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2건

  1. 2006.10.04 딸과의 전쟁
  2. 2006.10.04 수도원기행
  3. 2006.10.04 그릇을 씻는 마음
  4. 2006.10.04 그녀들의 애정행각

딸과의 전쟁
전국의 초·중·고교 선생님께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게는 고등학교 2학년생 딸 하나가 있다. 지금 말하겠다.

“제발 아이들 교육 좀 잘 시켜 주십시오. 국어, 수학, 영어만 신경쓰지 마시고 사회생활, 특히 예의범절 같은 걸 각별히 신경써 주십시오. 저는 어린 딸 자식 하나 키우는데 도무지 부녀지간에 말이 통하질 않아 사람 죽겠습니다.”

지난 보름 동안 나는 대한민국 청소년 교육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온 국민이 월드컵 축구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나는 예기치 않았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다름 아닌 딸과의 전쟁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내 딸은 지금 열일곱살이다. 너무너무 예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어느 아비가 자기 딸 예뻐하지 않겠는가. 건성으로 해보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지금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세상 만물 중에 당연 압도적으로 예쁜 게 내 딸이다. 어린아이들, 강아지, 꽃, 강, 별보다도 내 눈에는 내 딸이 더 예쁘다. 내가 다정하게 말이라도 걸면서 다가가면 “아빠! 나 지금 콘디숀 안좋삼. 저리 비키삼” 뭐 그렇게 최신식 말투로 투덜대도 예쁘고, 투정을 부려도 예쁘기만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구석도 있다. 뭐냐 하면 내가 보기엔 내 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눈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때는 저쪽이 나의 미학 수준을 못 따라오는 거라고 접어주면서 넘어가곤 한다. 그런데 보름전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발발한 그날, 나는 밤 10시쯤 집에 들어왔는데 트레이닝복을 입은 은지가 제 방에서 울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왜 그러냐, 무슨 일이 생겼냐, 물으니깐 휴대전화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불과 두 달 전 쯤에 외국에서 온 아빠 친구가 특별 선물로 사준 최신형 핑크색 휴대전화였다.

운동을 하고 돌아오다가 버스에 놓고 내렸다고 했다. 내 딸은 계속해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로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또 몇 십만 원 들어가게 생겼군’ 하면서, 딸한테 뭐라고 할 말도 없어서 그냥 전화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놓고 응접실로 나왔다.

그런데 몇분이나 지났을까. 내 딸이 누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딸 방으로 갔다. 딸은 약간 상기된 모습에 흥분과 긴장이 섞인 말투로 뭐라 말하고 있는데 전화기에 대고 말하는 태도가 영 내 맘에 안들었다.

그래선 안되는데 추궁이나 취조 식으로 말을 풀어가는 것이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나는 온갖 표정과 몸짓을 지어 가면서 작은 소리로 “야! 그렇게 말하면 안돼.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해.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하고 온갖 사인을 다 보냈지만 내 딸은 막무가내로 계속 자기 할 말만 해 나갔다.

“거기가 어디세요? 댁의 이름은 뭐세요?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댁의 전화번호는 뭐세요?”

짐작컨대 내 딸의 휴대전화를 습득한 저쪽 청년은 굉장히 양순한 청년임에 틀림없었다. 고병헌이라는 이름까지 내 딸이 받아서 써 놓은 걸 보니 그런 짐작이 갔다. 그런 와중에 그쪽 휴대전화 번호가 몇 번이냐고 묻는 내 딸의 돼먹지 않은 질문에 드디어 왜 자기를 휴대전화 훔쳐간 사람 취급하느냐고 되묻는 모양이었다.

내 딸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아! 그건 제가 지금 댁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물어본 거죠”한 다음 계속해서 지금 거긴 어디냐고 물었고, 저쪽에서는 발산동이라고 대답했다. 발산동 어디냐고 물었을 때 미즈메디병원 근처라고 대답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거기까지만 내 딸의 전화 통화를 옆에서 들어가며 알아냈다. 나는 발산동이 어딘지는 몰랐지만 미즈메디병원은 최근에 TV에서 따갑게 들어와서 신기하게 여겨졌다. 내 딸은 몇시에 물건을 찾아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 딸과 함께 응접실에 앉아 차분한 분위기로 말을 꺼냈다. “야! 너 아까 휴대전화를 습득해서 너한테 돌려주기로 한 사람한테 그렇게 윽박지르듯 말하는 건 크게 실례한 것이었어” 했더니, 내 딸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반론을 제기해 오는 것이었다.

