를 타고온 것이기 땜에 이제 택시를 타고 기본거리를 가야 합니다. 길눈, 밤눈이 어두운 나는 운전은 생각도 못하고 늦은밤에 택시 타고 30분이상 가는 것도 불편해 우리버스를 놓치면 그 버스를 타고 와 짧은 거리를 택시를 타곤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삿대질하며 날 떠다밀었습니다. 바로 그여자였습니다. 역시 상황판단에 미숙한 나는 그여자에게 이곳이 당신이 사는 동네냐고 무심하게 물었습니다. "니년 혼내주려고 쫓아내렸다. 너 오늘 죽어봐라." 이상하게도 그여자가 무섭지도 않고 밉지도 않았습니다. 아까는 몰랐는데 여자의 입에선 술내가 풍겼습니다. 나는 쓰러질 듯이 피곤이 몰려오고 진저리가 났습니다. "나랑 무슨 원수가 졌다고 이러냐?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때리고도 아직도 분하냐? 대단하구나."
싱강이를 하노라니 어떤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내 정말 보자니까...나 버스 같이 타고 온 사람인데..." 이 틈에 난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그여자가 날 붙잡았습니다. 그남자분이 제지했는지 여자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 택시를 출발시켰습니다. 여자가 악다구니 쓰며 쌍욕을 해댔습니다.
집에 왔더니 가족은 나보고 바보라고, 왜 맞은 즉시 112신고를 안했느냐고, 신고는커녕 버스에 오른 경찰까지 헛수고하게하는 천치가 어디 있느냐고 야단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 3일 동안잠을 잘 못 이루고 있습니다. 그때는 그토록 마치 남의일인양 무심하게 수수방관하더니 이렇게 계속 생각이 나는 건무슨 이유일까요? 이상하게도 그여자에 대해 분하다거나 밉다는 생각도 없고 그여자에 대한 위해나 처벌을 바라거나 후회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나 자신의 멍한 상태가, 그런 극한상황에서의 나의 무력한 행위가 이해가 안되고 용납이 안되는 것입니다.
폭행 피해로는...미간과 왼쪽 눈 옆에 손톱으로 긁힌 작은 상처가 있고 왼쪽 팔에 역시 손톱자국 3군데,위팔뚝 넓게 뻘건 멍이 들었습니다. 왼눈썹부위도 부은듯 세수할 때 건드리면 약간 아픕니다. 그렇지만 가벼운 편이고모두 곧 회복될 듯합니다. 연고나 바르면 될 정도입니다.
친구들도아무데서나 아무한테나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여자를놔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합니다.나보고 비겁하다고, 게으르다고도 합니다. 차라리 왜 너도 때리지 못했느냐고,손은 장식용일 뿐이냐고 합니다. 내가 크지 않은 상처라고 했더니 상처가 크고작은 게 문제가 아니다, 따귀 한대라도 입건사유가 충분하다, 버스 승객들이 그냥 가자고 한것은 멀리 가는 사람들인데 막차 운전기사가 증인으로라도 나서면 귀가에 큰 불편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었겠느냐고 합니다.
나는 그여자를 집어넣어서 뭔 시원한 일이 있겠느냐,오히려 그여자가 내게 덤터기라도 씌우면 어떡하느냐,나나 우리 가족에게 보복이라도 하면 어쩌느냐, 그리고 경찰에서는 사과나 하라 하고 훈방조치할지도 모르는데 그럼 넘 허탈하지 않느냐했더니 비겁한 바보라고 합니다.
물론 이젠 잊어야 한다는 걸 잘 압니다. 그렇지만 요즘같이 인심이 흉흉한세상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신병자 같은 사람들이 넘 많습니다. 앞으로는, 또 누구든 그런 일을 안 당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저와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어떻게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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