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상, 질긴 인연 2006/03/23 13:05 | 추천1스크랩1 |
워싱턴을 떠날 날이 다가오기에 마지막으로 뭘 좀 해볼까 궁리하다가 '크리거 뮤지엄'에 갔습니다. 늘 열어두는 미술관이 아니라서 예약을 해야 한다기에 귀찮아서 못가본 곳인데, 모아둔 그림들은 꽤 좋다고 하더라구요. 크리거씨 부부가 살던 집에 평생 모은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이라는군요. 어제 예약을 했는데, 가보니 저랑 친구 이렇게 달랑 2명이고, 가이드가 우리를 데리고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미술관을 안내해주었습니다. 이게 웬 호사란 말입니까. 며칠 전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세잔느 전시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까치발을 하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돌아다녔는데. 그림은 주로 인상파 화가 것들이고 피카소나 고갱, 고호의 초기 그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 피카소답지 않고 고호답지 않고 고갱답지 않은 그 점이 오히려 매력이라고 할까. 미술관 건물은 이렇게 생겼구요. (건물 내에선 사진을 못찍게 합니다.) 중간에 있는 홀에서는 가끔 음악회도 열린답니다. 따뜻한 햇볕이 담뿍 쏟아져 들어오는 조그마한 미술관에서 60대쯤 돼 보이는 가이드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 기분이 참 상쾌했습니다. 모네의 그림이 대여섯점 있는데 여기서 시간을 제일 많이 보냈어요. 가이드에게 자원봉사를 하는 거냐고 물어봤지요. 이 양반 왈, "대학에서 외국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은퇴하고 시각장애자들을 위해 책을 읽어 녹음하는 자원봉사도 한다...' 흠... 저는 그 사람 얼굴을 다시 봤습니다. "혹시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 않나요?" 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 "혹시 베데스타에서 요가를 배우러 다니시지 않았나요. 제가 그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리하여 우리가 기억을 발굴해보니, 3-4년 전에 만난 적이 있었어요. 제가 간단하게 인터뷰해서그가 한말을 인용했거든요. 그후 가이드는 저를 멍하게 바라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걸 기억할 수가 있느냐"고 기가 막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마찬가지. 인생의 반을잃어버린 열쇠 찾느라고 보내는 제가 그런 기억을 아직 잃지 않고 있다니.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그 기사를 쓴 게 2002년 5월쯤이었습니다. 거의 4년 전이죠. 어떻게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저도 신기했어요. 떠날 때가 되어초기에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다니. 세상은 참 좁고 인연은 정말 질깁니다. 우리가 그렇게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검고 긴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역시 검고 긴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이 미술관에서 방황하는 기자가 한명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이고. 미술관 들어올 때 입장료 8달러 아낄려고 기자 신분증 보여줬는데 신고 들어갔나 봅니다. 검은 옷의 여자는 "저는 이 미술관의 방황하는 홍보담당자입니다. 미술관 관련자료를 준비해놓을테니 가져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한바탕 웃고 다시 그림을 보다가 미술관을 나왔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4년 전에 만났던 살루스씨입니다.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면서 버릴까 말까 망설인 두 가지 아이템입니다. 하나는 두통약. 하나는 머그. 두통약은 5년 전에 500알 들이를 샀는데 거의 비었구요. 머그는 제가 거의 매일 커피를 마시던 겁니다. 네이비 블루도 있었는데 그건 깨먹었어요. 그러니까 제가워싱턴에서 얼마나 골치 아팠는지, 깨어 있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쳤는지 아시겠지요? 곧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아래는 크리거 미술관 웹사이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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