“아빠! 내가 언제 윽박지르듯이 말했다고 그래? 나는 그냥 필요한 것만 물어본 거였어. 그런데 그게 왜 실례야?”

나는 욱하는 성격이다. 한번 욱하면 앞뒤를 잘 못가린다. 내 목소리가 커졌다.

“야! 니가 그 사람 이름을 물어봤잖아.”

“그럼 휴대전화 찾으러 가야 하는데 이름을 알아둬야죠.”

“얀마, 그쪽 전화번호는 왜 물어봤니? 그게 실례 아니고 뭐니?”

“전화번호를 알아야 어딘지 찾아갈 수 있는 것 아녜요?”

“야! 이 시키야, 그럼 저쪽에서 왜 도둑놈 취급했냐고 너한테 말했겠니? 최소한 정중하게 죄송하지만, 실례지만 하면서 공손하게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야. 나 같으면 습득한 휴대전화를 패대기쳤겠다.”

결론은 이렇게 났다. 내쪽에서 선전포고가 들어갔다.

“아빠 말 안들으려면 니 맘대로 살아!”

그로부터 부녀의 15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살벌한 전쟁이었다. 서로 보고 마주쳐도 눈길도 안주고 말도 안하는 것이 우리의 전쟁 방식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우리집엔 월드컵의 함성과 일하는 할머니의 말소리만 들려왔다. 전쟁은 무려 15일을 치달았다. 나는 자신있었다. 나는 10년도 버틸 수 있지만 저쪽은 용돈 떨어지면 항복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항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보름 만에 처음 듣는 내 딸의 목소리였다. 잔뜩 쫄아든 목소리였다.

“요금 정액제 신청했는데, 아빠 허락 필요하대요.”

나는 와, 내가 이겼다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아주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야! 우리 지금 전쟁중이잖아.”

그런데 언제 쫄았느냐는 듯이 이렇게 받아치는 것이었다.

“아빠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건 거였지, 나는 전쟁한 적 없어. 아까 부탁한 거 취소한다.”

못난 내 딸을 이토록 예쁘게 교육시켜 주신 선생님들께 새삼 고맙쌈 인사를 드린다.

추신―, 두 주 밀린 용돈은 몰아서 줬다.

[[조영남 / 가수]]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퀸카년의 속마음  (0) 2006.10.05
그러니까 작년에 말이지  (0) 2006.10.05
수도원기행  (0) 2006.10.04
그릇을 씻는 마음  (0) 2006.10.04
그녀들의 애정행각  (0) 2006.10.04
Posted by ogfriend
수도원 기행 (하)-나 아닌 것들을 위하여
박일원
 P {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이틀 동안 온 세상을 적시며 내리던 비가 뚝 그쳤습니다. 해말간 하늘입니다. 햇빛이 살금살금 창턱을 넘고 있을 때 세상은 마치 방금 욕조에서 몸을 일으켜 빠져나온 여인 같습니다. 처마 끝에서는 낙수가 아직 뚝뚝 떨어지고 대지는 촉촉한 피부를 보입니다. 나리꽃에는 송글송글 빗방울이 맺혀 있으며 비탈을 덮고 있는 로즈마리에서는 상큼하고 유혹적인 비누냄새가 납니다.

양털처럼 뽀송뽀송하고 따뜻한 아침햇살은 대자연의 속살에 내려앉아 차근차근 물기를 닦아주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때마다 머리채를 흔들며 유칼리와 은사시나무는 부산하게 물방울을 털어냅니다. 뽀독뽀독 윤이 나도록 잘 닦인 바위 사이로 다람쥐 한 마리가 들고나곤 합니다.


네, 부산하기는 산 속에 사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이지요. 호주까치인 맥파이가 베란다 앞까지 날아들고 평소 수줍음이 많고 의심 많은 꿩과의 라이버드는 별채 앞을 흘깃흘깃 쳐다보며 커르릉 커르릉 울어 댑니다. 특히 수놈 라이버드는 다른 새의 울음소리는 물론 인간 세상의 소리까지 듣고 똑같이 흉내내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꾸 커르릉 대는 걸 보니 그 놈이 간밤에 방문 앞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제 코고는 소리를 들은 게 확실합니다.


