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2건

  1. 2006.09.20 혼자살기를 꿈꾼다.
  2. 2006.09.20 작별인사
  3. 2006.09.20 생일에 죽을 뻔하다
  4. 2006.09.20 부부헌장

계속 안좋은 상태인 남편과의 관계
집에 왔을때 좋은 얼굴로 대하자고 다짐을 하건만
늘 뭔가 일이 생기고, 건수가 생기고...
말을 해도 도무지 자기가 잘못한게 뭔지 모르고
또 혹 잘못했다 해도 그걸 인정하지도 못하고
내속만 문드러지고...
속에 커다란 덩어리가 들어간것 같다.


어제는 며칠만에 인터넷에 접속해 카드사용내역을 정리하다가
며칠전에 결재된 60만원짜리 카드사용을 발견했다.
아무 얘기도 없었는데, 이게 무엇이지?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전화했다.

물어보니, 회사 직원들과 회식을 했단다.
몇명이서? 4명이서...
그런데, 왜 60만원을 네가 긁었냐구 했다.
과장 1명, 대리(신랑) 1명, 사원 2명...
과장이랑 대리가 20만원씩 나머지 사원 10만원씩 내기로 했단다.
그런데, 과장이 카드가 안된다며, 긁으라 했단다.
4명이서 60만원어치 술을 먹었슴 단란주점같은 곳이겠지.


그렇게 카드 긁고, 따지는 내가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다.
자기가 쓰는 내역 하나하나 다 따져야 하냐구 한다.
나두... 하나하나 안따지구 우아하게 살림하구 싶다.
자기가 마치 펑펑 쓰는것이 아닌양, 오히려 희생양인듯 얘기하지만...
결혼전 남편 빚을 갚으려고 아둥바둥하는 처지에
시댁들어오기 전엔 아침마다 늦어서 출근을 택시로 하는 남편을,
또, 외국에서 온 바이어와 함께 출장을 다니고서
회사에서 출장비도 제대로 못받아 오는 남편을,
이렇게 몇십, 저렇게 몇십 깨지는거 좋아라 하는 부인이 어디 있겠는가.


난... 애기낳고 들어온 시댁 생활 두달째...
첫달에 50만원 드리니까 적다고 타박.
그냥 직설적인 성격이라 말 툭 해놓구
나중에 내 성격이 어떠니 저떠니 그래도 이미 터진 말...
줏어 담지도 못하는 말에 내가슴은 멍들고, 피맺히고...

내딴엔 재주껏 이리저리 쥐어짜서 만들어 드린 돈인데...
맞벌이해도, 둘이서 월급 받자마자 이리저리...
다 쪼개지고 나니 우리 각자 용돈겸 생활비로 10만원씩도 안떨어진다.

정말로 싫지만, 결혼전에 가져왔던 통장에
남은 마지막 몇십만원을 또 야금야금...

우리 애기 백일 지난지 한달이지만, 아직 사진도 안찍었다.
찍어야 하는데... 찍어야 하는데...
못난 엄마 자꾸 가계부 생각하면서
좀더 뒤에 찍으면, 돈이 그만큼 늦게 나가니까...
미루다 미루다 이러다 돐 사진 될라 싶어
부랴부랴 그저께 예약했다.


월급날은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 통장엔 잔고가 없다.
너무 싫다.

결혼전에는 직장생활 10년에 제법 돈두 저축했었는데
결혼하구 1년만에 내가 이렇게 돈타령을 하면서 살아야 하다니...
무에 그리 벌려놓구, 질질거려 나가는 돈두 많은건지...
쓰임에 규모가 없구, 계획두 없구, 대출할 계획은 세우면서,
어떻게 상환할지 계획은 꿈처럼 대출받아 산 집값이 오르면 팔아서란다.
그럼 그동안 계획(?)대로 집값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동안 대출받은 돈에 대한 이자내느라 나만 또 악다구니???할텐데...


