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에 해당되는 글 188건

  1. 2006.09.30 케이프타운의 물개섬
  2. 2006.09.30 모로코 기행 3
  3. 2006.09.30 암컷리더만 보고 뛰다가 맞는 버팔로의 비극
  4. 2006.09.30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에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항구도시로서,

옛부터 나폴리, 샌프란시스코, 리오데자네이로 등과 함께 세계적인 선박 기항지로

알려져 있다.

케이프시는 케이프의 주 수도일 뿐 아니라 남아공의 입법부 수도로서 국회가

있기에 국회 개회식 때는 대통령이 프리토리아에서 언제나 이 곳에 와서 참석을 한다.

물개의 무리들은 케이프 해안선을 따라 가다가 다시 보트를 타고,

물개섬으로 가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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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9. 30. 14:40 여행,레저

모로코 기행 3

 
모로코 기행 3, 고도 오아시스 페스 2006/07/18 08:59추천0스크랩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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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죽 제조공장

고도 오아시스 페스



차가 밀밭과 초원으로 된 산들을 요리조리 넘어 다니더니 드디어 옛 도시 페스에 닿는다. 라바트에서 동쪽으로 160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페스는 상주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이다. 801년 이드리스왕조의 제2대 이드리스 2세가 수도로 삼은 후 마그레브에서의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1276년에 마리니드 왕조가 새로운 페스를 건설하였으며 오른쪽 강가의 옛 도시가 페스알발리, 왼쪽의 새로운 도시가 페스알제디드이다. 이 도시는 대서양 연안의 카사불랑카나 라바트에서 지중해 연안의 알제로 통하는 대상로의 요지로 상공업이 발달했다.

먼저 찾은 페스 왕궁은 넓이가 42헥타르로 여의도만한 크기이다. 12세기에 건립한 이 왕궁은 오랜 세월에 파괴된 것을 16세기에 다시 지었다. 주위에는 담장을 높이 쌓아 놓고 정문은 군인들이 보초를 서서 출입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들어가 보기는커녕 겨우 정문 앞 광장에서 황금빛 정문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정문은 황금빛 장식을 해놓고 담장에도 갖가지 색깔의 타일을 붙여놓은 것이 호화롭기 그지없다. 이 왕궁은 왕이 거주하지 않고 단지 일이 있을 때에만 행차하는 이궁인데도 1년 내내 왕을 맞을 준비를 해두고 있다니 국왕은 역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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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정문

먼 길을 달려와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식당에 들려서 점심식사를 한다. 식당 건물은 회교사원을 모방하여 지은 것으로 내부에는 작은 타일을 붙여서 화려하게 장식을 해놓았다.

점심식사는 양고기 요리에 빵이다. 원주민들이 평상시에 먹는 식사란다. 그런데 먹어보니 배가 고파서 그런지 먹을 만 했다. 이곳 모로코 사람들은 양고기가 주식이란다.

오후에는 이곳 재래시장을 구경했다. 9세기 초에 형성된 이곳 재래시장은 무려 7.000여개의 미로가 있는데 그것은 300개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단다. 1천년 전에 형성된 시장의 골목길은 겨우 2명이 스쳐 지나갈 정도로 좁다.

그래서 모든 물건은 어깨 메고 운반하거나 당나귀 등에 싣고 운반을 한다. 더구나 오래된 건물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길 위의 양쪽 건물 사이에다 버팀목을 받혀놓았으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한번 들어가면 못 찾아 나온다고 한다. 아니, 내가 들어가 보니 이 시장에서 찾아 나오기는 아예 불가능 했다.


길가에 늘어선 상점에는 가죽상품점이 가장 많고 은 세공품과 의류점, 잡화점, 기념품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기념품상점에 들려서 세 번째 아프리카에 온 기념으로 은 세공품 하나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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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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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세공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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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세공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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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상점


시장을 구경하다가 앞사람을 따라서 겨우 한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좁다란 계단 길을 올라보니 온천지가 가죽제품이었다. 그런데 가죽냄새가 얼마나 지독하든지 허브 잎을 코에 대고 있는데도 숨을 쉴 수가 없다. 그곳이 바로 가죽제품 전시장이다.

