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새는 부지런히 먹이를 나른다.

지겹게 부리를 벌리고 애원하는 새끼들을 위해 이번엔 잠자리를,

다음번엔 파리를, 때론 싸늘한 시체로 변한 매미까지.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하지만 어미 새의 날개에선 차차 깃털이 빠져나간다.

빠져나가는 깃털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깃털도 점차 윤기를 잃어간다.

세상이 지겨워진다.

갑작스런 무력증에 날개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미 새는 모든 것을 던져버린다.

어미 새는 새끼들이 차지하고 있는 둥지의 여유 공간에 파고든다.

자신도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새끼처럼
먹이를 달라 악을 쓰며 부리를 벌린다.

하지만 아무도 어미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주지는 않는다.

새끼들은 그런 어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새끼들에게는 그동안 어미가 건네주었던 먹이를 통해 비축해둔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를 날개에 실어 둥지를 떠난다.

둥지엔 어미 새만 남아 여전히 악을 쓰며 먹이를 외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 새의 기력은 다해간다.

더 이상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부리만 뻐끔거린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자 이젠 부리를 열 힘마저도 없다.

그대로 누워 숨을 쉰다.

하지만 곧 숨쉬는 에너지도 고갈된다.

천천히 숨을 멈춘다.

그렇게 세상이 끝나간다.

그렇게 어미 새는 일생을 접는다.



어젠 수원 광교산 자락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회사 인사로 이젠 자리를 옮기게 된 보스와의 마지막 식사 자리였다.

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열심히 김치찌개를 먹는데

제비로 보이는 녀석이 처마 밑으로 왔다갔다 한다.

오랜만에 본 제비였다.

후배 녀석에게 카메라를 가져오라고 하고 나는 회사 차에서 사다리를 꺼냈다.

높지 않은 처마였기에 쉽게 새끼 제비들을 확인했다.

2마리의 어미 제비가 번갈아 먹이를 물고 왔다.


약속된 점심시간이 끝나고 사무실로 복귀해 사진을 살펴본다.

설마 오늘 -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날- 같은 날 제비 보내는 곳은 없겠지 싶었다.

솔직히 부지런을 떤 사진은 아니었다.

그럭저럭 몇 장의 사진을 만들어 전송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 여러 곳에 제비가 실렸다.

물론 내가 취재한 사진이 아닌 자사 사진기자들이 취재한 제비가.

아 중앙 일간지 한 곳은 내가 취재한 사진을 실었다.

의외는 이상한 곳에서 뒤통수를 때린다.


위의 글은 몇 년 전 것이다.

어제와 비슷한 어미와 새끼 새를 보며 떠오른 것을 옮긴 것이다.

나름으로 붙인 제목은 ‘중년비애’였다.


지금도 명확치 않다.

어미 새를 보면서 왜 중년을 떠올렸는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