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의 부부(남편:50대 초반)가 상담실을 찾았다.

부인의 곱게 화장한 얼굴은 어쩐지 칙칙해 보였고

아닌게 아니라 기미 가득한 얼굴에 짙은 화장이 억지인 듯 보였다.

침묵으로 일관 하던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이내,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닙니다.

그럼요... 내 남편, 내 사람이 아니에요.

한번도 내 사람이란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이른 결혼에 아이들이 클 만큼 다 컸으니

이제는 정말 이혼 하고 싶어요...

친척 소개로 만난 남편은 성실해 보였죠.

모두들 그만한 사람 없으니 됐다 하는 말에

결혼을 결심 했고 무엇보다 성품이 온화 한 것 같았어요.

하지만 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결혼 초 한번은 아파트 경비실에서

다른 아줌마와 가벼운 말싸움(?)이 있었는데...

사실 말싸움이랄 것도 아니고 하도 내 얘기를 못 알아들어서

얘기를 하다 보니 목소리가 좀 커진 것 뿐이었어요.

남편이 퇴근 하면서 그러고 있는 저를 본거죠.

갑자기 저를 막 되먹은 여자 취급을 하면서

내 얘긴 들어보지도 않고 막 나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가는 거에요.

너무나 어이없고 기가 막혔죠.

내가 얘기를 해도 들어주지도 않고 하도 억울해서 얘기를 하는데

두 번 다시 동네 창피한 일 하고 다니면 가만두지 않겠다 엄포를 놓는 바람에

그냥 어쩔 수 없이 삭힐 수 밖에 없었어요.

이후 그 동네에서 6년을 살면서

늘 이웃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것만 같고... 창피하고...

항상 이사 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었어요.

정말 억울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그 때 이후부터 이와 유사한 일은 넘쳐 났어요.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건 우리 아이들이죠.

아이들이 얼마나 아빠를 무서워하고 눈치를 보는지몰라요.
물론 지금은 컸으니까 대면대면 하지만...

애들이 뭘 못해요. 하다못해 택시 잡다가 아이가 좀 뛰다가 길에서 가볍게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아이는 넘어진 것 보다 아빠가 뭐라고 할 것에 벌써 기가 새파랗게 죽어서 눈치를 보고

나는 나대로 또 시작하겠구나... 마음 졸이고

아니다 다를까 아이한테 똑바로 못하네, 택시기사가 운전하다 놀라네...

도데체 누가 가족이고 누가 중요한지 남편은 도무지 분간을 못해요.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이 늘 주눅이 들어서 컸어요.

기도 못 펴보고... 무조건 다른 애들에게 양보해야 하고...

잘못한 거 없는데도 잘못했다 빌라고 하고...

도무지 말로 다 못합니다.

얼마 전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는데 난 정말 같이 가기 싫었거든요.

피할 수 없는 자리라 가긴 갔는데,

식사를 하다가 숟가락을 떨어뜨렸어요.

온 몸이 얼어 붙더라구요.

남편 표정을 가까스로 보니, 가관인거 있죠...

오히려 옆에 있는 다른 집 남편이 웨이터 불러서 새로 숟가락 갖고 오라고 하고

새 숟가락을 받았는데...

가슴에서 화산 덩어리가 퍼지는 감을 받았어요.

아...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정말 별것 아닌 것도... 왜 난 이렇게 속을 끓이며 살아야 하나...

선생님, 난 정말이지, 이제 이렇게 사는 거 그만 할랍니다.

지겹습니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점도 보고 왔는데...

(무슨, 순서나 되는 듯이...

부부상담 오시기 전에 점 집 먼저 들렀다 오시는 부부들 참 많으십니다.)

이젠 제 스스로가 지쳤고 남편이 이제라도 잘 하겠다 하더라도

난 그만 됐어요...



부인이 얘기 하는 동안 남편은 그냥 묵묵히 듣고만 계셨다.

내가 뭘 잘못 했나...

다 잘 되라고 하는 거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않나.

왜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이미지며 피해를 주나.

내가 과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어디서든지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다 편한 일을

아내는 내 마음을 몰라준다.

이번 부부모임 때도 좀 조금만 주의 깊게 조심하면 숟가락 안 떨어뜨렸을텐데...

아내는 늘 매사 덜렁댄다.

집안 정리도 못하고... 아니, 안한다.

싱크대 바닥이 미끌거려도 한 달, 더 간다.

사실, 내가 더 말 못하고 참고 사는 게 더 많다.

하지만,

부부동반 식사 다녀와서 갑자기 정말 이혼을 하겠다고 통보를 하면

도데체 어쩌란 말인지...

아직 애들 장가도 가야하고 부모님도 계신데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린지 모르겠다.

물론 이혼 얘기가 지금만 나온 건 아니어서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이번은 정말 둘이 해결하기 어려운 것 같다.

몇주를 내내 냉전과 다람쥐 챗바퀴 도는 얘기를 반복하다 지쳐서 왔다.



나이가 40대 후반인데 내 편 네 편?

어쩌면 의아 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부부 만큼이나 일상의 어려움과 기쁨과 행복,

모든 것을 함께하는 가까운 사람이 누가 있겠나...

어쩌면 부부는 함께 종종의 퇴행을 경험하면서 생활에서의 긴장도 풀어보고

때론 어릴 적 유아(?) 행동도 함께 해보는 사람들이 아닐까...

편을 들어주고 안 들어 주고의 문제 보다

우리가 서로에게 우선순위에 있는가는 신중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댁의 남편 분 같은 경우

개인의 매사에서도 본인은 우선순위가 아니시다.

그러다 보니 남편분의 가족은 동일시가 된다.

아내? 아들들? 역시 매사에 한참 후순위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 가족의 대물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나, 이 남편분의 성장과정도 당신 아들들이 격어 성장한 만큼이나 유사했었다.

남편 분께서 하시는 아내에 대한 생활의 불만도

실은 성격유형상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상의 지적거리로, 지시적으로 일관해 오셨고

부인은 부인대로 마음상함을 내내 풀지 않고

자기표현 조차 제대로 해오지 않으셨던게 이혼 운운으로 다다르게 되었다.



이 날...

상담을 하면서 남편 분이 훨씬 더 진한 눈물을 보이셨다.

그 모습에 부인 분이 오히려 더 놀라셨고...

자신 보다 더 한 남편의 진한 외로움에

결혼 20여년... 곰삭은 적막에 마음이 숙연해 졌었다.



이주은 상담심리사

www.yesmi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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