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2건

  1. 2006.10.02 목젖을 날려주마
  2. 2006.10.02 안도 닛신회장
  3. 2006.10.02 옛날의 짜장면 맛
  4. 2006.10.02 작은세상 질긴인연
목젖을 날려주마 조회(1863) / 추천(3) /  퍼가기
http://images.joins.com/blog/blogv3_1/dotline05.gif) repeat-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 colSpan=3>
등록일 : 2006-04-11 19:39:16

혹시, 남편에게 자다가 맞아본 적 있으신가 모르겠습니다.

웬만한 부부사이엔 서로 끌어안고 자지는 않더라도 때리지는 않는다고요 ?

그럼 전 뭐에요 ?


며칠전에 박서방은 얌전히 잠자는 저를 발로 콱 밀어 버리더라구요.

그럼 저는 악소리 한번 못하고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야지 별수 있나요.


이왕 굴러 떨어진 것 내쳐 잘수도 있었지만, 평소의 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그때의 상황은 저 혼자 굴러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남자가

밀어서 떨어진 거잖아요. 왜 밀었는지 얘기는 들어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혹시 평소의 억하심정을 잠버릇이라고 밀어부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말은
아예
입밖으로 못나오게 해야 할텐데 급하게 생각나는 대책이 없습니다.


“일어나봐.”

“자는 사람 왜 깨우고 난리야 ?”

“자는 사람 먼저 깨운사람은 당신이잖아. 빨리 일어나봐.”

“나 내일 바쁘단 말이야 좀 더 자게 내버려 둬. 아침에 하자.”

“뭘 아침에 해 ?”

“지금 놀자고 깨우는 거 아니야 ?”

“진짜 놀고 있네. 당신이 지금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아 ?”

“뭘 어떻게 해 ? 곤히 자는 사람 붙들고 왜 시비야 ? 이리와 안아줄께.

요즘 바빠서 소홀히 했더니 삐졌군. 이리와..“

“삐진거 좋아하네. 당신 발로 내 얼굴 밀고 내가 엎어지니까 등짝 밀어서
침대
밑으로 내려 놓았잖아.“

“그래 ? 어이쿠 우리 마누라 안다쳤어 ?”

“다쳤다. 그러니까 일어나 똑바로 앉아.”

“피나 ?”

“솔직히 말해. 당신 일부러 그랬지 ? 평소에 나한테 불만 있던 것 지금 이렇게
푸는거지 ?“

“불만 없어. 나 요즘 바빠서 당신한테 불만이 있나 없나 생각할 겨를도 없어.

그건 정말 오해야. 미안해..“

"듣고보니 더 기분 나쁘네. 아예 나한테 관심이 없단 얘기잖아."

"환장하겠네."


정말 그런가 긴가민가 고개만 갸웃거렸습니다.

분명히 저 남자가 얼마전 사건 때문에 이 마누라에게 앙심을 품었을 것이
분명한데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전에는 몰랐는데 그남자 잠버릇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견디기
힘든
버릇이 코고는 소리였습니다.


한밤중에 천둥번개 치듯이 코고는 소리가 들리면 옆에 누워있던 저는 경기

하듯이발딱 일어나 벌벌 떨어대곤 했으니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은

하실겁니다. 규칙적인 소리이기나 한가요. 들이 마신지가 한참 지났는데도

내 뱉는 숨소리가 안들리면 숨쉬나 안쉬나 확인도 하는 긴장되는 잠자리.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다른방에는 못가고 그 옆에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가끔은 코를 비틀기도 하고 흔들어 깨워보기도 했지만 잠시동안의 행복일 뿐
또다시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애가 아파서 이비인후과에 갔을 때 열심히 아이 치료를 하시는

선생님에게 넌지시 여쭈었습니다. 정말 지나가는 말로 여쭈었던 거랍니다.


“저기요 선생님 ! 코고는 사람 코골이 병 고치는 방법 없을까요 ?”

“있죠. 남편이 코를 심하게 고나요 ?”

“네, 정말 고칠 수 있어요 ?”

“그럼요. 한방이면 끝나지요.”

“한방, 비싼가요 ?”

