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2건

  1. 2006.10.03 작은 아버지와의 고스톱
  2. 2006.10.03 3대
  3. 2006.10.03 스승의 날 편지
  4. 2006.10.03 살며 감사하며
제 목
작은 아버지와 고스톱

내가 고스톱을 처음 배운 것은 불과 2년 전 이었습니다. 앉을 자리만 있으면 길바닥에서건 배 안에서 건, 판을 벌리는 사람들을 욕하며 경멸하기까지 했던 내가 지금은 세 사람만 모이면 고스톱을 치자고 졸라댑니다.
지나간 설날에도 그랬습니다. 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 진 뒤부터는 작은 댁에서 차례를 모시는데, 그 날도 작은 아버지를 도와 차례상 차리기를 끝내자마자 가족들에게 고스톱을 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다들 어안이 벙벙했겠지요. 그럴밖에 없는 것이 명절이나 제삿날 가족들이 다 모여도 우리 가족은 고스톱을 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아무리 액수가 작더라도 어떤 화투놀이 건 다 노름이라고 비방하길 즐기던 내가 먼저 고스톱을 치자고 덤볐으니 더더욱 어이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작은 아버지는 모처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에 기분이 좋으셨는지, 못 마시는 술까지 한잔 자시고 같이 치자며 판을 깔아주셨습니다. 40년 넘게 가방 만드는 일에만 종사해 오신 작은 아버지는 천품이 착한 사람입니다. 나는 물론이고, 30년을 함께 산 작은 어머니나, 사촌 동생까지 작은 아버지가 화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친한 고향 사람에게 크게 사기를 당해 사업이 망하고 나서도 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날도 고스톱을 치다가 동생과 작은 입씨름이 있었습니다. 고스톱 규칙이라는 것이 지방마다 다 다르지요. 고스톱을 치는 중에 던진 패를 던진 사람이 뒤집어서 바로 먹으면 쪽이라고 하는데, 쪽을 했을 때 다른 참가자들이 피를 한 장 씩 더 주느냐 마느냐가 논란이 됐습니다. 나는 피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동생은 안 준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보다 못한 작은 아버지가 중재에 나섰습니다. .
"다투지 마라. 주는 걸로 해도 되고, 안해도 되겠지. 하지만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주는 걸로 해도 무방 하겠구나. 한번 규칙이 정해지면 다음 번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겠어. 그렇다면 누구도 이익 보거나 손해 보는 사람이 없지 않겠니. 그러니 준다 안준다 다툴 일이 뭐가 있겠니."
그렇게 논란은 간단히 정리됐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간혹 작은 아버지가 같은 분이 진짜 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이제 돌아오는 추석 때 쯤에나 다시 가족들이 모일 것이고 그때는 작은 아버지와 고스톱을 다시 칠 수 있겠지요. 벌써부터 추석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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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gfriend

2006. 10. 3. 16:07 살아가는 이야기

3대

3代
막내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토요일에도 내려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세세한 말은 없었지만 내려가서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리겠다는 뜻이다. 대학 졸업반인 막내는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다.

서울에서 제 형과 자취를 한다. 제 형이 취직공부를 위해 새벽같이 도서관으로 달려가면 점심도시락 준비는 물론 집안 청소며 세탁까지도 도맡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시장 보고 슈퍼마켓을 다니는 일, 공과금 관리까지 모두가 동생의 몫이다. 제 형의 말이다.

군대 가기 전만 해도 막내티를 내더니 군대생활 3년을 마치고 오더니 사람이 달라져도 확 달라졌다. 이런 것을 보면서 군대생활 3년이 완전히 헛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일거수 일투족이 제법 어른스럽다. 매사에 침착하고 꼼꼼한 이런 성격은 할아버지가 손자를 귀여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이 손자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는 말을 대단히 좋아하신다. 그런 말을 듣는 손자도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막내가 전화를 할 때마다 할아버지의 안부를 빼놓지 않는 것을 봐도 막내의 가슴속을 차지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비중을 알 수 있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막내 마중을 나갔다. 오후 1시가 훨씬 넘어서야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린 막내는 씩씩하고 건강하게 보였다. 아직까지도 군대물이 다 빠지지 않았는지 대답도 우렁차고 시원스럽다.