그런데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가죽 가공공장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모습이다. 100여개나 되는 커다란 통속에 도축한 양가죽을 담아놓고 무슨 약품을 넣은 후 사람이 들어가서 발로 가죽을 밟아서 가공을 하고 있다.

어떤 통은 붉은 피가 가득하고 또 어떤 통은 푸르고 희고 누른 약품이 담겨져서 거기서 가공을 하는 사람 역시 푸르고 희고 노란 물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냄새 또한 지독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한번 자세히 보고 싶었으나 지독한 냄새 때문에 다가설 수가 없다.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이 이런데 작업을 하는 사람이야 오죽할라고. 지옥도 아마 저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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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죽 제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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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죽 제품 상점


거기에도 회교사원은 있었다. 하지만 보수공사를 하는 중이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857년에 창립된 이슬람신학대학과 아랍문예 중심의 알 카라윈대학 그리고 2,0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사원 창시자인 물라이디스의 묘 있다고 하지만 사정의 여의치 않아서 그대로 지나치고 말았다.

이러한 메디나(Medina)는‘도시’라는 뜻으로 모로코가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도시적인 삶의 중심지를 의미했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과 노천 시장들, 공동체의 공간들로 구성된 메디나에는 모로코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배어 있다.

모로코의 메디나 가운데서 현재 약 백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페스 메디나는 역사적인 가치가 풍부한 종교와 문화, 예술,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이다. 모로코에서 가장 경이로운 메디나로 알려진 이곳은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중세 도시를 대표하며 스페인과 아랍 문명의 진수를 이루고 있다.

북서 아프리카의 이슬람교 발상지인 이곳은 주민들 모두가 회교도들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살라마니코[신의 가호가 있기를!(안녕!)” 이라는 인사말을 한다.

‘이슬람’은 복종을 ‘무슬림’은 복종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의 이슬람교도[무슬림]들은 14억 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국가가 아닌 종교로 뭉친다. 왼손에는 칼[더러운 것]을 들고 오른 손에는 코란 경전[사랑, 좋은 것]을 들고 생활하는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순박한 사람들이다.

페스 시가지를 조망하기 위해서 언덕을 오른다. 경사지에는 넓고 큰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관도 없이 시체를 그대로 땅에 묻는다고 한다. 그 위에다 비석을 세워놓았으니 묘지는 크고 작은 비석만 빽빽이 서 있다.

언덕 위에는 옛날에 쌓아놓은 요새가 있었다. 패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니 옛날에는 대단했을 것 같다.

요새부근에 있는 언덕 위에 올라서니 사원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가 한눈에 든다. 작은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주택들, 거기에 둥근 텔레비전 위성안테나가 수없이 달려있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모로코는 국영방송국 2개국뿐이어서 다양한 프로를 원하는 주민들은 위성안테나를 설치하여 유럽의 방송을 시청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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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물건을 나르는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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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이 무너질려고해서 길 위에다 나무로 버팀목을 만들어 놓았다.


신시가지에는 무하메드 5세의 거리가 있었다.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으로부터 모로코의 독립을 쟁취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숭앙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이 거리는 넓은 길 양쪽에 찻길이 있고 그 중앙에는 야자나무와 푸라타나스가 늘어섰는데 거기에 벤치가 놓여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페스는 현대거리 보다도 1천년 전에 건설된 메디나가 역시 명물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비좁고 불편하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메디나를 보려고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니 참으로 희한하지 않는가. 페스를 떠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메디나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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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는 국영방송국 2개 뿐이므로 다른나라 방송을 듣기위해 집집마다 위성안테나를 설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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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주석 세공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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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리더만을 보고뛰다가 맞는버팔로의 비극

버팔로 점프를 가다

버팔로3.JPG'

'헤드 스매시드 인 버팔로 점프' 전경 < 사진 = 조성관 >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Dance With Wolves)의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는 버팔로(혹은 바이슨)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들소떼가 지축을 흔드는 굉음을 내며 대초원을 질주하는 모습이다.

대작 서부 영화에 흔히 볼거리로 등장하는 게 버팔로 떼의 질주이다.