“아니요, 생각보다 많이 안드니까 얼른 데려 오세요.”

“아, 네.”


내 생각을 어떻게 알고 계셨는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저렴한 가격이라는 말에

퇴근하고 돌아온 박서방을 붙들고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여보 ! 아주 기똥찬 소식이 있다.”

“뭔데 ?”

“응, 아까 현지 아파서 병원 다녀 왔는데 거기 의사 선생님이 코고는 것

고칠 수 있대. 병원에 한번 가보자. 아주 간단하다고 그러더라고.“

“그래 ? 코고는 것 나도 힘든데 잘됐다. 거기서 고친사람 많대 ?”

“얘기 들어보니까 우리 아파트에도 몇집 되나봐..갈거지 ? 나 예약한다.”


확인은 안했지만 아마 많이 고쳤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 서방님을

그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술을 받게 하였습니다.

병원에 갈때도 언제나 마누라를 동행시키던 박서방이 그날은 웬일인지

선심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깐것에 뭐 몇 사람씩 와 있냐. 당신은 애 데리고 가라.”

“그래도 수술인데 그냥 있을게.”

“에잇씨 가라니까 쪽팔리게.. 여기 몇사람씩 있을 필요 없어, 얼른 가.

애기도 아프잖아.“


그래서 그냥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녁때 집에 들어온 남편은 코만 벌렁 거릴뿐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야 ! 당신 많이 아팠어 ?”

“야 ! 말 똑바로 해. 아팠어가 아니라 현재도 뒈지게 아프단 말이야. 우이씨.

내가 코고는 게 그렇게 죽겠더랬냐 엉 ?“

“말이야 바른 말이지, 솔직히 편하게 잠잔다고는 말 못하지..”

“이제 좋겠다. 서방 잡아서 코 안골게 해놔서 좋겠다.”

“그렇게 아파 ?”

“시끄러워 말시키지마.”


뜨끈한 콩나물국에 밥 말아 먹으면 좀 나을까 싶어서 아주 펄펄 끓는 콩나물국을

대령해서 훌훌 마시라고 내밀었습니다.


“이런 확그냥. 나보고 지금 죽으란거야 뭐야 ? 목 지지고 왔는데 또 뜨거운 걸
내 놓으면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

“어머나 미안해. 난 당신 생각해서 펄펄 끓여 왔는데. 당신 목이 감기증상하고

틀린거지..정말 미안해. 내가 후 불어서 식혀줄께..“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자기를 나만큼 위하는 사람이 어디 또 있다고 내 마음도
몰라주고. 아프기는 정말 많이 아픈가 봅니다.


다음날은 퇴근하고 돌아와서 점심메뉴가 부대찌개라서 남들 먹는 것 구경만

했다고 궁시렁 궁시렁, 그 다음날은 일찍 돌아온 서방님께 따끈한 밥 급하게

대령했더니 입천장 다 벗겨졌다고 생난리..아무리 그래도 애 낳는 것 보다는

덜 아플텐데 엄살이 참 대단합니다.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그 남자는 수술한 효과를 못보고 코를 열심히 골고,

아픔만큼 효과 없다고 또 마누라를 쥐잡듯 잡아대니 의사선생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저기요 선생님, 우리 남편 코골이 수술한 것 효과가 없는데요.”

“그래요 ? 며칠 더두고 보셨다가 계속 그러면 병원에 다시 보내세요.

조금 더 손을 보죠 뭐. 치료비는 에프터 서비스 차원에서 공짜로

해드릴게요.“

“어머나 친절도 하셔라 감사합니다 선생님.”


전화기를 들고 보이지도 않는 선생님께 열심히 절을 했습니다.

며칠을 지켜봐도 아무런 진전이 없는 관계로 박서방에게 마무리 차원에서

병원에 한번 더 다녀오라고 자상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저기, 당신 수술한 것 차도 없으면 한번 더 와서 치료 받으래.”

“치료 ? 어떻게 ?”

“응, 그러니까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당신 목젖을 조금 더 날리면 된다고

그러시거든 ? 치료비는 공짜라니까 다시 가보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러더니 박서방이 옆에 있던 리모컨을 확 집어

던지며 말했습니다.