배가 고플 테니 어디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할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가자고 했다. 막내는 멀리 갈 게 아니라 이 부근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얼른 할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가자고 한다. 아마 할아버지께서 많이 기다리실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막내 손자를 보자 아버지께서는 환한 얼굴을 하신다. 불편하신 몸을 일으켜 손자의 손을 잡고는 밥은 거르지 않고 잘 먹느냐고, 공부는 열심히 하느냐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취직을 할 수 있다고, 취직을 잘해야 장가를 잘 갈 수 있다고 지난 주 토요일에 했던 말씀을 녹음기처럼 또 되풀이하신다.

수없이 듣던 이야기다. 그러나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막내는 잘도 장단을 맞춘다. 밥도 꼬박꼬박 잘 먹고 매일 새벽까지 공부를 한다고 할아버지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한다. 막내는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듣기를 원하는지 꿰뚫고 있는 눈치다.

아버지의 말이 이어졌다. 이 할애비는 가난하게 태어나서 삼시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해 키도 작고 학교 문턱도 구경을 못해서 까막눈이고 배운 것이 없어 평생 땅만 파고 살았다고, 손자에게 수도 없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또 한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비위를 맞춰 준다.

할아버지께서는 고생을 하셨지만 정말 훌륭하시다고, 보라고 아버지, 작은아버지들, 고모들 모두 대학까지 잘 가르쳐 주셔서 좋은 직장 잡아 오늘 날 고생하지 않고 다 잘 살지 않느냐고, 그러니 할아버지는 성공한 케이스라고 치켜세워 드린다. 아버지는 그건 그렇단다. 동네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며 은근히 좋아하신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손자의 상봉 제1막이 끝난다.

아버지를 모시고 막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막내는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욕조에 물을 받는다. 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양말을 벗기고 옷을 벗긴다. 막내와, 아버지를 부축해서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김이 벽에 걸린 거울을 뿌옇게 흐려놓고 욕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손자는 할아버지를 욕조에 앉히고 능숙한 솜씨로 머리를 감겨 드린다.

때수건으로 팔과 다리의 때를 밀고 등을 미는 동안 나는 샤워기를 들고 막내의 손을 따라다니며 아버지의 몸에 물을 뿌렸다.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머리를 감겨 드리며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니 머리를 숙이라고, 칫솔질을 할 때는 혓바닥을 꼼꼼히 닦아야 한다고 어른이 아이에게 이르듯이 말한다. 손자의 말에 고분고분하는 할아버지가 아이스럽다.

1년 전, 아버지께서 다리가 골절되어서 한동안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아버지께서 동네 목욕탕에 가시겠다고 나섰을 때, 그런 몸으로 목욕탕에 가신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며 난감해한 일이 있다. 목욕탕에 모시고 가기는 가야겠는데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궁리를 하고 있는데 마침 막내가 외출을 하고 들어왔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할아버지 모시고 목욕탕에 함께 갈 생각 없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거절할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모시고 갔다 오겠다는 말에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그때가 제대를 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군대 갔다 온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막내와 함께 간 동네 목욕탕은 남탕이 2층에 있었다. 손자는 목욕탕 입구에서부터 할아버지를 등에 업고 2층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서 아버지의 엉덩이를 받쳐주면서 막내가 그렇게 대견스럽고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등에 업어본 적이 없다.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생각해보면 왜 없었겠는가? 해마다 돌아오는 어버이날도 있었고, 아버지의 생신도 있었고, 일생에 한 번뿐인 회갑 잔칫날도 있었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기회가 없었다는 군색한 변명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목욕탕 안에 들어서자 막내는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를 둥근 플라스틱 깔판 의자에 앉혀드리고는 온몸에 물을 끼얹은 다음 때를 밀기 시작했다. 나는 한쪽에서 샤워를 하다 말고 이 광경을 보았다. 할아버지의 등을 밀고 있는 손자와 손자에게 등을 맡기고 있는 할아버지.

