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 29. 14:22 살아가는 이야기
조선족여자의 힘겨운 하루
조선족 女근로자의 서러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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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모지에 적힌 주소대로 지하철을 타고 어느 일식당으로 갔다.
인사를 하고 홀 청소를 하려는데 느닷없이 홀 언니가 말했다. “여긴 내가 있잖아. 얼른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나 해요.”
어안이 벙벙해진 채 주방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했다. 한창 깻잎에 계란을 묻혀 튀겨내고 있던 몸집 큰 주방장이 “음, 오늘따라 미인이 왔네”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점잖지 못하게 눈은 왜 찡긋하나?
“올해 몇 살이지? 처녀예요, 아줌마예요?”
무례한 질문에 대답 대신 설거지만 하자 화가 난 주방장이 외마디 욕을 하며 튀김을 담은 쟁반을 던지듯 놓고 나가 버렸다. 낮 12시가 다가오자 손님들이 밀려들어 주방과 홀이 정신없이 바빠졌다. 주방장은 내 손이 느리다며 계속 두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질러댔다. 식사하던 손님들이 무슨 일인가 놀랄 정도였다. 내가 손 느린 사람이 아닌데…. 점심 때가 지나자 주방장은 주방 안을 쑥밭처럼 만들어 놓고 2층으로 잠자러 올라가 버렸다.
한국에 온 지 약 3개월. 그동안 식당에서 날품을 팔고 있지만 이렇게 막돼먹은 주방장은 처음 보았다. 서러워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겨우 참았다. 사장님이 와서 위안해 주었다. 속상하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라고 했다. 나는 술 담배는 못한다고 했다. 사장님은 웃으면서 “잘할 것 같은데” 하고 말했다. 어, 내가 지금 위로받는 건가?
일을 마치고 가려는데 홀 언니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2만 원을 꺼내 주었다. 나는 호출비(소개비) 5000원과 한나절 품삯 2만5000원을 합쳐 3만 원을 줘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홀 언니는 대뜸 “일을 빨랑빨랑 하지 못해 2만 원만 주는 것이고, 호출비는 사장님이 안 계셔서 모른다”고 했다.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간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왔다.
소개소에 돌아오니 오후 일거리는 먼저 온 사람들이 금방 다 가져갔다고 했다. 오후 4시경까지 기다렸으나 일자리가 생기지 않아 별수 없이 소개소를 나섰다. 지하철 입구를 내려가다 문득 중국에 두고 온 딸아이 생각이 났다. 그리운 내 새끼. 서둘러 전화카드를 꺼내 전화를 했다.
마침 전화를 받은 딸아이는 할머니는 시장에 가고 혼자 집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내 생활비라고 할머니한테 맡긴 돈으로 큰아버지 오토바이를 사주었슴다”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전화기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남편과 이혼한 후 한국으로 오면서 전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며 ‘보모비’ 격으로 꽤 많은 돈을 드렸다. 그런데 아이 양육비로 따로 맡긴 돈을 써 버린 것이다. 참으려고 해도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헤어진 남편이 밉고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아이라도 두말없이 넘겨준 것이 다행이다. 아이마저 없다면 무슨 희망으로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밖을 보니 전철 가는 방향이 이상했다. 머리가 복잡하다 보니 차를 반대 방향에서 탄 것이다. 오늘은 식당에서 2만 원을 받아 호출비와 전철비 등을 빼고 1만2000원가량을 벌었다. 이 돈으로 여름 신발을 사야겠다. 아직도 겨울용 털구두를 신고 있어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 같다.
터벅터벅 집에 돌아와 힘없이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지하방이어서 벽에는 곰팡이꽃이 화려하다. 비 올 때마다 계단으로 빗물이 흘러들어 참으로 걱정이다. 6월 중순부터는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습기 찬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다.
내일은 어느 식당에 가서 일하게 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하루를 엮어 갈까. 쉼 없이 들려오는 탁상시계 초침 소리만이 방안에 쌓인 외로움을 허물고 있다.
이혜영 (가명·37)
※ 이 글의 필자는 중국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다 한국으로 왔습니다. 필자가 원고를 전달하면서 신원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혀 지면에 본명과 얼굴 사진은 싣지 않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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