그냥 내가 버는월급으로 우리 준아데리고 나혼자 못살까?
어제 화가 나서 지갑하나 들고 반팔에 반바지차림으로
12시 넘어 뛰쳐나가 온동네를 세바퀴 돌았다.
갈곳이 하나도 없었따.
막 무조건 걷고 또 걷고...
뒤돌아 다시 왔던 길 걷고...

노래방을 갈까? 혼자 가는게 넘 무섭고...
곳곳에 문연 호프집, 술집들... 사람들 웃고 떠드는데...
내가 만일 들어가면 왠 반팔에 반바지차림의 여자가... 하고
혹 미친여자처럼 보지는 않을까...?


갈 곳없는 마음에 다시 집앞에 왔지만,
대문을 보자 또 답답한 마음에 그냥 근처 마트로 갔다.

소주 한병 사서 들고, 집에 갔더니만, 문이 걸려 있다.
나오면서 달랑 지갑만 들고 나왔더니...
막 두드리니까, "열쇠 안가지고 갔었냐"며 문열어주더니 들어가 잔다.
맘은 답답해도, 술은 마시고 싶어도,
마시면 다음날 못 일어나는건 아닐까...
사온 술병만 부여잡고, 한참을 노려봤다.


그러다 옆에 놓여 있는 남편의 가방...
문득 생각이 나서, 앞의 지퍼를 여니까... 역시나...
딸이 태어나고서 끊었다던 담배...를 다시 피나보다.
나랑 몇번 싸우고, 다시 피나보다.
눈치가 그런것 같았지만, 애써 모른척 안물어봤었는데
어제는 혹시나 해서 가방을 열어본건데...
이건 얇고 조그만 담배네... 그옆에 라이터도...

그 술병이 눈에 띤다.
뚜껑을 열어 한모금 물었지만, 도저히 목에 안넘어간다.
그냥 뱉어내고, 계속 술병만 노려봤다.
내가 너를 먹어야 하는데... 그래야 속이 풀리는데...
그럼서, 싱크대로 가서 그 술을 들이부었다.
시꺼먼 하수구 구멍이 내 목구멍인양...
그렇게 술을 들이부었다...


그냥 나 혼자 살면 좋겠다.

나혼자, 그냥 깨끗한 방 하나, 욕실, 부엌있는 집에
우리 준아 데리고, 혼자서 깔끔하게 살면 좋겠다.
나 직장 나가면 준아 돌봐줄 아줌마 100만원에 하나 구하고
100만원 저축하면서, 나머지 70만원으로 한달 둘이 같이 못살까?

그냥 내딸 데리고서, 단촐하게 살았슴 좋겠다...

남편이 긁은 카드 명세서 안봐서 좋고
꼴에 조카들 챙긴다구 없는 돈 찾아 나눠주는 꼴 안봐서 좋고
주말마다 정오까지 늘어져 자는 꼴 안봐서 좋고
퇴근한 뒤에 지친 몸 이끌고 집에 와서 먹기 싫은 눈칫밥 안먹어서 좋고
밥 먹은 뒤 산더미같은 설겆이 할 필요없어서 좋고
주말에 나보다 더 잔뜩 벗어놓은 옷가지들 세탁해 널지 않아 좋고
나 혼자 애보느라 쩔쩔맬때, 항상 늦게 들어오는 남편 안봐서 좋고
나 잘 먹지도 않는 국, 찌게 맨날 끓여주지 않아서 좋고
조금 먹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 맛있게 먹을수 있어 좋고
주말시간 내맘대로 내가 쓸수 있어서 좋고
쉬는 휴일까지도 남의 밥 안차려 줘서 좋고

그렇게 나 혼자 챙기면서, 우리 딸이랑 둘이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둘이서 그렇게 살면서, 시간내 교회도 가고
공원도 데리고 다니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펌글]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남편이 아님니다.  (0) 2006.09.20
엄마 우리는 가난해요?  (0) 2006.09.20
작별인사  (0) 2006.09.20
생일에 죽을 뻔하다  (0) 2006.09.20
부부헌장  (0) 2006.09.20
Posted by ogfriend
 