다시 나타난 잿빛 토끼와 부스스한 모습으로 풀을 뜯기 시작하는 얼룩박이 젖소며 팔랑대는 나비를 쫓아다니며 철없이 짖어대는 양치기 개 때문에 저는 가만히 방안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와틀추리의 노란 꽃잎 위로 붕붕대며 벌들이 날고 불어난 개울에는 개구리가 와락와락 대며 시냇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둥근 자갈들을 굴리며 시끌벅적 흘러갑니다. 이제 온 세상은 기분 좋은 소요로 가득합니다.

어제까지 무거운 수녀복을 입고 있던 힐데가르드 수녀님은 청소복으로 갈아입고 빗자루로 여기저기 쓸기 시작합니다. 매주 목요일은 청소의 날이라고 합디다. 건초 수레를 끌고 가시는 맥덜린 수녀님. 침대시트를 한 아름 걷어들고 바쁘게 걸어가는 조안나 수녀님, 멀리보이는 목장 안에서 부릉부릉 대며 트랙터를 몰고 가는 또 다른 수녀님. 저는 대자연의 소요와 수녀님들의 ‘차분한 극성’에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갑작스런 이 아침소요에 한몫을 했네요. 성당 내부를 사진 찍게 해달라고 조안나 수녀님을 졸라 결국 허락을 받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구 셔터를 눌러댔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법석대는 아침나절을 보내고 옥수수와 찐 감자와 삶은 완두콩을 곁들인 소시지로 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입니다. 조안나 수녀님이 조용히 테이블로 오시더니 집에 갈 때 저 쪽 창가에 앉은 여자를 카이아마 역까지만 데려다주라고 부탁하더군요. 가만히 보니 그는 우리가 머무는 별채의 2층에 머무는 여자였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참 쌀쌀맞고 거만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동행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내는 쉽게 동의하더군요.


뭐 묵상하러 왔으니 한 집에 살면서도 말 한 번 건네지 않는 것까지는 그래도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길에서 만났는데 고개를 돌려 외면을 하더라구요. 그 길이 넓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성당을 나와 숙소로 가고 있었고 그 여자는 나무 밑에 앉아 있었지요. 그러다 제가 다가가니 고개를 돌리더란 말씀이지요. 그만하면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는 나눠야 되는 게 아니겠어요.


수녀원을 나오자 아내는 카이아마 역으로 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시드니로 올라오는 하이웨이 쪽으로 난 길을 타면서 그 여자에게 아예 시드니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조금 못마땅하고 거북했지만 이미 말해버렸으니 그냥 참기로 했지요. 얼마를 오다 그 여자는 자기가 좀 피곤하니 뒷좌석에 눕겠다고 하더군요. 속으로 생각했지요. 참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목장 한 가운데 드믄 드문 집들이 서 있는 게 참으로 쓸쓸해 보였습니다. 뒤편에 몇 그루의 나무도 있고 앞으로는 푸른 초지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집들이지만 맨 날 거기서 살며 이따금 오가는 차를 바라보며 지낸다는 것,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같은 시간에는 더욱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요.


“농부들이 왜 알파카를 양과 함께 키우는지 아세요? 비록 순하게는 생겼지만 저 알파카가 딩고 늑대나 여우의 습격으로부터 양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랍니다.”


언제 일어났는지 그 여자는 양떼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알파카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암놈 알파카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수놈이 근처로 다가 오면 침까지 뱉는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지요.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날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험해지지 않는다.


갈라지면서도

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

전단향나무처럼


인도의 잠언시집인 수바시따에 나오는 글귀라고 합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나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네, 그것은 제가 남을 대하는데 퍽 인색하다는 것을 고백하며 속죄하기 위해서지요.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잼버루를 떠나 시드니까지 오면서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꼬였었고 특히 운전대를 잡은 아내가 돌고 돌아 렌드윅의 그 여자가 사는 동네까지 찾아가고 있었을 때는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짜증까지 났었지요.


아내가 그녀가 사는 동네에 거의 다 와서 사는 집이 어디냐고,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반복해서 물었고 그 때마다 그 여자는 그냥 저기 라운드어바웃(로터리) 근처에 세워주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 여자가 아내에게 져서 말한 곳은 바로 ‘프린스 오브 웨일즈 병원’이었습니다. 그제 서야 우리는 그녀가 거기 장기 입원환자였다는 사실도 알았지요.


