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8일자 朝鮮日報 A30면 <조선데스크>에 '非酒流(비주류)의 넋두리'라는 제목으로 실린 저의 칼럼을 보고서 수많은 분들이 전화와 이메일과 구두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격려'라고 하니 표현이 이상하지요. 사실은 제가 폭음하시는분들을 향해 "그렇게 막가는 인생을 살지 말고 술 좀 작작 마셔라"고 말하는 것이 '격려'일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 땅의 술 못마시는 분들대부분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계시더군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 못마신다는 이유로당하는 고통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특히 우리나라처럼 폭탄주 잘마시기가 '사회인 자격 제1조'쯤으로 치부되는 나라에서저처럼 '알코올 free'인 사람의 삶은 고달프기 마련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폭음하는 분들입니다. 특히 제 주변에 정말 인간성좋고 마음이 넉넉한 분들중에 폭음하는 분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술을 줄입시다. 탈무드에도 나와있지 않습니까. 처음 술을 마시면 양 같이 순하다가, 조금 더 마시면사자처럼 난폭해지고, 그 다음에는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부르며 못하는 짓이 없다가, 마지막으로는 토하고 딩굴고 하면서 돼지처럼 추악해진다고말입니다. 우선,저의 칼럼을 다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술을 거의 못 마신다. 무슨 신념 때문이 아니라 체질상 그렇다. 가령 2시간 동안에 맥주 반 컵을 마시면 만취(滿醉) 상태가 된다. 의사에게 물었더니 몸에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인 ALDH가 거의 없단다. 조금이라도 ‘과음’하면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경고도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인 중에 처지가 비슷한 비주류(非酒流)가 10% 정도 있다니 같은 ‘마이너리티(少數者)’ 입장에서 위로가 된다. 하지만 힘겹게 사는 마이너리티다. 마이너리티가 강제로 폭탄주를 돌리는 술자리에 앉게 되면 외딴 밤길에 무장강도 서넛을 동시에 만난 심리가 된다. 남들보다 무능하다는 자괴감,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에 대한 공포심이 뒤범벅된다. 물론 부러움도 섞여 있다. 술의 순기능(順機能)을 익히 알고 있고, 주변에 인간적 매력이 뛰어난 애주가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다. 술 앞에는 우파와 좌파,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별로 없다. 오직 술 잘 먹는 다수와 술 못 먹는 마이너리티만 있다. 그래서 폭음으로 인한 실언과 실수에 대해 집단적으로 일치된 ‘반성’이 나올 수 없으며,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1인당 독주 음주량이 1~2위를 다툰다. ‘악마는 인간을 방문하는 일이 너무 바쁠 때 자기 대신 술을 보낸다’는 속담이 있다. 술김에 살인을 하고, 술김에 막말을 내뱉는 장관에다 술김에 친딸을 성폭행했다는 아버지까지 나왔다. 산업장 사고의 20∼25%는 음주관련 사고다. 90년대 말 어느 자동차 업체에선 벌건 얼굴로 작업하는 근로자도 있었다. 소주 한 병이 체외로 방출되는 데 12시간 걸리니, 상당수 직장에서는 오전에 취중근무가 진행되고 있다. 삼성그룹도 얼마 전 ‘폭탄주 금지’를 선언했지만 지금은 흐지부지다. 어느 고위임원은 회식자리에 앉자마자 참석 숫자만큼의 폭탄주부터 돌리기로 유명하다. 음주로 인한 인명피해가 연간 3만명이 넘고 매년 20조원이 넘는 비용이 지출된다. 국방예산이나 경부고속철 건설비가 매년 술 때문에 사라진다. 태풍이나 가뭄 피해가 이 정도였다면, 정부가 가만 있었을까. 폭음 자체에는 여전히 관대하면서 폭음이 야기한 부작용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 분위기도 묘하다. 최근 ‘급성 알코올 중독’ 때문에 실수한 국회의원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행동 자체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여당이나 야당이나 폭음문화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 의지는 별로 없다. 한국의 폭탄주 문화를 외국인들이 흉내 낸다고 무슨 ‘한류(韓流)의 확산’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스코틀랜드의 몰트위스키 업체인 글렌피딕을 방문했을 때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현지 안내원이 “한국은 폭탄주에 사용하는 블렌디드위스키 수입이 세계최대라지만, 이제 몰트위스키도 가장 많이 수입할 것”이라며 한껏 기대감을 표시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도심 뒷골목에서 술 먹고 토하거나 비틀거리는 사람을 볼 때면 답답하다. 미국이라면 당장 정신병원으로 데려가 알코올 중독자로 치료할 것이다. 술이 전혀 없는 삭막한 사회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제하며 마시는 음주문화를 보고 싶은 것이 마이너리티의 바람이다.