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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30 넌 날 미치게 했었지
  2. 2006.09.30 피지,뉴질랜드,호주 여정기
  3. 2006.09.30 절두산 순교성지
  4. 2006.09.30 떠남과 만남
너는 날 미치게 했었지 조회(1133) / 추천(11) /  퍼가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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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6-07-09 19:55:35

날 미치게 하는 친구가 있다.
그렇게 날 미워할 수 있다니!
죽어라 쫒아 다녀봐야 모두 허사였다.
낯짝은 커녕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릴 때까지숨죽여 집 근처를 지켜보지만
그래봐야 결국은 전조등을 켜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모를 일이다. 아마도 놈은 축 늘어진 내 등뒤에서씨익 웃고 있을지 ...
벌써 몇해가 지났을까? 헛물 켠 시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솔직히 이젠 좋아한다고, 정말 딱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 만나달라고 고백할 정열도 삭아들었다.
사실 난 처음부터예감하고 있었다. 애써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희망을 품었을 뿐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삶과 나의 인생은 처음부터 다다를 수 없는 길에 있었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친구를 처음 소개한 P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 겨울이후 오랫만에 온 전화였다.
이번엔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제 만난다고 뭘 어쩌랴.
그저 그러냐구 흥미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구보다 P선생님의 사는 모습이 더 궁금했다.
항상 쉽고 편한 길 놔두고 험한길로만 가려드는 그가 안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묘한 동질감을 느껴보곤 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달라져있었다. 그전엔 단양을 거쳐 죽령을 넘어 소백산 길을 꾸불꾸불 내려갔는데, 이젠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시원하게 영주까지 내달렸다.
사실 내 친구가 사는 곳은 두메산골의 계곡이거나 하천이다.
친구의 이름은 수달.
멸종위기종이라 하지만 그래도 물 좋은 곳이면 어디나 씩씩하게 살고 있다.
P선생님은 수달에 빠져 수달과 함께산 사람이다.
수달이 사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 그였다.
그를 두고 미쳤다고 수군대는 자도 있었고 세상의 험한 괄시를 받을 때도 많았지만
수달을 위한 싸움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그의 얼굴은 수달을 닮아 갔고, 내친구 수달 얼굴 대신 P선생님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그러나 오랫만에 만난 P선생님도 이젠 늙나보다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월은 항상 서러운 것들만 남겨 놓나 보다.
어쩜 그의 인생을 온통 뒤죽박죽으로망쳐 놓은 것은 수달일 것이다.

영주시를 관통하는 실개천이었다.
예전같이 두근거리는설레임은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맑은 물과 시원한 공기는 기분을 상괘하게 했다.
 

깝작도요가 물놀이를 하는지 먹이를 잡는지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에 다리를 적시고 있었다.

 

이번엔 검은등할미새가 아슬아슬하게 물을 적시고 있었다.

날 반기는 건 따로 있었다.
보 위에 잔잔한 곳에서 피래미들이 날뛰었다.
정신없이 물위로 튀어 오르는 피래미를 보느라 시간이 얼마나 지난는지, 수달을 만날 수 있을지 하는 생각 따위는 모두 잊어버렸다.
 

피래미도 물밖세상이 궁금할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눈 깜작할 순간에 솟았다 사라지는 이 놈들을 찍는 건 생각보단 힘들었다.
분명 셧터는 눌렀는데 사진 속엔 물 밖에 없었다.
고작 피래미 한마리를 찍는데도 이렇게 공이드는데 세상일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있을까?
그러나 피래미를 진짜 노리는 놈은 따로 있었다.
 

물총새다. 이름처럼 물에 총을 쏴대듯이 물고기 찍어내는 솜씨는 프리미어리거 급이다.