그것은 때를 미는 모습이 아니고 핏줄과 핏줄이 맞닿아 서로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가 말하면 손자가 듣고, 손자가 여쭈면 할아버지가 대답하고…. 이 광경은 지금까지 내가 본 그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도 슬며시 막내의 뒤에 앉았다. 그러고는 막내의 등을 부드럽게 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등을 맡기고, 손자는 그 아버지에게 등을 맡기고…. 또 돌아앉아서 할아버지는 손자의 등을 밀고, 손자는 그 아버지의 등을 밀고…. 3대가 그려내고 있는 풍경은 이 세상 어느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보다도 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정성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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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gfriend
들의 10년전 스승의 날에 선생님게 드렸던 편지..!!. 블로거 기자단 뉴스에 기사로 보낸 글
2006.05.15

 

{{ 이땅의 모든 선생님께 떠오르는 햇님과.이꽃을 선물로 드립니다.행복하세요.둥이3올림...}}

고마우신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파아란 하늘과 초록색 잎들이

서로서로 색깔 자랑을 하며 놀고 있어요.

겨울엔 회색이던 나무가지가

어느새

물을 흠뻑 마셔 맑고 깨끗한 공기를 가지고 왔어요.

고마우신 우리선생님!

매일 아침 우리의 발걸음은"서태지나 룰라"의 음악보다도 더 신나는 것 아셔요?

교실문을 열면 언제나

똑같은 웃음을 띄신채 저희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우리 이모같은 선생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가끔씩은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 되시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희들을 위해 기도도 해주시고,

공부도 가르쳐 주시며,

착하고 예의 바른 어린이로 자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실때면

저희들은 선생님이 너무너무 좋아져요.

그런데요 선생님!

선생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공부하다가 저희들이 지루해 하거나 재미없는

표정일때는 신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희들도 선생님 힘드시는 것 다 알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이러면서 큰다고들 하잖아요.

우리 선생님은 하나님보다도, 부처님보다고 더 마음이 좋다는 거 아니까요.

화 나시더라도 너무 혼내지 마세요.

가끔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보면 저희들은 놀란 토끼가 되어요.

선생님! 2학년 2반

저희들 앞으로 열심히 공부도 하며,

착한 어린이로 자랄거예요.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예쁜 장미꽃처럼 진한 향기를 가질께요.

그래서 선생님처럼 멋진 어른으로 자라고 싶어요.

선생님!

오늘은 스승의 날이예요.

언제나 말썽쟁이 저희들이 선생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 꽃을 달아 드립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선생님의 착한 2학년 2반이 될께요.

선생님 하늘만큼 땅만큼 저희들은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1996년 5월 15일

