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떠오르는 옛 생각..
저희 아버지는 제가 이세상의 기억을 시작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오직 술에 취한모습, 엄마와 저희 삼남매에게 쉴새없는 폭력을 휘둘러 오는 모습만을 남긴 사람입니다.
어렸을때부터 이런집이 싫었고, 이런 아빠가 싫고,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습니다. 날 이런집에 태어나게한 엄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전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런 집에서 빨리 성공해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시험전날, 아빠의 견딜수 없는 폭력을 피해 아파트 지하실에 몰래 촛불을 켜놓고 공부했습니다. 그때, 창밖으로 들려오는 아이들과 아빠, 엄마의 웃음이 가득한 집들을 보며, 내자신과 부모님을 한없이 원망했습니다.
저는 항상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고, 준비물, 옷 더욱더 신경써야했고, 아빠한테 맞은 자국들을 숨기기 위해 학교가기 전에 더욱더 일찍 일어나 얼굴에 울었던 흔적, 다친 흔적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더 신경써야 했습니다.
항상, 선생님과 아이들은 저를 활발하고 공부도 잘하고 자존심도 강한 아이로 알았고, 그런 저는 그렇게 이중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중학교를 비롯하여 고등학교도 명문고에 입학했고 항상 성적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던중 , 고 2때의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방송으로 제이름을 부르며, 빨리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듣고, 무슨일인가 싶어 재빨리 교무실로 내려갔습니다.
교무실에는 술이 잔뜩취해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빠가 런닝바람으로 슬리퍼를 신고, 앉아 계셨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니 애미년이 나갔으면 너라도 아빠 밥을 차려줘야지 , 학교를 가? 지 애미 닮아서 저년도 저렇다구,,,"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정신이 아니였습니다. 귀에는 아무것도 안들리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안보였습니다.
뒤에서는 아이들이 교무실에 모두 모여 저와 아빠를 구경하고 있었고, 저는 더이상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길로 저는 학교를 뛰쳐 나왔고, 길거리를 계속 하염없이 헤매다녔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광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한 옷가게에 취직을 했습니다. 나이를 속이고.. 옷가게에서는 막내라는 이유로 아침 청소를 제가 했는데, 그때 여성시대를 들었고, 어느날 어머니에대한 청취자 사연이 나오자, 갑자기 우리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전화기를 어렵게 들고 엄마 목소리를 듣자, 눈물마저 나왔고, 엄마는 곧 저를 찾으러 광주로 내려오셨습니다.
엄마는 저를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다시 학교에 가자고..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설득하기를 한달, 이미 두달씩이나 학교에 가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학교에 나간다는건 저에게는 죽는일보다 힘든일이였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눈물과 노력끝에 마침내 학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교복을 다시 입고 학교에 간 첫날..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아이들 누구도 저에게 지난일을 묻지 않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일을 잊을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욱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지금은 마음씨 좋고 훌륭한 남편만나 제가 항상 꿈에서 그리던 그런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집을 나가있는 두달동안 엄마는 저를 찾아 사방을 헤메셨고, 그사이에 남동생은 아빠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나쁜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 결과 퇴학을 당했습니다.
다 저때문인거죠... 거기다 제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때 이상하리만큼 저에게 모두들 두달동안의 일을 묻지 않았던것도 엄마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제발 예전처럼 대해달라고, 우리 딸에게 지난일을 묻지 말아달라고, 사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저희를 키우기 위해 파출부를 다니셨는데 하루는 나오시다가 옆집에서 나오는 저를 보신것입니다. 제 친구집 바로 옆에서 파출부를 하고 계신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엄마는 식당으로 일을 다니셨습니다. 하루종일 배달에,설겆이에,아침 8시부터 밤11시까지..
저는 아침 6시에 나가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도서실에서 1-2시간 공부하다 집에 오는 시간이 거의 12시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저 하나만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였습니다.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는 말이 싫어, 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신 분입니다.
그걸 모르고 저는 항상 엄마를 무시하고, 아빠의 폭력속에서도 이혼하지 않고 살아온 엄마를 원망했습니다.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사냐고.. 너무 후회되지만, 지난일을 어머니께 사과하고 돌려드릴수가 없습니다.
제가 효도하는길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어머니의 인생을 제가 돌려드릴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희생하셨듯이, 이제는 제가 어머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드릴려고 합니다.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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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