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술취화 조회(75) /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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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6-05-25 11:47:41

.글이 억수로 깁니다! 한가하신 분들만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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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흐렸다. 오락가락 하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옆집 물받이에 떨어지는 빗물소리가 각기 다른 화음에 무너지는 경쾌한 음악처럼 들려오고 나는 창문을 열고 턱 괴고 앉아 감성에 젖는다.

비둘기 한 마리가 옆집 처마 밑 지나가는 몇 겹 꼬인 전깃줄에 움츠리고 앉아있다. 젖은 날개를 가끔 털어가며 빠른 머리놀림으로 가려운 겨드랑이를 콕콕 찍어 생과부 집나간 서방님 기다리며 꽃단장 하는 모습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디선가 외로워 보이는 비둘기 한 마리 비를 피해 날아든다. 미리부터 앉아있던 놈이 앉은 채 잠시 날개 짓 하더니 자리를 비워주듯 좀좀 걸음으로 옆으로 옮겨간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서로가 거침없는 애정표현을 한다.

전생의 훨씬 이전부터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억겁의 인연인가 보다. 거침이 없었다. 암수 정답게 서로를 애무하며 부리를 비비며 몸을 밀착시킨다. 서로를 찍어주며 목을 비비며 “암수상열지사”에 몰입한 광경이다. 심하게 몰두 한 나머지 무심히 애정행각을 훔쳐보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때 하늘이 내리는 질투의 빗물이 그들의 자리까지 침범을 한다. 이정도 쯤이야 하듯 영화 왕의남자가 외줄 타듯 최소한의 폭으로 사뿐사뿐 젠 걸음에 전선줄 위 처마 더 깊이 파고든다. 두 마리의 비둘기가 나를 위한 외줄타기 공연을 펼치며 비를 피한다. 그리고는 이쯤이면 되었다는 듯 목덜미를 어지럽게 돌려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 가벼운 몸을 만들고는 전보다 더 찐한 마저 못다 한 사랑 놀음을 이어간다.

나는 사랑 놀음을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찾아 들이댄다. 앵글 초점을 맞추며 어쩌면 19세 미만의 그림이 나올 법 하다는 작은 떨림을 맛보면서 앵글을 힘껏 당겨 렌즈를 통해 보여 지는 모습에 작은 흥분을 하고 만다. 그리고는 드디어 그 찰나에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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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훔쳐보기에 내 숨소리가 감지되었나? 조심조심 하던 내 행동이 그만 그놈들에게 들켜 버리고 말았다.

두 마리 동시에 ‘재수 없어~ 별꼴이야 변태 같은 놈!’ 하며 빗줄기를 뚫고 포르르 날아가 버린다. 허공에 총알 한 방 날리고 말았다.

나는 처참한 침을 삼키며 씨강한 마음에 돌아선다.

잠시 흥분되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다. 루이 암스트롱의 거친 목소리가 가슴에 절절히 울린다. 아름다운 세상... 진정 아름다운 세상이라 노래한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목에 가래 끓겠다!”

빈정거리며 나도 따라 흥얼거린다.

그러면서 어둠에 가라앉은 집 안을 말릴 양 보일러를 켠다.

이젠 배가 고프다.

비오는 날이면 어릴 적 엄마가 늘 상 해 주시던 수제비가 먹고 싶어진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엄마에 대한 상념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 마지막 가시던 모습이 눈에 아롱거리며 엄마를 떠 올리면 등줄기를 시원하게 쓸어 주시던 거친 손바닥이 그립다. 갑자기 등줄기가 가려워 온다. 나는 엄마의 손바닥 대신 돼지가 울타리에 등을 비비듯 쪽진 벽에서 바보처럼 웃고 있는 하회탈 콧등에 대고 비빈다. 엄마의 손에 비하면 형편없는 하회탈이 도리어 등을 콕콕 찍어 누르는 아픈 느낌이다.

