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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9.23 낳은딸하나 기른자식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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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9. 25. 15:07 감동적인 세상

사회 환원

워런 버핏 “재산 35조원 기부”
전재산의 85%인 370억달러… 300억달러는 게이츠 재단으로
구정은기자  koje@munhwa.com
▲ 나이차를 극복하고 자선사업의 동료로서 절친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한 행사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문화일보 자료사진
세계 2위 부자인 미국의 투자전문가 워런 버핏(75)이 재산 대부분을 자선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세계1위 부자 빌 게이츠(41)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떠나 자선사업에 매진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버핏도 부(富)의 사회 환원을 선언함으로써, 세계 1, 2위 갑부들이 힘들여 번 돈을 자선에 내놓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투자전문회사 버크셔 헤더웨이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버핏은 25일 성명을 내고 재산의 85%에 이르는 370억달러(약 35조원) 어치의 주식을 자선사업에 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대부분 주식으로 이뤄져 있는 버핏의 재산을 이날 주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440억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포천지는 25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버핏이 B급 주식 60만2500주 약 18억달러 어치를 우선 자선단체들에 기부하고,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버크셔 헤더웨이 지분 31%가 5%로 축소될 때까지 기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버크셔 헤더웨이 측은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버핏이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비롯한 5개 재단에 향후 5년간 주식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버핏은 전체 기부액의 83%인 300억달러 상당을 게이츠재단에 내놓고, 나머지는 작고한 아내를 기려 만든 수전 톰슨 버핏 재단 등에 전달하기로 했다. 미국 최대 자선재단인 게이츠재단은 에이즈 퇴치와 아동교육 등에 많은 액수를 내놓고 있으며 수전 톰슨 버핏 재단은 낙태권 옹호단체들과 교사단체, 병원 등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투자의 마술사’로 불렸던 버핏은 평소 재산의 사회 환원을 공언해왔지만, 이번 결정에는 주변에서도 ‘놀랍다’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370억달러의 기부는 부자들의 사회기여가 많은 미국에서도 사상 최대 규모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재산 대부분을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게이츠 재단은 현재 291억달러의 기금을 운영하고 있는데, 다음달부터 버핏의 기부금이 들어오면 재원이 두 배 이상으로 늘게 된다.

게이츠는 버핏의 발표가 있은 뒤 성명을 내고 “그의 결정에 존경을 보낸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30여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오랫동안 우정을 나눠왔다. 2004년에는 워싱턴대학 비즈니스스쿨에서 가진 대담을 묶어 ‘버핏과 게이츠, 성공을 말하다(Buffett & Gates on Success)’라는 제목으로 공동 저서와 비디오까지 낸 바 있다. 지난 22일 게이츠가 “향후 2년 동안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재단 일에 전념하겠다”고 밝힌 지 며칠만에 버핏이 재산 기부 선언을 한 것에 대해, 두 ‘박애주의자들’ 간에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포천은 버핏이 게이츠 재단에 기부를 하기로 한 것에 대해 “자기가 만든 재단을 키우기보다는 이미 훌륭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재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버핏은 이 잡지 인터뷰에서 “골프 게임으로 내기를 한다면 타이거 우즈에 돈을 거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며 “그것이 내 돈을 게이츠 재단에 보내기로 한 이유”라고 설명했었다. 버핏의 전기 ‘영원한 가치, 워런 버핏 스토리(Of Permanent Value, the Story of Warren Buffett)’를 썼던 앤디 킬패트릭은 AP통신 인터뷰에서 “버핏과 게이츠의 우정을 생각해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면서 두 거물이 “자선사업에서는 합병을 시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증권 세일즈맨의 아들로 태어난 버핏은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을 나와 1956년 단돈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오로지 주식투자로 거부가 된 그는 기업 경영자의 ‘사람됨’을 경기나 환율 같은 ‘수치’보다 우선시하는 독특한 투자방식으로 유명하다. 버핏의 이같은 ‘가치투자’ 방법을 분석한 책들만 10여종에 이른다. 그가 미국에서 ‘존경경할만한 경제인’ 1순위로 꼽히는 것은 이런 투자방식과 박애주의 정신 때문. 버핏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고향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세상의 흐름을 읽어낸다 해서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구정은기자 koj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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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동시에 가질순 없다" 進士이상 벼슬 멀리해
 