못 다한 마지막 작별인사 2006/08/28 09:20추천2스크랩0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아버님의 컨디션이 지난 밤 갑자기 좋지 않다는 전화연락을 토요일 아침에 받고도
토요일 밖에진료받을 시간이 없다는환자들의 예약 때문에
서둘러 서울의 아버님 댁으로 찾아 뵙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환자들한테 일일이 전화로 양해를 구하여
진료예약을 취소하고 찾아가 뵈었는데
일주일만에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별 도리 없이 환자들의 진료예약을 최대한 앞당겨 토요일 오전 진료를 서둘러마치고

아무래도 아버님께서 이번 주말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아서 짐을 꾸려 서울로 올라가는 참이었습니다.

외곽순환도로에 진입하여 톨게이트를 지나는순간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우리 큰 아이의 전화번호가 찍혀져 있었습니다.
그는 전 날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간 후에 할아버지 집에서 잔 것이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에 전화를 받자 큰 아이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기 시작하여 자동차를 고속도로의 갓길에 세웠습니다.
환자들한테 욕을 좀 먹더라도 그냥 예약진료를 펑크내고 찾아뵐 것을
그날 아침, 순간 판단을 달리하여 아버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모대학병원 신경외과교수인 형님도 제주도에서 개최된 학회에 참석하느라
아버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가까이 있었던 둘째도불효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삼촌들을 대신하여 손자들이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grandfa-sozhu.JPG

< 2005년 3월 중국 샹하이여행중에서 >

아버님은 금년 88세,
12년 전 경추부 후종인대골화증이라는 그리 흔치 않은 희귀한 병으로
자식이 아버님의 몸에 직접 메스를 대는 대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보너스라는 아버님의 여유 있는 농담 덕분인지
여든을 넘기신 후에도 성지순례를 가신다는 어머님을 따라 이집트역사기행까지 나섰고
뒤늦게 시작한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공부를 위해

두 차례나 타이페이와 베이징의 고서점가를 순례할 정도로
비교적 건강을 유지하셨던 아버님이셨습니다.

cairo.JPG

< 1996년 성지순례길에 카이로에서 >

그러던 중 지난 해 봄 우연히 위출혈로 내시경검사를 하니
뜻밖에도 상당히 진전된 위암의 소견이 나왔습니다.
아버님께서도 내과의사이셨지만 평소 위암을 의심할만한 증상이 없었기에
진단을 한 병원의 의사들도 스스로 의심할 만큼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습니다.

이제 아흔을 몇 년 앞둔 노인한테 위암치료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버님께서 증세를 못 느끼는 것이 다행일 뿐이었습니다.

book-shelf-1.JPG

< 金石子典, 說文解字등을 구입하시기 위해 베이징과 타이페이서점가를 다녀오셨다. >


결국 그 때부터 우리 형제들은 아버님과의 작별인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길어야 6개월을 넘기지 못하실 것이라는 의료진들의 판단에 따라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하였습니다.

다행히 아버님께서는 위출혈이 위궤양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우리들의 얘기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으셨는데
정말 모르고 계신 것인지
아니면 짐작을 하셨으면서 어머님이 걱정하실까봐 내색을 하시지 않은 것인지
알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난해 봄에는 중국여행을 하시고 싶다고 하셔서 우리 형제들은 의논 끝에
여행 중에 돌아가시게 된다 하더라도 원하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려
함께 모시고 중국여행까지 다녀올 정도였습니다.

