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배짱이와 지네의 내기 고스톱
안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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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개미와 배짱이와 지네가 내기 고스톱을 했습니다. 먼저 번처럼 지네가 졌습니다. 지네가 또 벌칙으로 뭔가를 사러가야 되는데, 지네가 가게 되면 자기 신발 찾아 신느라고 날밤을 다 새게 생긴 상황입니다. 그때 개미가 제 성질에 못 견뎌서 "관둬. 내가 갔다 올테니까 지네 너는 여기 가만히 있어." 그리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금방 돌아올 것 같은 개미가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먼저 번 지네가 나가서 신발 신는 시간에 버금가도록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궁금해서 배짱이가 문을 열고 밖을 보니 어둔 마당 저 가운데 뭔가 꺼먼 녀석이 몸을 구부린 채 씩씩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배짱이가 궁금해서 나가봤더니 뭘 사오겠다던 개미 그 녀석이었습니다.

그 개미는 씩씩거리면서 다음과 같이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지네 신발, 이것도 지네 신발, 이것도..... 젠장. 내 신발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 글은 성결광장에서 계영배님이 올린 글 속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읽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길이 없었습니다. 한 10분간은 웃느라고 다른 글을 읽을 수도 없었고 내가 쓰려던 글을 쓸 수도 없었습니다. 등은 구부린 채 자기 신발을 열심히 찾으며 투덜거리는 개미 녀석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잠시 웃음을 진정시킨 후 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웃음보다 더 많은 교훈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개미가 자신의 신발을 찾지 못한 이유는 지네의 신발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어두움이라고 하는 요소입니다. 어둔 마당이기에 많은 신발들 중에서 자신의 신발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지네의 신발이 많다 해도 밝은 낮이라면 이리저리 애쓰며 자신의 신발을 찾을 때 얼마든지 신발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어두운 시간이다 보니 자세히 자신의 눈을 신발들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하며 그래도 찾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냥 간단히 웃으며 지나갈 이야기인데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만 내게는 너무 중요한 이야기로 다가오기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빛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한밤 중 정전만 되어도 깊이 느낍니다. 갑자기 암흑 세상이 되면 허둥지둥 촛불이나 전등이라도 찾아야 하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어려워지며 작은 장애물에도 더 쉽게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밝을 때 쉽게 찾던 것조차도 한참을 더듬어서 겨우 찾든지 아예 어디 있는지 방향조차 분간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육의 눈이 어두워서 헤매는 것 이상으로 정신과 영혼이 어두워져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주변적인 어두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스스로의 눈에 무엇인가가 끼어버려서 마땅히 볼 것을 보지 못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데올로기가, 때로는 아집이, 때로는 비뚤어진 신앙이, 때로는 자신이 절대시하는 어떤 경험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밝았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간단한 것조차 제대로 찾지도 분별하지도 못한 채 허둥거리며 시간만 허비하는 모습들이 내게도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바로 곁에 두고도 그것이 보이지 않아 찾지 못한 채 공연히 지네의 신발 많음을 탓하는 개미처럼 주변의 여러 요인들을 원망하고 불평하였던 모습들이 무더기로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이 어두우며 볼 것도 제대로 못 본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아니 아예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얼마나 큰소리를 치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지난 세월 속에 그런 삶이 많았고 뼈저리게 후회하면서도 지금 또 다시 그런 것을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한심하고 비참한 일입니다.

최근 들어서도 나는 내 자신이 얼마나 소경같은 사람이었는지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미 결과로 드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 자신을 변호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가 옳은 결정을 한 것이라고, 내 눈이 밝아 제대로 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얼마다 당당하게 떠벌렸는지 모릅니다. 땅굴을 파고 깊숙이 들어가도 부끄러움을 다 숨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소경이 소경은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잘못을 바로잡고 찾아야할 것을 제대로 찾기 위하여 먼저 어둠 속에 있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겸손하게 빛을 구하는 낮아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보다 낫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자기 합리화로 눈이 어두워진 채 무조건 자신을 믿고 따라와 보라고 허풍을 떠는 분들이 많을 것도 같습니다.

모든 것을 백지 상태로 돌리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고 아픔이 되더라도 용기와 결단을 통해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대화의 자리에서 자신을 끌어내리고 객관적인 눈으로 자신을 보려고 노력하며 어두움이 되게 하는 요소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제거하는 작업을 통해 나를 포함한 많은 분들의 눈이 밝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래야 비로소 이 땅에도 소망의 빛이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선문답같은 내용의 글이지만 내 자신에게는 뼈 속 깊이 파고드는 최근의 가슴앓이와 직결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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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썩어버리면 어떻게 하려는가?/ 안희환 2006/05/25 07:17추천4스크랩7

같이 썩어버리면 어떻게 하려는가?/안희환

2006-05-25_AM_07_17_04.jpg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꼽으라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임과 동시에 내 자신 속에서도 늘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고 은밀하게 안으로 감춘 채 표시를 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사람이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쉽게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첫 순위는 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건과 문제들이 이 돈과 관련하여 일어납니다. 정치인들과 보통 백성들, 성직자와 신도들, 많이 가진 자들 적게 가진 자들, 남자와 여자, 어른들과 청소년들, 이 모든 사람들이 다 돈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합니다.