100여명의 식객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었다는 경주 최부자 집의 사랑채.불에 타버리고 주춧돌만이 남았다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것이 ‘성경’ 말씀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부자가 존경받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경주의 최 부자집은 부자면서도 존경을 받은 집안으로 조선팔도에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집이었던 최 부자 집은 12대 동안 계속해서 만석군을 지낸 집안으로 유명하다. 만석군이라 하면 일년 수입이 쌀로 만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급의 부자이다. 12대는 대략 300년의 기간에 해당한다. 1600년대 초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부를 유지했다. 어떻게 관리를 했길래 자그만치 300년 동안이나 만석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최 부자 집의 종손 최염(崔炎·68)씨 증언과 이런 저런 취재 끝에 도달한 결론은 이 집 특유의 경륜과 철학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
최 부자 집의 철학 가운데
첫째는 ‘흉년에 땅을 사지 않는다’ 였다. 흉년이 들면 수 천명씩 굶어 죽는 시대였다. 흉년이야말로 없는 사람에게는 지옥이었지만 있는 사람에게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하여 헐값으로 내놓은 전답을 매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흰죽 논’까지 등장했다. 다급하니까 흰죽 한 그릇 얻어먹고 그 대가로 팔게된 논을 말한다. 그러나 최 부자 집은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 이는 가진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런 금기는 또 있었다. ‘파장 때 물건을 사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석양 무렵이 되면 장날 물건들은 값이 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다른 부자집들은 오전에는 절대 물건을 사지 않고 파장 무렵까지 인내하면서 ‘떨이’ 물건을 기다렸다. 최씨 집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항상 오전에 제값을 주고 물건을 구입하였다. 그러다 보니 상인들은 제일 질이 좋은 물건을 최 부자 집에 먼저 가지고 왔다. 이 집은 물건값을 깎지 않는다는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 철학은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였다. 돈이라는 것은 가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어느 시점을 지나면 돈이 돈을 벌게된다. 멈추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최씨들은 만석에서 과감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이상은 내 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은 소작료 할인이었다. 다른 부자집들이 소작료를 수확량의 70% 정도 받았다면, 최 부자는 40% 선에서 멈췄다. 소작료가 저렴하니까 경주 일대의 소작인들이 앞다퉈 최부자 집 농사를 지으려고 줄을 섰다고 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아팠지만 최 부자가 논을 사면 박수를 쳤다. 최 부자가 논을 사면 나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였다. 최 부자집에서 1년에 소비하는 쌀의 양은 대략 3000석 정도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1000석은 식구들 양식으로 썼다. 그 다음 1000석은 과객들의 식사대접에 사용했다. 최부자집 사랑채는 1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부자집이라고 소문나니까 과객들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과객들이 묵고 가는 사랑채에는 독특한 쌀 뒤주가 있었다고 한다. 두손이 겨우 들어가도록 입구를 좁게 만든 뒤주였는데, 과객이면 누구든지 이 쌀 뒤주에 두 손을 넣어서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 뒤주였다. 다음 목적지까지 갈 때 소요되는 여행경비로 사용하라는 뜻이다. 입구를 좁게 한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양은 가져가지 말라는 암시였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과객들은 정보 전달자 역을 했다. 후한 대접을 받았던 이들은 조선팔도에 최 부자집의 인심을 소문내고 다녔다.
‘적선지가(積善之家)’란 평판은 사회적 혼란기에도 이 집을 무사할 수 있게 만든 비결이었다. 동학 이후에 경상도 일대에는 말을 타고 다니면서 부자집을 터는 활빈당이 유행했다. 다른 부자집들은 대부분 털렸지만 최 부자집 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 집의 평판을 활빈당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부자 집의 창고.‘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는 가훈처럼,이곳에 쌓인 곡식들은 최씨 일가만을 위해 쓰이지는 않았다.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도 있었다. 경주를 중심으로 사방 100리를 살펴보면 동으로는 경주 동해안 일대에서 서로는 영천까지이고, 남쪽으로는 울산이고 북으로는 포항까지 아우른다. 주변이 굶어죽는데 나 혼자 만석군으로 잘먹고 잘사는 것은 부자 양반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를 보면 만석꾼 최 부자집은 경주만 의식한게 아니었다. 사방 백리의 범위를 의식하고 살았던 집안이었다. 1년동안 사용하는 3000석 가운데 나머지 1000석은 여기에 들어갔다.
최 부자집의 철학 가운데 특이한 것은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말라’이다. 최 부자집은 9대 진사를 지냈다.
진사는 초시 합격자의 신분이다. 이를테면 양반신분증의 획득인 셈이다. 그 이상의 벼슬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집안의 철칙이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돈 있으면 권력도 잡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 집안은 돈만 잡고 권력은 포기했다. 벼슬이 높아질수록 감옥이 가깝다고 여겼던 탓이다. 벼슬이 높을수록 당쟁에 휘말릴 확률은 높아지고, 한번 휘말리면 집구석 절단 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벼슬의 끝, 그러니까 권력의 종착점이 어디인가를 꿰뚫어 본 데서 나온 통찰력의 산물이 ‘진사 이상 하지 말라’이다.
남자들은 그렇다치고 이 집의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최씨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조선시대 창고의 열쇠는 남자가 아니라 안방 마님이 가지고 있던 시대였다. 그런 만큼 실제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 의 절약정신이 중요했다. 보릿고개 때는 집안 식구들도 쌀밥을 먹지 못하게 했고, 은수저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백동 숟가락의 태극 무늬 부분에만 은을 박아 썼다. 7대 조모는 삼베 치마를 하도 오래 기워입어 이곳저곳을 기워야 했는데, 3말의 물이 들어가는 ‘서말치 솥’에 이 치마 하나만 집어넣어도 솥이 꽉 찰 지경이었다고 전해진다. 너무 많이 기워서 물에 옷을 집어넣으면 옷이 불어나 솥 단지가 꽉 찼다는 말이다.
이 집에 시집온 며느리들은 모두가 영남의 일류 양반집이었다. 본인들은 진사급이었지만, 만석군이다 보니 사돈이 된 집안들은 명문 집안이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치마양반’이다. 로마 천년의 유지 비결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면, 신라 천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경주 최 부자집의 유지 비결도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음을 알 수 있다. 동·서양의 1000년 문명을 지탱한 노하우였던 것이다.
趙龍憲·(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경주 최부자집은 교동 69번지에 있다. 뒤로는 내물왕 무덤을 비롯한 왕릉들이 있고, 그 옆에는 계림이다. 집 바로 옆에는 경주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좀 더 왼쪽으로는 김유신 장군이 살던 집터인 재매정이 있다.
원래 이 집터는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있던 터라고 전해진다. 설총이 태어난 집인 것이다. 현재 이 집의 소유자는 영남대학교 재단이다.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崔浚)이 해방 직후 모든 재산을 털어 대구대학(영남대학의 전신)을 설립할 때 이 집도 기부했기 때문이다.
최준의 손자이자 종손인 최염씨는 가끔 이 집을 들른다. 그는 사업을 하다가 은퇴하여 지금은 경기도 수지에 거주하고 있지만, 고택 관리는 아직도 종손이 하도록 되어 있다. 이 집터에서 풍수상 중요한 핵심은 안산(案山:집앞에 보이는 산)이다. ‘이중안산(二重案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말발굽형의 디귿자 형태의 도당산 뒤에 경주 남산의 세 봉우리가 겹쳐져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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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은 딸은 1명, 기른 자식은 22명
2006/05/05 오전 7:22 | 마음이 머무는 자리