그 후 몇 차례의 응급상황이 두 세 달 간격으로 계속 되었습니다.
위출혈이 반복되고 쇼크에 빠져 의식을 잃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이어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순간 순간 고비를 넘기시고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을 쉽게 회복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완전히 맥박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으나
의료진들의 표현에 따르면 기적이라 할 정도로 의식을 되찾게 되셨지만
계속되는 출혈을 지켜만 보고는 없다는 판단에
우리 형제들은 위절제수술을 감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일년이란 보너스인생을 보내시게 되었습니다.

vase.JPG

< 한자의 유래와 뜻을 풀이한 것을일부 화병에 직접 그려 도자기를 만드셨다. >

위절제수술 후, 반복되던 위출혈은 없어졌지만
이제는 주말에 찾아 뵐 때마다 몸이 수척해 지시는 것을 느끼게 되어
우리 형제들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드리는 기분으로 주말마다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은퇴하신 후 새로 시작한 고대사공부가 20년 가까이 이어지자
취미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연구생활로 이어져 틈틈이 글로 정리하시고 계셨습니다.
우리 고대사에 별 관심이 없는 우리 형제들은 아버님께서 설명해 주시는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준이었지만
다행히도 사위는 관심을 가져 주어 장인어른의 연구기록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위는 일찍이 6.25전쟁 때 아버지를 잃어서 아버지의 정을 모르고 자란 탓인지
장인어른을 친아버지와 같이 모셨으며, 아버님도 사위를 친자식처럼
우리 형제들도 서로 처남매부가 아닌 친형제처럼 격의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desk.JPG

그 원고는 지난 7월초에 탈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병상에서도 중단하시지 않았던 독서와 고대사공부를 끝을 맺으신 것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성취감과 함께 무언가 허탈감에 빠지시게 되는 것을 느끼시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출입도 힘들어 하실 정도로 급격히 쇠약해지는 것이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위암진단을 받고 6개월을 넘기지 못하신다고 하였지만

또 다시 일년을 보너스로 삶을 연장하신 것이었지만

전과는 달리 하루가 다르게 몸이 무척 수척해시고

급속히 체력이 쇄진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니

더 이상의 보너스인생도 아버님이나 가족들한테는 쓸데없는 욕심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jeju.JPG

< 지난 해 제주도 바닷가에서 >

그리고 토요일 아침 아침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않으신 듯조용히 떠나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진짜 작별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7월 마지막 토요일 오전진료시간 ......
저는 앞으로 평생을 두고 후회하는 순간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버님 ...... 죄송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할아버지원고1.JPG

할아버지원고2.JPG


portrait.JPG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우리는 가난해요?  (0) 2006.09.20
혼자살기를 꿈꾼다.  (0) 2006.09.20
생일에 죽을 뻔하다  (0) 2006.09.20
부부헌장  (0) 2006.09.20
2년만 만날남자 찾음  (0) 2006.09.20
Posted by ogfriend
생일에 죽을 뻔하다
안희환 기자  

2006-08-23_PM_06_37_37.jpg


8월 15일은 제가 세상에 태어난 날입니다. “이 나라의 독립이 있기 위해 안희환이는 8월 15일에 태어났나보다”하며 종종 장난치듯이 말하는데 제 생일이 8월 15일이라는데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공헌할 기회를 얻기엔 너무 늦게 태어난 저이지만 뭐 어떻습니까? 의미있는 날이 겹친다는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할 뿐이지요.

생일이 되면 보통 우리 가족들이 다 함께 모입니다. 할머니의 생일이든, 부모님의 생일이든, 우리 사남매와 그 배우자의 생일이든 말입니다. 그렇게 모이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날을 바꾸어서 모이곤 합니다. 모처럼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집안이 다 모이지 않고 그냥 핵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2006-08-23_PM_06_38_00.jpg


그런데 이번 생일엔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제 생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평생 처음 터키로 해외여행을 갔는데 돌아오는 날짜가 16일입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생일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청년회에서 1일 엠티를 가면서 함께 가자고 하기에 따라나섰습니다. 아내가 해외에 있으니 엠티를 겸해 생일 파티를 해주려는 청년들의 배려였습니다.