이 장면은 로데오와 함께 서부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북미 중앙부의 프레리 지역에서 자유롭게 유목하는 아메리카 들소는 1920년대 들어

완전히 사라졌다. 21세기 버팔로는 울타리가 쳐진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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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아래 초원서 올려다 본 '헤드 스매시드 인 버팔로 점프' < 사진 =조성관 >

캐나다 앨버타주 남부의 작은 마을 포트 맥라우드(Fort Macleod). 캐나다 기마경찰(RCMP)이 창설된 이 도시에서 서쪽으로 18km를 가면 헤드-스매시드-인 버팔로 점프(Head-Smashed-In Buffalo Jump)가 나온다. 이 긴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버팔로가 떨어져 머리가 깨지는 곳쯤이 될 것 같다. 이것을 줄여서 버팔로 점프라고 부른다. 북미 대륙의 거인으로 불렸던 버팔로의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다.

버팔로 떼를 절벽 밑으로 떨어뜨려 사냥하는 장소는 이곳 외에 미국 텍사스를 비롯한 몇몇 곳이 있지만 포트 맥라우드가 그 규모 면에서 가장 크다. 유네스코는 1981년 포트 맥라우드의 버팔로 점프를 이집트 피라미드, 갈라파고스 군도와 함께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포트 맥라우드를 벗어나 자동차가 785번 고속도로를 달리는 데 대초원이 뻗어나가다가 야트막한 절벽에 가로막힌 게 보인다. 버팔로 점프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 끝이 안 보이는 길다란 절벽을 보고 있는데 순간 도로와 절벽 사이의 초원에 작은 버팔로 사육장이 있었다. 자동차는 이 사육장을 순간적으로 지나쳤다.

버팔로 점프가 가까워오자 이번에는 왼편에 티피(tipi: 북미 원주민들의 모피로 만든 이동식 원뿔형 천막집) 여러 채가 나타났다. 여행가이드 바트 도넬리씨는 실제 사는 곳이 아닌 야영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티피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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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 점프의 안내 센터 현관. < 사진 =조성관 >

버팔로 점프의 현장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안내센터(www.head-smashed-in.com)를 거쳐야 한다.

캐나다 건축가 호베르 르블랑이 설계한 이 건축물은 절벽 일부를 잘라내고 원래 절벽과

똑같은 높이로 지었다. 건물 자체만으로도 걸작이어서 1990년 캐나다 총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방문객은 1~2층에서 선사시대 대초원의 생태학과 대초원에 살던 원주민의 생활방식을 배우게 된다.

3층에서는 모형 지형도을 통해 들소 떼가 모이는 분지와 절벽을 향해 무리를 몰아가는

길을 확인하고 사냥에 앞서 원주민들이 벌이는 영적 의식 등을 체험하게 된다.

4층은 1700년대 초 유럽인이 여러 가지 생산품들을 들여온 이후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말과 총기의 도입은 전통적인 버팔로 사냥의 소멸을 불러왔고 원주민의 버팔로 문화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대초원의 원주민 역사와 버팔로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았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가보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출입문을 밀면 대초원이 펼쳐진다.

가드 레일을 따라 100여 미터를 걸으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기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바라다보며 생각했다.

불과 100년 전 까지만 해도 버팔로들이 이 초원을 떼지어 돌아다녔겠지.

전망대에 서서 눈을 감았다.

버팔로가 내는 굉음이 바람에 실려 들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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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풋 원주민의 버팔로 사냥 상상 모형. < 사진 = 조성관 >

절벽의 평균 높이는 13m. 이곳은 5700년 전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버팔로 점프 사냥터로 이용되었다. 대초원에 이런 대규모의 절벽 지형이 만들어진 것도 신기하지만 동시에 이런 자연적 지형을 이용해 버팔로 사냥법을 개발한 원주민의 지혜는 놀랍기만 하다.

원래 절벽 높이는 20m를 넘었지만 수천 년 동안 버팔로의 뼈가 쌓이고 그 위에 풍화작용에 의해 흙이 덮여짐으로써 현재의 높이가 되었다. 버팔로 점프의 절벽은 밑으로 난 산책길에서 봐야만 그 높이가 실감된다. 지금도 절벽 아래에서 조금만 흙을 파면 버팔로 뼈가 출토된다. 안내센터에는 실제 뼈가 묻혀 있는 모습을 여행객이 볼 수 있게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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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맥라우드 박물관의 버팔로 박제.< 사진 = 조성관 >

남부 앨버타에 살던 원주민 부족은 블랙푸트(Black Foot)족. 이들이 버팔로를 절벽 아래로 몰아 떨어뜨려 잡는 전통적인 사냥법을 따르던 시절, 그러니까 1700년대 초반 유럽 모피상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북미 대륙에는 6000만 마리의 버팔로가 살았던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한다.

