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2006/08/17 오후 9:15 | 마음이 머무는 자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소사아저씨가 가르쳐준 ‘반달’ 노래 어른이 된뒤에도 가끔은 ‘흥얼흥얼’
전교생이 17명 밖에 되지 않는 산골 초등학교에,
사랑 많은 소사 아저씨가 있었다.
소사 아저씨는 개구쟁이 아이들의 다정한 친구였다.
10살만 넘으면, 가난한 농가의 일꾼이 되어야하는 아이들에게
소사 아저씨는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아름다운 동요도 가르쳐주고 싶었고, 반짝이는 동시도 가르쳐주고 싶었다.
소사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처음 가르쳐준 노래는 ’반달’ 이였다.
처음에는 한 두명의 아이들이 노래를 배웠다.
연필과 크레파스와 노트와 스케치북을 선물로 준다는 말을 듣고
전교생 17명이 모두다 노래를 배우러 왔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 나~무 한~나무 토~끼 한~마리~

목이 쉬도록 노래를 가르쳤지만, 아이들은 매미처럼 제 각각 울어댔다.
“아저씨, 선물은 언제 주나요.”
“선물은 무지막지하게 많이 준비 되어 있다.
잘 하면 선물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크크.
우리가 노래를 다 배우면, 느티나무재 너머에 있는 성당에 가서
합창을 하기로 약속했다.
잘만 하면, 신부님이 연필과 크레파스와 노트와 스케치북을
선물로 마구마구 주신다고 했거든.”
그 후로 아이들은 더 열심히 노래를 배웠다.
합창 발표 날이 왔다.
햇볕이 다람쥐 꼬리 만큼 남아 있을 무렵,
소사 아저씨는 전교생 17명을 데리고 느티나무재를 넘었다.
성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 눈이 갑자기 자두알 만해졌다.
바쁘기만 했던 엄마, 아빠들이
성당 안에 모두 모여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설레게 한 건 단상 앞에 있는 선물이었다.
높이 쌓여 있는 선물이 쓰러진다면
소사 아저씨 말대로 선물에 맞아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소사 아저씨가 월급 봉투를 몽땅 털어
그 많은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단상 위에 섰다.
아이들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찔레꽃처럼 피어 있었다.
풍금 소리가 흘렀다. 아이들 노래가 시작되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 나~무 한~나무 토~끼 한~마리~

아이들은, 바람을 타는 청보리처럼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들 눈에 눈물이 반짝거렸다.
소사 아저씨는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저씨도 울고 있었다.
야윈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사 아저씨는 손등으로 계속 닦아내고 있었다.
노래를 불렀던 아이들은 세월을 따라 배추잎처럼 나박나박 자랐다.
사춘기를 앓았고, 새털처럼 많은 날들을 살아내며
아이들은 제법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가끔은,
소사 아저씨가 가르쳐준 ’반달’을 노래했을 것이다.
햇살처럼, 나비처럼 너울너울 살아가라고 했던 소사 아저씨의 말을
아주 가끔은 떠올리기도 했을 것이다.
어른이 된 그들은 알고 있을까?
’반달’을 가르쳐준 마음씨 고운 소사 아저씨가,
박봉을 털어 빠작빠작한 선물을 사온 그 가난한 소사 아저씨가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분명히.
가슴에 새겨진 사랑은 지워지지 않으니까.
사랑은, 아무리 험한 세월도 견뎌낼 수 있으니까.
누구의 가슴에서도. 오랫동안. 그 모습. 그대로. 그렇게.
*반달 (윤극영 작사, 작곡)
(작가 약력)

작가 이철환 (www.cyworld.com/happygomul)씨는 ‘풀무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베스트셀러 ‘연탄길 1.2.3.4’의 저자인 이 작가는 아버지가 고물상을 하던 시절에 겪은 실제 이야기를 담아 ‘행복한 고물상’을 펴냈고, 문화일보 AM7에 연재하고 있는 글들을 모아 최근에 ’곰보빵’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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