이젠 위장텐트 안에서 흐르는 땀을 닦을 물건이 없었다.
내의까지 이미 다 젖어 있었다.
팬티만 남긴 채 홀랑 다 벗어 버렸다. 진작에 벗을 걸...
다시 피래미를 찍는다. 물총새처럼 노려 보지만 여전히 사진엔 맹탕 물 뿐이다.
이때 '에그머니" 하는 소리와 '깜작이야' 하는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한 아주머니 얼굴이 위장텐트에 난 구멍으로 쑥 들어와 있었다.
'아줌마 깜짝 놀랐잖아요' 내가 말하자
'아저씨 내가 더 많이 놀랐어요' 라고 큰소리로 받아친 후
뭐하냐 물어볼 것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저 아줌마 어디 지서에 가서 수상한 자가 동네에 나타났다고 신고하는 거 아닐까?

잠시 후 죙일 더위에 지친 해가 뻘겋게 내려 앉고 있었다. 

음. 오늘도 이렇게 끝나는 구나.
해는 금새 먼 산 뒤로 사라졌다.
익숙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깜깜한 밤에 수달이 나타나면 뭘하나 찍을 재주가 없는걸...
생각할수록 고약한 친구다.

'저기저기' 속삭이듯 P선생님의 소리가 들렸다.
2마리가 건너편 수초 더미사이에서 나타나 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에 핀트를 맞추고 있을 때였다. 멀어서 희미했지만 분명 살아 있는 야생의 수달이었다.
'아' 결국 이렇게 널 만나는 구나.

잠시 나에게 눈인사를 하던 친구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친구가 사라진 물위로는 동심원만 빙빙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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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뉴질랜드 호주 여정기' (10 편)

(2006` 2, 16 ~ 2, 27)

바닷물 한없이 절벽 때리는 갭 파크

푸른 바닷물이 바위절벽에 부딪쳐 허옇게 부셔지는 물거품 등 잊을 수 없는 절경을 펼치는 갭 파크(Gap Park)에 올랐다. 따가운 햇살로 땀이 솟아 온몸을 흥건히 적신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절경을 하나라도 더 보려고, 아니 각인시키려고 바위틈을 힘들게 올라 가장 높은 곳까지 찾아갔다. 바위 절벽은 꾸불꾸불 몇 km나 이어졌다. 물거품은 바위를 때려 절벽 곳곳에 깊은 상체기를 남겼다. 그러나 끊임없이 푸른 바닷물은 절벽을 때려댔다. 건너편 기슭엔 팔각정이 보였다. 그곳 그늘에서 잠시라도 땀을 식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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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 파크의 표지판. 표지판 뒷쪽 절벽으로 오르면 갭 파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가 바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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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아랫쪽에는 파도가 몰려와 바위를 때리곤 흰 거품을 토해 낸다. 절벽 위엔 고급주택가가 자리했다. 엄청 좋은 전망을 둔 저택들이다.)

시드니항구를 볼 수 있는 크루즈에 나섰다. 선착장엔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선착순으로 배에 입장해야 하기에 일찍 올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땅히 쉴 곳이 없다. 햇살은 여전했고. 반시간 이상 이곳저곳을 흘깃대다 배에 올랐다. 배가 내항을 출발하면서 바로 선상뷔페가 시작됐다. 점심을 조용히 먹을 수 없다. 양편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어떻게 배만 불릴 수 있을쏘냐. 푸른 바다와 푸른 숲, 그리고 벽돌색의 엎드린 나지막한 주택들, 자연과 잘 조화된 한 폭의 그림이다. 배의 속도에 따라 풍광은 자꾸만 바뀔 수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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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내항을 유람시킬 선박이 부두에 정착해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내항의 아름다운 모습을 관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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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주택들이 엎드려있다. 바다엔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하버브리지 아래를 지났고, 이어 나타난 조개껍질 모양의 오페라 하우스, 내항 복판에 떠있는 조그마한 핀치가트 섬(Pinchgut Island), 하늘을 찌를 듯한 도심의 고층빌딩 숲, ...... 이들 하나하나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다. 특히 핀치가트 섬의 성채 포트 데니슨(Fort Denison)이 눈길을 끌었다. 이 성채는 식민지시대 죄수들을 유폐시키기 위해 만든 수용소다. 이 근처에는 상어 떼가 득실거려 감히 탈옥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다가 1857년 포대를 구축하는 등 견고한 요새를 만들어 시드니 항구를 지키는 진지구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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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항의 한 복판엔 핀치가트 섬이 그림처럼 떠있다. 이 섬의 성채 포트 데니슨은 영국식민시대 죄수들의 감옥으로 사용했다. 주변엔 식인상어들이 우글거려 탈출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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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전경. 그림같은 아름다운 건물이다. '현대건축의 기념비'란 수식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크루즈가 끝나면서 바로 그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를 찾았다. 무슨 말로 이 건물을 얘기할 수 있을까? 이 건물을 두고 ‘근대건축의 기념비’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을 정도다. 건축기간 14년 동안 말도 많았다. 1956년 뉴 사우서 웨일스(New South Wales) 주(州) 정부는 세계적인 건축설계경연대회를 열었다. 공모된 32개국 233점의 작품 중 덴마크 출신 Jorn Utzon의 작품이 선정됐다.