버팔로 사냥은 버팔로의 특성을 이용한 과학적인 사냥법이었다. 버팔로 사냥은 일년에 한번씩 이뤄졌고 보통 한번에 150여 마리씩 잡았다. 먼저 부족의 추장은 사냥을 시작하기에 앞서 의식을 치른다. 버팔로 사냥은 보통 130명의 청년이 동원되는 노동집약적 사냥이다. 추장은 달리기를 잘하는 강건한 젊은 사냥꾼을 선발해 버팔로 몰이역(役)으로 내보낸다. 이들은 광대한 초지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버팔로 떼를 연기를 이용해 몰아온다. 버팔로 떼를 V자 모양의 몰이길(drive line) 입구까지 이동시키는 데는 보통 3~4일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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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0년 전의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원. < 사진 = 조성관 >

버팔로 떼가 다가왔을 때 노련한 사냥꾼들은 고통스러워하는 버팔로 새끼 울음소리와 몸짓을 흉내 내며 버팔로 떼를 몰이길 입구의 분지로 유혹한다. 일단 버팔로 떼가 몰이길 입구 의 분지에 갇히면 뒤에서 접근해오던 사냥꾼들이 일제히 일어나 버팔로 떼를 공격한다. 위협을 느낀 버팔로 리더가 질주하기 시작한다. 다른 버팔로들도 리더를 따라 뛴다. 몰이길 양 옆에서는 늑대의 가죽을 쓴 사냥꾼들이 버팔로가 무리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는다. 헤드 스매시드 인 버팔로 점프의 경우 몰이길이 절벽까지 4.8km에 달했다.

버팔로 떼의 리더는 암컷. 한 두 마리의 암컷 리더가 뛰기 시작하면 나머지 버팔로들은 암컷 리더를 따라 맹목적인 질주를 시작한다. 암컷 리더가 달리기를 멈출 때까지 이들은 무서운 속도로 달린다. 평균 몸무게가 500kg이 넘는 버팔로는 한 시간에 50km를 달릴 수 있다. 절벽에 다다른 버팔로들이 바로 앞길에 낭떨어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확인해도, 이미 앞서간 동료들이 절벽 아래서 사냥꾼들에 의해 도륙되고 있는 현실을 알아차려도 이미 때는 늦었다. 앞발로 아무리 절박하게 제동을 걸어도 시속 50km로 뒤에서 들이받는 버팔로 떼에 떠밀려 20m 절벽 아래로 고꾸라진다.

절벽에 머리를 쳐박고 떨어지는 버팔로들이 그 자리서 즉사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다리가 부러지거나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게 된다. 이때 기다리고 있던 사냥꾼들이 창과 칼로 신음하는 버팔로를 도살한다.

원주민들은 버팔로의 고기는 식량으로, 가죽은 티피(원뿔형 이동식 천막)를 만들거나 옷을 짓는데 썼다. 뿔은 숟가락으로 만들어 썼고 혀는 약재로 사용했다. 원주민들은 절벽 아래에는 버팔로 뼈만 남겨놓았다. 보통 4인 가족이 사용하는 티피 하나를 만드는 데 14마리의 버팔로 가죽이 필요했다. 이런 전통적인 사냥법은 버팔로의 개체수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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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버팔로를 사라지게 만든 장총과 버팔로 가죽, 그리고 해골. < 사진 = 조성관 >

버팔로의 비극은 유럽 모피상들이 가져온 장총과 말에서 시작됐다. 유럽인들은 버팔로 사냥단을 모집했고, 프레리에는 장총을 든 사냥꾼들이 넘쳐났다. 이들은 버팔로 사냥을 스포츠로 즐겼고, 이때부터 버팔로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게 된다. 철도회사 유니온 퍼시픽은 객차의 방석용으로 불과 몇 달러에 버팔로 가죽을 사들였다.