돈을 더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에 형제간에 의가 상하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의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친구 사이의 우정이 쩍 하니 금이 가기도 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정당한 방식으로 땀 흘려 돈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일확천금의 허황된 사고에 잠겨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돈은 그야말로 만인의 우상입니다.


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인기 혹은 명예(감투)일 것입니다. 나는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투표를 해서 학생회장이나 반장을 뽑는 말을 들으면서 시대가 변하긴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마다 후보로 출마하여 공약을 발표하는 아이들을 보면 솔직히 말해서 기특하다는 생각보다 벌써부터 저래야 하는 건가 하는 우려가 듭니다.


지금 선거철이지만 여기저기에서 떠들썩합니다. 저마다 자신들이 최적의 후보이며 자신을 뽑으면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후보(자기 자신)를 뽑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행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명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소명을 위해 세속적인 것에서 떠났다고 하는 목사님들이 인기와 명예(감투)에 집착하는 현상입니다. 뭐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 역시 돈을 좋아하고 있으며 인기와 명예를 싫어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은밀하게 감추고 있는 헛된 욕망을 내 자신이 알고 있으며 하나님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지금의 교회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심각하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입니다. 은밀한 차원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인기와 명예를 추구하는 이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지도자냐 아니냐는 둘째 치고 저 사람이 과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입니다.


꽤 오래전 일입니다. 한 교회 주보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 주보에는 설교를 하는 이의 뒷부분에 목사라는 명칭이 붙어있지 않고 다른 명칭이 붙어 있었습니다. 바로 박사라는 명칭입니다. 박사라는 명칭이 붙은 채 설교를 하면 더 지성적이면서도 영감있는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보에 자신의 명칭을 박사라고 달으신 분은 자신의 학식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는가 봅니다. 목사라는 명칭 하나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아니면 박사라는 명칭을 달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설교를 들으러 모여들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영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박사라는 명칭 못지않게 우스운 명칭이 있는데 당회장이라는 명칭입니다. 이 명칭은 상당히 많이 사용되는데 회장이라는 말이 붙어 있어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목사라고 불리는 것보다 당회장 목사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며 당회를 진행할 때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목사라는 칭호보다 당회장이라는 칭호를 애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두가지를 붙여서 사용합니다. 당회장 목사.


그럴 바엔 뭐 하러 목사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회장 소리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 뛰어들어 실컷 회장 소리를 들으면 될 것을 말입니다. 사실 그런 칭호를 사용한다고 해서 더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인기와 명예욕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인기와 명예의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정작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예수님이 달려죽으신 십자가였습니다. 그 외의 자신의 그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의 껍데기뿐인 목사들과 큰 차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연약한 인간의 본성상 돈 자체를 싫어하거나 명예와 인기 자체를 혐오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그런 것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가뜩이나 세상의 흐름이 이기적으로 흘러가며 자기중심적으로 움직여지는데 신앙을 지도하는 목사님들마저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욕을 먹어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맡겨진 사람들을 잘 돌보고 그들의 행복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자신이 전하고 가르치는 성경대로 살아가는 진정한 목사님들이 그립습니다. 박사니 당회장이니 하는 허울 좋은 명예가 아니라 자신에게 생명을 주고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좋은 목사님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 썩는다고 신앙을 지도하는 목사님들마저 썩는다면 세상은 정말 볼 것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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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선족 처녀의 눈물과 호소
2006/05/08 오후 10:31 | 생각좀 해 볼까요...

어느 조선족 처녀의 눈물과 호소
`아버지 목숨같은 돈 받을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국서 아버지 잃은 조선족 처녀 눈물로 호소
 
임종직전 아버지 사진 보는 이매씨. 사진=김성룡 기자
"불쌍한 우리 아버지… 죽어서도 한이 맺히고 억울해서 눈을 감지 못하고 계실 거예요."

 중국검색하기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의 조선족 이매(26.여)씨는 10일 중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예약해 놓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당신의 아버지가, 이국만리에서  죽음검색하기을 선고받고서 가족들의 얼굴만이라도 한 번 보고 싶다며 애타게 기다리다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마음이 얼마나 아픕니까."

이씨는 아버지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 입국 절차를 밟다가 지난달 28일  사망검색하기 비보를 들었다. 그리고 장례일인 1일에야 전남 목포에 도착해  화장검색하기한 뒤 한 줌의 재를 산에 뿌려야 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한국에 와 9년 동안 가족과 생이별한 채 번 돈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한국 사람들이 한번만 더 도와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그 돈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남동생, 나를 그리며 한푼두푼 모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것이기에 포기하기에는 너무 안타깝고 아깝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난달 28일 목포시 의료원의 한 병실에서 외롭게 투병하다 숨을 거둔 이용준(53)씨.

중국  헤이룽장성검색하기에서 농사를 짓던 이씨는 1997년 9월 아내(당시 40세)와 고교 1학년 딸(이매씨),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남겨둔 채 혼자 한국에 왔다.

