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SILK ROAD), 신비로운 비단길이 부활한다

▲ 돈황에 있는 막고굴의 입구,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첨단의 통신 장비와 물류 시설의 발달로 앉은 자리에서 천리를 가는 요즈음, 한 발 한 발 디뎌 사막과 오아시스를 지났던 과거 상인들에게는 이마에 땀방울이 비 오듯이 흐를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비단 뿐만 아니라 종교, 문화, 먹을거리와 사람까지 교류되었던 비단길로의 여행은 마치 멀리 서역까지 갈 듯한 단단한 마음의 준비를 하며 시작하게 만든다.

중국 서안에서 시작되어 멀리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 혹은 로마까지 이어졌다고 하는 비단길. 가족의 생계, 가문의 부흥 그리고 부를 위해 등짐을 지고 낙타를 탔던 이들로 새로운 길, 새로운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오간 덕에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이 길 위에 지금도 수많은 여행자들이 지나고 있다.

위대한 유산이 잠든 곳, 돈황의 막고굴

실크로드라고 불리는 길은 단순히 중국의 내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천산 산맥을 중심으로 천산 북로와 천산 남로로 구분되고, 또 바다를 이용한 항로 역시 비단길이라고 불린다.

중국을 지나 타클라마칸 사막,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일대, 중동의 사막지대를 역시 모두 비단길이라 부른다. 이 중 중국의 실크로드 길이 실제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 돈황은 천산 남로에 해당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로에 비해 천산 북로와 바닷길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돈황의 번영은 점점 시들해 갔지만, 서역을 방어하는 마지노선의 도시로서의 중요성은 지속되었다.

돈황의 가장 큰 볼거리는 막고굴이다. 1900년에 발견된 막고굴은 절벽 약 1.8km에 걸쳐 조성된 석굴군으로 석굴은 약 1천 개가 넘는데 그 중 500여 개가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내부에는 섬세하게 그려진 벽화로 빼곡하지만 내부의 사진 촬영이 금지되고 있어 마음에만 담아와야만 한다.

▲ 막고굴의 유적은 많은 부분이 도난 되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다.
막고굴은 399년 처음 조성되었고 이후 1천 년간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불교 전파의 초기부터 중국 문화의 전성기였던 당나라 때의 불화와 불상, 조각 등도 발견되었으며, 돈황학이라는 학문을 만들 정도로 유산은 풍부했다. 하지만 도굴꾼들과 몇 푼의 돈으로 무지했던 현지인을 유혹한 서구 열강의 영향으로 많은 유적들은 세계 각국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역시 이때 프랑스의 손으로 넘어갔다. 현재 볼 수 있는 벽화 중에는 신라 왕자의 모습이 그려진 것도 있어 당시의 문화 교류의 규모를 볼 수 있다.

사막과 오아시스, 명사산과 월아천

군사 요지였던 돈황을 지나 서쪽으로는 본격적으로 사막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곳은 마지막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모래바람과 열기를 참고 사막을 건너온 사람에겐 가장 먼저 접하는 오아시스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아시스 월아천은 반드시 사수해야 했지만, 침략자에게는 탈취해야만 했던 곳이다.

▲ 햇볕을 받으면 불에 타는 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화염산
초승달 모양의 월아천은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들어 사막화 현상과 유입되는 수량이 줄어 혹시나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의견들이 늘고 있다. 모래로 뒤덮인 사막 한가운데에 동양적인 누각과 나란히 앉아 있는 월아천의 풍경은 색다르면서도 평화롭다. 신기루처럼 곧 사라질 듯한 풍경이다.

주변을 온통 모래 산이 둘러싸고 있는데도 모래가 월아천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도 불가사의 중 하나다. 월아천을 둘러싼 모래 산들은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생각지 못한 즐거움을 준다. 양말까지 훌훌 벗어 던지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산에 오르면 준비는 끝이다. 모래 썰매를 타고 쏜살같이 내려오며 어릴 적 추억에 젖는다.

▲ 고창고성은 너무 넓어서 여행자들은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는 경우가 많다.
명사산은 월아천의 북서쪽에 있는데 고운 모래가 바람에 날려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월아천 주변을 비롯해 이곳의 모래들은 너무나 고와서 마스크를 쓰거나 스카프 등으로 가려야 할 정도다. 저녁 해질 무렵의 풍경을 찾는 사진가들이 많이 모여들기도 한다.