등줄기와 항문이 서로 통하는 혈이 있나보다. 심하게 찌른다 싶은 그곳을 지그시 눌렀더니 내 몸속의 가스가 천둥소리를 내며 터져 나온다. 뱃속에 바람이 빠져 나가니 더욱 당기는 식욕이 나를 부채질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싸면서 동시에 넣는 오토메이션 시스템이 업 그래이드 되었나 보다.


엄마가 해 주시던 수제비 생각이 더욱 간절해져 온다. 가까이 있는 재래시장 입구 한 그릇에 천 원 하는 푸짐한 밀가루 수제비가 생각난다. 궁상스럽게 집에서 만들어 먹기 번거러운데 사먹으러 갈까? 엄마 손맛과 어딜 비교 하겠냐 만은 가격에 비해 제법 그럴 듯한 얄팍하게 빚어 다시마 국물 진하게 우려낸 수제비가 당긴다.

빗속을 뚫고 갈까? 귀찮은데 말까? 갈등하고 있는 그때 나의 깊은 상념을 깨는 전화 벨 소리가 좁은 집에 싸이렌처럼 울린다.


“여보 지요?”

전화의 주인공은 나의 여보 즉, 울 뱃살공주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때 마다 제발 체통머리 있게 전화 받으라고 잔소리지만 내가 그리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시간에 부동산 홍보 전화나 사기성 짙은 통신회사 전화 빼고 나면 뱃살뿐인걸 다 아는구먼 굳이 반가운 뱃살의 전화에 몇 마디를 더 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효율 적인가?

‘니가?“

이 단순 간결한 말 보다 훨씬 길고 체통머리 있는 거 아닌가?

이어 어김없이 들려오는 가느다란 뱃살의 알토 소프라노에 바이브래이션이 가미된 목소리

“뭐해 요~~~?”

여기서 ‘요’ 자는 무진장 길게 빼며 올라간다. 나는 순간 소름이 끼친다.

“논다”

“재미있어 요~~~?”

“당신 같으믄 재미있것나?”

“와 재미없는가~~~요~~? 재미 없으믄 세탁기 좀 돌려놓을래요~? 아침에 보니 많이 쌓여 있던데~~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미 처음 울리는 목소리에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그거 돌리믄 재밋나?”

“흐흐흐... 재미있다 생각 하믄서 돌리지요~~ 그리고 세탁기가 돌지 자기가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이런 씨부럴... 내가 돌리는 것도 아니지 않다니? 하여간 우리나라 말은 아직도 내겐 너무 어려워...

“알따 생각 해 보고”

"그리고 아침에 희야 학교 갈적에 우산 가져 갔어요~~?“

“어... 내가... 몰겠는데?”

“학교에 우산도 좀 가져다 주시구요~~”

다분히 닭살 섞인 목소리지만 감히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의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져 온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한 시가 다 되어 간다. 일의 우선이 잡히지 않는다. 먼저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라 처 밀린 빨래꺼리 약간의 소음이 있어서 그렇지 아직은 쓸 만한 세탁기에 넣고 가루비누 듬뿍 넣고 순서대로 꾹꾹 눌렀다. 물이 받히는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우산을 찾아 들었다. 내 큰 우산과 아들놈 작은 우산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가니 밖에 몇몇의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뒷집에 사시던 예전에 나를 하느님 핑계 삼아 두 시간을 말 고문 하셨던 섹스폰 멋지게 불던 그 할아버지와 어떤 이쁜 아가씨가 우산을 받쳐 들고 차 앞에 서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다. 몇 달 전 함께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 동안 딸네 집에서 보내는가 보이지 않으시던 분이 아마도 마당에 화초들이 걱정되어 잠시 들렸나 본데 그 사이 이쁘지만 멍청한 아가씨가 할아버지 차 뒤에 자신의 차를 주차한 뒤 열쇠를 안에 두고서 잠겨 버리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확인하자 구원의 손길을 만난 듯 반가워하신다.