15명의 청년들을 태운 승합차 두 대는 대전의 장택림 휴양지로 출발을 했고 차 안에서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은 재미있었습니다. 12시경에 목적지에 도착을 하였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유명하다고 하는 어느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식당에 자리 잡은 청년들은 케이크를 꺼내고 촛불을 켠 후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폭죽이 터지고 꽤 시끄러웠지만 다행히 식당 안에 우리 외에 손님이 없었습니다. 아영이는 사탕으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습니다.^0^

2006-08-23_PM_06_36_41.jpg


2006-08-23_PM_06_39_20.jpg


이어서 유명하다고 하는 식당의 묵 요리가 나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직 나이 어린 청년들이 그 묵으로 만든 음식을 먹어보더니 표정이 떨떠름해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신세대 입맛에는 영 아니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묵을 좋아하는 저는 앞자리에 앉은 소영이의 몫까지 먹을 수 있었는데 정말 배부르게 묵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이 맛있는 걸 왜 별로라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식사 후 본격적인 등산(확실히 등산이었음.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에 들어가면서 일이 발생했습니다. 출발한 지 10분쯤 되었을 무렵입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옆에는 물가도 있고 사람들이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는 공터도 있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이 돗자리를 편 채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대로 청년들과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오르고 있었습니다.

2006-08-23_PM_06_38_46.jpg


그러던 중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을 자세히 보기 위해 길 가로 간 후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제가 서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얼마나 가파르던지 척 보아도 위험해 보였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난간을 만들어 놓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가 누군가가 저를 확 잡았고 저는 그 충격 때문에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청년이 저를 놀라게 한다고 한 행동인데 문제는 저에게 충격을 준 후 저를 붙잡는다고 하는 게 그만 놓치고 만 것입니다. 이것 큰일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정신을 바짝 차렸고 얼른 자세를 낮추어 주저앉았습니다. 엉덩이로 비탈을 훑어 내리다가 다행스럽게도 멈추었고 완전히 직각으로 된 돌벽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저는 천천히 오르다가는 흘러내리는 흙무더기 때문에 도로 구를 것 같아서 있는 힘을 다해 위쪽으로 달려 올라갔고 무너져내리는 흙더미에도 불구하고 그 흙더미를 밀어내는 반동에 의해 무사히 길 위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수군거리고 있었고 청년들은 더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소현이는 남자친구인 제권이에게 저를 잡아주지 못했느냐고 잔소리를 했는데 공연히 말을 듣는 셈이었습니다.

2006-08-23_PM_06_40_03.jpg


그러면 저를 밀어버린 셈이 된 청년은 어땠을까요? 한 마디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0^. 그 청년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모든 일정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간 후에도 문자를 보내어 죄송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며칠 후 글을 잘 쓰는 저인 줄 알기에 그 청년은 8월 15일의 사건에 대한 글을 쓸 경우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름을 빼고 글을 쓰는 중입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길 위에 도착한 나는 바닥에 앉아서 “아이고 아이고. 저놈이 나를 죽이려하네”를 외치며 바닥을 쳤습니다. 안심이 된 청년들은 웃기도 했고 한 청년은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다리를 보니 상처난 곳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꽤 아팠지만 청년들이 걱정할까봐 시침을 떼고 등산 일정을 마무리했는데 인내심을 키우는 좋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평생 못 잊을 생일잔치를 벌여준 청년들에게 감사를...^0^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살기를 꿈꾼다.  (0) 2006.09.20
작별인사  (0) 2006.09.20
부부헌장  (0) 2006.09.20
2년만 만날남자 찾음  (0) 2006.09.20
부부싸움의 요령  (0) 2006.09.20
Posted by ogfriend
 BODY {margin:10px !important; background-color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별인사  (0) 2006.09.20
생일에 죽을 뻔하다  (0) 2006.09.20
2년만 만날남자 찾음  (0) 2006.09.20
부부싸움의 요령  (0) 2006.09.20
어머니의 자가용  (0) 2006.09.20
Posted by ogfriend

블로그 이미지
오래된 그리고 좋은 친구들이 가끔들러 쉬다 가는곳..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 중 게재됨을 원치 않으시거나,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으면 즉시 게재한 내용을 삭제하겠으니 삭제요청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모닥불 올림. Any copyrighted material on these pages is used in noncomercial fair use only, and will be removed at the request of copyright owner.
ogfriend

태그목록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5.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