버팔로 사냥에 한번 총을 사용하기 시작한 원주민들은 더 이상 창과 화살을 잡지 않았다. 여러 날이 걸리는 버팔로 사냥법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원주민들은 유럽인에게서 더 많은 총기를 사기 위해 버팔로 사냥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캘거리 중심가에 있는 글렌보우 박물관에는 17~18세기 버팔로 사냥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원주민들은 장총 한 자루와 버팔로 가죽 12장을 맞바꾸었다. 100파운드짜리 밀가루 한 포대는 버팔로 가죽 4장을 주어야만 했다. 남자바지 한 장이나 품질이 낮은 여자 드레스 혹은 말방울 12개를 사려면 버팔로 가죽 1장을 건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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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속에 묻혀 있는 버팔로 유골. < 사진 = 조성관 >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문자가 없었다.

이들은 1만년 동안 계속된 버팔로 사냥에 대한 기록을 전혀 남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버팔로 점프 현장에 오면 그 흔적은 널려있다. 고고학자들이 곳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38년. 미국 역사박물관 소속의 고고학자 주니어스 버드였다.

이후 194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4개의 대형 연구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고고학자들은 방사성탄소에 의한 연대 측정법으로 가장 오래된 뼈를 조사했다.

이에 따라 이 절벽은 5700년 전 처음으로 버팔로 사냥에 이용됐다. 5700년 전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가 최초로 건설되고 영국에서 스톤헨지가 세워진 시기보다 500년이나 앞서는 것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버팔로 점프 장소는 미국 네브라스카의 스코츠블러프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9000년 전인 선사시대 초기에 버팔로 사냥을 한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한다.

야생 버팔로가 북미 대륙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유목하는 버팔로는 스크린에서만 존재하는데도.

전망대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데 4층에서 한 소녀가

수십개의 버팔로 해골 앞에서 까르르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버팔로4.JPG

< 사진 = 조성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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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리조트호텔 방문기 (1) : Hotel Bellagio
2006/07/17 17:27
란도 조회545 추천0

안녕하십니까.

이번 독립기념일 연휴를 이용해서 라스베가스를 방문했읍니다. 2년만에 가봤는데, 여러 군데서 공사를 하고있고, 2년 전에 한창 공사중이던 Wynn Las Vegas가 오픈이 되었더군요.

최근의 라스베가스는 도박도시보다는 가족 리조트 개념의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실제로도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읍니다.

오늘은 Wynn Las Vegas가 생기기 전까지 라스베가스 최고의 호텔이었던 (아마 지금도 그러리라 생각이 듭니다만..) Hotel Bellagio의 모습들을 올리겠읍니다.

사진기가 3.3 M pixel의 Cannon 310이라 순간포착을 썩 잘 못한 점 양해를 구합니다.

이 것은 Las Vegas Blvd 건너 Hotel Paris에서 본 Bellagio의 모습입니다.

이 것은 Bellagio Hotel 로비의 천장에 있는 장식인데, 300 만불짜리라고 합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유리로 만든 꽃들인데, 엄청나게 비싼 꽃들입니다.^^

이 사진은 Bellagio Hotel의 입구의 모습입니다. 천장의 장식이 아름답습니다.

이 장면은 유명한 Bellagio Hotel의 분수쇼 장면입니다. Celine Dion의 Titanic 주제가가 나오면서 수면에 인공안개가 뿌려지고, 그 다음에 아름다운 분수쇼가 시작됩니다. 곡들이 몇 곡이 있는 모양인데, 밤의 분수쇼 장면이 압권입니다. 연인들을 위한 코스입니다. ^^

벨라지오 호텔은 Caesar's Palace Hotel 옆에 있읍니다. 멀리Caesar's Palace Hotel이 보이고 가까운 곳은 분수쇼가 펼쳐지는 인공호수와 붙어있는 입구의 명품상가 건물들입니다. 저 곳을 지나서 호텔로 들어갈 수가 있읍니다.

위는 분수쇼 장면들입니다. 다음은 건너 Hotel Paris의 Efel Tower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분수쇼 장면과 호텔 주변의 야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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