아, 그래서 뒷좌석에 자꾸 누웠던 것이었구나, 그래서 수녀원 산책로에서 만났을 때도 힘없이 고개를 외면하며 눈길을 피했던 거로구나, 그래서 한 집에 머물면서도 인사 한 번 나누지 않았던 거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 자신이 무척 추하게 느껴졌습니다.


병원 앞에 그녀를 내려주고 안작퍼레이드로 들어섰을 때 건물들을 붉게 물들이며 떠있는 오렌지 빛 석양을 바라보면서 어제 아침 수녀원에서 새벽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을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어 우리는 우산에만 신경을 썼지 어두운 길을 어떻게 가야할 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니 가로등이 항상 불을 밝히는 도회지 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겁니다.


아내와 제가 조심조심 성당까지, 요리조리 물웅덩이를 피해가며 오솔길을 살펴가고 있었을 때입니다.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며 우리 앞에 계속 플래시 불빛을 비쳐주고 있었습니다. 캄캄해서 뒤를 돌아보아도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오렌지 빛은 여전히 우리를 앞질러 가며 길을 살펴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볼 수 없어도 그는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제 앞길을 더듬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지난밤 앞길을 비쳐주던 손전등 불빛 속에서 저는 신과 조우했을지도 모릅니다. 맥덜린 수녀님의 말마따나 신은 그의 창조물에게 자신의 비밀을 우연히 알도록 여기저기 흔적을 떨어뜨려놓으셨는데 그걸 자꾸 제가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무슨 종교를 가졌든 세상에는 나 아닌 것에 향기를 더해주며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지요? 렌드윅의 저녁노을, 그 오렌지 빛깔이 오늘 저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나타난 힐데가르드 수녀님>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니까 작년에 말이지  (0) 2006.10.05
딸과의 전쟁  (0) 2006.10.04
그릇을 씻는 마음  (0) 2006.10.04
그녀들의 애정행각  (0) 2006.10.04
동서가 내속을 알까?  (2) 2006.10.04
Posted by ogfriend
그릇을 씻는 마음  
http://images.joins.com/blog/blogv3_1/dotline05.gif) repeat-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 colSpan=3>

 


지난 금요일.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개수대에 제멋대로 헝클어져 담겨져 있는 빈그릇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깨워 밥먹이랴, 내 와이셔츠 다림질하랴, 출근준비 하랴 서두르다 아침 회의 시간에 늦지 않기위해 미처 집사람이 아침 설거지를 못하고 출근을 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우리회사 역시 그 후폭풍을 비껴갈 수가 없었고, 비상국면으로 치닫고 있던차에 우리가 작년에 추진했던 국가사업의 한 프로젝트가 해당기관으로 부터 금년도 신규사업으로 채택되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긴장이 풀리면서 오히려 허탈한 기분까지 들었고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상념들이 곪은 상처가 터져 고름이 나오듯 머리에서 용솟음 쳤고,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주변의 잡다한 것들이 구석 구석으로 부터 눈에 박혀 들었다.

문득 설거지가 하고 싶었다.
더러운 것이 보기 싫어서가 아니고, 냄새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그릇을 씻고 싶어졌고, 그래서 개수대로 다가서는 내 기분도 다른때 처럼 마지못해해야했던 때의 지극히 수동적인 것이 아닌, 오히려 무엇인가새로운 것을 경험할 것같은 묘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다.

개수대앞에 다가서 어지럽게 쌓여있는 그릇을 바라보는 순간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릇을 깨끗이 씻는다는 생각이 아닌 그것을 씻는 행위에 동화되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얻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디선가 읽은 설거지에 관한 어떤 스님의 얘기가 떠올랐다.

