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 ( nothing )으로부터, 그래도 발전된 모습의 , 그 어떤 것 ( something )으로 탈바꿈시킨 분들과 인생의 스승들에게 .새삼 감사를 드리면서, 다음과같이, 지난날들을 회상해본다. 1. 첫쨰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시고, 특히, 나를 건강하게, 키워주신 어머님이시다. 나는, 특히, 어려서부터, 4 형제들중, 체력이, 제일 연약하다하여서, 각별하게,음식을 잘 챙겨주셨고, 특히, 명절떄나, 모든 제사날에는, 그야말로 진수성찬, 아주 맛나는, 음식들을 먹곤하였다. 가장 많이, 맛잇게 먹은 음식은, 설날의 떡국이다. 결혼을 해서, 분가해 사는 동안, 아내와 함꼐, 어머니를 찾아갈떄마다, 사철 아무 떄나, 이 떡국을 끓여주시는 것이다.떡국의 재료는, 간단하다. 동네 수퍼에서의, 가래떡이나, 아예 떡국용, 떡가래를 준비하시고, 며르치 국물과 함꼐, 파와 계란만이 들어가고, 나중에, 소고기 고물과 도라지 등을, 잘게 썰어서 주신다. 나는, 시중에서, 먹는, 일반 떡국과 어머니의 떡국을 비교해보면, 시중의 떠국이 더 많은 재료들과 신식의 조리법?및 선진형의 조리법 등으로써, 더 맛이 있을 것같은데..., 어머니의 맛깔스러운 국물 맛을, 그만, 못따라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처음 시집온, 새댁이, 결혼전, 급하게, 요리 강습소, 등에서 배운 요리 솜씨로써? 시어머니 앞에서 , 그 요리 솜씨를, 뽐내는데...., 재료도, 아주 과학적으로, 영양가가 좋은 것으로 꽉차는데?.... 그다지, 온 시댁 식구들의 입맛에 잘맞지가 않는 것과도, 일면, 비슷하리라! 이는, 다분히, 외지?에서, 처들어온, 주방 침략자에 대한 , 일종의, 심리적, 관습적 거부감의 발로일 것이리라! 그리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나, 특히, 음식 분야에서는, 과학적인, 영양가 적인 , 재료의, 선정과 배합...등도 중요하나, 마지막으로 말하는, 어머니의 손 끝에서 나오는, 그 , 무엇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수없는, 어머님의 ,음식 요리, 비법( 秘法)이 있는데..., 이 것은, 며느리나, 어느 누구에게도, 그냥, 공짜로는, 잘 안기르쳐 주시는, 당신 홀로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요리 방식과, 요즈음 말로하는, 노하우인 것이리라!이 것은 , 갓 시집온, 새 며느리가, 새댁이, 눈 먹어 삼년, 귀 먹어 삼년, 입 먹어 삼년, 석 삼년을 지내서야만이, 그것도, 조끔씩, 조끔씩, 내놓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음식이 있는데, 이 것은, 어머님의 고유 특허 음식이나 진배가 없는데..., 다름아닌, 명태 순대라는, 말하자면, 이북 함경도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음식인 것이다. 이를, 젊어서부터, 집안에서, 음식 솜씨가 좋기로 이름을 떨치신, 어머님만이, 가장 잘 만든다하시고는, 다른, 며느리나, 집안 아낙네들은 아예 손을 놓고, 어머니의 그 맛깔스런, 명태 순대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도 못하고, 또, 당신인 어머니꼐서, 잘 전수?하실려고도 않으셨다.그래서, 나의 아내도, 그 맛에, 홀리기는 하였으나, 내가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요리 솜씨는, 다 좋은 데..., 이 요리만은 아직도, 못하고 있고, 또 엄두도 못낸다. 집안의 다른 어른들도, 다 , 어머님 살아 생전의 이 요리를 맛보시고는, 마치, 어느, 자린고비, 구두쇠가, 조기 구이를, 벽에 걸어놓고, 매일 아침, 쳐다보면서, 밥만 먹었다하는 식으로써, 명태 순대 한 마리를, 겨울 동짓날 긴긴밤에, 드리면, 이를 아껴서, 두고두고, 잡수셨던 것이다. 그 비법도, 제가, 옆에서, 지켜보니..., 별반, 특별한 노하우가 아니시고, 오직, 성심성의로써, 겨울철, 싱싱한, 좋은 명태를, 시장에서, 잘고르는 것이 첫쨰요, 그다음에는, 명태 속이라해서, 마치 순대속처럼,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데, 여기에는, 두부 다진것, 쇠고기 다진것, 고추장, 된장을 알맞게 섞는 것, 기타, 파, 도라지, 숙주나물, 고사리...