“나 병원 안가.”

“왜 안가, 공짜라는데..”

“에잇쌍, 내가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냐 ? 왜 그렇게 공짜에 목숨 걸어.

그게 공짜야 ? 수술이 잘못 되어서 그 의사가 다시 해준다는 거 아냐 ?“

“그건 아니지..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까 당신은 좀 더 날려야 코가 조용해
지니까 오라는 거지.“

“그럼 당신이나 가서 나처럼 목젖에 수술해 봐.”

“내가 왜 가, 환자는 당신인데 ?”

“내가 말을 안하니까 정말. 당신도 만만치 않아. 창피해 할까봐 말을 안했을

뿐이야. 코 뿐인가 입도 불량이야. 바드득 바드득 이 가는 소리가 얼마나

소름끼치는지 알기나 해 ? 코고는 것은 양반이야. 알아 ?“

“어머어머 생사람 잡는거봐. 나 여지껏 코곯고 잔다는 소리 한번도 안들었어.

이거 왜이래 ? 바드득 거리며 이 갈고 잔다는 얘기는 모함이지 ?“

“정말인지 아닌지 밤새 녹음기 한번 틀어놓고 자볼래 ? 코고는 소리야 내소리

인지 당신소리인지 구분 안갈거고 이 가는 소리라면 확실하지 않겠어 ?

아무튼 공짜라면 서방도 팔아먹을 여자라니까.“

“쳇, 내가 판다고 하면 누가 사가기나 한대 ?”

“아무튼, 앞으로 코고는 것에 대해서 한번만 더 얘기해 봐. 그때는 아주

내다 버릴줄 알아.“

“내다 버린다고 ? 내가 물건 못버리고 모아 두는게 왜 그러는지나 알아 ?

정말 버리고 싶은 물건이 당신일때가 많아서 다른 물건들은 보류중이야.

제일 버리고 싶은 물건을 못 버려서 다른 물건 한테는 눈길이 안간다는

얘기지.“


악, 해서는 안될 말을 또 했습니다. 그럼 평상시에도 박서방을 미워 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실수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그 말이 입에서만 뱅뱅돌고 도통 입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쓰레기 1호란 말이지 ?”

“........”

“침묵은 인정한다는 뜻이겠다 ?”

“그게 아니고, 아까 그말은 화가나서 실수했어. 당신 쓰레기 아니야.

미안해.“

“그만하자, 더 말했다가는 마음이 피투성이 되겠다.”

“알았어. 그런데, 정말 병원에 안갈거야 ?”

“계속 그럴래 ? 진짜 쫓겨나고 싶어 ?”

"가지마, 내가 참지 뭐. 에휴 내 팔자야."


여전히 그 남자는 코를 곯며 열심히 잠을 자고 그 옆에는 그 마누라가 항상

남편보다 먼저 잠들어야 편히 잠잘 수 있다는 생각에 1등으로서둘러 잠들어

있습니다.


그 수술에 대한 앙갚음인가, 생전 처음 침대에서 저를 밀어낸 사건이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당신 진짜 일부러 그런거 아니지 ?”

“진짜 아니라니까. 꿈속에서 누구랑 열심히 싸우는 중이었는데 꿈에서의
상황을
현실에서도 발차기 했던거네..믿어줘 진짜야.“

“알았어, 믿어주지.”

“에이, 잠 다 깼네. 지금 몇시야 ?”

“몰라, 자. 아침 되려면 멀었어.”

“그러지 말고 이왕 깼으니 오랫만에 놀자..”


허이구 참, 이 시간에 남녀가 둘이서 뭐하고 놉니까 ?

침대 스프링도 시원치 않아 조심스러운데,,안그렇습니까 ?