더위와 열기를 이겨내다

돈황을 지나 서쪽으로 갈수록 이슬람의 문화가 조금씩 드러난다. 그 중 투루판은 해수면 보다 낮은 땅, 가장 더운 곳 중에 하나다. 이러한 열기는 화염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붉은 색의 화염산은 지표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불에 타는 듯한 모습을 보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서유기의 손오공이 이 산을 넘고, 필요한 부채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던 무대가 되었다. 화염산은 더울 때 지표의 온도가 70℃까지 올라가기도 하는데 계란을 바닥에 묻어 놓으면 삶아질 정도이다.

▲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교하 고성은 중앙 전망대에서 전체를 관람할 수 있다.
투루판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우물인 카레즈가 있는데 더위와 열기를 이겨낸 사람들의 지혜와 인내에 형언할 수 없는 찬사를 보내게 된다. 카레즈는 일종의 지하 수로로, 열기와 더위로 물이 너무 빨리 증발하기 때문에 지하에 물길을 만들고 필요한 곳마다 우물처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투루판의 카레즈는 멀리 천산산맥의 빙하가 녹은 물을 이용하는 것으로 한 길 한 길 대를 이어 파 내려가 수천 킬로미터의 지하 수로를 만들어 냈다.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에서 이 카레즈의 길이가 총 5천km가 된다고 하니 인간의 생명력은 강인하고도 끈질긴 것이다. 이런 지하수로는 지역에 따라 카레즈, 카나트 등으로 불린다. 서쪽으로 올수록 좋아지는 또 한 가지는 과일이 맛있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포도를 많이 볼 수 있는데 건조한 기후로 인해 당도가 높아 건포도도 유명하다.

▲ 만년설이 있는 천산은 울창한 침엽수림이 가득하다.
투루판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으로는 교하고성과 고창고성이 있다. 기원전 2~14세기의 교하국의 수도로 교하고성은 이름처럼 두 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천연의 절벽을 가진 요새 같은 곳이다. 과거에 번성한 곳이어서 그런지 현재 불탑과 사원, 관청 같은 몇 개의 건물이 당시의 흔적을 말해준다. 타원형으로 형성되어 있는 이곳의 입구는 남쪽에 있는데 중앙의 전망대에서 교하 고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뒤쪽으로 화염산을 등지고 선 고창고성은 방대한 크기는 걸어서 둘러보기에는 조금은 무리이기 때문에 당나귀 수레를 타고 둘러보면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499년 고창국이 세워지면서 만들어진 성벽과 성문, 사원과 불탑 등을 볼 수 있다.

서역으로 가는 길에 서다

오랫동안 몽골과 투루크계의 쟁탈의 대상이 되었던 우루무치는 중국 실크로드의 가장 서쪽 지점중의 한 곳이다. 행정 구역상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주도인 만큼 중국보다는 이슬람의 문화와 종교, 인종을 볼 수 있다. 우루무치는 천산산맥에서 흘러내린 물과 초원지대의 비옥한 목초지로 지금까지의 사막지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또한 급변하는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거리의 수많은 자동차, 즐비한 PC방, 활기 넘치는 사람들로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실크로드를 상상하기는 힘들 정도이다.

▲ 이방인에게도 미소를 잃지 않는 카자흐족의 어린아이들
12월에서 3월 사이에는 입산이 금지되는 천산천지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멀리 만년설이 보이고 파란 호수를 간직한 천지는 하늘나라 서왕모가 목욕하던 곳이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의 비경을 가지고 있다. 호수를 둘러싼 울창한 침엽수림, 파란 호수, 만년설의 흰 눈,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서 어느새 사막은 잊히고 만다.

천산산맥 북쪽의 남산 목장은 우루무치에서 대략 10여분 거리에 있는데 주로 카자흐족이 살고 있어 이들의 색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이들의 전통 가옥인 파오가 푸른 초원 위에 흩어져 있고 한가로이 풀밭을 거니는 가축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원한다면 파오에서 묵을 수 있으며 말을 타고 초원을 달려 볼 수 도 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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