아들놈 학교 우산을 가져다주는 것도 잊은 채 차문 따기에 열중하고 말았다. 이것은 분명 이쁜 아가씨 때문이 아니라 할아버지와의 인연 때문이니...

집에 있는 노란 끈 접어서 차문 창틈에 비집고 넣어 삼십분의 사투 끝에 결국에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때와 동시에 보험회사 차량이 도착을 했다. 나는 비 맞아가며 씰데 없는 시간에 수고를 한 헛일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보험회사 차량이 오지나 말던가? 아니믄 기냥 올 때 까지 기다리기나 하던가?

그나마 이쁜 아가씨 상그러운 눈웃음에 조금은 위안을 받는다.

‘하이고 피부도 촉촉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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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촉촉이고 나발이고 에구~ 점점 배가 더 고파온다. 아쉬운 이쁜 아가씨의 미소를 뒤로하고 멋있는 미소를 띠며 짐짓 여유 있게 돌아서서 골목을 돌자말자 빠른 걸음으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수제비 그릇에 몰두하며 시장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 걸음 중간 무엇인가 뒷골이 땡겨온다. 아차! 아들놈 우산?

이런... 배고픈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 손으로 우산 받쳐 들고 방향을 틀어 수제비는 상상만 하면서 빗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헉헉 대며 학교에 도착하니 넓은 운동장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 있고 페인트칠이 벗겨진 철봉대에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좁고 길다 란 화단엔 작은 꽃들이 빗방울에 한들거리며 반긴다. 어릴 적 추억에 잠기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가만... 아들놈이 몇 반이더라??? 사 학년 이란 것은 분명한데 몇 반인지 담임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건물 복도에 빗물을 털고 들어섰다. 수업 시간중이라 조용한 교실 복도에 홀로 우뚝 섰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뱃살한테 전화로 물어 볼까 싶어 번호판을 눌렀다. 그놈의 무슨 음인지 지겹도록 들려도 뱃살의 닭살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놈의 여편네는 꼭 필요할 땐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무심한 아버지는 이네 포기를 하고 만다. 그렇다고 아들놈이 몇 반인지 교무실 가서 물어 볼 수도 없고 일 반 부터 차례차례 다 뒤질 수도 없고... 한참을 복도에서 서성인다.

그때 일 반 교실 문이 열리면서 작고 나지막한 젊은 아가씨 한분이 나온다. 학교 선생님이라 보기엔 너무나 젊고 해서 아마도 빵순이나 서무실 직원쯤으로 생각이 되었다. 나를 향해 보일 듯 말듯 눈인사를 건넨다. 용기를 얻어 이네 말을 붙였다.

“저기 아가씨”

아가씨란 말에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더 이상 묻지도 않았는데 웃음 띤 얼굴로 아래 위 내 꼬락서니를 확인하고는 이런다.

“안녕하세요! 희야 아버님 되시죠? 우산 가져다주러 오셨나요?”

엥~~? 나를 안단 말인가? 그럼 선생님이셨단 말인가? 그것도 우리 귀한 아들 선생님? 울 아들 컵스카우트 학교 단대장님이신 담임선생님? 그건 그렇고 한 번도 뵙지 못한 터였는데 나를 안단 말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골을 파헤치고 있을 즈음 선생님의 또 다른 말씀에 모든 의문이 풀렸다.

“희야랑 모습이 똑 같이 생기셨어요!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즐~~

물론 자주 듣는 말이다. 하지만 처음 뵙는 아들놈 선생님께 아가씨라니... 그것도 빵순이로 알아 본 것을 선생님은 나를 누구의 아버지로 단박에 알아보는 혜안을 가지셨다. 역시 선생님과 장똘벵이의 안목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음이다.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고 부끄럽고 막 그랬다. 지금은 음악 시간이라 음악실에 갔다는 이야길 듣고 고개 팍 숙이고 우산만 전하고 뒤 돌아 서는데 부끄럽기 짝이 없다.


