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만 필리핀 사람… 사랑은 똑같아”
전북 장수초등교 ‘어버이 날 편지 쓰기’
김성훈기자  tarant@munhwa.com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요? ‘사랑해요’ 한마디밖에 없어요.”

3일 오전 11시 전북 장수군 장수읍 장수초등학교 4학년 1반. “평상시에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솔직하게 쓰세요” 라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이 부산해졌다. 정신없는 아이들 사이로 유달리 까무잡잡한 피부의 김수진(10)양이 눈에 띄었다. 연필을 꼭꼭 눌러가며 열심히 편지를 쓰더니 금방 편지지 절반이 넘어갔다. 행여 누가 볼까 하트모양이 그려진 분홍빛 편지지를 다른 종이로 가려가며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는 수진이의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로 시작해 “안녕히 계세요” 로 끝나는 ‘이상한’ 편지. 하지만 어법은 서툴러도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은 넘쳐났다. “항상 학원 빠지고 놀고 죄송해요. 이제부터 학원 빠지지 않고 다닐게요. 그동안 동생들이랑 싸우기만 하고, 또 말의 말을 꼬리달고(말대답하고) 죄송해요. 하루종일 집에 오면 TV보고 놀고, 내 마음대로 하고 죄송해요.”

편지내용 대부분이 반성문이지만, 부모님 사랑에 보답하려는 생각만큼은 누구 못지 않다. “이제 곧 어버이날이네요. 그래서 쿠폰을 만들었어요. 그 쿠폰은 한달 동안 이용할 수 있어요.” 수진이의 쿠폰은 ‘뽀뽀 쿠폰’ 이다. 엄마가 수진이에게 쿠폰을 보여주면 한달동안 언제든 사랑스러운 딸의 뽀뽀를 받을 수 있는 쿠폰이란다.

수진이는 편지를 쓴뒤 색종이로 카네이션도 접었다. “엄마 것 한 송이, 아빠 것 한 송이.” 수진이는 자그만 손에 종이 카네이션을 들고 “어버이날 엄마, 아빠한테 달아줄 거에요” 라고 자랑했다.

친구들 엄마와 다른 엄마 모습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될 법도 한데 수진이 생각은 전혀 달랐다. 수진이가 생각하는 엄마는 언제나 상냥하고, 맛있는 음식도 잘 만들고, 게다가 영어까지 잘 하는 세계 최고 엄마다. 학교 특별활동 영어시간에 수진이 엄마가 보조 강사로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있어 친구들 앞에서 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지난해 여름 엄마를 따라 필리핀에 가서 놀다 온 것도 수진이의 자랑거리다. 담임교사 박여주(여·27)씨는 “엄마가 외국인이라 엄마를 대할 때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엄마를 더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이들이 많다” 고 말했다. 박형주(57) 교감도 “이 마을에서 태어나 똑같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다른 점이 뭐가 있겠느냐” 며 “이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떼어서 생각하는 자체가 편견이고 차별” 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중국인인 6학년 1반 윤정수(12)군의 편지는 글씨는 서툴지만 내용은 제법 어른스러웠다. “우리집 농사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일요일마다 부모님 일 거들게요.” 큰 아들답게 대견한 모습이다. 일본인 엄마를 둔 2학년 2반 강영신(9)양은 편지의 절반을 그림으로 채웠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 영신이가 만세를 부르고 있는 그림이다.

전체 학생 363명 중 20명이 다문화 가정 어린이인 장수초등학교는 이날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편지는 어버이날 집에서 부모님이 받아볼 수 있게 학교에서 한꺼번에 부쳤다. 얼굴도, 피부색도 다른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비뚤비뚤 써내려간 편지에는 세상 누구보다 특별한 엄마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났다.

장수 = 음성원기자 eumryos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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