낳은 딸은 1명, 기른 자식은 22명


친부모와 헤어진 아이들을 22명이나 맡아 키우고 있는 50대 ‘천사 부부’가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에 사는 김수근(56.실내장식업).이영희(52.여)씨 부부.

이들 부부가 부모와 헤어져 오갈 때 없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인 91년.

▲ 친부모와 헤어진 아이 22명을 맡아 키워 '천사부부'로 불리는 김수근.이영희씨 부부의 집에서 이씨와 자녀들이 활짝 웃고 있다. /영남일보 제공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친부모가 키울 형편이 되지 않는 이웃 아이들을 우연히 하나 둘씩 맡게 됐고 이들의 선행이 알려지자 ‘아이를 잠시만 맡아달라’며 김씨 부부를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시간이 갈 수록 가족 수는 점점 늘어나 현재 이들의 자녀는 10남13녀, 모두 23명이다.

이 중 김씨 부부가 직접 낳은 아이는 맏딸인 은정(28.여)씨 한 명, 생후 4개월 된 막내 김하은양을 비롯해 22명은 이들이 가슴으로 키운 아이들이다.

대학생 이미영(19)양을 비롯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12명이나 돼 만만치 않은 학비와 생활비를 김씨와 딸 은정양의 수입으로 감당하고 있어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이들 부부는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상을 타 오거나 저녁에 ‘엄마 아빠 힘들죠’하고 어깨를 주물러 줄 때 ‘행복하다’는 마음이 절로 들어요. 없는 가운데서도 같이 더불어 살고 나눠쓰는 것이 바로 행복이죠.”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어린 아이들을 한 명씩 맡아 돌보는 등 남매들 간에 우애도 좋아 서로 싸우거나 큰 소리 날 일도 없다고 이영희씨는 전한다.

그러나 김씨 부부에게도 요즘 한가지 근심거리가 있다.

지금 살고 있는 한옥집이 낡고 비좁아 달성군 유가면에 큰 마음먹고 새 보금자리를 준비하고 있지만 공사비가 많이 모자라 마무리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태껏도 없는 가운데서 잘 살아왔는데 어떻게 잘 되겠죠”라고 이씨는 말하지만 모자라는 공사비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씨 부부는 어린이날인 5일 23명의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인근에 있는 달성군 화원유원지로 소풍을 떠날 계획이다.

“저희 생명이 다할 때까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싶어요. 또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미혼모 쉼터도 만들고 싶고요.”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한 기쁨이 없다는 김씨 부부의 작은 소망이다.

대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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