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남4녀의 외아들 박서방 ... 그 서방과 마누라 사이에 1남1녀 ..시아버님께서
끔찍히도 아끼시는 친손자는 달랑 박준호 한명입니다.

그 박준호는 조심성이 엄청 많습니다.
그래서 치고 박고 싸우는 운동은 아주 싫어합니다.

다른집 아이들처럼 태권도복이나 검도복을 입고 씩씩하게 체육관을 다녀오면
정말 좋겠는데 그런곳은 얼씬거릴 생각조차 안합니다.

이런 손주를 보시며 친할아버지께서는 아주 큰 걱정을 하십니다.

"준호가 운동을 좀 해야 하는데 ..."
"그러게요 아버님 ! 운동하러 보낼라치면 저리 기겁을 하고 난리니 걱정은
걱정이에요.."
"너무 곱상하게 생겨서 운동 하나쯤은 해야할텐데.."

항상 이런 걱정을 하시는 아버님 ... 그럼 운동하는 곳만 싫어하나 ?
그것도 아닙니다.

엄마 생각엔 바둑이나 기타 학원 ... 어학원도 좋고 어느 곳 하나를 정해서
수업 끝나고 1-2시간 정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준호야 ! 바둑 배울래 ?"
"그거 배웠잖아요.. 할아버지랑 바둑 두어서 제가 이겼어요. 그만 배울래요."
"야 ! 그건 할아버지께서 너 기분 좋으라고 져 주신거지..바보."
"어쨌거나 바둑 안배울래요."
"그럼 뭐가 배우고 싶은데 ?"
"그런거 없어요. 학교에서 배운거 안 잊어 버리니까 괜찮아요."

저런저런 능구렁이 같은 녀석..

"그럼..대낮에 집에 와서 매일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놀겠다는 거야 ?"
"그건 아니고요..아 ! 그럼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교실에나 보내주세요."
"거기에는 갈거야 ? 네.. 친구도 있으니까 다녀볼께요."

거기는 맞벌이를 하는 엄마를 위해서 마련된 프로그램이라고 하던데 ...

집에서 놀면서 보내도 되나 ?

돈은 못벌지만 그래도 명색이 등단이라도 했으니 작가라고 하면서
책 내느라 바쁘니 애좀 봐달라고 할까 ?

별 거지같은 궁리를 다 하다가 끝내는 다니지도 않는 직장 다닌다고
하면서 방과후 교실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렇게 잘 다녔는데 .. 준호도 신나라 잘 다녔는데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박준호가 엄마를 크게 불렀습니다.

"엄마 !"
"귀청 떨어지겠다 이놈아 ... 왜 불러 ?"
"우리집 가난해요 ?"
"그건 왜 ?"
"글쎄요.. 우리집 가난하냐니까요 ?"
"네가 볼때는 어떤대 ?"
"부자는 아닌 것 같고 ..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지요.."
"그런데 ?"
"가난한 애들만 방과후 교실에 다니는 거래요."
"누가 그러는데 ?"
"그건 말씀드릴 수 없고요.. 아무튼 그렇다고 하는데 우리집 정말로
가난해요 ?"

그럼, 전 뭐라고 대답을 해주어야 하나요 ?

정말 예전에 한창 유행했던 고전 유머를 들먹이며 우리집 가정부도 가난하고
운전기사 아저씨도 가난하고 정원사 아저씨도 가난하고 ..

뭐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 건지 .. 아니면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집은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실 재산도 아주 많고
운 좋으면 우리집도 재개발 지역으로 들어가서 몇배 뻥튀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 야 ! 우리 정말 부자야..가난하기는 ..웃기는 소리.."


푼수같이 이렇게 말해줄까요 ?

방과후 교실을 활성화 시킨다는 얘기는 종종 들려 오는데 아이를 내년에
다시 방과후 교실에 들여보낼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지금 박준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 ! 제가요 방과후 교실에 가기 싫은데요.. 엄마랑 올해까지는 다닌다
약속을 했으니까 올해까지는 다닐께요. 내년에는 정말 X에요."

박준호만 X가 아니라 그 에미인 저도 X입니다.

너줄너줄 프로그램은 많이 늘여 놓았다고 안내장을 보내 오지만 글쎄요..

꼭 그 프로그램만 문제가 있는 걸까요 ?

저렴하고 알찬 프로그램 때문에 엄마들이 안심하고 꼭 보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이 하는 거라고 인식되어 있는 그 프로그램에 우리
아이를 묶어 두고픈 생각은 없습니다.

좋아서 가는 곳이 아니라 엄마와의 약속 때문에 가는 그 교실이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런지 진지하게 딱 한번만 생각해 볼까 합니다.

딱 한번만 ? 자꾸 생각하면 머리 아파요.



와 ~ 벌써 오신분들이 40만이 넘었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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