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지원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팀 피터스(56) ‘따뜻한 손길’(Helping Hands Korea) 대표는 북한주민들에겐 구세주같은 존재다. 북한이 식량난을 맞은 1996년 여름 ‘한달에 한 톤’(Ton A Month) 클럽을 결성, 매달 1t 이상의 식량을 지원하면서 비밀리에 중국과 몽골에 탈북자 은신처를 만들어 한국등지로 망명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탈북자지원을 둘러싼 그의 비화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5월 1일자)의 ‘서울의 구원자’(Seoul Saver)라는 커버스토리로 세상에 공개됐다. 지난 15일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피터스 대표를 만나 그간의 활동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팀 피터스 대표는 자신을 ‘기독교 자원봉사자’로 소개하는 부드러운 인상의 중년 아저씨다. 탈북자를 위해선 비밀독립운동 하듯 무섭게 일을 처리하는 투사지만 일상의 모습은 인생의 굴곡을 전혀 겪지 않은 연구실의 학자같다. 그가 ‘친형제’처럼 생각한다는 독일의사 출신 탈북자 지원활동가 노베르트 폴러첸이 열혈투사형이라면 피터스는 온화한 미소를 지닌 성직자형 인물이다.
그는 “타임지발행 후 미국과 호주, 일본기자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한국 기자들 중에서 관심을 보인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며 탈북자 문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무관심을 지적하기도 했다.
―라오스에서 체포된 탈북자 10명은 어떻게 됐나.
“지난 10일 한국대사관이 최종적으로 이들을 인계했다. 라오스정부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도움이 됐고, 한국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문제해결에 큰 힘이 됐다.”
―폴러첸이 지난 9일 라오스정부가 탈북자를 북송하려 한다고 긴급 e메일을 보냈는데.
“당초 우리는 지난 6월2일 라오스 지방구치소측에 1인당 500달러씩 총 5000달러를 벌금으로 지불했다. 이것은 수년간 탈북자들이 라오스루트를 이용하며 지급한 두번째 벌금이다. 과거엔 1인당 300달러였는데, 이번엔 500달러였다. 그런데 벌금지급 후 이동중 또 다시 체포됐고 이번엔 북송위협까지 보태졌다. 그래서 우리는 국제사회에 이를 공개하며 라오스정부에 대한 공개항의에 돌입한 것이다. 이 결과 라오스정부가 손을 든 것이다.”
―타임에 ‘서울의 구원자’로 소개된 이후 반응은.
“미국과 호주, 일본기자들은 내게 전화를 걸며 취재를 했는데, 한국기자들은 아무도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한국기자들은 아마 읽고도 무시하는 것같다. 탈북자 구출운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한국 지식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일로 여겨지는 듯하다.”
―한국에선 북한인권을 말하면 보수파, 남북협력을 말하면 진보파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그건 정말 우스꽝스러운 흑백논리다. 내가 탈북자 구출운동을 한다고 해서 나를 부시 지지파로 여기면 오산이다. 나는 미국의 반전세대로 진보이념을 갖고 있다. 나는 워싱턴 보수파와 아무런 생물학적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북한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도우려는 사람들과는 연대한다. 그들이 보수파건 진보파건 중도파건간에 그건 문제가 안된다. 인권에는 어떤 정치적 편견도 가미되어서는 안된다. 정치적 안경을 벗어버리고, 지금 현실은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가를 늘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당신을 미국의 대북강경파들과 유사하게 보려는 경향이 강한데….
“내게 중요한 것은 북한사람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자유를 누릴 수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의 현직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전직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도 왜 북한인권에 대해선 그토록 무심한가. 한국의 진보파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인권은 왜 38선에서 멈추는가. 당신들은 왜 38선을 인권의 북방한계선으로 여기는가. 사회정의가 바로 당신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하고 싶다.”
―한국정부는 북한의 경제적 인권향상을 위해 식량 등을 제공하는 반면, 미국은 식량지원에 인색하게 굴면서 정치적 인권만 얘기하지 않는가.
“북한을 먹여살리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인권향상과 무관하다. 그저 먹이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면 동물을 먹이는 것과 뭐가 다르냐. 나는 미국 손님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국정부를 비판하지 않으려 하지만, 인권 문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임에 따르면 탈북자 루트는 몽골과 라오스인데 또 다른 길이 있는가.
“그것이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루트였다. 몽골은 하나의 길이고, 또하나는 라오스를 통해 태국으로 오는 길이다. 2004년말까지는 베트남도 하나의 루트였는데 400여명의 탈북자들이 한꺼번에 서울로 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자 베트남정부가 한국에 항의를 했고 이후 베트남 루트활용이 어려워졌다. 몽골은 또하나의 루트인데 더 이상의 새로운 길은 비밀이다.”
―미국이 매년 어느정도의 탈북자를 수용할 것으로 보는가.
“나는 미국정부의 소극적인 탈북자 수용정책에 대해 많이 비판해왔다. 미국이 최근 6명의 탈북자망명을 수용한 것은 좋은 시작이라고 본다. 북한인권법이 생긴 만큼 미국이 적극적으로 탈북자를 수백명씩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탈북자 미국수용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은 헌법에서 북한주민을 한국국민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사회가 모든 탈북자를 받아들이긴 어렵다. 결국 전세계가 나서서 부담을 나눠야 하는데 미국이 6명을 수용한 것은 이런 점에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한국정부를 도와 탈북자수용에 적극 나서길 바랄 뿐이다.”
―마이클 호로위츠 같은 사람들은 북한붕괴를 촉진하는 길이 단순한 식량지원을 통한 북한체제연명보다 좋은 길이라고 하는데,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가.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난 북한체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뭘 해야할지 모른다. 다만 나는 탈북자들의 고통을 하루빨리 종식시켜달라고 매일 기도한다.”
―미국친구들을 만나보면 한국의 중산층들이 탈북자지원에 인색하고 냉정하다고 하는 비판이 있는데.
“만약 당신이 북한사람들에게서 거리감을 느낀다면, 당신의 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거나 기아상태에 빠져있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사람들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한국사람을 믿는다.”
―앞으로도 탈북자 지원을 계속할 것인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은 확실하다. 고아, 중국에서 인신매매되는 여성, 가족이 파탄된 북한인들을 위해 일하겠다. 만약 남북한이 갑자기 통일되면 내가 자유롭게 북한으로 갈 수 있게 되니 그때는 북한으로 가서 그들을 위해 일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중국 등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을 위해 일하겠다.”
인터뷰=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팀 피터스 약력 ]▲1950년 미국 미시간주 출생
▲미시간 주립대 졸업( 1982). 사회과학 전공
▲1972년부터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아메리칸 사모아, 일본, 한국에서 선교 및 봉사활동
▲대북식량지원기구 ‘한달에 한톤(Ton a Month)’ 대표(1996~), 탈북자지원기구 ‘따뜻한 손길(Helping Hands Korea)’ 대표(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