오페라 하우스, 복권까지 팔아 건설

1959년 3월 3단계 공사 기공식이 열렸다. 1963년까지 기초공사와 하부 벽 토목공사 등 1단계 공사, 1967년까지 아치형 지붕공사 ․ 유리벽 공사 ․ 내외 벽 공사 ․ 주변산책로 공사 등 2단계 공사, 3단계는 내부공사 등의 순으로 진행시켰다.

설계자 Jorn Utzon은 2단계공사 중 과다 계상된 건축비용문제와 정치적인 문제가 겹쳐 사임하고 덴마크로 돌아갔다. 당초 건축예산은 시민들이 모금한 700만 달러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엄청난 공사비가 들어갔던 것이다. 그 후 4명으로 구성된 호주 건축 팀이 설계도를 일부 수정해 완공했다. 총 건축비는 1억 200만 달러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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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건물을 배경으로또 한 컷 찍었다. 염치 없음은 물론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건물을 배경으로 했기에 그나마 늙음도 감춰진듯 했다.)

주정부는 이 초과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오페라하우스 복권’을 판매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73년 9월 완공했다. 첫 공연작품 오페라 ‘전쟁과 평화’는 성황리에 마쳤다. 그 해 10월 20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참석해 개관식을 가졌다. 이 개관식에는 설계자 Jorn Utzon은 초청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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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뜬 오페라 하우스. 아무리 수식어를 동원해도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오페라하우스에는 콘서트홀, 오페라 극장, 드라마 극장, 연극관 등 4개의 주공연장과 부장실, 도서관, 연습실, 휴게실, 식당 등 1.000여개의 방이 있다. 가장 큰 콘서트홀은 2.690석을 좌석을 가졌으며, 교향곡과 대중민속음악 등을 공연한다. 또 1.600석의 오페라 극장엔 오페라를, 544석의 드라마 극장은 드라마와 댄스공연을, 398석의 연극관은 연극이나 강의 세미나 영화공연 등이 열린다.

콘서트홀은 음향효과를 높이기 위해 위쪽 벽과 천정에는 호주산 백색 자작나무 합판을 붙였다. 또 아래 벽과 계단 무대 관람석에는 갈색 회양목을 깔았다. 음향효과는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게 됐다. 무대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검은 색을 칠했고, 무대 위쪽에는 18개의 도넛 모양의 아크릴 음향 반사판을 달아 악기소리를 무대 위로 반사시키도록 만들었다. 홀 중앙에는 10.500개의 파이프와 5단짜리 건반이 있는 세계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 3대 美港, 한몫 거들어

이 건물의 전체길이는 185m이며, 가장 넓은 곳이 120m, 가장 높은 곳은 콘서트홀로 해발 67m에 이른다. 지붕은 4.253개의 틀 위에 스웨덴에서 수입한 무광택 타일 1.056.000개를 붙여 완성했다. 햇볕의 반사로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것을 피하기 위해 무광택 타일을 붙였다. 조가비 모양의 지붕 안 한쪽에는 보통유리를, 다른 한쪽엔 황 홍색 코팅을 한 프랑스제 2중 유리 2.000여장이 들어갔다.

이 건물의 독특한 디자인은 설계자 Jorn Utzon이 부인이 들고 있는 쟁반위의 오렌지 조각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 바람은 받은 요트 또는 조가비의 모양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조가비 모양이 정설로 굳어져가고 있는 분위기다.