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 그런데 지난 3월13일 오후 시간, 기사 마감으로 정신없이 바쁜데 어느 노신사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최 기자입니까. 나도 그 칼럼 읽고 참 공감이 갔어요." 그러면서 그분은 자기 스토리를찬찬히 말씀했습니다. "사실 제 이름을 들으면 아실거에요. 조순형입니다.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요." 아, 그렇습니다. 한때정치인생을 함께 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정도를 벗어났다고 판단하여 과감하게탄핵을 주도했던 정치인,항상 '순리와 상식의 정치인'이라든가 '원칙주의자' '미스터 쓴소리' 등의수식어가뒤에 따라 붙는 사람,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과감히 대구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지만 신선한 도전이었다고 평가받았던 인물이 바로 조순형(趙舜衡/71)전(前)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아니겠습니까. 곧이어 조 대표께서는자신도 술을 전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니, 대중과 호흡하는 정치인이 술을 못하다니,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술을 못마시기 때문에 정치의 길로 잘못 들어섰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뼈대있는정치가 집안 출신에다,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삼성물산 부장으로 근무하던 그를 형인 조윤형씨가 정치에 입문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저는 국회의원 5선을 하는 동안, 항상 술자리 때문에 곤욕을 치렀어요. 그래서 나중에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아예 술못마시는 축으로분류되어 큰 문제가 없었는데,문제는 지역구 유권자들과 만날때 였지요. 그때는 정말 단단히 혼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술 문화, 특히 폭탄주 문화에 대해서는'시급히 없어져야 할 악습'이라고 강조하시더군요. "제가 국회 법사위에 있을때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를 나갔지요. 검사들 보고서 '제발 폭탄주돌리기로 유명한 검찰의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때 뿐이었고 검찰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더군요. 정말 술 못마시는 마이너리티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조 대표께서는 그러면서 "언제 술마시지 않고 최 기자와식사나 한번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맺었습니다. 사실 저는 기자로서 10여년간 경제-기업쪽만 담당했기에, 정치인은 거의 모릅니다. 그런데 존경받는 어느 원로 정치인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지금의 광란적인 술 문화를 바꾸어, 술 못마시는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의아름다운 전화를 받고서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가하면 YTN의 어느 기자 분도 전화를 걸어와 "나도 같은 처지"라며 칼럼에 동감을 표시했습니다. 저희 회사내 술못마시는 선후배들도 저와 공감을 나누었습니다. 격려 이메일도 많았습니다. 대구에 계신 성 모 선생님의 이메일입니다. "...우리의 술문화는 어딘가 잘못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여럿이 읽을 수 있도록 문학 카페에다 옮겨 놓았습니다.....더욱 정진하시기를 빌면서,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번에는 또다른 이메일입니다. 보내주신 분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여 실명은 숨겼습니다.
최홍섭 기자님게 72살이나 먹은 노인입니다. 물론 할일 없이 살아가고 잇으니 시간은 많아 쓸데 없는 글을 쓰고 잇는지 모르겟으니 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90%의 다른 사람들이 할수잇는것을 할수 없다는 것은 대단한 고통이며, 일생의 족쇠 엿던 사람으로서 일말의 동정심이 발휘 되엇읍니다. 저는 軍의 조그마한 지휘관을 끝으로 전역햇읍니다만 술때문에 그 직을 하루발리 그만두엇으면 하는 생각이 그친적이 없엇읍니다. 물론 술대문에 출세에 지장이 잇다고도 생각 햇엇지요. 저는 늘 자신은 배안엣병신 이라고 말햇엇지요. 지금은 술로부터 거이 해방된 상태이지만 아직 완전하게 해방된것은 아닙니다. 친구들과 만날때마다 아직도 조그마한 고통을 격고 잇지만 물론 단호히 뿌리칠수가 잇지요. 최 기자님, 술때문에 망하는 사람은 잇어도 술못먹어 망하는 사람은 없으니 위안을 삼으시고 힘내십시요. 술 좌석에 앉으면 강도 서넛만난것과 같은 느낌이란 말에 혼자 쓴 웃음을 웃으며, 전혀 만난일도 없는 최기자의 모습이 눈에 훤해서 한자 적엇읍니다. 샐례햇읍니다. 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