등 각종, 채소류를, 잘게, 잘게 썬다음, 이를, 앞의 된장, 고추장, 쇠고기, 두부등으로써, 마치, 햄버거의 속처럼, 잘 다듬어서는, 이를, 내장을 다 발라낸, 빈 명태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 두번쨰 과정이요, 세번쨰, 여기가 가장 중요한데..., 이는, 일반적인, 고기나, 생선 굽듯, 대충 대충, 오븐이나, 쇠판위에서, 굽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아주 좋은 숯불위에서, 명태의 살이 노릿노릿하게, 우선 잘 구어져야하고, 그 다음, 명태 속의 양념들이, 아울러서, 잘 구어지도록, 이리저리, 명태살을, 전체적으로, 젓가락으로, 한점 함점, 점검해가면서, 구워야하는데, 여기서, 자칫, 오버하거나, 게을리하면, 아무리, 재료와 양념이 잘 갖추어져도, 그 짜릿하고, 매큼한 맛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일반 아마추어는 잘 못해서, 한 두번 해보고는, 맛없어하는 식구들떄문에, 그 맛있는 요리법 배우기를 그쳐버리는 것이다.그래서, 이 요리법의 대(代)가 그만 끊기는 것이다. 매사가 다 그렇다만.... 나의 추억으로는, 어머님이 차려주신 따뜻한, 아랫목의 밥그릇과,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플떄, 학교까지 찾아오셔서 주셨던 따끈 따끈한, 계란 볶음밥과, 사시 사철의 떡국과, 제삿날의 가자미 생선과, 명태 순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3 학년까지의 도시락..., 이러한 맛잇는 음식들로써, 나의 부실한 몸과 마음이, 이제는 옛날보다, 더 강건해지지않았나 돌이켜 생각해본다! 물론, 이제는, 그 대를 이어서, 음식 솜씨 좋은 아내가 , 나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분의헌신적인, 정성과 희생으로써, 여러가지, 사회적으로는, 실패를 많이 겪었지만, 이 시간까지,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한번도 걸러본적이 없이, 강건하게, 건강하게, 잘 살고있는것이리라! 2. 다음으로, 아버님이시다. 아버님은, 이북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시고, 8.15 해방과 더불어서 마을에 공산당이 들어오자, 모든 일가친척들을 뒤로하고, 어머니, 큰형, 작은형과 함꼐, 서울로 내려오셨고, 여느 실향민(失鄕民)들과같이, 평생을, 고향 아닌 , 낯선외지(外地)에서, 갖은 고생만 하시다가, 65세에 돌아가셨다. 아마도, 이북이, 공산화가 아니되고, 대한민국처럼, 평화스런 나라였다면, 그 마을에서, 좋은 인심과, 인격으로써, 평생을, 편안하게, 유복하게, 생을 마치실 분이, 물설고 낯설은 외지에서, 사업이라는 사업은 모두가 실패하고, 친구들로부터, 배반당하고, 말년에는, 고혈압으로 고생을 많이 하시고, 신장도, 한쪽을 떼어내시고..... 아버님은, 어느 다른 인척 분이 말씀하신대로, 법(法) 없이도,착하게, 잘 사실분이었는데..., 외지에서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살아생전에, 많은 돈과 재산과 명예는 못 남기셨는데..., 우리에게, 무언(無言)으로 가르치신것은, 남에게 절대로 폐를 끼치지않는 삶과 양심(良心)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이었다.그리고, 술을 마시되, 절대로, 행패나, 주사를 벌이지말라시며, 당신이, 술 한잔 하시면, " 달아 달아,밝은 달아, 이 태백이 놀던 달아..., " 하시면서, 혼자서, 조용히, 노래하시거나, 웃으시는 모습이, 나의 어릴떄, 사업에서, 실패하시면서, 때때로, 나에게 비쳐진 모습이셨다. 3. 중 고등, 대학교 시절의 영어 선생님과 교수님들이, 그 다음으로 고마우신 분들이다. 영어? 당시에는, 선생님을 따라서, 멋모르고, 그냥,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만 했는데..., 먼 훗날, 돌이켜보니, 그 분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명교수나, 일류 선생님들이셨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해외 무역 업무에 종사하면서, 매일 매일, 영어로써, 밥을 빌어 먹고있는 것이리라! 4. 대 재벌 기업에 종사하면서, 나는, 많은 사회 저명 인사들을, 아니, 대학시절부터, 만났는데...., 이 것이, 무식한, 나로하여금, 꾀 유식한 나로써, 탈바꿈하게 된 중요 원인이었다. 대학교,영자 신문사에서, 과외 활동을 할떄부터, 1968년, 당시, 미국의 부통령 후보였던, 민주당의 험프리 상원의원과 악수를하고, 또, 카터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었던, 브레제진스키같은 유명인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는, 주로 저명한 학자들과 정부의 고관들을 많이 만난 것이다. 