우린 오페라하우스 내부를 둘러봤다. 공연은 없었지만 직원들이 나와 분주히 움직인다. 외부를 돌기도 했다. 이른 시간 탓인지 공연은 그 시간에 없다. 이 건물은 시드니의 상징물답게 멀리서 봐도 독특하면서 그 아름다움이 확 눈에 들어왔었다. 가까이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아름다웠다. 건물 내부도 마찬가지로 미적 감감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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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즈 매쿼리 포인트'. 메쿼리 총독 부인인 매쿼리여사가 항해에 나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앉았던 '매쿼리 부인의 의자'라는 바위의자가 있는 곳이다.)

일행은 하버브리지를 찾아가지 않고 ‘미시즈 매쿼리스 포인트(Mrs. Macquarie`s Point)'로 옮겨 그곳에서 시드니항구의 상징인 하버브리지를 감상했다. 다리 위에는 관광객들이 올라가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미시즈 매쿼리스 포인트가 유명해진 것은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를 이곳에서 바라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점 때문이다. 왕립식물원에서 뻗어 나온 잭슨 만(Port Jackson)에서 튀어 나온 곶(Point)에 자리했다.

이곳에는 ‘매쿼리 부인의 의자(Lady Macquarie`s Chair)'라는 바위의자가 있다. 매쿼리 총독 부인이 항해에 나선 남편이 돌아오기를 이 바위에 앉아 기다렸기에 붙어진 이름이다. 바위엔 이 같은 내력을 적어놓았다. 여기서 서쪽은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 동쪽에는 호주해군의 선착장이, 끝자락엔 포트 데니슨이 자리한다. 오페라하우스나 하버브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상당시간 기다려야했다. 신혼부부 두 쌍과 그 가족들이 몰려와 촬영하면서 부산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진촬영장소의 명소로 이름이 난 곳이다. 바다를 끼고 산책하기에도 참 좋은 코스라고 느꼈다.


‘건강’, ‘제일’ 축배로 피날레장식

어느 듯 해가 설핏했다. 시드니의 관광도 이로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저녁을 먹곤 이곳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렇다고 호텔이 교외에 있으니 도심으로 다시 나가 야경을 즐길 수도 없다. 이 여행을 청산하는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순 없었다. 남은 양주를 가지고 호텔 바로 내려갔다. 맥주를 시켜놓고 폭탄주로 짧지 않은 여정의 무사함에 감사하는 축배를 들었다. 이 여행에서 서울 팀에게 축배제의의 독특한 방법을 배웠다. 축배를 제의하는 사람이 먼저 “건강”이라고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제일!”이라고 큰소리로 복창한다. 또 “오늘도~”라고 선창하면 “건강하게~”라며 복창을 하는 방식이다. 우린 이 방식으로 폭탄주를 연거푸 마셨다. 술이 떨어질 때까지. 바 종업원들도 우리의 술자리를 보곤 혀를 내둘렀다. 맥주병이 가득 쌓인 데다, 양주병까지 놓여있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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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하버브리지를 배경으로 단체촬영했다. 뒷줄 네 번째 분과 앞줄 왼쪽 첫 번째 부인이 태백에서 온 칠순 부부다.)

새벽이 찾아왔다. 서둘렀다. 아침 7시 10분까지 공항에 도착해 출국수속을 밟아야했다. 인천공항 발 대한항공 KE 812편을 탄 시간은 오전 9시 10분. 인천공항엔 이튿날 오후 5시 40분 닿았다. 우린 대구행 비행기를 탔다. 대구도착은 저녁 8시. 집사람이 마중 나왔다. 함께 식당으로 옮겨 해단 식을 가지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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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두봉과 절두산순교성지 2006/07/06 00:21추천1스크랩2

잠두봉과 절두산순교성지

가 사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서 멀지 않은
합정동 양화대교 부근에 순교성지가 있다.
이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전하려다 대원군의 쇄국 정책에 의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8천여 명 추정) 많은 목숨들이 산화(散華)된 곳으로
지금은 「절두산순교성지」로 불리워지고 있다.