저녁을 마치고는 손님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자
스승이 말했다. "정말 설거지를 할 줄을 아시오?"
자기는 평생 설거지를 해 왔노라고 손님이 항변했다.
스승이 말했다."아, 뭐. 깨끗이 씻지 못하실까봐서가 아니고요 ㅡ그저 정말 씻을 줄을 아시나 해서요."
나중에 제자들에게 해 준 설명인즉 이러했다.
"그릇 씻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지. 하나는 깨끗이 하려고 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씻으려고 씻는 것이고."
그러고 보니 도리어 더욱 아리송해졌는데,
그래서 스승은 덧붙혔다.
"첫째 행위는 죽은 행위이니, 몸은 설거지를 하는데 마음은 씻는다는 목표에 붙박혀 있는 까닭이요, 둘째가 살아 있는 것이니,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이말이 무슨 말인지 당시에는 정확히 이해를 못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릇을 씻기 위해서 개수대앞에 섰을 때 느낀 묘한 감정은 단지 그릇을 깨끗히 하기 위하여 설거지를 하려는 것이 아닌, 그릇을 씻으면서 내 마음속에 잔재한 낡은 것과 불필요한 것들을 함께 씻어 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묻어 있었고, 그래서 비로소 그 스님이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이나 한번 마시고 마는 물잔까지도 한번 쓰고 나면 씻어 두어야 다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거늘, 더럽혀지고 때묻고 얼룩진 내 마음은 무엇하나 담을 수가 없었다.
그릇을 씻으면서 더럽고 때묻은 마음을 담은 내 불쌍한 영혼이 손에 잡힌다.
깨지고 이빨빠진 그릇은 골라내어 버리면서 깨지고 얼룩진 내마음의 조각들은 어느 하나 골라내고 버리기가 힘들다.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냄비나 ,씻으면 씻을수록 빛이 나는 사기그릇을 보면서 내 영혼도 저처럼 닦고 씻어서 청정하게 할 수 없을까 생각을 해본다.

수십년 세상을 살면서도 버리지 못한 마음을 깨끗하게 흐르는 물을 보면서도 씻어낼 수가 없었다.

혼탁해진 내 가슴속 하나헹구어내지 못하면서도, 죄없는 그릇들 얼둘들만 닦고 있었다.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과의 전쟁  (0) 2006.10.04
수도원기행  (0) 2006.10.04
그녀들의 애정행각  (0) 2006.10.04
동서가 내속을 알까?  (2) 2006.10.04
아! 스트립쇼  (0) 2006.10.04
Posted by ogfriend
그녀들의 애정행각 조회(4384) / 추천(1) /  퍼가기(1)
http://images.joins.com/blog/blogv3_1/dotline05.gif) repeat-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 colSpan=3>
등록일 : 2006-06-23 15:12:37
-문화의 차이 2번째-

쾰른 대성당 앞에서 햇볕을 쬐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왼쪽을 보니 2명의 여성이 서로 포옹을 하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아주 대수롭지 않게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서로 얼굴과 얼굴이 다가가더군요. 입술과 입술이 닿을 정도로 말이죠...

 

그러더니 충돌. @.@

독일에서 남녀의 키스에 대해선 많이 봐왔지만 이건 좀 충격으로 다가오더군요.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돌발적 행동에 대해 순간적으로 카메라를장면을 담았습니다.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지나갔지만 그녀들의 애정행각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또 관심을 갖는 이들도 없었구요.가끔 학생들이 보고 웃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대다수가 쳐다만 보고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이 명동 성당 앞에서 일어난다면 우린???

 

그녀들의 애정행각은 약 20여분 지속되었습니다. 참 끈길기게 입을 맞추더군요. 그것도 아주노골적으로 말이죠.

기차시간은 다가오는데...허허~ 일어날 시간입니다.

 

한 남성이 슬그머니 다가와 그녀들 뒤에 앉아 바라봅니다. 부러웠을까요?
두 여성 가운데 오른쪽 여성이 어딜 가는 모양입니다. 배웅을 하고 서로 헤어지더군요.

레즈비언인지는 몰라도 두 여성중에도 한쪽은 남성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에서 왼쪽이 남성 역할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계속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만지더군요.

참고로 기차역으로 가는 여성에게 사진을 찍었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몰카 아닙니다. (찍을 땐 몰카였지요.ㅋㅋㅋ)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도원기행  (0) 2006.10.04
그릇을 씻는 마음  (0) 2006.10.04
동서가 내속을 알까?  (2) 2006.10.04
아! 스트립쇼  (0) 2006.10.04
스타벅스에서 생긴일  (0) 2006.10.04
Posted by ogfriend

블로그 이미지
오래된 그리고 좋은 친구들이 가끔들러 쉬다 가는곳..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 중 게재됨을 원치 않으시거나,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으면 즉시 게재한 내용을 삭제하겠으니 삭제요청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모닥불 올림. Any copyrighted material on these pages is used in noncomercial fair use only, and will be removed at the request of copyright owner.
ogfriend

태그목록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5.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