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각 글쓴이apostle(typxxxx)

어제 저녁 늦게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내일이 엄마 생신이다. 오늘따라 엄마가 많이 보고싶네…” 그렇구나… 뭐가 바쁘다고 이젠 돌아가신 어머니 생신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두 분 생전에 있었던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아내와 가볍게 동동주 한잔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성격의 소유자셨다. 평생을 직업도 없이 매일 술에 절어 큰소리만 뻥뻥치고 조금만 당신 성에 안차면 때리고 부시는 불 같은 그런 성격에 한가정의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너무나 무책임하고 방탕했던 분이라 나도 다른 형제들 처럼 겉으로 표시만 내지 않았을 뿐 진심으로 아버질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어릴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매일 취해서 툭하면 불쌍한 울어머니 때리고 부시던 그런 암담한 기억 밖에 없고 고등학교 마친 직후에 그 지긋지긋한 부산집을 드디어 탈출, 서울와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지금껏 살고있다.


나름대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형편이 나아지면서 어느날 문득 불쌍한 울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더욱 아버지께 잘 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뒤로 가능한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가질려고 노력했다. 틈나는 대로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아버지와 둘이서 밤을 꼬박 세워 술마신 적도 더러 있었다. 대화라 해봤자 일방적으로 아버지 큰소리만 듣는 것이니 고역이긴 하지만 …. 워낙 평생을 그렇게 사신 분이라 간혹 여전히 날 포함한 가족들을 당황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버지께서도 나이 드시면서 많이 나아 지셨다는 걸 피부로 느낄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난 아버지와 함께 한 어릴 때 추억은 거의 없고 나이들어 우리 가족들 모두 여행다니며 같이 한 시간들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중 기억나는 몇가지 일들 적어보자 한다.


오래되니까 어디 갈 때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루한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아버지가 나한테 오시더니 귓속말로 그랬다. “니 담배피고 싶제? 이리 온나, 내가 담배 피는 거 갈켜주께.” “아버지, 마 고만두소. 비행기 안에서 담배피다 들키면 크게 망신 당합니더” “야 임마, 내가 담배 안들키게 피는 방법을 알았다카이. 잔소리 말고 이리 따라온나” 그리고는 굳이 싫다는 절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요 화장실 변기 두껑열고 변기 안으로 담배연기 뿜을 때 마다 물 살짝 내리면 된다. 내가 그렇게 피웠다 아이가” 그렇게 해서 아버지 덕분에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피던 꿀맛 같은 담배 맛을 보았다. 원래 몰래 숨어서 먹는게 맛있다든가 ㅎㅎ…


호주 갔을 때 - 마침 그날 태풍이 와서 연이은 운항취소로 부산 식구들이 늦게 김포로 오는 바람에 퀀타스 항공에 사정사정해서 20여명의 우리 식구들이 겨우 호주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호주에서 첫날 밤 호텔에서 아버지와 나 그리고 여행사 친구 셋이서 술을 마셨는데.. 여행사 친구 술이라면 한가닥하는 놈인데도 그날 아버지가 컨디션이 괜찮았던지 끝도 없이 마셔대니 결국 아버지한테 못 당하고 기어서 몰래 지 방으로 도망갔다가 그 다음날 아침 아버지한테 혼줄이 났다. “야 이놈아 우째 젊은놈 둘이가 나 같은 늙은이 하나 못 당해서 그래 몰래 도망가나? 이 사장 니 안되겠다 어른한테 버릇없이 술자리서 도망이나 치고 애라이…” 친구놈 아버지 한테 싹싹 빌었다. 물론 모두 기분좋게 웃고 넘어갔지만.. 아버진 그렇게 술을 좋아하셨고 젊은 우리도 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마시기도 했다.