빗줄기가 더 세차게 내린다. 신발에 물이 묻어 질퍽질퍽 하다. 누군가 버려놓은 먹다만 음식 찌꺼기가 부풀어 흩어져 있다. 찜찜한 기분이 온 몸에 스믈스믈 퍼진다. 애써 눈길을 거둔다. 식욕이 떨어져 수제비 생각이 싹 가신다.

결국에는 수제비 근처에도 못가보고 집으로 들어선다. 옷을 벗어 제치고 따끈한 물로 샤워를 끝내고 냉장고에 묵혀둔 불로 막걸리 한 병을 딴다. 작은 반상에 받쳐 들고 ‘한국사의 이해’ 책 한권, 챨리 채플린 ‘모든타임즈’ 비디오 하나 골라 자세를 잡는다. 한 번에 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나의 지략에 스스로 감동을 먹는다. 막걸리를 마신다. 빈속으로 흐르는 찬 술이 잠들어 있던 내 몸 속의 미미한 세포까지 깨어나게 한다. 김치 쪼가리를 입안에 넣고 사각사각 씹는다. 제대로 익어 있다. 죽어있던 식욕이 다시 살아난다. 야채 칸에 상추 몇 잎 씻어서 쌈 된장에 따끈한 밥 몇 술 떠서 쌈을 싸 입으로 밀어 넣는다.

막걸리와 쌈 밥 안주 그리고 찰리 채플린과 한국사...

모던타임즈는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이다. BGM만 신이 나고 가끔은 슬프다. 고개를 들지 않으면 영화 장면을 상상 할 수 없다. 역시 한꺼번에 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책을 포기한다.

배가 부른 것인지 술에 취한 것인지 잠이 몰려온다. 여전히 창밖에 빗소리는 후둑후둑 들리는데...

얼마를 잤을까? 초임 벨 소리에 일어나니 아들놈이 왔다. 퉁퉁 부은 얼굴로 토마토를 갈아서 멕인다. 나는 토마토 간 것에 야쿠르트 한 병 넣어서 함께 갈아 덩달아 한 잔 마신다.

속이 메스껍다. 야쿠르트와 토마토가 서로 궁합이 맞지 않나보다. 위장이 뒤틀린다. 그 전 막걸리의 효능도 함께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가 보다. 빈속에 식초를 쏟아 부은 듯 속에서 전쟁의 발발을 알린다.

화장실에 가서 다 게워냈다.

잠시 속이 잠잠하다. 그러다 다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제는 아래로 완전히 속을 비웠다. 텅 빈 속이 허허롭다. 나는 끓는 물에 매실즙을 몇 술 타서 마셨다. 그리고 자빠져 다시 잠이 들었다. 건넛방 아들놈이 컴에서 살생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그 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나는 깊은 잠에 다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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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어 깨우는 느낌에 눈을 떳다. 아들놈이 내게 수화기를 건넨다.

“임마 빗님이 오시는데 집구석에서 뭐하노?”

공돌이 새끼다. 비만 오믄 환장을 하는 어릴 적 한 여자아이를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 하던 그놈이다. 씨발놈이 꼭 이럴 때 전화질이다. 친구 껌팔이 새끼 만나 도루묵 막걸리 할매집에서 기다린단다. 나는 속을 가만히 눌러 보았다. 아무런 느낌이 없다. 의문에 다시 남은 매실 물 한 잔 더 마신다. 그리고는 담배와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빗줄기는 우산을 때린다.


아직 네 시 반 밖에 되지 않았지만 비오는 날 막걸리 집은 만원이다. 도루묵 굽는 냄새가 담배 연기와 섞여 자욱하고 왁작 지껄한 술집은 축제 분위기이다. 우리 세 놈도 그 분위기에 휩쓸리며 함께 축제에 참여한다. 작은 목소리는 앞에 공돌이 새끼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우리도 큰 소리로 대화를 시작한다. 놋그릇 막걸리가 입에 착착 감겨온다. 도루묵을 뼈째 씹어 먹는다. 콩나물 무침이 오늘따라 유난히 맛이 있다.