@@..2학년2반 회장 서성룡 올림.@@@

{{ 이글을 드렸던 성룡이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지요..}}

~~~~~~~~~~~~~~~~~~~~~~~~~~~~~~~~~~~~~~~~~~~~!!

~~...이글은 지금부터..10년전에

우리 아들 초등학교 2학년 스승의날에
반 대표로 담임 선생님께 읽어드렸던 편지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삼실에 어제

손님으로 오신분이 초등학교 선생님을 얼마전 까지

하셨다고 내일이 스승의 날인데

휴무라는 것에 대한 의견이 잠시 오가면서..~~

그래서 10년전에 우리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 생각나더라구요

가끔 연락은 하며 소식을 듣지요

선생님께서는아들의 안부를 물으며..

한고집 하던데..

지금도요..ㅎㅎㅎ{{ 그 고집이 더 ..세월에요.ㅎㅎ}}

그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안 밟았다는데

요즘은 어떤가..

체벌 한다고 한대만 때려도 백차가 와서 테워가는

이런 저런 얘기들을 ...

자꾸 사람들의 마음에서 정들이 사라져 간다며..

함게 자리했던 우리모두가..

걱정을 했네요.

집에 오자마자..아들한테

내일이 스승의 날인데..학교는???

했더니..휴무 라 하네요

뭐가 그리 복잡한지.

너는 그럼 생각나는 스승님 안 계시니..했더니.

엄마는..참,,계시지여

여러 선생님 계시지만..

이승희선생님이 가끔 생각이 나드라고요

{{ 2학년때 이 글의 주인공이시지요..}}

안 그래도

지난 앨범을 보고 있었네요.

그때 선생님께 드렸던 편지를 어머님께서 앨범에 끼워두셧네요

그것 ..읽고 있었지요..

자식..

그래도 맘속에 스승님도 계시고

자기의 표현을 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라..

올해 대학교에 합격하면

찾아뵐 선생님이 몇분 계시데요..

초딩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그리고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

이러내요..이쁜넘..ㅎㅎ

그러고는 하는말이..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꼭 붙어야 하는 단서를

츠암나..잘 나가다가...뭐..열심히 공부하겠지요

지 마음속이 그렇다 하니..다행이다 싶으네요.ㅎ

하고는 ..

내일은 친구들이랑 아침에

축구시합의 약속이 있다고 아침 7시에 꼭 깨워 주 세요

하며 꿈나라로 출발을 합니다.

세월에 교권이 무너지고 선생님의 자리도 그리 밝지만은..

지금.

정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서 깊은 정이 깊이 깊이 자랐으면 하네요

둥이도

고등학교 다닐때 짝사랑했던 국어선생님.

뵙고 싶은데..ㅎㅎㅎ

바쁨에 만나 뵙지는 못하지;만..

오랜만에 정겨운 선생님의 목소리들어야겠어요.

여러분들도 시간들을 내어서

찾아뵙는 시간들이 자리했으면 하네요.

아님..목소리라도요...()

!!~~스승의 은혜는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

이구..이 노래를 이렇게 힘들게 불러야 하는 세월이 되었으니....ㅠㅠ.

우리모두가..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볼 문제네요,,

우리 나라의 모든 스승님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 평안하십시요..().

♡,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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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gfriend
 
살며 감사하면서.... (인생 유전 시리즈 8 ) 2006/05/25 08:08추천0스크랩0
원문출처 : Sanctification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 ( nothing )으로부터, 그래도 발전된 모습의 , 그 어떤 것 ( something )으로 탈바꿈시킨 분들과 인생의 스승들에게 .새삼 감사를 드리면서, 다음과같이, 지난날들을 회상해본다.

