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소양강 처녀” 36년만에 고향 돌아온 ‘소양강 처녀’의 주인공 윤기순씨
18세때 소양강서 뱃놀이하다 작사가인 반야월 선생 만나…
30년간 밤무대 가수로 떠돌아
▲ 국민적 애창곡‘소양강 처녀’노랫말의 주인공 윤기순씨. 윤씨는 뒤로 땋아 묶은 헤어스타일을 야간 업소 무명가수 활동을 시작한 지난 30여년 전 이래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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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문 소양강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라도 다 알 만한 애창 가요다. 회식, 노래방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국민 가요’란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이 노래, ‘소양강 처녀’ 노랫말의 주인공 윤기순(55)씨가 지난4월 말 고향 춘천에 돌아왔다. 36년 만이다.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윤씨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일을 돕고 있었다. 구수하고 시원스러운 말투, ‘올백’으로 땋아 묶은 머리카락과 얼굴 곳곳 세월의 잔주름. 애초에 노래 가사 속 ‘열여덟 소녀’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무리였을까. 앞치마를 입고 손님을 맞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주머니’다.
“일흔을 넘긴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에 돌아 왔다”는 윤씨. 제일 먼저 듣고 싶었던 것은 희대의 히트곡의 주인공이 된 사연이었다.
“1968년 18세이었던 저는 가수의 꿈을 품고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지금의 연애기획사쯤 되는 회사에서 사무일을 보던 어느 날 고향에 계신 아버님이 ‘높으신 양반들’ 한번 모시고 놀러 오라고 연락하셨어요.” 당시 윤씨의 아버지는 소양강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 가는 어부였다.
“춘천 소양강에서 뱃놀이를 했지요. 그때 함께 오셨던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당시 시상을 다듬어서 ‘소양강 처녀’ 가사를 썼어요.” 서울 동료들 사이에서 ‘소양강 처녀’로 통하던 윤씨였으니 그녀가 노랫말의 주인공이 됐음은 물론이다.
다음 해 ‘소양강 처녀’는 가수 지망생 김태희씨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하지만 처음에는 윤씨도 노래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것인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곡이 발표되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반야월 선생이 TV에 나와 그때 얘기(소양강 뱃놀이)를 하시더군요. ‘아, 그게 내 얘기였구나’라고 알게 됐죠.”
윤씨는 72년에 데뷔 음반을 발표했지만 신통치 못하자 야간 업소에서 무명 가수 생활을 시작한다. 일곱 남매의 장녀. 어려웠던 시절 윤씨는 넉넉지 못한 집안 살림을 도와 여섯 동생을 키워냈다. 그녀가 지난 30여년간 광주, 서울을 전전하며 밤무대에서 노래를 한건 인기 가수가 되고 싶어서도, 성공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오직 노래 잘 부르는 재주로 월급쟁이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젊은 시절 “식비, 방값 빼고 모두 고향 집으로 올려 보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소양강의 낭만’과는 다른 모진 삶을 산 인생이다. 동생들 뒷바라지 때문이었을까. 윤씨는 아직 미혼이다.
고향에 와 소양강 처녀상을 본 그녀의 느낌은 어땠을까?(윤씨도 불과 며칠 전에 처음 봤다고 한다) 돌아온 대답이 “예쁘게 만들어 놨는데 나하곤 하나도 안 닮아서 어색하다”이다.
“몸은 좀 바쁘지만 잡념 없이 편해서 좋아요. 그저 장사만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반백을 훌쩍 넘긴 ‘소녀의 순정’이 이제 고향집 동네 아주머니처럼 담백하고 푸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글·사진=염창선 인턴기자·한림대 언론학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