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3. 16:25 살아가는 이야기
작은 아버지와의 고스톱
제 목 | 작은 아버지와 고스톱 |
내가 고스톱을 처음 배운 것은 불과 2년 전 이었습니다. 앉을 자리만 있으면 길바닥에서건 배 안에서 건, 판을 벌리는 사람들을 욕하며 경멸하기까지 했던 내가 지금은 세 사람만 모이면 고스톱을 치자고 졸라댑니다. 지나간 설날에도 그랬습니다. 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 진 뒤부터는 작은 댁에서 차례를 모시는데, 그 날도 작은 아버지를 도와 차례상 차리기를 끝내자마자 가족들에게 고스톱을 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다들 어안이 벙벙했겠지요. 그럴밖에 없는 것이 명절이나 제삿날 가족들이 다 모여도 우리 가족은 고스톱을 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아무리 액수가 작더라도 어떤 화투놀이 건 다 노름이라고 비방하길 즐기던 내가 먼저 고스톱을 치자고 덤볐으니 더더욱 어이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작은 아버지는 모처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에 기분이 좋으셨는지, 못 마시는 술까지 한잔 자시고 같이 치자며 판을 깔아주셨습니다. 40년 넘게 가방 만드는 일에만 종사해 오신 작은 아버지는 천품이 착한 사람입니다. 나는 물론이고, 30년을 함께 산 작은 어머니나, 사촌 동생까지 작은 아버지가 화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친한 고향 사람에게 크게 사기를 당해 사업이 망하고 나서도 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날도 고스톱을 치다가 동생과 작은 입씨름이 있었습니다. 고스톱 규칙이라는 것이 지방마다 다 다르지요. 고스톱을 치는 중에 던진 패를 던진 사람이 뒤집어서 바로 먹으면 쪽이라고 하는데, 쪽을 했을 때 다른 참가자들이 피를 한 장 씩 더 주느냐 마느냐가 논란이 됐습니다. 나는 피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동생은 안 준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보다 못한 작은 아버지가 중재에 나섰습니다. . "다투지 마라. 주는 걸로 해도 되고, 안해도 되겠지. 하지만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주는 걸로 해도 무방 하겠구나. 한번 규칙이 정해지면 다음 번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겠어. 그렇다면 누구도 이익 보거나 손해 보는 사람이 없지 않겠니. 그러니 준다 안준다 다툴 일이 뭐가 있겠니." 그렇게 논란은 간단히 정리됐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간혹 작은 아버지가 같은 분이 진짜 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이제 돌아오는 추석 때 쯤에나 다시 가족들이 모일 것이고 그때는 작은 아버지와 고스톱을 다시 칠 수 있겠지요. 벌써부터 추석이 기다려집니다. |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이 머무는 풍경 (0) | 2006.10.04 |
---|---|
비오는 날의 술취화 (0) | 2006.10.03 |
3대 (0) | 2006.10.03 |
스승의 날 편지 (0) | 2006.10.03 |
살며 감사하며 (0) | 2006.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