취한다. 몇 잔을 마셨는지 셀 수가 없다. 밖은 이미 완전한 어둠이 내려있다.

세 놈은 비틀비틀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의기투합하여 이차로 금호강가로 나섰다. 강물에 내리는 빗방울을 보면서 한 잔 더 하자는 멋진 의견을 공돌이 새끼가 먼저 내었다. 세 놈이 택시에 올라탔다.

세 놈의 아가리에서 한꺼번에 토해내는 비린내와 막걸리 냄새와 찌든 담배 냄새에 밀폐된 공간속을 잠식하는 핵의 위력과 맘먹는 죽음의 냄새...

기사양반 거의 죽을 인상이다. 그리고는 참다못해 내리는 빗물도 아랑 곳 없이 앞 창문을 내려버린다. 빗물이 택시 안으로 쏟아져 온다. 다행이 앞쪽에 앉은 껌팔이 새끼만 피해를 본다. 우리들은 앞에 앉은 놈이 택시비를 낸다는 암묵적 약속이 있다. 그놈 막걸리 값도 계산했고 택시비도 계산해야 했으며 달리는 택시에 빗물까지 고스란히 맞으며 가만히 있는걸 보니 그사이 잠이 들었다. 착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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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금호강가 식당들은 한적하다. 이미 몇몇의 식당엔 불이 꺼져 있다.

조용한 식당에 들어가 마시자는 나의 제안에 공돌이 새끼는 들은 척 만 척 해 버리며 껌팔이 새끼의 홀라당 젖은 옷에도 아랑곳없이 수퍼에 들려 막걸리 열병을 산다. 종이컵과 과자 부스러기 몇 봉다리랑 함께 들고서 비를 피할 곳을 이리저리 찾아 헤맨다. 하루 온종일 내린 비에 마른 벤치가 있을 리 만무하고 우리를 위해서 흐르는 강가에 꽁짜로 천막 처 둘리 만무하니 자리 잡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저기 아래 휴일이면 그리도 바쁘게 인기를 끌었을 흰색의 오리배가 한 줄로 선착해 있다. 작은 물결에도 흔들흔들 오리의 뒤뚱거리는 모습이 된다. 내가 제안을 했다.

“어여, 오리속에 들어가서 마시믄 되것네~!”

역시 광고쟁이 출신의 기막힌 아이디어에 모두가 찬성을 한다. 우리는 비틀비틀 그중에 가장 깨끗하고 커다랗게 보이는 오리뱃속으로 찾아 들었다.

선착장에 오리는 일 미터 쯤 떨어져 묶여있다. 억지로 밧줄을 찾아 당겨서 그렇게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비좁았다. 흔들흔들 자리 잡기도 만만치 않고 대각선으로 내리는 빗줄기도 피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도 우리는 막걸리와 이런 희안한 분위기에 도취되어 거리낌이 없었다.

뚝 길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을 조명삼아 대충 술판 깔고 우리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 강가에 메어둔 오리 속에 들어앉아 마시는 막걸리라...! 강 건너편 모텔과 휘황찬란한 나이트 불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한 결 분위기를 돋운다. 그때 건너편을 무심히 바라보던 공돌이 새끼가 그동안 쌓여있던 의문을 걸어온다.

“어여, 야들아 집 놔두고 모텔에 가서 잠자는 놈들은 와 그라는고?”

이놈 시끼가 술빨을 빌려 자신의 청아함을 우리에게 일깨우고자 하는 선전문안 같은 것이었다. 이때 껌팔이 새끼가 거든다.

“얄마 집구석에 보일러가 터졌겠지! 아니믄 방구들 수리 중이던가. 히히히~~”

“그러믄 저 많은 모텔들이 망하지 않고 먹고 사는 거 보믄 우리나라 보일러 제작 수준을 알 수 있겠다 그쟈?”