말레이지아 랑카위에서 – 중앙에 큰 호수가 있는 아주 경치 좋은 방갈로에 묵었었는데 아침 일찍일어나 파라솔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께서 어디론가 가고 계시길래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근처 가게로 들어가신다. 혹시나 해서 슬금슬금 가보니 아버지께서 큰소리로 “우유! 우유!” 라고 고함을 지르시는 게 밖에서도 들렸다. 가게로 들어가니 아버지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 “00아(제이름), 이노무 자슥들이 도대체 사람 말귀를 못알아 듣는다. 우유라 카이!!” 나중에 손주들 수영하면 목마를 것 같애서 미리 우유를 사 두실려고 하셨던 모양인데 어쨌던 우유를 사들고 나오면서 그랬다 “아버지, 여기는 한국말 전혀 몬알아 듣심다. 그래 고함지른다고 되능교, 차라리 저보고 시키든지..” 아마 그 전에 가본 태국이나 호주 같은데 한국관광객이 워낙 많아 어지간한 곳에선 한국말이 다 통하니 거기서도 통할 줄로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엉? 다른 나라에서는 다 한국말 알아 듣던데 여긴 와 이런노? 문디 자슥들 공부 좀 하지…”


태국에서 마지막 밤. 그날도 아버지와 어지간히 술을 마셨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께서 날 찿는데 안절부절 하신다. “얘야 큰일났다. 너거 아부지 어제 술에 너무 취해서 그냥 호텔방 바닥에 쉬를 해서 바닥카페트가 다 젖었다. 우짜면 좋노?” 아닌게 아니라 방에 가보니 바닥 카페트가 00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술 엉망으로 취했을때 소변보면 양이 정말 장난이 아니지요 ㅎㅎ) 시침 뚝 때고 얼른 체크아웃하고 도망치듯 공항으로 갔다. 창피했던지 그 뒤 몇시간 동안 헛기침만 해대는 아버지를 보고 웃음 참느라 혼났다. 이 사건에 대해선 이제 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다. 형제들은 물론이고 아내에게는 너무 x팔려서 아무 소리 할 수도 없었고 부모님 두분다 이제는 안계시니까…


우리 집안을 잘 아는 주위 분들은 아버지는 정말 복이 많았던 분이라고 얘기들 한다. 하긴 젊어서는 직업도 없이 술과 여자로 가산 다 탕진하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들이 용돈은 물론 해마다 두 부모 모시고 손주들까지 온 가족이 같이 해외여행 가고 했으니 그런 말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우린 형제가 4남1녀니 며느리가 넷이다. 며느리들이 그런 성격의 아버지 좋아할 턱이 없었다. 모두들 아예 말상대도 안할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울아내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결혼초에는 아버지를 어려워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친해져서 아버지가 아내와 같이 있을때는 아버지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 같은 착각을 할 정도 였다. 하긴 아내의 애교는 내가 보기에 가히 천부적이다. 내가 아무리 화가 나도 아내가 옆에서 살랑대면 오히려 화낸 내가 무안해 져서 쪽도 못쓰고 허물허물 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버지도 영판 그 짝이었다. 아내가 바짝 붙어 팔짱을 끼고 뭐라고 열심히 쫑알대면 우리 아버지 좋아서 정신 못차리고 어린애 같은 순한 양이 되어 연방 싱글벙글… 허참 나.


하루는 아내가 그랬다 “몰라서 그렇지 아버지 같은 분 다루기 얼마나 쉬운데.. 아버지 같은 분 조금만 진심으로 잘 대해드리면 금방 넘어오게 되어 있다니까. 00아빠(나)도 마찬가지고..” 윽.. 정말 이런 여우가 없다.


사람 심리가 참 이상한 것 같다. 말이 그렇지 솔직히 속으로는 많이 미워도 했던 아버지,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너무 섭섭하고 돌아가신지 3년이 더 지난 지금도 내가 가끔 힘들고 할 때는 매사에 실속없이 큰소리만 치셨던 그 목소리마저 그리운 것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젠장..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가 얇지 않았더라면..  (0) 2006.09.20
내남편이 될사람은  (0) 2006.09.20
자신도속고 남도속이고  (0) 2006.09.20
중단없는 전진은 NO!  (0) 2006.09.20
나는 간절히 이혼을 원한다.  (0) 2006.09.20
Posted by ogfriend

블로그 이미지
오래된 그리고 좋은 친구들이 가끔들러 쉬다 가는곳..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 중 게재됨을 원치 않으시거나,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으면 즉시 게재한 내용을 삭제하겠으니 삭제요청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모닥불 올림. Any copyrighted material on these pages is used in noncomercial fair use only, and will be removed at the request of copyright owner.
ogfriend

태그목록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5.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