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텃밭 |
할머니의 이름은 김부용이었다. 그 이름이 연꽃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 커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농사를 짓는다기보다는 자연을 지켜보고, 보듬어 주고 키우는 맛으로 텃밭을 가꾸셨던 것 같다. 지금은 교대가 들어서고 고급주택이 즐비한 서초동 어느 곳에 할머니의 텃밭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참외랑 토마토를 키우시고 호박·고추·동부·광쟁이·콩·깨 등도 함께 키우셨다. 비 오는 날이면 숟가락으로 껍질을 벗긴 감자와 옥수수를 뉴 슈가 한 스푼 넣고 푹 쪄주시면 하루가 행복했다. 항상 할머니는 손자들을 앞세우고 아침이면 텃밭을 한번 돌아보시고, 저녁이면 당신이 키우시는 것들이 뜨거운 햇살 아래서 잘 견디었는지 순찰을 나가시곤 했다. 돌아오시던 할머니의 흰 무명 앞치마에는 늘 호박잎이나 풋고추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저녁상은 할머니가 가져오신 것만으로도 푸짐하다 못해 넘치는 밥상이었다. 나는 요즘 푸성귀뿐이었지만 풍성했던 그 저녁상을 문뜩 떠올리곤 한다. 더구나 아토피가 있는 애들을 키우다보니 더욱 할머니의 밥상이 그립다. 호박잎 위에 뜨거운 밥과 된장을 얹은 후 입이 터져라 밀어넣고 파란 풋고추를 요즘 시장에서 파는 고추장이 아닌, 집에서 담근 고추장 듬뿍 찍어 먹고 울상짓던 어린 내 모습이 갑자기 아이들 얼굴 위로 오버랩된다. 가끔 할머니는 술을 담그셨다. 지금도 내가 술과 친한 것은 아마도 그때 할머니 곁에서 얻어먹던 술지게미 덕인 것 같다. 할머니가 주신 술지게미를 한 사발 먹고는 늘어지게 자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나와 동생은 할머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깨 밭으로 간다. 부드러운 모래 같은 마른 흙이 깨 밭에는 많다. 동생과 나는 깨 밭 고랑 사이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벌러덩 누워서 하늘을 보곤 했다. 그것만으로 동생과 나는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늘 행복했던 것 같다. 글자를 전혀 모르시는 할머니는 엄마처럼 글자나 숫자를 강제로 외우게 하지도 않으셨고,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애들에게 공부할 것을 강요하지 않으셨기에 할머니가 외출했다가 돌아오시면 엄마에게 잡혀서 글씨 쓰기 연습을 하던 나와 동생은 냉큼 할머니 치마를 잡고 따라나섰다. 동생은 할머니의 머릿수건을 챙기고, 나는 할머니의 연장 중 하나를 손에 들고. 요즘은 주말 농장이라고 이름 붙인 밭을 분양 받아서 ‘작은 농사’ 짓기를 하지만 그때 동생과 내겐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농장이 있었던 셈이다. 할머니의 자연친화성 교육관은 종종 며느리인 엄마와 충돌을 일으켰다. 사대문 안쪽 출신인 엄마의 교육열은 남달랐던지라 강아지도 아니고 허구한 날 들로, 산으로 애들을 풀어 놓기만 하면 도대체 뭐가 되겠냐며 늘 시어머니에게 불만이었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하기야 까막눈이시면서 동네의 대소사는 다 챙기시고, 빌려 준 당신의 물건이나 그릇에는 여지없이 빨간 페인트로 표시를 해놓아서 어느 집에 가 있어도 당신의 그릇은 찾아오시던 위풍당당한 할머니인지라 지는 쪽은 언제나 엄마였다. 할머니는 나무를 베어내도 그 안에 살고 있는 날벌레를 따로 골라내서 놓아주셨고, 하수구에 뜨거운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으셨다. 그 안에 살고 있을 미물을 위해 조금 식혀서 버리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교육 덕분이었는지, 아직도 동생은 뜨거운 수돗물을 함부로 틀어 버리지 않고, 음식물 분리수거와 재활용품 분리수거에 유별나다. 나 역시 아직도 랩과 알루미늄 포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할머니의 밥상이 간절해서 아파트 수돗가에 토마토와 상추 그리고 고추를 심었다. 이전에도 베란다에서 샐러드용 서양 채소를 키워 봤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한 탓에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땅에다 심어 볼 요량으로 용기를 냈다. 주말에 아이와 함께 너무나도 소중한 텃밭을 둘러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수돗가로 내려갔다. 커다란 살구나무 옆에 심은 토마토에는 작은 초록 구슬 같은 열매가 알알이 맺혀 있고, 고추는 별을 닮은 작은 흰 꽃을 말갛게 피워내고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구슬 같다’ ‘상추가 초록빛 레이스 같은데’ 등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다시 한번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도 우리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한없이 뿌듯하셨고, 연보랏빛 깨꽃을 잡아뜯어도, 내가 아이들이 토마토의 작은 꽃을 따도 마냥 흐뭇하기만 한 것처럼 그랬겠지…. 첫 수확이 있던 날은 온 가족이 신이 났다. 야들야들한 상추는 달팽이가 먼저 시식하는 바람에 구멍이 송송 뚫려서 정말 푸른 레이스처럼 보였고, 다 자라지 않은 고추는 먹기에도 애처로울 정도였다. 방울토마토는 입에 들어간 순간 아린 맛 때문에 아이들이 인상을 구기며 울상짓게 만들었다. 그래도 온 식구가 저녁 식탁 앞에서는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풍성하고 싱싱한 식탁은 보람 그 자체였다. 어렵게 키운 돌미나리는 향기가 시장에서 산 것과는 너무 달라서 온 식구가 농사의 경이로움과 함께 자아 도취에 빠질 지경이었다. 후식은 돌미나리와 토마토를 넣고 간 주스로, 한 잔씩 마신 후 아이들에게 처음 해본 농사 일지를 써보라고 했더니 저마다 신이 나서 달려든다. 아이들이 농사 일지를 쓰는 동안 나는 할머니의 추억에 잠겼다. 당신이 키운 오이를 쓱 수건으로 문질러서 반으로 나눠 주신 후 손녀의 입에 들어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모습이, 아이들의 입에 들어가는 상추쌈을 보며 웃음을 질질 흘리던 내 모습과 왠지 닮았을 것 같다. 가족들이 당신의 제삿날을 두 번씩이나 잊어버리고 다른 날 제사를 지내자 할머니께서는 손녀의 꿈에 나타나 호통을 치신 이후로 한 번도 꿈에 나타나신 적이 없다. 오늘 밤에는 부디 나타나셔서 주름 가득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래 농사는 잘 되더냐’라고 물어 주셨으면 좋겠다. [[유춘강 / 소설가, 카피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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