1. 첫쨰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시고, 특히, 나를 건강하게, 키워주신 어머님이시다. 나는, 특히, 어려서부터, 4 형제들중, 체력이, 제일 연약하다하여서, 각별하게,음식을 잘 챙겨주셨고, 특히, 명절떄나, 모든 제사날에는, 그야말로 진수성찬, 아주 맛나는, 음식들을 먹곤하였다. 가장 많이, 맛잇게 먹은 음식은, 설날의 떡국이다. 결혼을 해서, 분가해 사는 동안, 아내와 함꼐, 어머니를 찾아갈떄마다, 사철 아무 떄나, 이 떡국을 끓여주시는 것이다.떡국의 재료는, 간단하다. 동네 수퍼에서의, 가래떡이나, 아예 떡국용, 떡가래를 준비하시고, 며르치 국물과 함꼐, 파와 계란만이 들어가고, 나중에, 소고기 고물과 도라지 등을, 잘게 썰어서 주신다. 나는, 시중에서, 먹는, 일반 떡국과 어머니의 떡국을 비교해보면, 시중의 떠국이 더 많은 재료들과 신식의 조리법?및 선진형의 조리법 등으로써, 더 맛이 있을 것같은데..., 어머니의 맛깔스러운 국물 맛을, 그만, 못따라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처음 시집온, 새댁이, 결혼전, 급하게, 요리 강습소, 등에서 배운 요리 솜씨로써? 시어머니 앞에서 , 그 요리 솜씨를, 뽐내는데...., 재료도, 아주 과학적으로, 영양가가 좋은 것으로 꽉차는데?.... 그다지, 온 시댁 식구들의 입맛에 잘맞지가 않는 것과도, 일면, 비슷하리라! 이는, 다분히, 외지?에서, 처들어온, 주방 침략자에 대한 , 일종의, 심리적, 관습적 거부감의 발로일 것이리라! 그리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나, 특히, 음식 분야에서는, 과학적인, 영양가 적인 , 재료의, 선정과 배합...등도 중요하나, 마지막으로 말하는, 어머니의 손 끝에서 나오는, 그 , 무엇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수없는, 어머님의 ,음식 요리, 비법( 秘法)이 있는데..., 이 것은, 며느리나, 어느 누구에게도, 그냥, 공짜로는, 잘 안기르쳐 주시는, 당신 홀로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요리 방식과, 요즈음 말로하는, 노하우인 것이리라!이 것은 , 갓 시집온, 새 며느리가, 새댁이, 눈 먹어 삼년, 귀 먹어 삼년, 입 먹어 삼년, 석 삼년을 지내서야만이, 그것도, 조끔씩, 조끔씩, 내놓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음식이 있는데, 이 것은, 어머님의 고유 특허 음식이나 진배가 없는데..., 다름아닌, 명태 순대라는, 말하자면, 이북 함경도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음식인 것이다. 이를, 젊어서부터, 집안에서, 음식 솜씨가 좋기로 이름을 떨치신, 어머님만이, 가장 잘 만든다하시고는, 다른, 며느리나, 집안 아낙네들은 아예 손을 놓고, 어머니의 그 맛깔스런, 명태 순대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도 못하고, 또, 당신인 어머니꼐서, 잘 전수?하실려고도 않으셨다.그래서, 나의 아내도, 그 맛에, 홀리기는 하였으나, 내가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요리 솜씨는, 다 좋은 데..., 이 요리만은 아직도, 못하고 있고, 또 엄두도 못낸다. 집안의 다른 어른들도, 다 , 어머님 살아 생전의 이 요리를 맛보시고는, 마치, 어느, 자린고비, 구두쇠가, 조기 구이를, 벽에 걸어놓고, 매일 아침, 쳐다보면서, 밥만 먹었다하는 식으로써, 명태 순대 한 마리를, 겨울 동짓날 긴긴밤에, 드리면, 이를 아껴서, 두고두고, 잡수셨던 것이다. 그 비법도, 제가, 옆에서, 지켜보니..., 별반, 특별한 노하우가 아니시고, 오직, 성심성의로써, 겨울철, 싱싱한, 좋은 명태를, 시장에서, 잘고르는 것이 첫쨰요, 그다음에는, 명태 속이라해서, 마치 순대속처럼,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데, 여기에는, 두부 다진것, 쇠고기 다진것, 고추장, 된장을 알맞게 섞는 것, 기타, 파, 도라지, 숙주나물, 고사리...