강가 늘어선 모텔 때문에 우리나라 보일러 수준이 바닥을 치는 순간이었다. 참말로 그 좋은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정도의 수준이니 오리가 아깝고 뱃속으로 처 밀어 넣는 막걸리가 아깝다.

망우당 곽재우장군의 혼을 기리는 망우공원에서 하는 짖거리의 수준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만다.

이때 시답잖은 대화를 깨우기라도 하듯 내 손폰에 벨이 울린다. 대구에서도 제일로 벽진 촌구석에서 중학교 아이들한테 험한 인상으로 사기 치는 마당쇠 놈이었다.

반갑다만 술에 취한 우리들과 대화가 될 리 만부득이나 이놈도 어디서 한 잔 빨고서 전화질을 한 것이다. 해서 올 때 메밀묵 한 접시랑 부족한 막걸리 몇 병을 더 주문 하고나니 오늘 저녁이 부자가 된 느낌이다.

공돌이 새끼가 그동안 참았던 아랫배가 묵직해 오는 뱃속의 무거운 반란군을 몰아 내기위해 상체를 일으키다 대가리를 천장에 쿵 하고 막는다. 뭐라고 씨부렁거리더니 옆으로 실실 기어나가 좁은 날개춤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고 서서 바지춤을 내리고 흔들흔들 소변을 보기 시작한다. 조명 빛에 반사된 물줄기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진다.

그때 멀리서 기다리던 마당쇠 놈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빗줄기를 뚫고 들려온다. 반가운 마음에 일어서려는데 볼일을 보던 그놈이 한 손을 들어 뭐라고 대답하는 순간 엉덩이로 버티고 있던 오리의 뭄뚱이에서 잠시 떨어지면서 발이 미끄러졌다. 때를 같이하여 풍덩 소리가 들린다.

금호강의 깊이는 만만치 않다. 내가 화들짝 머리를 내 밀고 보니 이놈은 이미 물속에 잠수를 하고 보이지 않는다. 급하게 불렀다. 이러다 물귀신 한 놈 만들겠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그때 ‘어푸’ 하며 그놈의 대갈통이 물 위로 떠오른다. 역시 껌팔이는 용감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엎드린 자세에서 그놈의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끌어 올렸다. 옆에서 내가 그놈의 팔을 잡고 끌어 놓고 나니 이놈 덜덜 떨면서 한다는 말이 걸작이다.

“히히히... 내가 눈 오줌 아까버서 내가 마시러 들어갓따!”

“오냐 이놈아 좋기도 하겠다. 그래 몇 모금 마셨노? 아까 내가 눈 오줌도 함께 마셨겠네?”

마당쇠 놈이 도착했다. 물 철철 흘리며 쪼그리고 앉아 있는 우리들 꼬락서니를 보더니 기를 찬다.

“야 이놈들아 너거들은 언제 철들래?”

“철? 그거 마시는 술이가?”

대화가 이리되니 이즘 되면 광란의 질주나 다름이 없다.


비가 슬슬 거쳐 온다. 한 놈 더 합석을 하니 비좁은 공간이 더욱 밀착되어온다. 홀라당 젖은 놈 옆에 있는 내 옷도 다 젖었고, 택시비 낸다고 앞자리에 앉은 놈 또한 만만치 않았고 마당선생 놈만 온전한 놈이 된다. 그러나 이놈의 눈알도 이미 풀려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새판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메밀묵 한 접시에 막걸리와 미친 네 놈이 비오는 강가 묶어둔 오리뱃속을 헤집고 들어가 쪼그리고 마시는 술은 가히 풍류가객의 수준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춥다고 지랄하는 공돌이 새끼의 말에 우리는 슬슬 파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시간은 열 두 시를 넘기고 있었고 나 또한 취한 정신에 몽롱한 몸이 된 중간에도 어슬어슬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은박지 접시엔 메밀묵이 몇 점 남아 있었다.