불끄고 잡시다.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래도보며 살자  (0) 2006.10.02
마흔의 봄  (0) 2006.10.02
안도 닛신회장  (0) 2006.10.02
옛날의 짜장면 맛  (0) 2006.10.02
작은세상 질긴인연  (0) 2006.10.02
Posted by ogfriend
라면 창시자 안도 日닛신식품 회장 訪韓..그의 '라면 찬가'
“97세 童顔이라고요? 매일 먹는 라면 덕분인가...?”
지금도 회사 맨먼저 출근 1년에 100번 골프 라운딩
“80% 포만감 들 때까지만 먹는게 제1의 건강비결”

▲ 안도 회장
90대 중반을 넘긴 노인이 정어리 같은 등 푸른생선을 뼈까지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1년에 100번이 넘게 골프 라운딩을 즐긴다. 매일 한 끼는 국 대신 컵라면을 먹는다.

진짜 있는 일이다. 주인공은 인스턴트 라면의 창시자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일본 닛신(日淸)식품 회장이다. 1910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는 97세다. 그는 연간 2조5000억원 매출의 일본1위 라면업체의 현역 CEO로, 아직도 오사카(大阪) 본사에 가장 먼저 출근해 신제품 개발까지 직접 챙긴다. 세계라면협회(IRMA) 회장도 맡고 있는 안도 회장은 11~12일 서울서 열리는 협회 총회에 참석차 방한했다. 9일 서울에서의 첫 아침도 골프장에서 보냈고, 오후에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첫 마디부터 라면 찬가였다. “보통이라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죠. 라면이 해롭다는 얘기도 많지만 제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라면이 좋은 음식인지 증거도 될 겁니다.”

그가 라면 사업을 시작한 것은‘인생역전’이었다. 이사장을 맡고 있던 신용조합이 파산, 빈털터리가 되자 자기 집에 3평 남짓한 실험실을 차려놓고 인스턴트 라면 개발에 몰두했다. 젖은면을 부패하지 않도록 말리는방법을 못 찾아 실의에 빠졌다가 부인이 튀김을 만드는 것을 보고, 면을 바로 기름에 튀겨 건조하는‘순간 유열 건조법’을 개발했다. 1958년 48세의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그는 지금 그가 창안한 라면이 전 세계에서연간 800억 개나 소비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 1971년 물만 부으면 되는‘컵라면’, 작년 여름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의 우주비행사가 우주정거장에서 먹었던‘스페이스 라무’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죽는 날까지 라면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라면은 편리하고, 안전하며, 값이 싸기 때문에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는 음식”이라는 주장이다.“ 라면의 코덱스 국제식품표준을 만들어 전 세계인이 어느 라면이건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하고, 수출입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는 게 그의 남은 꿈.

그러나 그의‘라면 먹는 법’에는 경청할 만한 게 있었다. 영양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필요한 식재료를 함께 넣어 조리하라는 것이다. 한국의 김치가 라면과 잘 어울린다고도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건강 비결 4가지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항상 80% 정도 포만감이들 때까지만 드세요. 편식하지 마시고, 운동하십시오. 무엇보다 마음을 편하게, 윤택하게 가지세요. 그러면 건강 장수할 수있습니다.”

김덕한기자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흔의 봄  (0) 2006.10.02
목젖을 날려주마  (0) 2006.10.02
옛날의 짜장면 맛  (0) 2006.10.02
작은세상 질긴인연  (0) 2006.10.02
이런사람과 한평생을?  (0) 2006.09.29
Posted by ogfriend
[판 Paper] 그때를 아십니까~?
옛날 그시절 짜장면 맛이.......
스타아범 기자, 2005-11-30오후 6:34:36

몇일전 중곡동 거래처에 들려서 자장면을 먹었는데



옛날 나 어릴적 아버지가 사주셨든 아~주 특별한 짜장면.....



그맛 ! 그맛이 나는거다 아버지가 사주셨던 그때 그맛..!



그때 그짜장면 이란 ...........







옛날 얘기 한토막.

내 또래 사람들은 중학교에도 시험을 치루어 합격을 해야 중학교에

입학할수 있었던 시절 이었다.

당시 우리 근동에는 유별나게 중학 진학자들이 많아서 사상 유래 없는

경쟁율이 에상 되므로 각 국민학교 마다 초 비상이 걸렸었다.

예외 없이 우리 학교에도 입시(?) 열풍이 불어서 5학년때 부터 과외가 시작되어

별 보고 나갔다가 별보고 집에오는 빡세고 고된 공부가 시작 되었다.