그는 중국에서 1000만원을 주고 산 여권상의 '김봉오'라는 이름으로, 광주에 정착해 '코리안 드림'을 일궜다. 월세 10만원짜리 단칸방에 살면서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고, 조선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받는 무시와 차별, 홀로 사는 외로움을 참아 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부치는 보람과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든 게 서툴렀으나 열심히 배우고 성실하게 작업한 결과 실력을 인정받았고, 3 ̄4년 후부터는 작은 일거리를 하청받아 인부를 사서 공사해 줄 정도가 됐다.

아들.딸이 학교를 마쳐 학비 부담이 없어지고 목돈도 손에 쥐어 중국으로 되돌아가려던 무렵인 2003년,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광주의 한 도로 공사장에서 하청을 받아 5개월 동안 포크레인 등을 동원해 일을 해 줬다. 그러나 원청 건설업체는 공사비 2000만원을 주지 않았고, 민사소송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아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채무자가 상환을 차일피일 미루다 종적을 감춘 것이다.

광주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협조를 받아 귀국을 여러 차례 연기하며 돈을 받아내기 위해 뛰어다니던 그는 1월말 배가 아파 병원에 갔다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 담낭(쓸개)암이 간과 복막에까지 전이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도 곧바로 중국의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가족 얼굴조차 못보며 피같은  검색하기을 흘려 번 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0만원이면 중국에서 반듯한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는 돈이다.

병세는 빠르게 악화했고, 4월 들어서는 귀국하고 싶어도 몸이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죽음을 눈 앞에 둔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눈을 감기 전에 안사람과 아들.딸의 얼굴을 한 번 보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는 한국에 온 이후 왕복 40만원이 넘는 항공료 부담 때문에 한번도 중국에 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 사이 각각 17세, 15세이던 딸과 아들이 26세 처녀와 23세 청년이 됐고, 장성한 모습은 사진으로만 겨우 봤을 뿐이었다.

이씨와 함께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동료들과,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은 광주장애사랑봉사회(회장 서원효) 등이 수술과 중국 가족 초청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병세가 급격히 나빠져 지난달 28일 새벽, 가족 재회의 뜻조차 이루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흘 뒤인 지난 1일에야 목포에 도착해 장례식을 치른 딸 이씨는 "그간 많은 분들이 도와준 데 대해 머리 숙여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간 광주 한일병원과 목포시 의료원은 이씨를 무료로 돌봤고, 광주 하남산업단지의 한국스티로폼에서 200만원을 내놓는 등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금을 전달했다.

숨진 이씨가 2003년 채권 소송을 할 때부터 줄곧 도운 이종형씨는 "이씨 유족에게 채권 2000만원은 피와 같은 돈"이라며 "사법당국이라도 나서서 이를 받아낼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씨가 생전에 '채무자가 자기 집을 비롯한 재산이 있음에도 연락을 끊고 피해 다닌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이해석 기자<LHSA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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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아 곱게 키운게 ‘죄’… 노인 폭행·학대 주범은 아들
2006/04/26 오후 5:04 | 생각좀 해 볼까요...

낳아 곱게 키운게 ‘죄’… 노인 폭행·학대 주범은 아들


본격적인 겨울을 앞둔 지난해 11월 전남의 한농촌 마을에 걸식 노인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노인학대예방센터가 직원을 보내 현장 조사를 한 결과 이 노인은 아들 김모(55)씨의 폭행과 학대를 견디다 못해 가출한 정모(89.여)씨로 확인됐다. 정씨는 인근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살며 구걸로 연명하고 있었다.

예방센터는 아들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나는 그 아들이 아니라 동명이인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부양을 거부하는 바람에 정씨를 노인 보호시설에 입소시킨 뒤 아들을 노인학대 혐의로 고발했다.

2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7개 노인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2천38건의 노인학대 사례를 분석한 결과 아들에 의한 노인 학대가 50.8%로 전체의 절반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 가해자는 이어 며느리(19.7%), 딸(11.5%), 배우자(6.6%), 사위(1%) 등의순이었다.

학대 유형별로는 언어 폭력.정서적 학대가 43.1%로 가장 많았으며, 노인에게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방임(23.4%)과 구타를 포함한 신체적 학대(19.1%), 재산을 빼앗아 가는 금전적 학대(12.2%) 등도 적지 않았다.

노인 학대 신고자는 가족(35.8%), 본인(31.7%), 타인(12.5%), 노인복지관 등 관련 기관(10.2%), 법정 신고의무자(8.3%) 등의 순이었다.

이처럼 법정 신고의무자의 신고 비율이 낮은 것은 자신이 신고의무자라는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거나 신고할 경우 법정진술을 해야 하는 등의 번거로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행 노인복지법은 의료인과 노인.장애인 복지시설 종사자, 가정폭력상담소 직원 등을 신고의무자로 규정하고 있다.

복지부는 노인복지법 개정에 따라 2004년 8월부터 노인학대예방센터를 설치, 운영해오고 있으며, 정부가 노인학대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통계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처음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고령 인구가 늘면서 노인학대 사례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전국에 노인학대 예방센터를 확충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보호책 마련에 적극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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