공돌이 새끼 물에 빠진 광경을 본 우리들은 조심조심 오리 뱃속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우리를 태운 오리는 불만에 가득 찬 흔들림을 계속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마당쇠 놈이 탈출을 시도했다. 한 손으로 밧줄을 잡고 한 손으로 오리를 잡더니 훌쩍 뛰어 넘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마당쇠질 할 놈이라고...

나도 그놈을 따라서 가볍게 훌쩍 뛰어 넘었다. 한 손엔 은박지 접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들고 뛰다가 고만 빗물에 젖은 오리 난간이 미끌 하면서 머리부터 시작하여 물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날리는 메밀묵 조각들,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내 몸뚱아리 저 발 끝부분이 무엇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물에 빠져 죽은 물귀신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는데.. 불현듯 무서운 공포가 몰아친다. 내 모습을 본 이놈들 서로가 배를 잡고 낄낄거리며 웃는다.

나는 내 발목을 잡은 그 감촉에 드디어 물귀신과 조우하는구나! 생각이 미치자 소름이 돋는다. 눈앞에 웃고 서 있는 그놈들의 모습이 모두가 귀신들로 보인다. 순간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에서 펼쳐진다. 뱃살도 보이고 딸 놈도 아들놈도...

순간 나는 살아야겠다는 본능이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속으로 침착하자 침착하자를 되뇌며 몸에 힘을 뺏다. 그리고 용기 있게 가만히 섰다.

물은 내 가슴팍 밖에 오지 않았다. 이런 씨~~~ 발 닿는 부분에 선착장 아랫부분 시멘트 계단이 있었다. 나는 그 부분을 바로 딛고 있었다.

쪽팔려 밖으로 나오니 비는 그쳐있다. 진정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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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을 등나무 아래 빈 의자에 앉아서 정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같은 동지의 공돌이 새끼가 옆으로 휘적휘적 걸어오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려준다. 덜덜 떨며 받아 맛있게 피웠다. 내 생전 제일로 맛있게 피운 담배라 기억된다.

그러고 있는 사이 우리들 중 술빨이 제일 약하기도 하거니와 이미 일차부터 무리를 한 껌팔이 새끼가 옆 의자에 가로로 쭉 뻗어 잠을 청한다. 그 플라스틱 의자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가만히 쪼그리고 취기와 겨루기 하던 마당쇠 이놈이 비틀비틀 걸어가더니 그 의자 뒤에서 바지춤을 내리더니 오줌발을 갈긴다. 그 줄기는 껌팔이의 얼굴로 향했다. 아마도 그놈이 어두컴컴한 곳에 누워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따뜻한 물을 맞이하게 된 껌팔이는 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 광경을 담배물고 낄낄 거리며 감상하고 있는데 의리의 공돌이 새끼가 실실 걸어가더니 배설의 쾌감을 마음껏 즐기고 있던 마당쇠 놈을 두 손으로 확 밀쳐 버리니 그만 그놈은 누워서 세수하던 껌팔이의 배 위를 덮쳐 버린다. 욱~ 하는 소리와 함께 껌팔이가 일어나고 마당선생 놈은 그 힘에 의해 바닥으로 얼굴을 처박는다. 아직 여전히 남은 물줄기는 흘러내린다.


그날 우리는 받아주지 않는다는 걸 억지 사정을 하며 웃돈까지 올려서 휘황찬란한 모텔에 들어가 함께 잠을 청했다.

집에 보일러가 고장이 나지 않아도 모텔에 들어가 잘 수도 있다는 사실을 힘들게 깨달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당쇠 놈의 거시기가 껌팔이 놈의 입으로들어갔다나 뭐라나???

그날 밤 이후 우리는 절대로 서로의 얼굴을 보지 말자는 굳은 맹세를 했다.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은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서로 전화 한 통 없이 잘 살고 있다.

 
여기서 공돌이새끼는 공무원을
껌팔이는 수퍼하는 놈을

마당쇠는 체육선생을 지칭하는 우리들 만의 은어이니
전국에 계신 가운데일보 독자 여러분들 중 해당 직업군에
속해 계시더라도 흥분하시는 일 없으시길~~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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