등 각종, 채소류를, 잘게, 잘게 썬다음, 이를, 앞의 된장, 고추장, 쇠고기, 두부등으로써, 마치, 햄버거의 속처럼, 잘 다듬어서는, 이를, 내장을 다 발라낸, 빈 명태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 두번쨰 과정이요, 세번쨰, 여기가 가장 중요한데..., 이는, 일반적인, 고기나, 생선 굽듯, 대충 대충, 오븐이나, 쇠판위에서, 굽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아주 좋은 숯불위에서, 명태의 살이 노릿노릿하게, 우선 잘 구어져야하고, 그 다음, 명태 속의 양념들이, 아울러서, 잘 구어지도록, 이리저리, 명태살을, 전체적으로, 젓가락으로, 한점 함점, 점검해가면서, 구워야하는데, 여기서, 자칫, 오버하거나, 게을리하면, 아무리, 재료와 양념이 잘 갖추어져도, 그 짜릿하고, 매큼한 맛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일반 아마추어는 잘 못해서, 한 두번 해보고는, 맛없어하는 식구들떄문에, 그 맛있는 요리법 배우기를 그쳐버리는 것이다.그래서, 이 요리법의 대(代)가 그만 끊기는 것이다. 매사가 다 그렇다만.... 나의 추억으로는, 어머님이 차려주신 따뜻한, 아랫목의 밥그릇과,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플떄, 학교까지 찾아오셔서 주셨던 따끈 따끈한, 계란 볶음밥과, 사시 사철의 떡국과, 제삿날의 가자미 생선과, 명태 순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3 학년까지의 도시락..., 이러한 맛잇는 음식들로써, 나의 부실한 몸과 마음이, 이제는 옛날보다, 더 강건해지지않았나 돌이켜 생각해본다! 물론, 이제는, 그 대를 이어서, 음식 솜씨 좋은 아내가 , 나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분의헌신적인, 정성과 희생으로써, 여러가지, 사회적으로는, 실패를 많이 겪었지만, 이 시간까지,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한번도 걸러본적이 없이, 강건하게, 건강하게, 잘 살고있는것이리라!

2. 다음으로, 아버님이시다. 아버님은, 이북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시고, 8.15 해방과 더불어서 마을에 공산당이 들어오자, 모든 일가친척들을 뒤로하고, 어머니, 큰형, 작은형과 함꼐, 서울로 내려오셨고, 여느 실향민(失鄕民)들과같이, 평생을, 고향 아닌 , 낯선외지(外地)에서, 갖은 고생만 하시다가, 65세에 돌아가셨다. 아마도, 이북이, 공산화가 아니되고, 대한민국처럼, 평화스런 나라였다면, 그 마을에서, 좋은 인심과, 인격으로써, 평생을, 편안하게, 유복하게, 생을 마치실 분이, 물설고 낯설은 외지에서, 사업이라는 사업은 모두가 실패하고, 친구들로부터, 배반당하고, 말년에는, 고혈압으로 고생을 많이 하시고, 신장도, 한쪽을 떼어내시고..... 아버님은, 어느 다른 인척 분이 말씀하신대로, 법(法) 없이도,착하게, 잘 사실분이었는데..., 외지에서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살아생전에, 많은 돈과 재산과 명예는 못 남기셨는데..., 우리에게, 무언(無言)으로 가르치신것은, 남에게 절대로 폐를 끼치지않는 삶과 양심(良心)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이었다.그리고, 술을 마시되, 절대로, 행패나, 주사를 벌이지말라시며, 당신이, 술 한잔 하시면, " 달아 달아,밝은 달아, 이 태백이 놀던 달아..., " 하시면서, 혼자서, 조용히, 노래하시거나, 웃으시는 모습이, 나의 어릴떄, 사업에서, 실패하시면서, 때때로, 나에게 비쳐진 모습이셨다.

3. 중 고등, 대학교 시절의 영어 선생님과 교수님들이, 그 다음으로 고마우신 분들이다. 영어? 당시에는, 선생님을 따라서, 멋모르고, 그냥,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만 했는데..., 먼 훗날, 돌이켜보니, 그 분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명교수나, 일류 선생님들이셨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해외 무역 업무에 종사하면서, 매일 매일, 영어로써, 밥을 빌어 먹고있는 것이리라!

4. 대 재벌 기업에 종사하면서, 나는, 많은 사회 저명 인사들을, 아니, 대학시절부터, 만났는데...., 이 것이, 무식한, 나로하여금, 꾀 유식한 나로써, 탈바꿈하게 된 중요 원인이었다. 대학교,영자 신문사에서, 과외 활동을 할떄부터, 1968년, 당시, 미국의 부통령 후보였던, 민주당의 험프리 상원의원과 악수를하고, 또, 카터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었던, 브레제진스키같은 유명인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는, 주로 저명한 학자들과 정부의 고관들을 많이 만난 것이다. 이들의 강의와 강연 등을 통하여서, 나는, 경영학계와 정, 관계의 좋은 정보와 지식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이는, 내가, 이제껏 살아오는데, 직, 간접적으로,나의 얄팍한 경영지식과 교양 수준을 고양시켰으며, 이는, 회사의 발전은 물론, 나 자신의 발전에도, 많은 도움을 준 것이었다.