각종 전과와 수련장 과 씨름해야 했던시절..

지금 생각해도 평생을 통 털어 그때 같이 공부에 정진 했었적은 없는듯... ㅋㅋ

암튼 지금 써먹고 있는 한문. 역사연대표 .오선지위에 콩나물 읽는것..

조선시대 왕 즉위순서. 어느왕이 적출이며.... 등

아직도 그때 공부 했던것을 지금도 여전히 써먹고 있다. 특히 한문은 정말 그때

공부 한것이 감사할 정도로 요긴하게 써 먹고 있다.



드디어 중학지원후 경쟁율이 나왔는데 당시 3 : 1.....

사상유례 없는 경쟁율.... 모두가 초 비상.....

우리집에도 엄마 아버지를 비롯하여 온 식구가 초 비상.....

우리동네만 경쟁자가 27명 ....... 그러니 부모들 끼리도 은근히 경쟁...

여기서 떨어지면 가문에 위기 까지 갈지도 모르는 상황.... ㅋㅋ

나도 우리집의 대표선수... (당시는 엄청 부담스러웠음.)

고로 온 面 이 난리 부르스.....





나도 시험을 어떻게 치루 었는지 기억은 사실 없다.

얼마후 낼이 발표 날인데 오늘 심한 감기 몸살로 몸져 누었다.

원래 강체질 이라서 남들 열번 앓때 난 한번정도 아픈데 한번 아펏다하면

읍내 강의사가 왕진을 (당시엔 가방들고 왕진 다녔음)와야 아픈것이 낫는다. ^^

부득이 당일 아버지랑 둘찌형이 발표장에 출두. 수험번호 92번을 확인.



축~~ 합격 했단다. (울 아부지 쪼매 우셨다나? ㅋㅋ)

기분 한껏 엎 된 아버지와 형 쇠고기와 짜장을 사들고 장장 2키로를

자전거 전속력 무한질주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 와선 아파누운 나더러

퉁퉁 부러터진 짜장면을 먹으라니 엄마가 뭐라겠는가.

"에~구 우찌 부자지간에 저리도 머리가 않조을까..." ㅋㅋ

투덜 거리는 엄마에게 한마디 ...

"임자 언능 곤로에 물덮혀..."

전광표(상표명) 곤로에 물을 덮히시더니 불어터진 짜장면을 데워진 그 물에 헹구신다.

요술 처럼 새 면이 탄생 .... 그위에 짜장을 부으니 새로 만들어 낸 짜장면 이 되었다.

아파서 하루 종일 굶어있든 내가 그 짜장면 한 그릇으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앉을수

있었다 그때 먹었든 짜장면..... 지금도 잊지를 못한다.

어딜가도 그 맛을 찾을수 없었는데 몇일전 그때 그맛을 어렴풋이 나마 찾을수 있었다.



난~~ 우리 애들이 지네들 합격 했다고 갈비에 피자에 사주며 기뻐격려해 주었든 그때를

그리워 할까? 나 죽고 나면.....? ^^



험준산령 같으셨든 울 아버지 그러나 자식들 일이라면 때론 한없이 약함을 보이셨든 아버지

내 나이에 세발자전거. 나이론옷. 운동화. 소풍물병.나폴레옹그려진 가죽멜빵 가방 등.. 으로 호강을 시켜 주셨든 울 아버지 그 아버지가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다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젖을 날려주마  (0) 2006.10.02
안도 닛신회장  (0) 2006.10.02
작은세상 질긴인연  (0) 2006.10.02
이런사람과 한평생을?  (0) 2006.09.29
조선족여자의 힘겨운 하루  (0) 2006.09.29
Posted by ogfriend
 
작은 세상, 질긴 인연 2006/03/23 13:05추천1스크랩1

워싱턴을 떠날 날이 다가오기에

마지막으로 뭘 좀 해볼까 궁리하다가 '크리거 뮤지엄'에 갔습니다.

늘 열어두는 미술관이 아니라서 예약을 해야 한다기에 귀찮아서 못가본 곳인데,

모아둔 그림들은 꽤 좋다고 하더라구요.