이들의 강의와 강연 등을 통하여서, 나는, 경영학계와 정, 관계의 좋은 정보와 지식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이는, 내가, 이제껏 살아오는데, 직, 간접적으로,나의 얄팍한 경영지식과 교양 수준을 고양시켰으며, 이는, 회사의 발전은 물론, 나 자신의 발전에도, 많은 도움을 준 것이었다. 5. 다음으로, 교회인 것이다. 나는, 1986년 11월, 이웃 아주머니 부부의 권유로, 근처의 교회엘 나갔는데, 1971년도, 군대 복무 시절, 주일마다, 영내에있는 교회에 나간 이후, 15 년만에, 다시 교회엘 나갔고, 나간날, 첫날부터, 교회에 등록하고, 아주 열심히,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런후, 1 개월만에, 회사에서, 과장으로 있었던, 나는, 부장으로 승진했다. 나의 나이가 39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 세례도 받았다. 2000년에는, 안수집사가 되었다.그리고, 지금은, 주일 예배의 헌금위원으로써 봉사하고있다.나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1986년도에 교회를 다니게 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攝理), 즉,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 후 4 년, 1990년도에, 사랑하는 큰형님을 , 갑자기, 천국으로 보내게 되고, 1994년, 19년동안 봉직했던 회사를 자의반, 타의반, 해고된다! 만일 내가 교회엘 안다녔다면, 이러한 인생의 엄청난, 불의의 사고들을 당해서, 어떤 반응과, 행동을 취하였을지?..., 한순간, 많은, 불순한, 비사회적인, 비 정상적인 행동과 사고를 저지를수도 있었건만, 무엇이, 나를 그러하지 않도록, 나를 붙잡았나? 단연코, 하나님의 사랑(love)과 자비(mercy)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미리 나의 예기치 못한 실직(失職)과 비탄과 울분...등을,아시고서는, 나에 대한 구원을 ,오래전부터,예비하고계신 것이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8-39절) 6. 다음으로는, 내가 어려울떄 나를, 버리지않은 친구! (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 나는 그 친구를 , 지금도, 만나고 있는데..., 그는, 지금, 거꾸로, 상당히, 어려운 상태에 있고, 떄로는, 서울을 , 잠시, 떠나서, 시골에 가서, 조용한 생활을 하겠다면서, 어떤 응어리진, 사건과 일로써, 울분과 탄식을 잘 삭이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젊어서나, 최근까지도, 꾸준히, 금융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말하자면, 평생을, 아주 잘 지내고, 잘 나갔던, 샐러리맨이었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인간의 앞날이란, 정말, 자기의 힘으로써는, 한치 앞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7. 마지막으로,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다! 특히, 아내인 것이다. 내가, 어려울 떄,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나를 대신해서, 가족을 위해, 희생했고...., 특히, 내가, 실직을 당한후의 지난 10 여년간의 생활은, 엄청난 인생의 시련이었고, 온 가족의 비애와 한탄과 질곡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 특히, 큰딸은, 아비의 마음을 잘 읽고는, 말없이, 잘 따라와 주었고, 막내 아들은, 아직은, 사회적으로 철이 덜 났으나, 굳건한 믿음과 강건한 체력과 지력으로써, 대학 생활을 잘 하고있으므로, 아비된 자로써, 일편 마음의 부담이 가벼워져서, 이 또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이러한 가족의 사랑이야말로,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모진 세월의 풍파(風波)에 대한 사랑의 방패막이가 되는 것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