원래 이곳의 옛 이름은 잠두봉(蠶頭峰) 이었다.
양화나루(楊花津) 위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든 것 같다하여 잠두(蠶頭)로 불러졌다.
게다가 주변 경치가 얼마나 빼어났던지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중국에서 온사신 조차도 빼놓지 않고 다녀갔던아름다운 곳이었다.


잠두봉과 양화나루에는 꽃보다 아름답게 늘어진 버드나무가 있었고,
양화나루에 날리는 겨울눈의 이야기와
나룻터를 오가는 많은사람들의 서정을 간직했던 곳이다.
하지만운치있고 평화롭던 이곳은 병인년(1866년)을 기점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상 혹독한 박해와 순교자의 피로 얼룩지기 시작하였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의 서강(西江)까지 침입해 오자대원군은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 물을 서학(西學)의 무리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광기 어린 박해의 칼을 휘둘러 순교자의 피로 잠두봉 바위를온통 핏빛으로 물드리었다.
이때부터 양화나루나 잠두봉 등 아름다운 이름은 불려 질 수 없게 되었으며,
그래서 불려진 이름이 절두산(切頭山:머리가 잘림)으로 지명을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


당시대원군은 천주교도들의 처형지를 일부러
이전의 서소문 밖 네거리와 새남터 등에서
프랑스 함대가 침입해 왔던 양화진 근처인 잠두봉을 택함으로써
침입에 대한 보복이자 ''서양 오랑캐''에 대한 배척을 표시했다.
그러나 천주교에 대한 박해와 살육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868년 남연군 무덤 도굴사건과 1871년 미국 함대의 침입 등의 사건은
대원군의 서슬 퍼런 박해에 기름을 퍼붓는 꼴이 되어 살육은 6년간이나 계속됐고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회사에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되어진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1966년 병인박해 100년을 기념하여
천주교는 잠두봉에 ‘절두산순교기념성당’을세워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기에 이르렀다.


념관은 순교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고유미를 살리는 데 역점을 두어 설계되었다.
건물의 둥근 지붕은 선비들의 갓을 상징했고,
굴뚝처럼 높이 솟은 지붕위의 수직벽과 그 위에 뚫린 구멍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칼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붕 위에서 내려뜨려진 쇠사슬은 족쇄를 상징하며,
성당의 평면은 부채살형으로써 초점인 제단에서
성찬과 말씀이 반사되어 바깥 세계로 퍼져 나가
모든 인간에게 전해지는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였던안드레아김대건 동상이 세워져있다.


그 밖에순교 성인 28위의 성해를 모신 지하묘소가 있으며,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수많은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박물관에는 초대 교회 창설에 힘썼던
선구 실학자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의 유물을 비롯하여
순교자들의 유품 및 형구(刑具) 등 갖가지 진귀한 순교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 글, 카톨릭 자료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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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루가 22:42)

다 버리시어 다 얻으신,

가장 낮추시어 가장 높아지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여기 '길 잃은 양'이 홀로 있습니다.

그가 힘들어하면 부축해 주시고,

그가 방황하면 빛이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아멘-

* 블로글를 개설한지 1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블로그는 나 '자신'이었고 '위안의 벗'이었습니다.

또한,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되었습니다.

그 많은 것들을 다 배우고 내 것으로 포용할 수는 없었지만

나만의 모양을 만들어 가며 즐거웠습니다.

* 음악은 아마사진님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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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9. 30. 14:25 여행,레저

떠남과 만남

[스크랩] 떠남과 만남
원본: 꿈도오고 사람도오고2006/07/06 오후 10:41 | 여행&산행관련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달빛 그윽한 밤에 홀로 걷는 것이다.
      어느 낯선 포구 신 새벽에
      플라스틱 통 속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보는 것이다.
      매화향기 그윽한 강가에서 술을 한잔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 벚꽃 잎들이 눈처럼 날리는 그 찰나에
      그리움으로 터져 버리는 것이다.

      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먹던 밥그릇과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녀간 낡은 여관방 벽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행은 도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없다.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더 담아 올 수 있겠는가?

      '떠남과 만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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