크리거씨 부부가 살던 집에 평생 모은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이라는군요.

어제 예약을 했는데, 가보니 저랑 친구 이렇게 달랑 2명이고,

가이드가 우리를 데리고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미술관을 안내해주었습니다.

이게 웬 호사란 말입니까.

며칠 전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세잔느 전시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까치발을 하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돌아다녔는데.

그림은 주로 인상파 화가 것들이고

피카소나 고갱, 고호의 초기 그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 피카소답지 않고 고호답지 않고 고갱답지 않은 그 점이 오히려 매력이라고 할까.

미술관 건물은 이렇게 생겼구요.

(건물 내에선 사진을 못찍게 합니다.)

Photo of the Kreeger Musuem

중간에 있는 홀에서는 가끔 음악회도 열린답니다.

따뜻한 햇볕이 담뿍 쏟아져 들어오는 조그마한 미술관에서

60대쯤 돼 보이는 가이드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 기분이 참 상쾌했습니다.

The Great Hall

모네의 그림이 대여섯점 있는데 여기서 시간을 제일 많이 보냈어요.

Impression: Sunset, Pourville, Claude Monet

가이드에게 자원봉사를 하는 거냐고 물어봤지요.

이 양반 왈, "대학에서 외국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은퇴하고

시각장애자들을 위해 책을 읽어 녹음하는 자원봉사도 한다...'

흠... 저는 그 사람 얼굴을 다시 봤습니다.

"혹시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 않나요?"

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

"혹시 베데스타에서 요가를 배우러 다니시지 않았나요. 제가 그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리하여 우리가 기억을 발굴해보니, 3-4년 전에 만난 적이 있었어요.

제가 간단하게 인터뷰해서그가 한말을 인용했거든요.

그후 가이드는 저를 멍하게 바라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걸 기억할 수가 있느냐"고

기가 막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마찬가지.

인생의 반을잃어버린 열쇠 찾느라고 보내는 제가 그런 기억을 아직 잃지 않고 있다니.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그 기사를 쓴 게 2002년 5월쯤이었습니다. 거의 4년 전이죠.

어떻게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저도 신기했어요.

떠날 때가 되어초기에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다니.

세상은 참 좁고 인연은 정말 질깁니다.

우리가 그렇게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검고 긴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역시 검고 긴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이 미술관에서 방황하는 기자가 한명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이고. 미술관 들어올 때 입장료 8달러 아낄려고

기자 신분증 보여줬는데 신고 들어갔나 봅니다.

검은 옷의 여자는

"저는 이 미술관의 방황하는 홍보담당자입니다.

미술관 관련자료를 준비해놓을테니 가져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한바탕 웃고 다시 그림을 보다가 미술관을 나왔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4년 전에 만났던 살루스씨입니다.

2다시만남.JPG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면서

버릴까 말까 망설인 두 가지 아이템입니다.

하나는 두통약. 하나는 머그.

1컵과두통약.JPG

두통약은 5년 전에 500알 들이를 샀는데 거의 비었구요.

머그는 제가 거의 매일 커피를 마시던 겁니다.

네이비 블루도 있었는데 그건 깨먹었어요.

그러니까 제가워싱턴에서 얼마나 골치 아팠는지,

깨어 있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쳤는지 아시겠지요?

곧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아래는 크리거 미술관 웹사이트입니다.

http://www.kreegermuseum.com/index.asp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도 닛신회장  (0) 2006.10.02
옛날의 짜장면 맛  (0) 2006.10.02
이런사람과 한평생을?  (0) 2006.09.29
조선족여자의 힘겨운 하루  (0) 2006.09.29
욕 잘하는 남편  (0) 2006.09.27
Posted by ogfriend

블로그 이미지
오래된 그리고 좋은 친구들이 가끔들러 쉬다 가는곳..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 중 게재됨을 원치 않으시거나,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으면 즉시 게재한 내용을 삭제하겠으니 삭제요청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모닥불 올림. Any copyrighted material on these pages is used in noncomercial fair use only, and will be removed at the request of copyright owner.
ogfriend

태그목록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5.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