5. 다음으로, 교회인 것이다. 나는, 1986년 11월, 이웃 아주머니 부부의 권유로, 근처의 교회엘 나갔는데, 1971년도, 군대 복무 시절, 주일마다, 영내에있는 교회에 나간 이후, 15 년만에, 다시 교회엘 나갔고, 나간날, 첫날부터, 교회에 등록하고, 아주 열심히,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런후, 1 개월만에, 회사에서, 과장으로 있었던, 나는, 부장으로 승진했다. 나의 나이가 39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 세례도 받았다. 2000년에는, 안수집사가 되었다.그리고, 지금은, 주일 예배의 헌금위원으로써 봉사하고있다.나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1986년도에 교회를 다니게 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攝理), 즉,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 후 4 년, 1990년도에, 사랑하는 큰형님을 , 갑자기, 천국으로 보내게 되고, 1994년, 19년동안 봉직했던 회사를 자의반, 타의반, 해고된다! 만일 내가 교회엘 안다녔다면, 이러한 인생의 엄청난, 불의의 사고들을 당해서, 어떤 반응과, 행동을 취하였을지?..., 한순간, 많은, 불순한, 비사회적인, 비 정상적인 행동과 사고를 저지를수도 있었건만, 무엇이, 나를 그러하지 않도록, 나를 붙잡았나? 단연코, 하나님의 사랑(love)과 자비(mercy)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미리 나의 예기치 못한 실직(失職)과 비탄과 울분...등을,아시고서는, 나에 대한 구원을 ,오래전부터,예비하고계신 것이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8-39절)

6. 다음으로는, 내가 어려울떄 나를, 버리지않은 친구! (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 나는 그 친구를 , 지금도, 만나고 있는데..., 그는, 지금, 거꾸로, 상당히, 어려운 상태에 있고, 떄로는, 서울을 , 잠시, 떠나서, 시골에 가서, 조용한 생활을 하겠다면서, 어떤 응어리진, 사건과 일로써, 울분과 탄식을 잘 삭이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젊어서나, 최근까지도, 꾸준히, 금융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말하자면, 평생을, 아주 잘 지내고, 잘 나갔던, 샐러리맨이었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인간의 앞날이란, 정말, 자기의 힘으로써는, 한치 앞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7. 마지막으로,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다! 특히, 아내인 것이다. 내가, 어려울 떄,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나를 대신해서, 가족을 위해, 희생했고...., 특히, 내가, 실직을 당한후의 지난 10 여년간의 생활은, 엄청난 인생의 시련이었고, 온 가족의 비애와 한탄과 질곡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 특히, 큰딸은, 아비의 마음을 잘 읽고는, 말없이, 잘 따라와 주었고, 막내 아들은, 아직은, 사회적으로 철이 덜 났으나, 굳건한 믿음과 강건한 체력과 지력으로써, 대학 생활을 잘 하고있으므로, 아비된 자로써, 일편 마음의 부담이 가벼워져서, 이 또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이러한 가족의 사랑이야말로,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모진 세월의 풍파(風波)에 대한 사랑의 방패막이가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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